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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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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행복(여행,캠핑후기) 스크랩 나의 꿈을 찾아서...
비키 추천 0 조회 68 11.11.17 16:02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나의 꿈을 찾아서...

 

- 문화불모지의 현장사례 - 남해정착기(길현미술창작센타) : 길 현

 

 

1. 남해에 오기까지...

 

2011년 3월은 남해에서 창작스튜디오를 준비하게된 1년째 되는 날이다. 작년 3월 1일 남해의 작은 폐교를 임대했다. 예쁜미술관을 만들어 예술을 통한 사회적참여를 하겠다고 마음 먹은지 4년만의 결실이다.

80년대 후반 대학입학과 함께 서울로 올라와 20여년을 열심히 작업하고 공부하였다. 현대미술의 중심에서 나름 작품이 알려지게 될 즈음 또 다른 나의 꿈을 생각하게 되었다.

현대미술은 시대를 상징하며 미래를 예견할 수 있고, 가장 중요한 현시대의 문제를 예술을 통해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시대와 사회를 이해하며 삶의 목표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정신없이 앞만 보다가 어느덧 40이란 나이가 되면서 앞으로 남은 삶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미술을 통해 나와 가족, 주위의 사람들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목표는 처음 붓을 들며 그리던 나의 꿈 이었다.

꿈속의 남해는 따뜻하고 바다가 보이는 곳이었다. 처음 이곳 남해를 찾았을때는 표현 할 수 없을 정도의 감동이었다. 마치 데자뷰를 본듯 ‘이제부터가 진짜구나!’ 하는 생각에 며칠동안 밤잠을 설치게 되었다. 하지만 꿈도 잠시 남해로 목표를 정한 후 하나씩 서울생활을 정리하며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과 불안함에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가족들과 친구, 학교와 은사들, 작업하며 알게 된 수많은 이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 또 들었다. ‘꿈꿀 수 있을 때 행복하다’ 는 말처럼 모든게 불확실하게 진행되어 졌다.

교육, 직장, 작업, 예산까지 모든 게 새롭게 준비되어 져야 했다. 가장 큰 걸림돌은 가족이었고, 또한 가장 큰 힘이기도 했다. 흔쾌히 동의서를 써주신 마을분들과 남해교육청의 지원, 수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나의 이름을 새긴 길현미술창작스튜디오는 첫 삽을 뜰 수 있게 된 것이다.

 

2. 공사는 아무나 하나...

 

학교공사가 시작되면서 주중 4일은 남해에서 나머지 3일은 서울로 1년을 보냈다. 서울을 떠나면서도 작품전시를 위한 매니지먼트는 만들어 놓았고, 대학강의는 점차 줄이고 전시기획과 출판작업등은 후배에게 연결해 주었다.

10년 이상 방치된 폐교는 어느것 하나 온전한 것이 없었다. 6개월 동안 청소만 한 것 같다. 김포에 있던 작업실 작품과 이삿짐을 싣고 내려와 교실에 텐트를 치고 우물물을 퍼쓰고, 임시전기와 전화, 인터넷을 설치했다. 개인적인 경비를 지출하며 공사를 시작하기에 마을청년과 내가 거의 모든 일을 직접하게 되었다. 9월부터 본격적인 내부공사가 진행되었다. 처음 해본 공사인지라 주위의 도움으로 시작 되었지만 예상을 초과하는 비용과 업자들의 부실공사에 조금씩 마음의 상처가 생기더니 지금은 거의 모든 것을 직접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벽체미장, 석고작업, 목공작업, 전선연결, 보일러, 외부단열, 지붕등... 오히려 마음먹으니 못할게 없고, 직접 공사를 하니 작품하듯 신중해 진다.

오토캠핑으로 수년간 단련된 가족들은 폐교에서의 생활에 처음에는 호기심과 흥미를 보이더니 이내 이곳이 현실이 되는 것에 실증을 내었고, 앞으로 지내야 될 시골생활에 불편함을 말하면서도 나와 함께 하는 것을 못내 즐기고 있다.

너무 고맙고, 미안하다!

 

3 미술관 운영

 

서울과의 거리만큼 지역의 문화시설은 많이 정체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남해군에는 영화관이 없다. 젊은이가 없으니 유지할 수 없으리라 생각되지만 다르게 보면 이들이 즐길 문화시설이 없으니 젊은이가 사라지고 점차 늙어 가는게 아닐까 생각된다. 생각의 차이를 좁혀나가면 될텐데...

이곳에서 현대미술관과 창작스튜디오, 레지던시 프로그램운영과 지역특상품 디자인 개발등이 이루어질 계획이다. 작가들이 상주하여 창작활동을 하고 전시, 공연등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개인적인 여력으로 해결되지 않을때는 중앙의 지원과 다른지역의 기획 프로그램을 함께 할까한다.

미술관 운영은 수익사업을 목적으로 하지 않기에 예산확보가 대단히 중요하다. 지자체의 지원을 받더라도 한계가 있고 미술관운영예산과 작가지원예산은 생각하기 어렵다. 따라서 수익을 낼 수 있는 프로그램개발이 필요하다.

지역의 특산물을 개발해낼 수는 없겠지만 미술관 아트샵을 통한 브랜드를 만들어 디자인을 통한 판매사업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지역의 미술, 문화사업에 적극 참여하여 기업체들의 도움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미술관 운영을 위한 여러사례를 참고하여 준비되고 있지만 이곳에 적합한 방법으로 진행 되어야 할 것이고, 작게나마 성과가 나타나면 오히려 쉽게 해결 될 수 있을 것이다.

주민과의 관계도 매우 중요하다. 지역의 주인으로 지내왔던 이들에게 학교는 자신들의 소유라는 생각이 강하다. 지역민과의 소통을 위한 프로그램이 반드시 필요하고 일정부분 수익이 발생한다면 더 없이 좋을 것이다.

 

4. 남해의 자산

 

‘율도국으로 가서 나라를 세웠다’는 홍길동은 그의 이상을 펼칠 수 있는 곳이 이곳 남해라는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 보았다.

제주도, 거제도, 진도, 강화도, 남해, 안면도, 완도등... 모두 섬이라는 도(島)를 붙여 호칭하지만 남해는 언제부터인지 남해도라는 말을 쓰지 않고 그냥 ‘남해’ 로 불려 졌다. 흔히 남해라면 남쪽바다를 떠올리며 동해, 서해, 남해로 생각하지만 그 속에 남해라는 큰섬이 있고 또 다시 창선과 남해, 유인도 3, 무인도 76개의 여러 섬들이 함께한다. 남해에 와서 생긴 수수께끼이며 지금까지 정답을 찾고 있지만, 아마도 남해는 예로부터 여러 작은섬들의 큰형처럼 독립된 자치지역으로 생활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남해의 풍경은 전형적인 바닷가 시골마을로 어디를 가더라도 산과 바다, 논과 밭이 항상 함께한다. 낮은 돌담으로 둘러진 파란양철지붕, 주인은 밭에 나가고 집에는 강아지 한 마리, 허리굽은 할머니와 검게 그을린 할아버지, 새벽바다에 던져진 그물을 건져 고기잡고 자식주려 한손에 우럭 세 마리 들고 오는 ...

이것이 남해의 자산이지 않을까?

남해는 지역개발을 위해 대규모 조선소와 공단등이 들어올 수 있었지만 바다를 지키고 오염원을 배출하지 않아야겠다는 선대들의 의지로 오늘날 가장 깨끗한 청정의 자연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었다.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온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제는 후손에게 남은 과제를 넘기고 있다.

덕분에 남해는 농,어업.축산 68%, 가공업 3%, 서비스,관광 29%의 놀라운 산업구조를 보이고 있으며, 여기에 65세 이상이 30%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로 되어 버렸다. 남해는 이렇게 자존심 강한 기억속으로 뭍혀 지는게 아닌지 남해의 꿈을 꾸어 본다.

 

5. 남해의 꿈

 

‘꿈을 꾸는자 만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현대사회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잊어버린 채 살아가는 많은 현대인들은 물질적 풍요속에서 정신적 빈곤을 가지고 있다. 케인즈(Keynes, John Maynard 1883~1946)가 말한 '풍요 속의 빈곤'은 독점자본주의에 의해 불안전 고용이 증가하며 자본의 분배가 불균형을 이루는 현상으로 거대자본에 종속된 현대인의 삶을 말하고 있다. 21세기는 가상과 실제가 혼재하며 실제보다 가상을 진짜로 생각하는 시물라크르한 삶으로 옮겨지고 있는 것이다. 화려한 도심의 생활속에서 영혼없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은지?

현대인에게 꿈을 꾼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기대하는 것이 아닐까? 이곳 남해는 현대인이 미래를 꿈 꿀 수 있도록 꿈의 프로그램을 하나씩 준비하고 있다.

이순신장군의 노량앞바다를 건너오면서 영웅의 섬으로 오게됨을 알리는 충렬사에서 마음을 정돈한뒤 남해군의 아름다운 해안선과 능선을 연결하는 ‘남해바래길’을 따라 걷다가 쉬면서 작품도 감상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추억도 남길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또한 유배의 섬으로 많은 유배문학이 탄생하였고 유배문학관을 만들어 구운몽, 사씨남정기등 서포의 문학을 감상하고, 조선의 왕이 된 태조 이성계의 100일기도처인 남해 금산 보리암, 비탈진 산을 논,밭으로 만든 다랭이 마을과 은모래 해안과 아름의 송림숲에 감춰진 상주해수욕장, 원시어업 죽방멸치, 대학나무 유자를 한아름 들고 갈 수 있는 곳! 추억을 만들고 꿈을 가질 수 있는 곳! 청정의 자연을 물려준 선조들의 흔적을 경험할 수 있는 곳! 그 곳이 남해의 꿈이 아닐까?

 

6. 나의 꿈

 

1960년 세계대전후 세계의 중심은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 갔다. 천년왕국의 자존심이 채 500년도 되지 않은 신생국가에게 모든 걸 빼앗겼다. 특히 문화,예술은 쉽게 그 위상이 변하지 않지만 전세계의 예술인들이 미국으로 모여들면서 예술의 중심 역시 미국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아픈 기억이었을까? 옛 영광을 재건하기위한 유럽의 계획은 치밀하게 준비되어 실행에 옮겨진다. 유럽공동체 EU의 출현, 화폐개혁, 관세폐지등 이와함께 탄생한 영국 YBA는 미술시장에서 영원할 것 같던 뉴욕의 독주를 반 이상 가져오게 된다. 문화를 지켜내기 위한 영국과 유럽의 롤모델은 이제 동아시아로 번져 1990년이후 중국과 일본의 현대미술작가들이 미술시장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세계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문화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기 시작했고, 문화가 사라진 도시는 더 이상 미래를 예견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죽어가던 지역 경제도 미술관 하나로 다시 살아나는 기적같은 일이 벌어지게 된다.

일본의 기업 ‘베네세’ 후쿠다케 소이치로회장에 의해 외딴섬 ‘나오시마’는 섬 전체를 미술관으로 만드는 ‘나오시마 프로젝트’를 2대에 걸쳐 18년째 추진중이다. 땅속에 지은 ‘지중미술관’에 전시된 세계적인 작품보다 먼저 우선시 한 것은 섬의 자연풍광을 그대로 살리고 있다는 것이다. 빈집은 ‘아트하우스’로 꾸미고, 해안 곳곳은 작품들로 꾸며져 있다. 사라져 버릴 외딴섬이 연 3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 오는 세계적인 관광지로 변하게 되었다.

문화는 꿈을 꾸게 만든다. 누구나 자신의 역할에서 최선을 다하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혼자만의 꿈보다 함께 하는 꿈이라면 더 아름답지 않을까?

나의 꿈은 아름다운 풍경속에 몰입할 수 있는 작업장과 예쁜 미술관, 남해의 꿈을 함께 생각하며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아름다움을 보여주길 원한다.

작은 섬의 기적이 혼자서는 어렵겠지만 작은 소망이 모여 큰일을 이루어 낼 수 있으리라 확신하며, 이곳 남해의 기적을 지켜봐 주길 바란다.

2011년 2월 17일 길 현 (길현미술창작스튜디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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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11.21 18:49

    첫댓글 화이팅입니다요^^

  • 11.11.21 22:53

    역시나 화이팅입니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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