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이 만나보고 싶은 사람 // <동포세계> 창간호 1면 그림 <기사경기도>를 그린 中동포 화가 이강
“박식하면서 용맹스런 현대인의 상(像)을 표현했죠 ”
[인터뷰=김경록 기자] <동포세계> 창간호를 준비하면서 1면을 무엇으로 장식할까 고심을 많이 했다. 얼핏 생각이 난 사람이 3년전에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눈 바 있는 중국동포 화가 이강(44세)씨였다. 1986년도에 30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연변대 미술학과를 입학하고, 심양 노신미술대학에서 그림공부를 하고, 1996년 서울 교류전 참가가 계기가 되어 2000년에 서울대 동양학과 유학을 온 이강.
'3년전과 지금 그의 그림세계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궁금도 한 차에 창간호에 게재할 그림 한 점 부탁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생각했다. 전화를 했더니 흔쾌히 응해 주었다. 창간호 발행일을 코앞에 두고 다급하게 부탁한 것이어서 새로 그린 그림이 아니라 최근에 그린 그림이라도 좋으니 한 점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가 보내준 그림은 <기사경기도-말 타고 활쏘기>였다. 그림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들을 시간도 없었다. 그림을 보는 순간 기자는 <동포세계>가 어떤 자세로 나아가야 될를 한 눈에 보여주는 그림이라는 느낌이 들어왔다. 편집자인 기자는 “큰 시야로 신속 정확하게 목표를 향해 쏴라”는 그림설명을 달아 창간호 1면에 게재했다.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신문을 접한 독자들은“신문이 멋지게 나왔다”면서 “그림이 참 좋다. 속이 시원하다”라고 평가해주었다.
그림을 보내준 이강씨에게 고맙다는 인사말도 할겸, 또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기 위해 지난 8월 초 이강씨를 만났다.
3년 전 만났을 때나 지금이나 그의 모습은 변함없었다. 화실도 성균관대 정문 옆 20여평 되는 지하작업실 그대로였다. 좀 달라진 것이 있다면 3년전에는 그의 미완성의 작품들이 벽에 많이 걸려있었다면 지금은 그림을 배우는 회원들이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강 씨는 다양한 그림을 그리지만 그의 그림의 특징은 고전과 전통을 소재로 한 초현실주의적인 공필화를 그리고 있다. 공필화는 색감이 뛰어나야 하고 오랜 작업 시간이 요구된다. 무엇보다도 상상력이 중요하다.
<동포세계> 창간호 1면 그림 <기사경기도> 역시 공필화이다. 화가 이강은 KBS2 월화드라마 <성균관스캔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무사가 말 타고 활을 쏘는 장면이 아니라 유생이 말타고 활을 쏘는 장면을 박진감 넘치게 그렸다고 소개했다. 활 쏘기는 고려시대부터 군인만 하는 군사훈련 목적이 아니라 학문을 닦는 학자들이 심신을 단련하기 위한 종목으로 여겨졌다고 그는 설명을 덧붙혔다.
그는 그림을 통해 현대사회에서도 문(文)과 무(武)를 겸비한 인재, 즉 박식하면서 용맹함을 가진 인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강 씨가 말을 소재로 한 공필화에 심취하게 된 때는 노신미술대학에서 허용(許勇) 교수를 만난 후부터이다. 허용 교수는 말(馬)을 소재로 기렵도를 그리는 당대 최고의 화가이다.
즉흥적인 빠른 필체로 아주 정교하면서도 힘 있는 말들의 움직임을 그려냈다. 이강의 <기사경기도>도 섬세하고 박진감 넘치는 말들의 움직임을 감상할 수 있다.
조선족 화가 이강씨는 또다른 그림세계를 시도하고 있다
“왕창 다 바꿔라!”
'어! 조선시대 선비들이 노트북과 핸드폰을 즐겨~'
과거와 현재의 만남으로 해학과 전통미 살려
젊은 조선족 화가들에게 '자유화' 바람이 일고 있다
중국동포 화가 이강은 기자가 3년 전 만났을 때와 지금 무엇이 달라졌을까? 자신의 화풍에 대해 이강은 소개했다.
“전에는 죽음과 삶을 주제로 생각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해피(즐거움)한 것 관능적(생각대로 해보는 것)으로 시도해 본다”
그가 요즘 그리는 그림은 해학적인 요소가 가미된 그림이다. 예를 들어 선비의상을 입은 조선인들이 아이패드(핸드폰)이나 노트북을 사용하는 장면, 시간을 초월하고 과거와 현재의 만남을 담아낸 것이다.
또한 남성 중심의 역사적인 그림을 여성화 하는 작업도 시도한다. 예를 들면 말을 타고 칼을 치켜든 나폴레옹 그림에서 나폴레옹이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 미화시키는 것이다. 그만큼 현대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진출이 많아졌고 과거 남성들이 하는 직업을 여성들도 많이 하는 시대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유의 작품 전시회도 개최할 계획이다.
예술가의 예술작품은 시대를 담는다고 한다. 이강씨에게 "그림을 통해 주고자 하는 사회적 메세지가 무엇이냐?"고 질문하자 그는 "젊음이 갖다주는 메세지, 왕창 다 바꿔야겠다"는 것이라 답한다.
그렇다면 중국 조선족미술계는 어떤 변화를 맞고 있을까?
“ 70년말까지 기본적으로 조선족미술이 인정되었다. 즉흥적이고 민족성이 깃든 그림들…. 그 후 자유화가 이루어지면서 중견세대들이 나오고 한국과 수교가 이루어져 전시회가 많아지면서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조선족화가 중견세대들은 연변과 백두산을 연계시켜 백두산에 정신적 기탁을 하는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러나 요즘 30대에서 40대 초반 조선족화가들은 “80후”라 하여 영상미술, 퍼포먼스 등을 시도하는 예술활동으로 변화해가고 있다는 것.
기자는 이강 씨에게 물었다. “2000년도에 한국 유학을 와서 10여년 넘게 한국에서 공부하며 그림을 그렸다. 이 기간은 한국에 조선족이 많이 이주하였고 많은 변화가 이루어진 시기였다. 화가로서 이런 현상들을 보면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되면서 그림으로 표현해보고자 하는 생각은 없었나?”
이강은 대답했다. “왜 없었겠나. 그러나 한국에 온 조선족의 삶을 화풍에 담고자 하여도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유학온 사람들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애써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분명한 것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강의 그림속에도 조선족의 정체성이 녹아있다는 의미이다. 겉보기에는 자유롭고 개인적인 생각을 하며 예술가 활동을 하지만 그 화풍에는 조선족의 정서가 이어지고 있다.
이강 씨와 1시간 넘게 인터뷰를 하고, 동대문역에 위치한 연길 양꼬치집에 갔다. 그가 지인들과 함께 즐겨찾는 곳이다. 이날은 화랑을 운영하는 한국인 지인들과 함께 하였다. 바움아트갤리리 임승오 대표는“이강씨는 대단한 내공을 갖춘 화가이죠. 그의 그림을 보면 어떻게 이렇게 섬세하게 그림을 그릴까 할 정도로요.”
“나이가 들고 눈이 멀면 더 이상 그런 그림 못그리겠죠?”라고 기자가 말하자 임씨는 “아닙니다. 그때는 눈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갖추어진 내공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지요, 그 가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을 것입니다.”
‘맞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나’
이강씨의 섬세하고 박진감 넘치는 그림은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시대정신을 더욱 가치있게 살아남을 것이고, 조선족의 대표적인 화가로 일컬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
@동포세계 제 2호 2011. 8. 17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