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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재구성으로 새로운 정치주체를 세우자!
-<2010년 지방선거와 풀뿌리정치운동의 대응 방향>에 대한 토론문
김 두 수(사회디자인연구소 상임이사)
1. 우리는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오세제 ‘7080연대 운영위원’은 <2010년 지방선거와 풀뿌리정치운동의 대응 방향>이라는 발제문을 통해 “인기도 정책적 차이도 없는 기성정당과 달리 참신한 무소속 바람에 의해서 유의미한 득표를 해서, 정치적 교두보를 형성하고 향후에 의미 있는 정치세력을 형성해 집권가능성을 만드는 것을 선거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간단하게 줄여서 표현한다면, 2010년 지방선거를 ‘무소속 연대전략’으로 돌파하자는 제안이다. 이 제안에 대해 동의 여부를 생각하기 전에 우리 자신들에게 정직하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첫 번째 질문은 우리는 누구인가?
2010년 지방선거에 공동대응하자는 토론회의 자리에 와 있는 우리들은 9개의 각 조직을 대표하여 토론하려 나온 것은 아니고, 각 조직에서 공유되고 있는 대강의 구상들을 정리하여 개인 자격으로 나왔을 것이다. 하나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우리는 현재 기존의 정당(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등)에 소속되어있지 않은 ‘무소속’으로서 ‘새로운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 사람이다.
두 번째 질문은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우리들은 이념과 가치, 철학의 범주는 다양할 수 있으나, 2010년 지방선거를 계기로 선거에 참여하거나, 새로운 정당을 만들거나, 아무튼 새로운 정치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분명하게 ‘정치’ 또는 ‘정치운동’이라는 것이 공유하고 있다는 전제로 만난 것이다. 여기서 ‘정치’가 무척 중요하다, 한국사회에서 정치는 한 개인의 인생사에서도 무척 중요할 뿐만 아니라, 실천적 의미에서 ‘정치에 투신’하는 것과 하지 않은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아무튼 인생의 대전환점을 강제하게 된다.
세 번째 질문은 정치를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가?
정치, 혹은 정치운동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포괄적인 생각을 잘 정리할 필요가 있다.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에 정치적 진출을 모색해온 역사적 경험을 통해 우리의 미래를 예측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치에 투신하는 형식은 크게 2가지가 있었다. 하나의 형식은 독자적인 정당을 창당하는 방식이다. 1988년 ‘민중의 당’에서 시작하여 최근의 ‘진보신당’까지 실패가 거듭되었지만, 줄기찬 고난의 도전이 있었다. 2004년 민주노동당에 와서 비로소 10석으로 원내에 진출할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기존 정당에 영입되는 것이다. 영입에는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집단적으로 진출하는 방식으로 1988년 ‘평민련’을 시작으로 가장 최근에는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합민주신당’에 합류한 ‘미래창조연대’가 있었다. 다른 하나의 방식은 개인적으로 영입되는 것이다. 집단적 영입대상이 사라지자 최근에는 개별적 영입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영입에 대해 긍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든,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든 기존 정당에 영입되는 방식은 대체로 당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다수가 영입의 방식을 선택했다.
정치에 투신하는 방식으로 제3의 방식인 무소속 연대도 미약하지만 있었다. 2002년 지방자치선거에서 ‘자치연대’라는 이름으로 지방 활동가 약 161여명이 출마하여 기초단체장 1명을 포함하여 43명이 당선되었다. 선거에 공동대응을 했으나 무소속 연대의 틀이 아주 강했거나 소속감을 강제하지는 못했다. 처음에는 ‘자치연대’의 틀을 강하게 구축하려고 했으나, 유력후보들 중에 일부가 기존 정당에 입당하여 출마하거나, 개인적 출마에 명분을 쌓기 위해 ‘자치연대’의 명함을 붙이는 정도에 머물고 말았다. 2002년 당시, 정당공천이 없는 기초의원들에게 일부 성과도 있었지만, 정치권 전반에 큰 영향력이 없었다.
우리가 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기본적인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2010년 지방선거를 잘 치루고 향후에 더 의미 있는 것을 모색하자는 오세제 ‘7080연대 운영위원’(이하 운영위원)의 발제문은 당장의 심적 갈등을 줄여줄 지 모르지만, 냉혹한 현실을 숨기지는 못한다. 2006년 지방선거부터 일률적인 정당공천으로 무소속 연대방식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다만, 일부의 지역에서 소수의 무소속 단체장이 있을 뿐이다. 뒤늦은 ‘무소속 연대’를 제안하니 적잖게 당황스럽다. ‘무소속 연대전략’을 2010년 지방선거의 전략으로 제시하는 것을 보면서, 한 가지 걱정이 생긴다. 2010년 지방선거에 참여한다는 것은 ‘정치’에 투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사회에서 정치의 투신은 자신이 가진 모든 명예와 자산 그리고 일생을 걸고 승부를 펼쳐야 할 예측불허의 장이다. 냉혹한 승부의 세계다. 일등만 살아남는 정글의 세계다. 이 정글의 법칙이 작용하는 정치판, 선거판에 참여하자는 용기 있는 제안을 일단은 대환영한다. 하지만, ‘무소속 연대’로 돌파하자는 것은 약간의 우회(迂廻)로 보이지만, 피할 수 없는 정면승부로 곧장 달려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의 정치현실에서는 결국, 거대정당들과 맞짱을 뜨게 된다는 말이다.
2. 한국정치에서 지방선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오세제 운영위원은 발제문에서 “2010년 지방선거 결과는 야당이 승리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고 하면서 섣부른 민주당 지방선거 낙관론은 근거가 없다고 했다. 특히 “최근 3회의 선거에서 나타난 투표율의 평균을 살펴보면, 일단 대선 70%. 총선 55%, 지방선거 50%, 재보궐선거 30%임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오세제 운영위원의 발제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갈수록 낮아지는 투표율은 진보세력에게 우울한 전망을 안겨주고 있다. 특히 젊은 유권자의 기권으로 세대별 투표율 차이는 선거 결과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민주당이 펼치는 대결적 정치의 이득이 반대당으로 몰려올 것이라는 기대는 극히 주관적 전망에 불과하다.
우리들에게 지방선거가 불리한 것은 투표율의 문제만이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1991년에 시작한 지방의원선거로부터 20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지방선거를 둘러싼 지방자치제도를 세밀하게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거대 정당은 지방자치선거를 통해서 국회의원-단체장-지방의원이라는 정치운명체를 만들고, 다음 선거를 유리하게 치루는 수단으로 만들어 왔다. 또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지역기반을 정치생태계와 자연스럽게 연결해 낸 것입니다.
첫째, 한국 정치체제는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거대정당체제다. 최근의 ‘자유선진당’의 예에서 볼 때, 지역기반 정당이 쇠퇴하고 있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도 지역기반정당체제가 등장하는 마당에 지방선거에서는 그 정도가 심하면 심했지 약화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둘째, 지역기반 양당체제가 대도시지역의 지방자치에서도 여전히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영남, 호남향우회 조직을 통한 정치적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지구당 조직의 핵심 책임자급들은 지역사회에서 소상품-자영업 경제체제를 구축하여 생존사슬(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국회의원과 지방자치 단체장과 의원들이 단일한 정치체제 구성원을 이루고 있고, 권력의 행사와 이익배분을 나누는 강력한 이익사슬체계이다. 그들은 지방자치 20년을 통해 구체제(ancien regime)를 구축에 성공했다. 진보세력은 작은 선거에서부터 차츰 밀려나고 있는 실정이다. 진보세력에게 “지역에 투신하여 모범을 보여라!”고 주문하는 것은 정치현실을 모르는 당위적 주장일 뿐이다. 그래서 지방선거에 대한 새로운 개념정립과 구상이 필요하다. 따라서 2010년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세력은 지방선거 이전에 지방행정구역과 체제 개편운동에 앞장서야 한다. 구체제를 깨고 기존의 질서를 흔들어 놓아야 최소한의 성과를 전망할 수 있다.
이처럼 새로운 정치세력이 자리를 잡는 계기로 지방선거는 부적절하다. 또한 지방선거는 낮은 투표율로 불리한 선거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선거에 도전할 것인가? 정당후보가 아니라 무소속 후보로 도전할 것인가?
3. 2010년 지방선거 목표는 무엇인가?
오세제 운영위원이 제시하는 ‘무소속 연대 전략’의 핵심은 ‘후보 단일화’다. 발제문에 의하면 “국민여론이 기존의 정치 기득권 구조를 한꺼번에 심판하는 분위기로 몰아가고 로컬파티가 현실적으로 안 된다면 ‘(가)풀뿌리정치연대’(이하 풀뿌리연대)로 정당등록을 할 수 있다. 공개적인 상층 협상에 따라 일상 시기 공동 행동을 촉진하고, 최소한의 정책적 입장을 조율한다. 또 선거 시기 여론조사나 국민참여경선 방식으로 반(反)한나라당 단일후보를 결정해야 한다. 즉 연합공천을 실시하자는 것이다”고 했다. 국민 여론이 완전히 심판분위기이면 정당등록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무소속 연합공천이고 더 구체적으로는 ‘후보단일화’ 구상이다.
또한 “풀뿌리연대가 전체 득표의 30%를 획득하는 것을 득표 목표로 한다. 더 구체적으로 보면 광역단체장 2-3명 당선시키고 지방의원 후보를 적어도 1000명 교육하고 그중 500명이 출마하게 하여, 최소한 반수를 당선시키도록 한다. 정당 등록을 하면 비례대표 당선자도 획득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총 16개 단체 중 절반에서 비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되도록 해야 한다”고 야심찬 꿈을 가지고 있다.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유력하고 참신한 출마자 확보’가 관건이라고 하는데, “기존 정당의 공천에 연연하지 않고 나올 수 있는 후보가 학생운동 출신자 가운데 기초 광역의원 후보로 150명, 시민운동에서 100명, 청년 50명, 여성 100명, 사회운동(노농) 100명은 확보해야 한다고 본다. ‘유력’의 기준은 ‘우리가 출마하면 민주당도 낙선’하는 경우이다. 현재 상태에 대한 고려가 담긴 표현이며 향후 진행하며 ‘당선가능성’으로 바꿔야 한다”고 정리했다.
과연 ‘유력하고 참신한 출마자’가 무소속 연합을 할 것인가? 솔직하게 말해서 ‘유력하고 참신한 출마자’는 기존정당에서 영입을 제안할 것이고, 본인도 영입되길 원할 것이다. 정당공천이 배제되도록 선거법이 개정되는 조건의 기초의원 선거라면 모르지만, 좋은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한다는 것은 현실에서는 실현가능성이 거의 없다. 결국 ‘유력하고 참신한 출마자’를 발굴하는 과정은 새로운 정치의 흐름이 형성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선거라는 시기에 기술적으로 접근해서는 ‘유력하고 참신한 출마자’가 나타날 수가 없다. 새로운 깃발과 새로운 운동을 통해서 새로운 영웅이 탄생해야 한다. 그런 운동을 준비해야 한다. 그것은 ‘무소속 연대전략’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와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운동, 새로운 창당운동이어야 한다.
첫 번째, 무소속 전략은 승리할 수 있는가?
오세제 운영위원은 “우리 모임의 이름은 무엇이라 하던 우리는 성급하게 혼자서 정당을 만들려 하지 않으며, 기존정당과 구별하여 무소속임을 주장한다. 우리의 정당 결성은 유권자의 뜻에 따라 한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의회정치를 부정하는 세력을 빼고는 광범한 진보 개혁세력을 결집하여 가야 한다. 그런 입장을 ‘적극적 무소속 전략’이라고 칭한다”고 했는데, 광범한 진보개혁세력을 결집하는 무소속 후보 군(群)이 형성될 것인가 의문이다.
한국 정치에서 무소속의 공간은 무척 협소하다. 한국은 소선거구제 단순다수대표제로 인해 양당제가 강제화 되어 있다. 영호남에 있는 일부의 무소속 단체장은 아주 특별한 경우다. 사실 예외에 가깝다. 냉정하게 보아야 한다. 그분들은 무소속이라서 당선된 것이 아니라, 능력 있는 사람이 정치적 지형과 처지로 인해 무소속을 선택하고 있을 뿐이다. 국민들이 기존정당에 대한 불신 때문에 무소속을 선호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의 투표에서 선택은 당선가능성으로 귀결되고 만다. 지금 무소속 단체장들은 ‘기초자치 정당공천반대위원회’를 결성하여 정당공천 반대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그만큼 무소속으로 생존하기가 어렵다는 반증이다. 국회의원들은 지방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에 대한 자신의 정치적 지배권을 놓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공천제도를 폐지하는 법안를 통과시키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무소속 연대가 계급투표 전략을 쓸 수 있는가?
오세제 운영위원은 “노조의 조직률은 10%를 밑돈다. 그러나 비정규직을 포함한 노동자, 농민, 학생, 여성, 실업자 등 사회적 약자의 경제적 이해와 연관된 정치적 쟁점을 통해 정책적 차별성을 확실히 보여주고 어느 정당이 누구의 편인가 하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해하기 어렵다. 현실의 정당인 민주노동당, 진보신당도 잘 못하는 것을 계급정당도 아닌 정치세력이 계급투표를 유인할 것이라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다. 무소속 연대가 계급투표를 강조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민주노동당에 대한 실례가 될 것이다.
한국에서 전통적인 의미의 ‘계급투표’는 없다. 초단기간의 압축 성장으로 인한 특수한 형태를 이루고 있는 한국 자본주의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분단현실에 따른 역사성도 한몫을 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만의 현상도 아니다. 선진국이나 미국에서도 저학력 빈곤계층의 경우에 보수정당을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에서 정당 지형은 편중현상이 지나쳐 거의 모든 정당이 우파 정당이다. 유권자의 성향도 오른쪽에 많이 치우쳐 있다. 영국의 경우는 좌파에 진보를 표방하는 노동당이 있고, 우파는 보수를 표방하는 보수당이 있는 양당체제다. 미국은 좌파는 없고, 우파 내부에서 진보를 표방하는 민주당과 보수를 표방하는 공화당이 있는 양당체제다. 한국은 좌파정당으로 민노당이 유일하지만,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은 좌우에 걸쳐서 존재하고 양당제가 기본구조이면서 다당제 양태를 띤다. 따라서 현 시기에는 계급투표는 사실상 의미가 없고, 진보 정치 성향에 따른 투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진보적 사고를 가진 유권자 계층이 어디에 존재하는지를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세 번째 정당조직이 부재한 가운데 중장기 전략이 가능한가?
오세제 운영위원은 “당면한 이슈 파이팅 뿐 아니라 기본적인 아젠다(복지국가, 민주주의 심화, 지속가능발전, 비정규직문제) 정착과 새로운 프레임(서민 살리는 ‘유능한 진보’ - 부자 살리는 ‘무능한 보수’) 형성이 목표다”고 했는데, 이러한 아젠다 정착과 프레임이 정당조직이 존재하지 않은 상황에서 가능한가? 그러면서 “멀리 본다면 좌경적 경향을 억제하고, 국민의 정서와 유리된 조급한 정당화 시도를 자제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 국민들은 어떤 때는 새로운 당을 ‘희망’으로 보고 강력하게 밀어주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분열’로 보고 가차 없는 심판을 내린다. 그런 의미에서 창당을 조심해야 한다는 말은 맞다. 그러나 현재 진보진영에 여러 조직이 정당을 준비하고 있다. 각각 하나씩 정당을 창당한다면 분열로 볼 것은 틀림없지만, 기존의 정당체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정당체제를 만들려고 하는 과정에서 복수의 창당 움직임은 필연이다. 여기에서 또 다른 차원의 솔직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지금까지 ‘국민의 정서와 유리된 조급한 정당화 시도’는 모두 독자적 창당 흐름을 지적하는 것이다. 지역기반 거대정당이 존재하는 한, 단 한번도 국민의 정서에 유리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정서는 코에 걸면 코걸이다.
왜 우리는 기존의 정당에 입당하지 않고 새로운 정당을 하려고 하는가? 권위주의에 기초해 있는 보수정당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을 제외하고 다른 야당에 입당하지 않는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 한국의 정당은 크게 2개의 선택이 있다. 좌파 진보를 표방하는 민주노동당 계열이 있고, 다른 하나는 우파 중도를 표방하는 민주당 계열이 있다. 좌파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이라면, 또한 사민주의에 기초한 보편적 복지를 추구한다면,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이 현실적으로 가장 근접해 있는 당이다. 그런데 왜? 입당하지 않는가?
또한 좌파 진보가 아닌 우파적 정치성향이라면, 또한 당선가능성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생각한다면, 온건한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한 중도를 표방하는 정당인 민주당을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왜? 입당하지 않는가? 내가 민주당에 입당하지 않고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려는 이유는 첫째, 집권의 가능성이 낮고, 둘째, 개혁정당의 이념이 모호하고, 셋째,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비민주적 정당운영체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도 솔직하게 기존 정당에 입당하지 않는 이유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
오세제 운영위원은 지방선거의 성과를 모아서 기존의 4개 정당과 ‘풀뿌리연대’가 함께 모이는 5주체의 논쟁 속에서 2012년 총선 전에 창당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창당은 사실상 창당이 아니고 정당연합을 시도하겠다는 것인데, 무척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정치적으로 5개의 정당세력이 모여서 단일한 정당을 만드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 일단 상상이 안 된다. 만약 ‘풀뿌리연대’가 지방선거에서 엄청난 비약적 진출을 한다면 약간의 가능성이 남아 있긴 하다. 그 전에 2010년 지방선거 무소속 단일화 추진의 가능성부터 따져봐야 될 것이다.
네 번째, 정책선거의 핵심은 무엇인가?
물론 오세제 운영위원이 말하는 대로 “TV토론과 사전 정책 검증을 본격화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지방선거는 지역차원의 공약 경쟁은 될 수 있지만, 전국적 차원의 정책선거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지방선거 자체를 정책선거로 치루고 국민들에게 유능한 진보로 떠오르겠다는 발상은 전제가 빗나갔다고 볼 수 있다. 정치적 쟁점과 아젠다를 통해서 가치와 정책의 차별성을 각인시킨다는 구상은 맞다. 이렇게 되려면 정당조직을 통해 당 대 당의 대결을 통해 치열한 정치투쟁을 수행할 때,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생길 것이다. 창당운동의 과정이 아니라, 무소속 연대의 공동대응 방식으로는 거대한 운동의 흐름이 형성될 수도 없고, 전국적 관심을 불려올 수도 없다. 정치적, 정책적 차별성을 확보하는 것은 특별한 정치투쟁을 수반해야 겨우 가능한 고차원의 게임이자 정치적 과제다.
지방선거운동은 지역에서 거주하면서 지역적 아젠다로 접근하는 것이 일차적 방식이지만, 새로운 정치를 꿈꾸는 젊은 진보세력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작은 지역적 사안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촛불 집회에서 보았듯이 사회적 쟁점, 대중적 공감을 일으키는 전국적 사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논객이었던 ‘미네르바’가 표본이다. 일단 온라인에서 일자리문제, 교육혁신의 문제, 부동산 대책, 의료보험이나 국민연금문제 등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전문영역을 선택하여 그 분야의 전문성을 대중적으로 인정을 받는 활동방식이 지방선거에서도 더 유리할 것이다. 지역의 정치 생태계에 잘 적응하고 기반이 이미 있는 사람들은 지역에 투신해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겠지만, 새로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이처럼 발상을 완전히 바꾸어서 실천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특히 대도시 지역은 같은 동네라는 지역적 구분도 모호하고, 지역의 쟁점에 대한 주민 정보가 부족하여 확산성이 별로 없다. 또한 진보적 성향의 지지자들은 주로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오프의 공간보다는 언론이나 온라인에 더 접근성이 높다. 기초의원선거를 고려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공감하기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진보의 지역기반이 약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시작할 필요가 있다.
다섯 번째, 한국정치에서 연합공천은 가능한가?
오세제 운영위원은 연합공천으로 “여론조사나 국민참여경선이란 합의된 룰을 통해 민주당, 민노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그리고 풀뿌리연대 지지층의 지지가 가장 높은 후보를 공천”하는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이렇게 할 수만 있다면 어떤 의미에서든 제일 좋은 방식일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연합공천이 가능한가? 여론조사와 국민참여경선을 하나의 틀로 실시할 수 있는가? 희망사항일 뿐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2개의 당끼리도 연합공천이 쉽지 않은 사항에서 5개 정당조직이 연합공천을 합의할 수 있을까? 거대한 환상이다. 너무나 진부한 표현이지만, 정치는 현실이다. 기존 정당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핫바지가 아니다. 실제적 권력이고, 경험자이고, 직업적 전문가다. 연합공천은 기득권을 가진 1등 당이 양보를 해야 할 만큼 정치적으로 곤경에 쳐했거나 막판에 몰리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반대로 소수정당에서 연합공천을 추진하려면 최소한 ‘치킨게임’을 할 정도의 능력은 있어야 한다. 생(生)과 사(死)를 놓고 마주 달려서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정치세력이 있어야 연합공천이 가능하다. 때문에 현실에서는 오로지 영입만 존재했다. 최종의 순간에 가서는 ‘풀뿌리연대’는 조직의 이름만 남고, 그나마 당선 가능한 참신한 후보자는 거대정당으로 영입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풀뿌리연대’는 몇몇 유명인이 민주당으로 영입되는 프로젝트 창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어디나 마찬가지이지만, 정치의 세계도 대장은 있다. 좀 어설퍼 보이지만 원내 85석을 가진 민주당이 대장이다. 맞짱을 떠서 이길 자신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민주당의 세력권에 들어가는 것이 동물의 왕국에서는 자연스런 법칙이다. 오직 야생에서 힘을 기른 새로운 수컷이 등장할 때만 새로운 권력으로 교체되는 것이다.
5개의 정당이 모이는 이유가 반(反)한나라당 연합전술인가? 어딘가 익숙한 광경이 떠오른다. 이것은 20년 동안 민주화세력의 주류들에게 통용된 ‘민주대연합노선’의 변형이요 재판(再版)이다. 국민들이 반(反)한나라당이면 다 선택하는가?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합민주신당의 실패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해 보아야 한다. 더 이상 반(反)한나라당이라는 이유로 지지해주는 국민은 없다. 통합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다. 새로운 가치, 비전, 정책의 구체적 내용으로 국민에게 다가갈 때, 국민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지, 누구를, 무엇을 반대하는 세력은 절대로 승리할 수 없다. 촛불집회의 엄청난 열기 속에서도 서울시 교육감선거에서 주경복 후보가 패배한 교훈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오세제 운영위원의 무소속 전략은 연합공천과 참신한 후보의 출마 결심 사이에서 ‘순환의 오류’에 빠져있다. 주장하는 논리에 따르면, 제일 먼저 ‘풀뿌리연대’가 만들어진다. 이때는 참신한 후보가 없다. 지역에서 1년 동안 전력투구할 후보가 없는데, 기존 정당의 연합공천이나 후보단일화 대상이 될 수 있는가? 후보단일화는 가장 선거 막판(치킨게임으로)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적으로는 새로운 정치를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당선이 목표라면 가장 당선 가능성이 높은 ‘민주당’에 갈 것이다. 이것이 합리적 선택이다. 무소속 연합공천으로 후보단일화가 가능하다는 조건만으로 참신한 후보가 ‘풀뿌리연대’에 오지 않는다. 만약 새로운 정치(정당)를 창출(창당)하는 것이 목표라면, 낙선(실패)하더라도 조직의 목표(창당)를 위해 공동투쟁사업(선거참여)에 기꺼이 함께할 것이다. 여기에서 무소속 연대전략과 창당운동이 차별된다. 이 점을 다시 한 번 ‘무소속 연대’가 실현 가능한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4. 과연 민주화세대는 주체세력이 될 수 있는가?
새로운 정치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장기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 오세제 운영위원이 제기하는 ‘당면한 현안에 대한 공동 대응’(용산참사, MB악법 반대, 개헌, 선거법 개정투쟁 등)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정당정치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국민이 생각하는 정치의 본질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통합보다 ‘가치’가 우선이고, 후보보다 ‘가치’가 우선이고, 선거보다 ‘가치’가 우선이다. 새로운 정치를 하려는 사람들은 새로운 이념, 철학, 가치를 세워야 한다. 현재의 정치적 어려움을 해결할 기술적 방법보다, 한국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과 현재 처해 있는 우리 정치세력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선결되어야 한다. 만약 협상이 필요하다면, 힘이 있어야 협상의 상대가 될 수 있다. 협상은 우리가 상대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우리가 양보할 무엇이 있어야 한다. 그것을 만드는 것이 제일 우선해야 할 사업이다.
오세제 운영위원은 “정치협상 전에 대규모로 진행되는 풀뿌리연대의 통합정치학교는 사회적으로 대단히 큰 반향을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통합정치학교는 무척 중요한 사업이다. 하지만, 주장처럼 기존의 정당 교육과 풀뿌리연대의 통합정치학교와 무슨 차별성이 있을까 의문이다. 집단적 정체성은 가치와 이념 그리고 정책으로 이루어지는 총체적 비전이다. 무소속 연대라는 틀이 정체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정치적 목표를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정치적 실천과제를 대중적으로 전개할 때, 가능하다. 오세제 운영위원이 제안하는 “생협이나 방과 후 학교, 지역 언론, 어린이도서관, 아름다운 가게, 지역 캠페인, 지역 공동체운동을 촉진해 지역단위 풀뿌리운동과 전면적으로 결합하고 그 역량을 강화하는데 기여”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새로운 정치(당)를 생각해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현실은 좀 복잡하다. 우리사회에서 시민운동은 정치적 관련성에 상당히 민감하다. 극우 보수집단들이 집중적으로 음해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시민운동의 설 자리가 그만큼 취약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시민운동조직도 단일한 이념적 지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시민운동도 80년 민주화의 성과를 바탕으로 탄생하였다. 대체로 정치성향에서는 반(反)정치의식, 반(反)정당의식이 기본이고, 기존 정당체제에 저항적이다. 정치 이념적으로 좌파적 경향성이 다분히 가지고 있다. 시민운동이라고 모두다 정치와 선거에 우호적이지도 않다. 따라서 무소속 연대를 표방하는 ‘풀뿌리연대’일지라도 시민단체가 다 전면적 결합과 역량 강화에 함께하지 않는다.
오세제 운영위원이 주장하는 “나는 변화된 상황 속에서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세력이 전면에 나서서 특정지역에 한정되지 않는 새로운 정치적 중심세력을 건설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견해에 대해 이제는 새롭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87년 민주화운동 이후, 정치권에 영입이든 수혈이든 진입할 때마다, 정치권에 진출하지 않은 세력들은 자신들을 ‘본진’이라고 생각하고 영입되는 사람들을 ‘파견대’라고 생각해 왔다. 이른바 ‘본진론’이다. 그동안 크게 5차례 이상 거대정당으로 수혈되어왔는데, 그때마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내심 ‘본진’이라고 규정했다. 이제 마지막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진짜 ‘본진’인가? 실상은 본진이라고 할 수 있는 집단적 조직도 거의 없다. 2000년을 끝으로 집단적 영입작업도 사라졌는데, 2007년 시민운동세력을 표방하는 ‘미래창조연대’가 마지막 집단 수혈의 역할을 했다. 대통합민주신당을 만들 때, ‘미래창조연대’는 당대표와 50:50의 지분이라는 실리를 차지한 듯이 보였으나, 결과적으로 조직적 실체는 완전히 공중 분해되어 버렸고, 성과는 달랑 국회의원 비례대표 한명만 남았다.
민주화의 시대는 김대중과 노무현의 당선으로 화려하게 꽃피었지만, 이제는 꽃이 지고 말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특히 노무현의 당선은 김대중 정부의 뒤를 이은 민주화 2기 정부였다. 당시의 시대정신인 ‘원칙과 상식’으로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정치영역에서 시대적 과제로 정리하자면 ‘민주화의 제도적 문화적 완성’을 요구한 것이다. 노무현의 당선으로 ‘민주화의 제도적 문화적 완성’이라는 임무는 자연스럽게 해소되고 말았다. 역설적으로 성취를 통한 과제의 해소였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전폭적 지지를 받았던 시대정신이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이유는 노무현의 당선이 민주화의 성취였고, 2002년부터 2004년 탄핵의 과정을 거치면서, 국민들은 민주주의가 완성된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 후, 2005년부터는 시대정신은 정치적 요구에서 경제적 요구로 대전환이 일어났는데, 민주화 세력은 여전히 관성에 따라 ‘실질적 민주주의 쟁취’라고 규정하고 정치적 투쟁으로 일관해 왔다. 2007년의 대선에서 민주세력이 참패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대선 패배에서 민주화 세력은 교훈을 얻어야 한다. 민주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어쩌면 지나갔다. 새로운 시대정신이 떠오르고 있고, 새로운 시대과제가 등장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적 과제가 등장하고 있는데, 과거의 민주화 세력이 새로운 임무를 자임한다고 국민들의 신임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깊고 넓은 성찰이 요구되고 있다. 민주화 세력은 새로운 시대에 맞게 자신들을 낮추고 거듭나야 한다. 대변화를 인정하고 새로운 주체를 찾아야 하고 그들을 세워야 한다. 따라서 새로운 정치세력의 탄생은 새로운 운동에서 시작될 것이다. 특히 오세제 운영위원은 전면적인 세대(世代)정치를 근거로 하고 있기에 더욱 새로운 관점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5. 진보의 재구성으로 새로운 주체를 세우자!
‘진보의 자기반성’을 통해 ‘진보의 재구성’이 요구된다. 정말 진보의 자기반성은 ‘비판적 지지’나 ‘수혈론’ 비판에서 끝나면 안 된다. 반성의 내용은 현 시기 실천의 방법까지 이어지는, 진정으로 실천적인 것이어야 한다는데 전적으로 동감한다. 노무현의 집권 이후, 한국의 진보개혁세력은 분화하고 있다. 크게는 사회민주주의세력과 자유주의세력으로 분화하고 있다. 유럽은 사민주의가 진보이고, 미국은 자유주의가 진보다. 하지만, 한국에서 사민주의로 좌클릭(좌측으로 이동)을 하자는 주장은 유럽의 사민주의가 한국과 다르듯이 실현가능성도 별로 없다. 한국은 북구형의 사민주의를 실현할 조건과 토대가 없고, 추진할 주체세력도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또한 한국에서 자유주의를 하자는 사람들 중에서 ‘뉴라이트’를 만들어 극우보수 집단에 투항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자유주의로 우클릭(우측으로 이동)하자고 하면 더 큰 오해가 발생할 것이다. 또한 지난 10년 동안 이념의 덫에 걸려 한국사회의 문제를 ‘신자유주의’ 때문이라고 맹렬하게 선동해온 구(舊)진보세력들의 영향 때문에 범진보세력은 자유롭지가 못한다. 그래서 새로운 정치세력(정당)은 좌파적 개혁과 우파적 개혁을 동시에 실시하는 ‘진보적 이념’으로 재정립해야 할 것이다.
진보를 재구성하려면, 한국사회를 다시 보아야 한다. 한국사회는 압축 성장을 통해 근대화과정을 경과하면서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드러낸다. 또한 개방과 수출의존도가 높아서 세계적 시간대에 의한 엄청난 변화의 속도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유럽의 좋은 제도라고 한국에 좋은 것도 아니고, 미국의 좋은 제도라고 한국에 좋은 것도 아니다. 정치적 현상에 대해 한국의 정치 지형과 상황에 근거하여 복지와 분배의 문제에서 발생하는 한국적 장애요인을 통찰해야 하고, 경제 현상에서도 시장의 실패로 비롯된 문제인지 국가 관리와 규제의 실패에서 발생한 문제인지를 잘 고려해야 한다. 이념이 앞서면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신자유주의’ 타령만 하게 된다. 현재의 문제를 ‘신자유주의’ 문제라고 싸잡아서 비판하면 속은 시원할지 몰라도,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낼 수 없다.
참여정부 시절에 한-미FTA문제에서 통칭 ‘진보개혁세력’이라고 불렸던 세력은 크게 당황했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크게 2갈레로 분화되고 있다. 사민주의라는 명칭 앞에 '온건' 또는 '급진'을 붙이거나, 신(新) 또는 구(舊)를 붙여서 새롭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면, 마찬가지로 자유주의 앞에 '개혁적' 또는 '진보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서 부르는 이념을 긍정적으로 해석한다면 서로 만나서 당을 함께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개방화된 국민참여경선제도와 당내 민주주의가 살아있는 기본 전제는 당연하다. 어차피 한국사회의 특수성에 따라 좌파적 개혁과제와 우파적 개혁과제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공유한다면 당연히 단일한 정당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진보의 단결은 선거로 단일화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의 재구성을 통해 새로운 진보로, 집권 가능한 21세기형 진보로 거듭날 때 진보의 단결된 모습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지금 중요한 것은 이념과 가치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집권가능한 진보의 깃발을 드는 것이다. 과거의 창당방식을 창당1.0의 방식이라고 통칭할 수 있다면, 새로운 창당의 과정은 과거의 계승이 아니라 새로운 혁신으로써 창당2.0의 방식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새로운 창당운동2.0은 우리사회의 신(新)중산층들이 고통으로 느끼는 문제를 직접 파고들어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생활의 문제인 일자리 문제, 자녀의 교육문제, 내 집 마련과 관련한 부동산 주거복지문제, 건강과 의료보장제도, 생활상의 불합리한 제도 전반에 걸쳐 새로운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이러한 새로운 운동을 ‘창당운동2.0’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시민생활정치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창당운동은 실천과제들을 자각하는 단위를 중심으로 실천활동기구를 만들거나, 대중적 온라인 광장에 커뮤니티(카페)를 결성하여 관련 단체나 기구에 참여하고, 연대하며, 공동실천을 통해 공동의 과제에 접근하는 운동이다. 우리가 모여 있는 우리의 카페로 찾아오라고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정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카페로 찾아가야 한다. ‘실천적 활동’을 통해 검증받고, 그 활동의 성과물을 축적하여 ‘현실적 대안’과 ‘책임주체’를 세워 새로운 창당의 길로 나서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족을 달겠다. 세계적 경영 사상가이자 베스트셀러 ‘티핑포인트’(The Tipping Point/2000년), ‘블링크’(Blink/2005년), ‘아웃라이어’(Outliers/2008년)'의 저자인 말콤 글래드웰는 어떤 분야에서 뛰어난 성공을 위해서는 특정 분야에 최소한 1만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1만 시간의 법칙’을 발표했다. 어떤 분야든 숙달되기 위해선 하루 3시간 10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우리의 창당운동2.0도 ‘1만 시간의 법칙’을 겸손하게 받아드리고 되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티핑포인트’에 의하면, 대박 상품이나 메가트렌드의 발생과 진화 과정을 주목해야 한다. 즉, 마치 '전염'처럼 번져가던 유행이 극적으로 폭발할 때 대박 상품이나 획기적 트렌드가 점화(點火)된다는 이론이다. 이런 '전염'의 3가지 법칙에는 첫째, 네트워크가 강하고 열정이 뜨거운 소수가 핵심 병력으로서 '전염'에 앞장서야 하고(소수의 법칙), 둘째, 대중의 뇌리에 끈적끈적하게 달라붙는 메시지가 있어야 하며(고착성 요소), 셋째, 상황과 환경과 맥락이 맞아 떨어져야 한다(상황의 힘)는 것이다.
우리의 교훈은 첫째, 핵심세력인 ‘민주화 세대’는 정치적 목표는 강렬하지만, 네트워크가 약하고 전파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제 네트워크에 강한 삶의 현장에 뿌리를 박은 계층과 세대가 새로운 정치의 주체로 나서게 하는 것이 새로운 창당의 길이다. 둘째, 새로운 가치와 비전이 있어야 대중의 뇌리에 달라붙는 메시지가 생산되는 것이다. 가치를 중심으로 진보를 재구성하고 구체적 정책의 메시지로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전을 창조해야 한다. 셋째, 주관적 판단만 앞서서 억지로 조직(당)을 만들려고 하면 안 된다. 극적인 폭발도 때를 정확하게 맞추어야 빅뱅이 일어나는 것이다. 전체적인 맥락에 맞는 때를 기다리는 신중함과 겸손함이 요구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