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산행일시: 2026. 2. 13.~15.(월~수) - 음력(2. 26.~28.), 일출 06:02~일몰 19:05
●산행지: 성수지맥(聖壽枝脈)/ 비박
●산행코스: 지맥분기점-깃대봉(861m)-904.7m봉-성수산(875.9m)-보현봉(805m)-598m봉-대운재/30번국도-구암고개-삼봉산갈림봉-삼봉산(529.4m) 왕복-고덕산(619m)-379.3m봉-양지리고개-30번국도-333m봉-감성고개-429.1m봉-말치-봉수대터-봉화산(467.6m)-매봉(609.8m)-노산봉(545.8m)-번화재(745번도로)-490.9m봉-무제봉(558m)-두만산(525m) 왕복-489m봉-배재-지초봉(571m)-새목재-원통산(603.5m)-444.5m봉-원치고개(2차선)-시루봉(334.6m)-493.1m봉-사자바위 갈림-사자바위(486.1m) 왕복-717번도로- 무량산(586.4m)-각시바위-21번국도(2차선)-구미고개-284.3m봉-어은정-오수천/섬진강 합수점
●먹거리: 생수2리터, 육포2(21,780원), 빵(베이글 세개 포함, 11,713원), 초코다이제스트(2,400원), 자유시간, 단백질바2, 사탕17
●준비물: 하계텐트, 바람막이, 고아텍스, 메트리스3, 스틱, 전지가위, 헤드랜턴, 구급약, 충전지2, 충전짹, 손수건, 휴지, 물티슈, 말방울, 비닐우의, 안대, 귀마개, 양말3, 여분의류, 띠지22
●거리: 약 68.2Km
●소요시간: 51.30h
●누구랑: 나홀로
●경비: 고속버스(22,000원), 만화뱅크(7,000원), 편의점(9,990원), 직행버스(8,300원), 택시(18,520원), 오수-임실(2,200원), 요굴트(7,500원), 비빔국수(8,700원), 임실-전주(5,000원), 고속버스(16,700원), 막걸리(1,900원)
●날씨: 7~24, 맑음, 첫날 더움, 둘쨋날 약간 흐리고 빗방울, 세쨋날 더움.
●산행경과:
* 4. 13.(월) : 27.5km
- 08:07 : 장수읍 필덕마을
- 08:31 : 마령재(馬靈峙)/ 오두막
- 08:38 : 성수지맥분기점
- 09:05 : 삼군봉/ 깃대봉(862.3m)
- 09:38 : 태조봉(904.7m)
- 10:13 : 성수산(875.9m)
- 10:37 : 보현봉(806.5m)
- 11:06 : 장군봉(683.1m)
- 11:32 : 598m봉
- 11:43 : 표적봉(493.5m)
- 12:16 : 매봉(476.2n)
- 12:33 : 성황당재
- 12:51 : 남계산(520.4m)
- 13:12 : 473.2n봉
- 13:24 : 삼면봉(502m)
- 13:35 : 대운재/ 30번국도
- 13:51 : 507.5m봉
- 14:00 : 구암고개
- ??:?? : 삼봉산(529.4m)
- 14:56~15:18 : 505.6m봉
- 16:08 : 고덕산 6,7봉
- 16:18 : 고덕산(619m)
- 17:48 : 379.1m봉
- 18:54 : 721번지방도로/ 양지리고개
- 19:11 : 329.2m봉
- 19:22 : 후촌고개
- 19:31 : 304.5m봉
- 19:41 : 양지육교
- 19:51 : 310.8m봉
- 20:16 : 304m봉
- 20:35~21:25 : 삽치/ 17번국도/ 제일주유소
- 21:38 : 275.9m봉
- 22:03 : 332.5m봉
- 22:15 : 구치고개(275)m
- 22:45 : 366.7m봉
- 23:00 : 감성고개
- 23:06 : 383.1m봉
- 23:21 : 429.1m봉
- 23:35 : 비박
* 4. 14.(화) : 30.1km
- 06:00 : 출발
- 06:28 : 말치(285m)
- 06:44 : 산불감시초소
- 06:57 : 461.4m봉/ 봉수대터
- 07:37 : 봉화산(473.0m)
- 07:56 : 울타리 작별
- 07:57 : 노산봉(545.8m)
- 08:16 : 되재(465m)
- 08:57 : 응봉(鷹峯, 609.8m)
- 09:37 : 583.5m봉
- 09:59 : 564.7m봉
- 10:18 : 528.5m봉
- 10:50 : 745번도로/ 번화치(415m)
- 11:25 : 490.4m봉
- 11:39 : 독산고개
- 12:25 : 무제봉(558m)
- 13:10 : 476.9m봉
- 13:18~52 : 행동식
- 15:14 : 배재(405m)
- 15:50 : 삼읍면봉(535.1m)
- 16:28 : 지초봉(569.9m)
- 16:54 : 새목재(465m)
- 17:36 : 원통산(603.5m)
- 18:30 : 444.5m봉
- 18:42 : 원치고개
- 19:04 : 삼면봉/ 시루봉(334.6m)
- 20:01 : 493.1m봉
- 20:39~56 : 사자바위삼거리
- 20:46~50 : 사자바위(486.1m)
- 21:43 : 717번도로/ 어치고개(255m)
* 4. 15.(수) : 10.6km
- 05:53 : 출발
- 07:05 : 무량산(586.4m)
- 07:30~49 : 큰각시봉삼거리
- 07:34-46 : 큰각시봉(508.3m)
- 08:22 : 21번국도/ 추동고개
- 08:58 : 구미고개(205m)/ 마상굴재
- 09:14 : 289.1m봉
- 10:00 : 279.4m
- 10:08 : 구남봉(284.3m)
- 10:18~11:26 : 임도
- 10:54 : 옥녀봉(286.3m)
- 11:41 : 239.8m봉
- 11:53 : 어은정
- 12:08 : 오수천/ 섬진강 합수점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세부구간거리: 56.9km
성수지맥분기점(마령재-0.3km)-0.7km-862.3m(영태산갈림봉)-2.8km-성수산(876m)-6.8km-대운재/30번국도-3.8km-고덕산(625.1m)-6.3km-성수육교-4.5km-말치-2km-봉화산(473.0m)-3km-매봉(609.8m)-3.3km-번화재-2.5km-무제봉(558m)-4km-배재-1.9km-지초봉(569.9m)-1km-새목재-1.3km-원통산(603.5m)-3.3km-시루봉(334.3m)-4.8km-무량산(587m)-2.8km-구미고개-4.5km-오수천
* 구간거리: 64.1km
- 접속: 필덕마을 ~ 마령재 1.8km(약 20분)
- 마령재 ~ 말치고개 약 27.2km
-. 마령치 ~ 대운재 11.5km
-. 마령치 ~ 삽치/ 제일휴게소 21.8km
-. 삽치/ 제일휴게소 ~ 말치 5.3km
- 말치고개 ~ 섬진강 합수점 36.9km
-. 말치 ~ 번화치 8.5km
-. 번화치(745번도로) ~ 원치고개(2차선도로) 14.2km
-. 원치고개(2차선도로) ~ 오수천/ 섬진강합수점 14.5km, 7.30h
* 식수 보충 및 참고사항
- 전주시외버스공용터미널: 1688-1745
- 장수공용버스터미널:
- 삽치/ 17번국도: 제일휴게소(식당, 주유소, 화장실)/ 식수보충 가능
- 임순여객(주): 063-640-3100
- 임실 개인택시: 010-3651-6864, 063)642-4567, 642-6655, 643-2474
- 말치고개: 양쪽으로 축사가 있다. 내려서기 직전 오른쪽 축사 수도 물 보충 가능.
- 말치에서 오른 첫봉우리: 산불감시초소, 군초소
- 독산고개: 첫집, 마지막집 물보충 가능.
- 원치고개/ 학정고개: 왼쪽 도로따라 도보 10분, 학정마을 정자, 화장실, 버스정류장
- 어치고개: 축사 옆에 수도가 있다.
- 무량산 큰각시봉: 산불감시초소
- 어은각: 측간
- 동계면 택시: 063)653-5817, 653-4402
* 성수지맥 장수군 장수읍 필덕마을 가는 교통편
- 서울 ~ 전주(KTX): 07:03, 08:54~, 1.51h, 34,600원
- 센트럴시티 ~ 전주고속터미널 : 자주, 2.50h, 22,000원
- 동서울 ~ 전주고속터미널 : ~19:30, 20:30, 3h, 24,500원
- 서울 남부터미널 ~ 장수공용터미널: 10:05, 14:35, 17:05, 3.30h, 25,500원
- 샌트럴시티(서울) ~ 진안시외버스공용정류장: 10:10, 15:10, 3.0h, 24,700원
- 전주시외버스공용터미널 ~ 장수공용터미널: 06:20, 07:15, 09:00, 10, 10:40~, 1.30h, 소요, 8,300
- 전주역 ~ 전주 인후동 간이정류소: 택시 8,500원
- 전주 인후동 간이정류소 ~ 진안시외버스공용정류장: 06:30, 09:20, 10:15, 1.20h,
- 장수공용터미널 ~ 산서방면 필덕마을 대성목장: 농어촌버스 3-6번 버스(06:40, 07:30, 08:40, 09:20, 10:30~)
- 장수공용터미널 ~ 필덕마을 대성목장: 택시18,650원
* 합수점에서 서울 올라오는 길
- 합수점에서 구남교 건너 좌틀, 평남로 따라 8분 거리 장수-담양 13번 도로 괴정,평남정류장~만복사지, 0.22h
- 어은정-구남교-평남,괴정마을-오수역, 오수공용터미널: 농어촌버스
- 동계 ~ 남원 버스: 12:55, 15:45, 18:50
- 순창 ~ 남원버스: 13, 14, 16:40, 17, 18:40, 19, 21:20, 21:40, 22:30
- 남원 ~ 센트럴시티: ~0830, 10:30, 13, 15, 17, 19:30, 3h, 18,700원~27,500원
- 순창공용터미널 ~ 전주시외버스터미널: 07~20, 배차간격 1시간, 1h, 7,000원
- 전주고속터미널 ~ 서울 센트럴시티: 자주
- 남원고속버스터비널~세트럴시티: ~13, 15, 17, 19:30, 3h, 27,500원
- 남원역 ~ 용산역 ITX: ~11:12, 14:56, 15:51, 19:02, 20:20, 2.20h, 39,500원
- 남원 ~ 익산(1h), 남원 ~ 천안(2.40h) 환승, 익산 ~ 서울(), 천안 ~ 서울()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일찍이 풍수지리의 대가 도선국사가 성수산의 기가 모인 혈자리에 내려앉은 구룡쟁주지지의 천자봉조지형을 보고 성수산을 영험한 산으로 점찍었다. 금남호남정맥이 수분재에서 금강을 잉태하고 다시 섬진강을 잉태하는 데미샘으로 향하는 중 팔공산에서 왼쪽으로 분기하는 성수지맥은 전북의 동부 산악지인 청정고원에서 오수천을 사이에 두고 천황지맥과 줄곧 함께하는 형제 지맥이다. 지금은 임실 성수산 상이암, 진안 선각산 데미샘(섬진강 발원지)과 장수 신무산 뜬봉샘(금강의 발원지)이라고 하지만 옛날에는 그냥 팔공산 도선암, 팔공산 데미샘과 팔공산 뜬봉샘으로 팔공산을 중심으로 불렀다. 진안고원에서 출발하는 지맥은 서쪽으로 임실과 진안의 군계를 따르다 임실로 들어서며 임실읍을 관통하여 남진하다가 말미에 순창에서 끝이 난다. 성수와 천황지맥에는 숙명처럼 진안고원의 무진장과 지리산, 섬진강의 임순남이 따라 붙는다. 인접한 지역인 무진장과 임순남을 통째로 이해하지 못하면 성수와 천황을 제대로 했다할 수 없을 만큼 셋은 하나의 생활권으로 같이 한다. 전주에서 호남정맥 슬치를 넘어 임실호국원을 가며 임실이 가까워올수록 먼 산 줄기에 관심을 가지고 성수지맥을 관심깊게 들여다 본다. 그러나 먼 곳까지 볼것도 없이 성수지맥은 아주 가까이 임실 치즈마을 입구 삼거리에서 제일 가깝다. 제일휴게소가 있는 삽치에서부터 말치까지 임실 읍내가 바라보이는 능선을 따르며 탈출 또한 삽치, 감성고개, 말치에서 임실 읍내로 가능하다. 성수산은 고려와 조선을 창업한 두 태조가 잠저(왕이 되기 전 신분) 때 찾아와 한 곳에서 기도한 장소로는 전국에서 유일한 장소이다. 그리고 근세에 이르러서는 동학교도와 빨치산이 이동하고 넘나든 현대사의 고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지맥이다. 천황과 성수를 흰소와 검은소로 볼 수도 있겠으나 성수가 한결 부드럽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성수지맥(聖壽枝脈)이란
금남호남정맥 팔공산(1,151m)에서 서쪽으로 내려선 산줄기는 마령치에서 올라선 천황지맥과 성수지맥의 분기점 해발 861m 봉우리에서 오수천을 감싸며 내려가는 두개의 산줄기로 나뉜다. 임도삼거리에서 천황지맥은 왼쪽(남쪽)으로 성수지맥은 북서쪽(직진)으로 분기한다. 성수지맥은 오수천의 서쪽 울타리를 이루며 성수산(875.9m)을 지나고 490m봉에서 남서쪽으로 0.6km 떨어져 있는 삼봉산(529.4m)을 오른쪽으로 비켜지나 서쪽으로 이어지다 고덕산(619m)에서 남서쪽으로 봉화산(467.6m), 응봉(608.5m), 무제봉(558m), 지초봉(571m)으로 내려오다 원통산(603.5m)에서 남쪽으로 시루봉(330m), 무량산(586.4m)을 걸쳐 순창군 적성면 평남리 구남마을, 조선 선조 13년 양사형이 친구들과 시주를 즐기던 곳의 어은정에서 섬진강과 만나 그 맥을 다하고 순창군 적성면 구남마을, 오수천(37.65km)이 섬진강과 만나는 합수점에 끝을 맺는 도상거리 56.9km, 실거리 61.27km의 지맥이다. 장수에서 시작하여 임실을 관통하고 순창에서 끝을 맺는다.
* 성수지맥 개념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성수지맥을 지나는 동네
* 장수군(長水郡)
전북의 동부 중앙에 위치한 군으로 장수군은 7개 읍면으로 전북 동부에 위치하여 있으며 군의 동부는 백두대간의 서사면에 걸쳐있고 서부는 호남정맥의 동사면에 해당되어 장수읍, 장계면 일대의 분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험준한 산악지대(군전체면적의 70%)를 이룬다. 따라서 무주·진안과 함께 전북의 동부산악권에 속한다. 군의 동쪽에는 백두대간을 따라서 솟아있는 시루봉(1,162m)·남덕유산(南德裕山, 1,507m)·깃대봉(1,015m)·백운산(白雲山, 1,279m)·월경산(月鏡山, 980m)·봉화산(烽火山, 920m) 등이 솟아 있어 경상남도와의 경계를 이루며, 서부에는 천반산(天盤山, 647m)·성수산(聖壽山, 1,059m)·팔공산(八公山, 1,151m)·묘복산(猫伏山, 846m) 등이 솟아 있다. 그 밖에 깃대봉(930m)·백화산(白華山, 851m)·봉화산(烽火山, 786m)·장안산(長安山, 1,237m)·마봉산(馬峰山, 724m)·사두봉(蛇頭峰, 1,015m) 등의 높은 산들이 있다. 경상남도 거창, 함양군과 도계를 이루고 있으며, 남은 남원시, 서는 임실군, 진안군, 북은 무주군과 각각 접하고 있다. 또한 백두대간과 호남정맥사이의 분지로서 호남정맥의 종산인 장안산(長安山, 해발1237m)이 있고, 금강과 섬진강의 발원지를 이룬다. 호남지방을 동부의 산악지대와 서부의 평야지대로 갈라놓고 있는 산줄기가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이다. 백두대간의 산줄기에 우뚝 솟은 장수 영취산에서 북서쪽으로 주화산까지 뻗은 금남호남정맥이 북쪽의 금강과 남쪽의 섬진강 유역으로 갈라놓는다. 금강 섬진강 상류지역의 풍부한 물과 구릉지역, 험준한 산악권역을 바탕으로 특정한 세력을 확장하기에 유리하였고 동서남북의 다른 세력집단이 꼭 넘어야 할 관문으로 발전하였으며 동서의 중요한 역사적 관문지로는 육십령이 있다. 장수읍과 장계면은 편마암류의 기반암을 소규모로 관입한 화강암의 심층풍화에 의해 발달한 금강 최상류의 산간분지로, 형태는 분지이지만 진안고원의 일부로 간주된다.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계는 대체로 장안산·수분령·팔공산을 잇는 선으로, 이 선을 경계로 해발 250m 정도인 섬진강 유역과 400∼500m인 장수분지의 고도차가 확연해지며 지형이 구분된다. 지형의 영향으로 수분령 남쪽의 섬진강 지류인 오수천 유역의 산서면과 요천 유역의 번암면은 인접한 장수읍보다 거리가 먼 남원시와 교류가 더욱 활발하다. 금강은 장수읍 수분리의 수분령(水分嶺, 530m)에서 발원하여 장수읍을 지나면서 북류하다가 장안산에서 발원한 장계천(長溪川)과 천천면에서 합류한다. 금강은 수량이 증가하면서 심하게 감입곡류하여 각각 진안군으로 흐른다. 수분령 남쪽은 섬진강 수계로 장안산 서쪽에서 발원한 용림천(龍林川)과 백운산에서 발원한 백운천(白雲川)이 번암면에서 합류하여 요천을 이루어 남원시로 흐른다. 이들 하천 연안을 따라 소규모의 평야가 발달해 있다. [통합포탈에서 발췌정리]
* 진안군(鎭安郡)
진안군은 전북의 동부 산악권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 무주군, 장수군, 남쪽으로 장수군, 임실군, 서쪽으로 완주군, 북쪽으로 충남 금산군이 인접하고 있다. 백제 난진아현(難珍阿縣)이었고 신라 경덕왕의 전국 지명 한화정책 때 지금까지 사용하는 이름인 진안현(鎭安縣)으로 바꾸었다. 1914년 용담군 지역을 흡수하였다. 1979년 진안면이 진안읍으로 승격하였다. 금호남정맥이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삼남지방 이남을 남서로 관통하며, 덕유산 등의 커다란 산이 형성되어 있다. 군 대부분이 산간 지역이지만 산지의 기복이 적어 인접한 무주군, 장수군에 비해 지세가 그렇게 험준하지는 않아 진안고원이라고 불린다. 남으로 지리산으로 이어지고, 전북 장수의 영취산에서 백두대간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금호남정맥의 주봉인 진안군의 운장산을 이루고 진안의 부귀산을 거쳐 전주의 모악산, 정읍시의 내장산으로 이어진다. 이 양대산맥이 폭 10∼20km의 서남방향으로 아주 가까이 평행하며 고원을 이루는 양상이고, 해발 200∼400m의 산간 구릉지로서 약 82.4%의 산악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진안고원에서 북으로 흐르는 금강과 남쪽으로 흐르는 섬진강으로 수계가 구분되고 있다. 대부분 금강 수계이나 백운면, 마령면, 성수면 등은 섬진강 수계이다. 백운면은 섬진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지형적 영향으로 인해 대기 불안정으로 인한 강한 소나기가 잦으며, 무진장에 속해 있는 무주군, 장수군과 함께 겨울에 눈이 많이 온다. 진안군은 전주-거창간의 간선도로, 익산-장수간 고속도로가 지나고 있으며, 소태정을 통한 4차선이 개통되어 전주와의 교통이 원활하게 되었다. 또한, 국토종합계발계획에 의해 대전-통영간 고속도로가 건설되었으며, 익산-장수간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전북과 경남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가 될 전망이다. 2001년 국내 5위 규모의 용담댐이 완공되어 용담면을 비롯하여 주천면, 정천, 안천, 상전면과 진안읍 등 진안군 전체 면적의 절반에 해당되는 1000여 만평이 수몰되었지만, 전주시, 군산시, 익산시 등지에 맑고 깨끗한 생활용수 및 공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고속도로는 새만금-포항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진안IC를 통해 이용할 수 있다. [통합포탈에서 발췌정리]
* 임실군(任實郡)
전북 중심부에 있어 전주시와 더불어 전북 도내의 시, 군들 하고만 경계를 접하고 있다. 동쪽이 장수군과 남원시, 서쪽이 정읍시, 남쪽이 순창군, 북쪽이 완주군과 접해 있다. 전주시와 남원시 사이에 끼어 있어서 두 도시의 생활권에 포함되어 있다. 임실(任實)이란 지명은 백제 때는 잉힐군(仍肹郡)이었으며 경덕왕 16년(757)에 임실군으로 고쳤다. (임실)은 한자 취음으로 "임"은 "그립고 사랑하는 사람", "실"은 실(谷:마을)로 '서울'처럼 순우리말로 전해지는 지명이다. 임실군은 마한에 속하여 신운신국에 해당하였으며(임실군지 1977), 백제시대 잉힐군(대동지지)으로 거사물현과 마돌현을 거느렸다.(삼국사기 지리3) 고려태조 왕건(17세)이 상이암에서 기도하고 환희담을 남겼으며 983년 전라도 전주목에 임실군을 두었다. 1250년 최자의 보한집에 오수의견설화가 처음 등장하고 고려때는 남원부 진관에 속하였다가 고려 명종(明宗) 2년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조선 태종(太宗) 13년에 임실현으로 삼았으며 감무를 고쳐 현감(縣監)으로 삼았다. 임실의 별칭은 운수(雲水)이다. 운수는 조선시대 임실현청의 객사와 군기고 부근에 있었던 운수정(雲水井)에서 유래하였다. 전하기를 신관(新官)이 부임하면 처음 이 우물물을 마시게 하였는데, 이렇게 운수정 우물을 마신 사람은 아무리 성급하고 포악한 관리라 하더라도 선정을 베풀게 되었다고 한다. 1906년 두입지 정리 및 행정구역 개편으로 남원부 6개방이 임실군으로 편입되었다. 상동면과 하동면이 성수면으로, 남면과 둔남면이 둔덕면으로, 신덕면과 원신평 일부가 신덕면으로, 오지면과 석현면, 아산면이 삼계면으로, 상북면과 하북면이 오천면으로 통폐합되었다. 이후 임실군 영계면이 순창군으로 편입되고 1935. 3. 1. 오천면을 관촌면으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전북 동북권 3개군의 머릿글자를 따서 무진장이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남권의 임실과 순창, 남원 세 고장의 머릿글자를 따서 임순남으로 한데 묶어서 부르기도 한다. 낙농업이 발달한 지역으로, 외지인들이 임실하면 대부분 치즈를 떠올린다. 전반적으로 산이 많은 고장이다. 관촌면, 임실읍, 오수면 일대는 비교적 평탄하지만 나머지 지역은 산이 많다. 특히 순창군과 경계를 이루는 지점에 있는 회문산은 한국전쟁 당시에 험준한 지세에 의지하여 빨치산 활동을 한 남부군의 주요 거점이기도 했다. 임실군과 정읍시의 경계에는 섬진강댐이 있으며 이 댐으로 생겨난 옥정호가 임실군 운암면과 정읍시 산내면 일대에 걸쳐 있다. 원래 운암면에 댐식 수력발전소가 있었으나 섬진강댐이 건설되면서 기존의 댐은 수몰되고 발전소는 폐쇄되었다. 현재 옥정호 물은 동진강 수계로 넘어가 정읍시 칠보면의 유역 변경식 수력발전소에서 전력 생산 및 상수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산업은 낙동업으로, 한국에 귀화한 벨기에 출신 카톨릭 신부 지정환의 노력으로 1967년 임실읍 성가리에 한국 최초의 치즈 공장이 설립되었고, 이후 임실 치즈가 임실을 대표하는 특산물로 자리잡게 되었다. 2016년 2월 4일, 임실치즈를 뿌리내리게 한 지정환 신부가 법무부로부터 특별 귀화허가를 받아 한국인이 되었다. 한국에 온지 57년 만의 일이라고 한다. 전주시에 있었던 제35보병사단 사령부가 2013년 12월에 임실읍으로 이전했다. [통합포탈에서 발췌정리]
* 순창군(淳昌郡)
순창군은 대한민국 전북 남부에 있는 군으로 동쪽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남원시, 서북쪽은 호남정맥의 주능선을 경계로 정읍시, 남쪽은 전남 장성군, 곡성군, 서남쪽이 담양군, 북쪽은 임실군과 접하고 있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영토로 오산(烏山) 또는 옥천(玉川)이라 불렀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토로 도실군(道實郡)이 되었다. 백제가 망하자 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었으며, 757년(경덕왕 16) 순화군(淳化郡)으로 개칭되어 적성현(赤城縣)과 구고군(九皐郡)을 관할하였다. 고려가 건국된 뒤 940년(태조 23) 현재의 지명인 순창(淳昌, 일명 淳州)으로 개칭되었다. 조선시대의 학자로는 실학자로서 『강계지』를 저술한 신경준(申景濬)과 성리학자로서 주리설(主理說)을 주장한 기정진(奇正鎭) 등이 있다. 근대의 인물로는 한말 대유학자로서,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제자인 임병찬(林秉瓚) 등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여 순창객사에 총본부를 두고 항일의병활동을 전개한 최익현(崔益鉉)이 있다. 북서부는 노령산맥 말단부의 동사면에 위치하여 험한 산지를 이루고, 동남부는 섬진강의 지류 주변에 분지가 발달하여 서로 대조되는 지형을 이룬다. 북부와 북서부의 정읍시·임실군과 인접한 지역은 호남정맥의 주능선이 지나가 회문산(回文山)·장군봉(將軍峰, 780m)·여분산(如紛山, 774m)·깃대봉(644m)·국사봉(國師峰, 655m)·내장산(內藏山, 763m)·백방산(栢芳山, 660m) 등의 비교적 높은 산들이 있다. 서부의 전남 장성군·담양군과의 인접지역에도 추월산(731m) 등의 산들이 솟아 있으며, 북서부의 쌍치면·복흥면에는 200∼350m의 고원이 발달해 있다. 북서부에서부터 광덕산(廣德山, 584m)·무이산(武夷山, 558m) 등 500∼600m의 산지가 연속되다가 남원시와 인접한 동남부에서 섬진강의 지류 주변에 100∼200m의 분지가 발달해 있다. 섬진강은 군 동부에서 흐르며 주변에 비교적 넓은 충적평야를 이룬다. 임실군 오수면 일대에서 흘러온 오수천은 적성면에서 섬진강과 합류하면서 강폭이 크게 넓어지는데, 이곳에서는 적성강(赤城江)으로도 불린다. 팔덕면 서쪽에 있는 광덕산과 산성산(山城山, 573m)에서 발원한 경천(鏡川)에는 인계면 북쪽에 있는 갈재[盧嶺]에서 발원한 양지천(陽芝川)과 금과면에서 발원한 지류들이 순창읍에서 합류하여 비교적 넓은 충적지를 이루며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그 밖에 서부에서 추령천(秋嶺川)이 복흥면·쌍치면을 지나 정읍시 산내면에서 갈담저수지로 흘러든다. 북부에서는 구림천이 구림면 일대를 지나 임실군에서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북서부의 산지는 부근의 다른 지역보다 높아 고랭지대에 속하여 여름에는 비교적 서늘하고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린다. 1950년 6.25 남침으로 순창농림중학교 학생들이 대거 학도의용군에 가담하여 포항전투에서 158명이 전사하였다. 또한 9·28수복 후 이 지방 사람들은 구림면 ‘회문산공비토벌작전’에 참가하여 향토 수호를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1979년 5월 1일 순창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통합포탈에서 발췌정리]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장수읍 대성리 508번지 필덕저수지 도로끝까지 갑니다. 대성목장 목장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오르면 민가가 나오고 민가 왼쪽 비닐하우스를 지나 우틀로 올라갑니다. 임도따라 조금 오르다가 왼쪽 능선으로 붙어 구불구불한 임도길을 직선으로 치고 오릅니다. 필덕마을에서 마령재까지는 1km이고 약 20분 소요 됩니다.
♤ 전북 장수군 장수읍 대성리 필덕(必德)마을/ 구름에 뜬 마을
필덕은 옛날 박상이란 도사가 팔공산아래 큰 들녘에 장래에 마을이 생기면 필히 덕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대로 마을이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해발고도 700m에 이르는 팔공산 중턱의 대성고원이라 불리는 고산지대이다. 대성리는 지형상 곡식을 계량하는 큰되처럼 생겨 큰뒷골, 또는 대승곡(大升谷), 대성으로 불렀는데 1914년 일제가 행정통폐합을 하면서 대성리로 고쳤다. 마을 입구에 필덕제(必德堤)가 있다. 팔공산 남쪽 기슭을 막아서 계곡형 저수지로 만든 필덕(必德)저수지는 전북의 동부지역에서 손꼽히는 낚시터로 유명하다. 지맥꾼들에게는 성수지맥 마령재로 오르는 들머리로 많이 이용된다.
♤ 전북 장수군 장수읍(長水邑)
장수읍은 장수군의 군청 소재지이며 군의 중서부 금강 상류의 중심지이다. 동쪽은 백두대간을 넘어 경남 함양군과 거창군, 서쪽과 서북쪽은 진안군과 임실군, 남쪽은 남원시, 북쪽은 무주군과 접하고 있다. 군청은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장수읍 장수리에 있다. 장수읍과 장계면 일대의 분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역이 산지이다. 따라서 무주·진안과 함께 전북특별자치도의 동부산악권에 속한다. 백두대간의 서사면에 걸쳐 있는 동부는 백두대간을 따라서 솟아 있는 시루봉(1,162m)·남덕유산(南德裕山, 1,507m)·기태봉(1,015m)·백운산(白雲山, 1,279m)·봉화산(峰火山, 920m) 등이 경남 함양군과 경계를 이룬다. 장계 동쪽의 육십령(六十嶺, 734m)은 소백산맥을 넘어 함양군과 연결하는 고개이다. 금남호남정맥의 동사면에 해당되는 서부는 천반산(天盤山, 647m)·성수산(聖壽山, 1,060m)·팔공산(八公山, 1,151m) 등이 솟아 있어 진안군과 경계를 이룬다. 그 밖에 깃대봉(930m)·백화산(白華山, 851m)·봉화산(烽火山, 786m)·장안산(長安山, 1,237m)·마봉산(馬峰山, 724m)·사두봉(蛇頭峰, 1,015m)·묘복산(猫伏山, 846m) 등의 높은 산들이 있다.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계는 대체로 장안산·수분령·팔공산을 잇는 선으로, 이 선을 경계로 해발 250m 정도인 섬진강 유역과 400∼500m인 장수분지의 고도차가 확연해지며 지형이 구분된다. 지형의 영향으로 수분령 남쪽의 섬진강 지류인 오수천 유역의 산서면과 요천 유역의 번암면은 인접한 장수읍보다 거리가 먼 남원시와 교류가 더욱 활발하다. 금강은 장수읍 수분리의 수분령(水分嶺, 530m)에서 발원하여 장수읍을 지나면서 북류하다가 장안산에서 발원한 장계천(長溪川)과 천천면에서 합류한다. 금강은 수량이 증가하면서 심하게 감입곡류하여 각각 진안군으로 흐른다. 수분령 남쪽은 섬진강 수계로 장안산 서쪽에서 발원한 용림천(龍林川)과 백운산에서 발원한 백운천(白雲川)이 번암면에서 합류하여 요천을 이루어 남원시로 흐른다. 이들 하천 연안을 따라 소규모의 평야가 발달해 있다. 해발 430m의 금강과 섬진강의 발원지로 장수읍 부근 일대에서 나는 잡곡과 담배, 누에고치 등 농산물의 생산량이 많다. 군내 명승고적으로는 용추, 논개비, 백화산, 육십령, 수분현, 연사루, 운점사, 석천사 등이 있다.
♤ 마령재(馬靈峙)/ 오두막/ 군계/ 읍면계(진안군 백운면 - 장수군 장수읍)
마령재(치)는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에서 장수군과 임실군을 넘나들던 네개의 고개 중 하나로 장수읍 대성리에서 백운면 신암리로 넘나들던 임도 고개이다. 마령재는 백제시대 어느 장군이 애마가 화살에 맞아 죽자 이곳에 묻었더니 3년간 밤마다 말울음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렸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으로 백두대간 금남호남정맥의 성수지맥, 천황지맥 분기점이기도 하다. 진안 신암마을과 장수읍 필덕마을을 넘나드는 이곳 마령재 주변으로는 1960~80년대 초반에 소를 치던 덕소목장이 있었던 곳으로 지금은 조림을 하여 잣나무, 물푸레, 자작나무, 상수리나무 등이 목초지를 대신하고 있다. 성수지맥은 팔공산-마령재-임실성수산-고덕산-봉화산-응봉-용골산-무량산에 이르는 총 56.9km구간이다. 천황지맥은 팔공산-마령재-개동산-천황산-연화산-노적봉-삿갓봉-고리봉에 이르는 총 59.5km 구간이다.
♤ 전북 진안군 백운면(白雲面)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남부에 있는 면으로 백운이라는 이름은 옛 백운동의 지명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삼국시대(신라)때에는 장계현에 속하였고, 고려초에는 전주현에, 공양왕 3년에는 마령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조선태종13년(1413)마령현이 폐현되어 진안에 편입되자 따라서 진안에 속하게 되었다. 진안현 시절에는 남면과 일동면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1914년 4월1일 군면 폐합에 따라 남면과 일동면을 병합하여 백운면이라 하여 진안군에 편입되었다. 면 서부 지역의 하천 연안에는 충적평야가 발달했으며, 그밖의 지역에는 팔공산(1,151m)·성수산(1,059m)·덕태산(1,132m) 등이 1,000m 내외의 산지를 이루고 있다. 진안군의 최남단 동부 산악권에 임야가 81%인 산간고원지대로 독특한 풍토의 청정고랭지에서 생산되는 인삼, 사과, 고추, 더덕, 고랭지채소, 표고, 돼지, 한우 등 농·축산물의 맛과 질이 우수하다. 산간 고랭지 이면서도 경지 면적이 넓어 인삼, 사과, 고추 등 선진영농을 주도하고 있으며 관광 농업 개발 및 웰빙 산림 휴양 관광자원의 잠재력이 풍부한 지역이다. 남동부의 팔공산에서 발원한 섬진강 지류가 면의 서부를 북류하며, 섬진강의 발원지인 데미샘과 백운동계곡, 백운동산림욕장, 선각산휴양림, 영모정, 고중대 등 천혜의 관광자원이 풍부하여 휴양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백운동계곡의 남쪽 기슭은 6.25 때 빨치산의 활동지로도 유명하다. 연안의 운교리·남계리 일대의 충적지를 중심으로 경지와 취락이 분포한다. 쌀·보리 생산 이외에 매실·사과 등의 과수 재배와 고랭지 채소 재배가 이루어진다. 유물·유적으로는 노촌리 영모정(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제15호)과 반송리에 최씨고집으로 유면한 만육 최양선생 유허비(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제81호)가 있다. 면사무소 소재지는 백운면 임진로 1297이다.
성수지맥이 천황지맥과 헤어지는 지점입니다. 아울러 장수군 장수읍과도 헤어지고 여기부터는 장수군 산서면입니다. 선각산(仙角山, 1141.5m) 방향으로 조망이 좋습니다.
♤ 성수지맥분기점(820m)/ 삼읍면봉(진안군 백운면, 장수군 장수읍 → 산서면)/ 임도삼거리
선답자님들 띠지와 함께 준희선생님 성수지맥 분기점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 잣나무 군락속 임도삼거리로 성수지맥은 산서면과 백운면의 경계를 따라 삼군봉인 백운산(갈미봉)으로 직진하고, 천황지맥은 산서면과 장수읍의 경계를 따라 왼쪽(남쪽)으로 뻗어간다. 금남호남정맥 팔공산에서 섬진강 본류와 그 지류인 요천을 가르며 서쪽으로 갈려나온 산줄기는 마령치에서 올라선 펑퍼짐한 봉우리에서 오수천을 감싸며 내려가는 두개의 산줄기로 나뉜다. 남쪽으로 요천과 오수천을 가르면서 내려가다 요천 끝에 이르는 산줄기는 천황지맥이고 오수천의 서쪽 울타리를 이루며 성수산-삼봉산-고덕산-봉화산-매봉-무제봉-지초봉-원통산-무량산을 거쳐 순창군 적성면 평남리 구남마을의 어은정에서 오수천 끝에 이르는 산줄기가 성수지맥이다.
팔공산에서 천황성수지맥을 분기한 금남호남정맥이 북쪽으로 올라가는데 홍두깨치에서 서쪽으로 갈래를 친 산이죠.
♤ 덕태산(德泰山, 1,113m)
덕태산은 전북 진안군 백운면 백암리와 노촌리에 걸쳐 있는 산이다. 금호남정맥 팔공산(1,149.4m)에서 성수산(1,059.2m)으로 연결되는 금남호남정맥의 홍두괘치 부근에서 서쪽으로 나온 지맥이다. 봉우리가 덕스럽게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덕태산은 금호남정맥 북동단에 솟아 있으며, 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선각산·성수산·팔공산 등이 있다. 서쪽에 백운들을 사이에 두고 내동산이 있다. 산의 동쪽에 남원 방면으로 연결되는 국도 13호선이 지나며, 서쪽으로는 국도 30호선이 지난다. 산정은 비교적 평탄하고 남사면을 제외한 대부분이 급경사를 이룬다. 숲이 울창하며, 산록에는 운교제·화산제 등의 저수지가 있다. 산의 서쪽은 산 중턱까지 개간되어 경작지로 이용되며, 백암리에서는 논농사가 이루어진다. 특히 이산 남쪽 오계치 기슭에는 섬진강의 발원지인 데미샘이 있어 의미가 큰 산이다.
오수천의 발원지입니다. 성수지맥이 장수군과 헤어지고 여기부터 구암고개까지 임실군과 진안군의 경계를 따르는데 임실군 성수면은 여기부터 말치까지 길게 성수지맥과 함께 합니다.
♤ 백운산(862.3m)/ 갈미봉=갈뫼봉=갈모봉/ 삼군봉(진안 백운, 장수 산서 → 임실 성수)/ 영대분맥갈림봉
준희선생님 862.3m봉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 삼군면리봉(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장수군 산서면 백운리 → 임실군 성수면 왕방리)이다. 나무 계단으로 내려간다.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깃대 두개가 꽂혀있어 깃대봉이라고도 한다. 예전에 군부대가 주둔했던 흔적인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깃대가 있는데 한국 전쟁 당시 빨치산 토벌 지역의 흔적으로, 수복 당시인 1950. 11.~1951. 3. 사이에 성수산의 속칭 북당골이라는 곳을 중심으로 왕방리 원증이 마을과 대판이 마을은 소위 빨치산들의 해방구였고, 성수면의 성수산, 진안군 백운면의 덕태산, 시루봉 등은 회문산과 지리산을 연결하는 빨치산의 주요 통로 중 하나였다. 지리산, 백운산 덕유산을 잇는 백두대간에 금남호남정맥의 덕태산과 성수산의 줄기가 높다랗게 자리해 지역의 지리에 능통한 빨치산들이 산줄기를 따라 덕유산과 지리산으로 이동하며 산이 깊은 백운면과 산서면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던 근대사의 비극이 자리한 지역이다. 팔공산에서 마령치로 내려선 산줄기는 성수지맥 분기점을 지나 백운산(갈미봉)에 닿는다. 백운산에서 북쪽은 성수지맥(성수산 줄기), 서쪽은 영대분맥(영대산 줄기), 남쪽은 천황지맥(천황봉 줄기)으로 세 갈래를 친다. 팔공산과 선무산의 금남호남정맥 마루금을 길게 살피고 정맥 마루금에서 서쪽으로 빠져나온 선각산과 덕태산도 조망한다. 성수면은 임실·장수·진안의 경계가 되는 삼군봉인 갈미봉을 기점으로 북으로는 성수산과 고덕산을 이어가는 성수지맥, 남으로는 영태산과 오봉산을 이어가는 산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구름재에서 서쪽 판이봉(803.5m)을 지나는 산줄기 하나가 흘러내리는데 이 산줄기에 의해 성수면의 양 하천인 둔남천과 성수천으로 물줄기가 나눠진다.
♤ 전북 임실군 성수면(聖壽面)
성수면은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의 면이다. 인접한 진안군 성수면과 한자까지 같은 동일한 이름이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성수산 상이암에서 100일 기도를 드리던 중 성수만세(聖壽萬歲)라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전설이 있어 성수면으로 불리고 있다. 동쪽으로는 마령면 강정리, 계서리, 덕천리가 인접해 있고, 북쪽은 진안군 성수면, 만덕산을 사이에 두고 부귀면 세동리, 완주군 상관면과 잇닿아 있고, 북동쪽은 성수산(876m) 등을 경계로 진안군 백운면, 서쪽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임실읍, 임실군 관촌면과 맛닿아 잇고, 남동쪽은 내동산을 경계로 백운면 덕현리, 남계리와 마주하고 있고, 남쪽으로는 구신천과 고덕산을 경계로 임실군 성수면과 인접해 있고, 지사면·오수면과 장수군 산서면에 접한다. 섬진강 상류의 지류인 둔남천 주변에 해발고도 200m의 좁은 평지가 있을 뿐 대부분 산지이다. 호남정맥의 일부인 마치재 부근에서 발원한 회초천, 만덕산에서 발원한 달길천, 내동산에서 발원한 도통천, 그리고 구신리와 좌산리를 따라 흐르는 구신천 등이 섬진강 본류와 합수하면서 오원천으로 흘러 들어간다. 성수면의 마을들은 대부분 이 하천들을 끼고 형성되어 있다. 농,축산없이 주종을 이루고 벼농사 외에 양봉업이 성하다. 임실군의 주봉인 명산 성수산, 오봉산이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고산 협곡으로 교통이 불편하다. 전라선 철도가 면의 남서부를 통과하며 임실∼진안 국도가 면의 중앙을 지난다. 문화재로는 상이암, 상이암 부도(전북특별자치도유형문화재 150), 이석용 생가(전북특별자치도기념물 91), 소충사, 환희담, 어필각, 임실 계방리사지, 쌍충단비, 월평리 성터 등이 있다.
♤ 전북 임실군 성수면 왕방리(枉訪里)
임실군 성수면 왕방리는 이성계가 지리산에서 성수산 도선암( 현 상이암)으로 가던 중 이곳에서 짙은 안개를 만나 헤매이면서 머물렀다고 해서 '왕이 방황했다(枉訪)'는 의미로 생긴 이름이며, 성수면 수철리(水鐵里)는 이성계가 지리산을 거쳐서 도선암으로 갈 때 이곳에 와보니 수천리(數千里)를 걸어 왔다고 해서 부르는 이름이다. 현재의 한자 표기인 수철리(水鐵里)는 본래 뜻과는 다소 차이가 있으며, 멀다는 뜻을 피하기 위한 해석도 있다.
♤ 영대분맥/ 영대산(靈臺山, 666.4m)/ 아침재
영대분맥은 성수지맥이 구름재 가기 전 갈모봉에서 분기하여 서쪽으로 10km를 달려 영대산, 오봉산, 칠봉산을 솟구치고 아침재와 덕재산을 지나 남서쪽으로 뻗어가다가 오수천으로 숨어드는 약 19.6km의 산줄기이다. 장수군 산서면과 임실군 성수면의 경계에 위치하는 영대산은 예부터 장수 팔공산을 넘어오는 보름달을 제일 먼저 달맞이 할 수 있는 곳으로 장수팔경의 하나인 영대영월(靈臺迎月)로 불려왔다. 또한 장수의 5악으로 장수의 서쪽을 방위하는 백제장군으로 추앙받아 온 산이다. 장수군지로 고찰해 본 영대산은 노승이 목탁을 치고 염불하는 형상으로 마치 자식을 앞에 놓고 먼 훗날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애끊는 자태 같은 산, 또는 다섯 마리 용이 서려서 기는 듯, 다섯 개의 산봉우리가 바로 앉아 있는 듯하며, 일곱 개 봉우리로 이어지는 칠봉이 꿈틀 거린다고 예찬했다. 산서초등학교 교가에도 등장하는 영대산은 산서의 진산으로 지역주민들은 신령스럽고 영험한 산으로 여겨왔다. 성수면 오봉리의 아침재는 전북 장수군 산서면에서 임실군 성수면으로 이어지는 721번 지방도로가 영대분맥을 넘는 고개다. 고려 말 1380년 9월에 남원 운봉의 황산대첩에 승리한 이성계(당시 45세) 장군의 군대가 개선 길에 지사면 관기리 장군바위 터에서 하룻밤을 숙영하였다고 한다. 아침에 고개를 넘어 팔공산 도선암(성수산 상이암)을 찾아가게 되어서 이 고개를 아침재라고 한다. 이성계 장군은 팔공산 도선암에서 기도를 하고 진안 마이산을 거쳐 전주의 오목대에서 지역의 종친을 맞아 승전 기념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백운산(862.3m)에 군부대가 주둔했던 이유가 아닐까요, 한국전쟁 당시 임순남(임실,순창,남원)에 넓게 활동했던 빨치산의 비운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바위전망대에서 지리산의 하늘금을 감상합니다.
♤ 순창ㆍ임실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 결정요지
1. 박훈 등 115명의 전북 임실군 주민들은 1948년 12월부터 1949년 3월 사이 또 1950년 11월부터 1951년 5월 사이에 국군 제11사단과 제8사단 및 임실경찰서 소속의 경 찰과 경찰의 지휘ㆍ감독 아래 있던 우익단체에 의해 좌익 및 부역혐의자 혹은 그 가족이 라는 이유 등으로 살해되었다. 임실경찰은 ‘2ㆍ7사건’과 여순사건이 발생한 이후 1948년 관내의 좌익 색출ㆍ처벌을 강화하여 청웅면 석두리와 남산리 주민 20여 명을 포함한 다수의 좌익 관련자들을 임실경찰서로 연행한 후 집단 사살하였고, 한국전쟁 시기에는 임실군에 주둔한 국군 제11사단 제13연대와 임실경찰이 함께 청웅면 남산리(강진면 부흥 리)의 폐금광에서 인근 마을의 피난민들을 분화(焚火) 작전으로 질식사시켰으며, 국군 제 11사단에 배속된 국군 제2경비대대는 성수면 지서에 자수한 좌익 및 부역혐의자들을 빨치산에 협조한다는 이유로 성수면 왕방리에서 총살하였다. 그리고 국군 제8사단 수색대대는 자수한 빨치산을 앞세워 운암면 학암리에서 부역혐의자를 체포하여 임실읍 오정리에서 처형하였고, 신덕면 월성리에서는 인민군 점령기에 좌익에게 피해를 당한 치안대원 들이 수복 후 마을의 좌익 및 부역혐의자 10여 명을 총살하기도 하였다. 2. 조사결과 사망사실이 확인ㆍ추정된 희생자는 116명인데 이 중 진실규명 신청된 사람은 64명이고, 신청되지 않았지만 조사결과 희생사실이 확인ㆍ추정된 사람은 52명이다. 3. 이 사건의 가해주체는 국군 제11사단 제13연대와 제2경비대대 그리고 국군 제8사단 수색대대, 임실경찰서 소속의 경찰과 경찰의 지휘ㆍ감독을 받았던 치안대 및 향토방위대로 확인되었다. 4. 이 사건이 비록 좌우의 대립이 극심한 시기 및 전시 상황에서 발생했다 하더라도, 국가기관인 군경이 적법한 절차 없이 생업에 종사하던 민간인들을 살해한 것은 인도주의에 반한 것이며, 헌법에서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인 생명권을 침해하고 적법절차원칙과 재판 받을 권리를 침해한 불법행위였다. 5. 진실화해위원회는 또 순창군 주민 3명과 임실군 주민 6명 등 총 9명이 한국전쟁 기간 중 사망 혹은 행방불명되었다는 사건을 조사하였으나, 불법적인 공권력 행사로 피해를 입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진술이나 자료가 없어 진실규명불능으로 판단하였다.
구룡쟁주의 능선을 지나며 "성수만세"라는 소리가 저도 모르게 입에서 새어나오더래요.^^
♤ 구름재(雲峙, 875m)/ 군면리계(임실군 성수면 왕방리 -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구름재 이정표는 통나무 벤치가 있는 산봉우리에 있다. 임실군 성수면 성수리 상이암과 왕방리 판이 사이에 있는 고개로, 전북 장수군의 산서면 백운리에 소재한 고개이다. 동으로 팔공산, 서로 영태산, 남으로 개동산(묘복산), 북으로 성수산 등의 산줄기가 모이는 지점에 위치한 재이다. 고개를 통해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의 고림하 마을, 임실군 성수면 왕방리와 성수리 등이 연결된다. 이웃한 마령재와도 연결되면서 장수군 산서면 백운리와 장수읍 대성리와도 통하기 때문에 주요한 교통로라고 할 수 있다. 『조선지형도』(장수)에서 구름재가 표기되어 있으며, 남쪽으로 마령재, 동쪽으로 진안군 백운면의 중고대 마을이 기재되어 있다. 『한국지명총람』에 의하면, 매우 높아서 구름이 잘 낀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으로 설명되어 있다. 구름재 안부를 지나 다시 나무계단길을 오른다. 실제 구름재는 나무계단으로 내려서서 만나는 산죽이 우거진 안부(鞍部)로 반바지운영자님 코팅지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 양방향으로 길은 없으나 능선에 길은 잘 나있다.
♤ 태조봉(904.7m)/ 성수지맥 최고봉/ 905고지/ 군면계/ 삼리봉(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임실군 성수면 왕방리 → 성수리)
등로에서 서너걸음 떨어진 곳에 산너머님 산패가 철쭉나무에 매어 있다. 구름재에서 올라선 무명봉으로, 이 봉우리는 성수지맥의 최고봉이자 성수산의 실질적인 정상이다. 하지만 진안군 백운면에서 남쪽의 성수산을 바라보면 태조봉은 보이지 않고 성수산이 정상으로 보인다. 임실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데 그저 이름 없이 성수산의 일부가 되고 있음이 안타까운지 인근 세 성수산의 으뜸 역할을 하는 임실 성수산에서 약 1km 거리에 있어 이 봉우리를 태조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세종 홀산아님 산패도 타이랩으로 나무에 매달려 있다.
♤ 지장재=지장치/ 상이암 갈림길
상이암을 왼쪽에 두고 참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매어 있는 863.7m고지를 지난 능선 왼편으로 큰 바위가 눈에 띄는데 영락없는 사자 얼굴 모양으로 고려·조선 두 왕조의 건국설화가 깃든 상이암을 지키는 수호신인 양 무엇을 지그시 응시하고 있고 그 바로 앞에는 수령 백년이 넘어 보이는 철쭉이 자리하고 있다. 이어 안부(鞍部)에 내려서면 상이암 쪽에서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로 넘어가는 지장치다. 성수산 등산로의 분기점으로 이곳에서 능선을 타고 오르면 임실의 주산 성수산에 서게 된다. 이정표 [성수0.3km, 상이암1.6km, 왕의기도터 km, 구름재 2.9km]가 서있다.
지역의 지명에도 용들이 꿈틀거리고 있네요.
♤ 성수산(聖壽山, 875.9m)/ 성수만세(聖壽萬歲)/ 3등삼각점(임실 307/ 1984 재설)/ 군면계/ 삼리봉(임실군 성수면 성수리,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 반송리)
커다란 정상석과 3등삼각점이 있다. 성수산은 임실군 성수면과 진안군 백운면의 경계에 위치한다. 암봉으로 임실의 진산이자 성수지맥의 주산이다. 장수 팔공산 준령이 치달아와 우뚝 멈춘 세 가닥 중 힘찬 맥을 형성하고 있으며 호남의 미목(眉目)으로 여덟 왕이 나올 길지라 일러온 명산이다. 임실군과 진안군에 각각 성수면이 있다. 진안군에는 한자까지 동일한 성수산이 세 개 있다. 그 중 하나가 이곳 성수산이다. 성수산에서 헬기장으로 내려서며 길은 잘 정비되어 있다. 헬기장에서 교룡산과 천황지맥이 환하게 조망되며, 잠시 후 이르는 조망바위에서 마이산과 운장산도 조망된다. 고려와 조선의 건국 설화가 얽혀 있는 성스러운 명산으로 그렇게 높은 산은 아니지만 정상에 오르면 시야가 탁 트여 사방으로 전망이 빼어난 곳이다. 또한 험준한 산세는 두 왕조의 건국설화 뿐만 아니라 동학의 지도자 김개남 접주가 상이암에서 당시 임실현감 민충식을 동학에 입도하게 한 곳도 성수산이다. 또한 구 한말 이석용 의병장이 의병을 모의하고 준비한 곳도 성수산 상이암으로 역사적 의미가 큰 명산이며 한국전쟁 때는 수난의 애환이 서린 산이다. 덕유산에서부터 회문산으로 뻗어내린 금남호남정맥에서 갈라진 성수지맥에 자리잡고 있다. 숲이 울창하며, 자연휴양림으로 지정되어 많은 휴양객들이 찾고 있다. 고려 때 풍수지리에 통달한 도선국사는 성수산을 둘러보고 “천자봉조지상(天子奉朝地像)……”이라, 천자를 맞이할 성지로 손색이 없다고 탄복하고 송도로 올라가 초야에 묻혀 있던 왕건에게 성수산에서 백일기도를 권한다. 성수산으로 내려온 왕건은 백일기도 끝에 고려 건국의 업을 성취할 수 있는 계시를 받고 기쁨을 억누르지 못하여 환희담(歡喜潭)이라는 친필을 바위에 새기고 암자를 지어 도선암이라 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도 무학대사의 권고로 성수산에서 기도를 드렸으며, 남원 운봉에서 왜구를 섬멸하고 개선 길에 무학대사를 그리며 성수산 상이암에 들렸다. 그는 꿈에 용이 나타나 세 번이나 몸을 씻어 주는 발룡대몽(發龍大夢)을 꾼다. 그리고 산·물·기氣 세 가지가 맑다는 뜻으로 ‘삼청동(三淸洞)’이라 쓴 친필을 돌에 새겼다. 또한 그가 과거 이곳에서 기도를 할 때 하늘에서 외치는 세 차례의 성수만세 소리가 들렸다고 하며 왕으로서 손을 귀 위에까지 올렸다 하여 도선암을 상이암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이곳에 있는 삼청동 비각은 어필각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는 근래에 들어와 전주이씨 종중에서 세운 것이다. 성수면에는 이석용 외 28의사를 모셔놓은 소충사가 있다.
풍수지리학적으로 성수산의 아홉 개 산맥(아홉 마리 용)이 상이암을 향해 뻗어 내려오며, 향로봉에 그 기운이 모여드는 형세입니다
♤ 상이암(上耳庵)
일찍이 신라 말 도선국사가 이 산을 둘러보고 천자봉조지형(天子奉朝地形)이라 탄복하고 헌강왕 원년(875)에 도선암이라는 명찰을 창건하였다. 도선국사는 송도로 올라가 왕건의 부친 왕융을 찾아 왕건으로 하여금 이곳 성수산에서 백일치성토록 은밀히 권유하였다. 이곳에 내려온 왕건은(당시 17세) 백일기도 끝에 고려 건국의 대업을 성취할 수 있는 계시를 받아 그 기쁨을 억누르지 못하여 환희담(歡喜潭)이라 비에 새겼다고 전한다. 그 뒤 고려 말에 무학대사의 권유로 태조 이성계도 이곳을 찾아 치성을 올린바 물과 산 대지의 삼업(三業)이 청정함을 깨닫고 삼청동(三淸洞)이라 글씨를 새겼다고 한다. 또한 하늘에서 천신이 내려와 손을 귀 위로 올리며 성수만세라 세번 외치는 용비어천의 길몽을 얻었다. 상이암의 암자 명칭은 '주상(임금) 또는 상감의 귀에 하늘에서 성수만세 소리가 들렸다'는 설화에서 유래한다. 따라서 조선개국과 더불어 태조3년 각여선사가 도선암을 상이암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이로써 성수산은 한반도 제일의 생왕처(生王處)로 부른다. 상이암은 전북 임실군 성수면 성수산에 있는 암자로 성수지맥이 부채꼴로 휘감아가는 안쪽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바위 능선이 합죽선의 댓살이라면 암자는 합죽선의 댓살이 모이는 안쪽 구심점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의 말사이다. 『상이암 사적기』에 의하면 신라 헌강왕 원년인 875년에 가야선사가 창건하였고, 1394년(태조 3)에 각여가 중수하였으며, 1894년 동학농민운동으로 불탄 것을 1909년 대원이 중건하였다. 그 뒤 의병대장 이석용이 이 절을 근거지로 삼아 항일운동을 전개하였으므로 왜병에 의해 소실되었다가 중건되었는데, 6·25전쟁 때 다시 소실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1958년 상이암재건위원들에 의해 다시 세워졌다. 경내에 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124호로 지정된 부도(浮屠)가 있다. 절 입구의 큰 바위를 지나면 법당 앞에 수백 년 된 편백나무가 자리잡고 있고 우측의 어필각에는 이태조 친필인 ‘삼청동(三淸洞)’ 비가 세워져 있다. 이처럼 천년 고찰임을 말해 주듯이 고목들이 즐비하고 구룡지지라 말하듯 아홉 곳의 강하게 내려오는 산줄기가 암자를 응시하고 법당 앞의 여의주(향로봉)로 표현하는 바위산을 물려고 하는 것과 같기도 하여 성수산의 구룡이 상이암을 군신처럼 빙 둘러 감싸안고 있다.
"성수산정상 0.4Km" 이정표에서 오른쪽 암벽사면을 따라 절벽(높이 약 3.5M)으로 동아줄을 잡고 내려서야 하는데 여기 바위봉우리 정상에 서면 상이암과 구룡쟁주의 지형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 보현봉(普賢峰, 806.5m)/ 연화봉
산너머대장님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는 잡목봉이다. 성수산 서쪽 편에 있으며 진안군 백운면 반송리와 경계를 이룬다. 성수지맥의 주산인 성수산에서 서쪽 이정표가 가리키는 수천리로 방향을 틀어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헬기장에서 바위봉 전망대를 지나고 상이암도 내려다 보고, 그 아래로 성수리 계곡이 깊다. 암봉인 연화봉(836.5m)을 직진하여 넘어서면 연꽃 모양의 암봉인 보현봉에 이르는데 상이암 쪽에서 올라오는 또 다른 등산로의 분기점이다. 날카로운 바위가 뾰쪽뾰쪽 솟아 연꽃을 닮았다 하여 연화봉이라 불린다. 암봉이자 조망처인 연화봉에서 암봉 오른쪽으로 밧줄이 매어 있는 절벽을 내려서서 육산인 보현봉으로 이동하며 근처의 등산로에서 상이암을 중심으로 하는 구룡쟁주의 산세를 잘 살펴볼 수 있다. 얼핏봐도 성수산은 주능선에서 뻗어내린 지능선들이 중앙에 위치한 상이암으로 모아지는 형세를 하고 있다. 이런 산세를 구룡쟁주지지(九龍爭珠之地)라 하는데 마치 성수산 아홉 골짜기(九龍)가 서로 여의주를 쟁취(爭珠)하기 위하여 경쟁하듯이 상이암을 향해 뻗어 내려오다 여의주 형세인 삼청동 뒤 작은 암봉 향로봉에 막혀 더 이상 가지 못하고 구룡의 기가 모아지는 형국의 산세를 말한다.
산의 형태가 마이산으로 달려가는 형세라 하여 백마산이라고 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 내동산(萊東山, 887.8m)/ 백마산
내동산은 전북 진안군 성수면 구신리와 외궁리·백운면 덕현리·마령면 계서리에 걸쳐 있는 산이다. 정상에는 표지판과 등산객들이 쌓아올린 돌탑이 몇 기 자리하고 있다. 팔공산에서 그 가지를 뻗어 임실 성수산(876m)을 경유하여 그 역방향으로 치달려 대운치-구신치를 이어 백운면 서편에 자리잡은 산이다. 내동산이라는 이름은 산봉우리의 형세가 대들보를 걸쳐 놓은 듯하고, 선인이 노닐었다 해서 봉래(蓬萊)라 했는데, 여기에서 래(萊)자가 유래했다. 임실 성수에서 진안 백운 방면으로 오다보면 왼쪽으로 병풍처럼 웅장하게 펼쳐진 산이 바로 내동산이며 마이산에서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내동산은 원래 백마산(白馬山)이었다. 속설에 의하면 옛적에 이 부근의 마을에 기골이 장대한 장수가 태어났는데,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하자, 이산에서 백마가 울면서 뛰어와서 백마산으로 이름지었다고 한다. 또 다른 뜻은 옛날에 신령스런 백마가 산 위에서 노닐었다고 해서 마령(馬靈)이라는 지명이 탄생한 것과 관련된다. 산의 서북 봉우리에 봉수대가 있었다는데 확인이 어렵다. 그 뒤, 일제강점기 때 내동마을의 뒷편에 위치한 산이라서 쑥래(萊), 동녘동(東)을 써서 내동산이라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쑥래(萊)의 의미는 묵은 농경지 즉, 경작하지 않은 묵은 밭을 뜻한다. 이 때문에 산의 이름을 쑥래(萊)를 써서 래동산이라 부른 뒤부터는 래동마을이 쑥대밭처럼 몰락 되었는데, 신득범이라는 풍수 대가가 이 마을로 이사를 와서 내동마을의 첫자인 쑥래(萊)를 안내내(內)자로 고쳐 부르자, 그후로 마을이 신기하게도 풍요로워졌다고 한다. 고지도인 『해동지도』와 『광여도』에는 내동산(內洞山)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여지도서』에서 처음으로 내동산(萊東山)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북쪽 산기슭에는 중평저수지가 있다. 내동산은 본래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이었으나, 최근 능선을 타고 남북을 종주하는 등산 코스가 각광받고 있다. 남릉에서 북릉을 타면서 조망되는 경치가 좋기 때문이다. 특히 내동산 동남쪽 덕현리 산기슭에 안겨있는 약수암과 내동폭포 주변 일대는 최근 많은 방문객이 찾고 있다. 약수암은 작은 암자이지만 일명 ‘백마산 백마사’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내동산 동남쪽에는 2011년 전북 산림환경연구소 주변 18만㎡ 부지에 대규모 삼림욕장을 조성하여 숲 체험과 휴양, 산림 치유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 장군봉(將軍峰, 683.1m)/ 서낭정이/ 4등삼각점(임실 429/ 1984 재설)
성수산 자연휴양림 북쪽에 있다. 진안군 백운면 반송리와 경계를 이룬다. 특징없이 지나는 봉우리로 봉우리 조금 못 미친 곳의 능선에는 흔치 않은 흰색 철쭉 몇 그루가 자생하고 있다. 4등삼각점이 있고 [주차장 1.7km, 성수산 2.1km]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서있다. 주차장은 성수산 자연휴양림 방문자센터를 말한다. 왼쪽으론 수철리로 내려선다. 진안군 백운면 남계리와 임실군 성수면 수철리를 넘나드는 고개를 너댓개 넘어간다.
♤ 598m봉/ 군면계/ 삼리봉(임실군 성수면 성수리, 진안군 백운면 반송리 → 남계리)
지맥의 오른쪽이 진안군 백운면 반송리 → 남계리로 바뀌는 삼리봉 지점이다. 지맥은 급좌틀로 내려선다.
성수산에서 바라본 마이산이 이 구간 표적봉을 지나 다시 보이기 시작합니다.
♤ 493.5m봉/ 표적봉/ 군면리계(성수리 - 남계리)
반바지운영자님 코팅지 산패와 산너머대장님 산패가 소나무에 매달려 있다. 벌목능선을 지나 완만하게 오른다.
♤ 매봉(476.2m)
산너머대장님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 사근이에서 진안 백운으로 넘는 꼬부랑재와 갈골에서 분토동으로 넘는 매봉재를 지나 매봉으로 오른다. 북쪽으로 금남호남정맥이 지나는 마이산과 부귀산이 바라보이고 지맥은 좌틀로 내려서서 성황당 안부를 지난다.
지맥의 왼쪽이 성수지맥의 최고봉인 태조봉에서부터 함께한 임실군 성수면 성수리와 헤어지는 지점입니다.
♤ 남계산(520.4m)/ 점안산/ 4등삼각점(임실 431/ 1984 복구)/ 군면계/ 삼리봉(백운면 남계리, 성수면 성수리 → 태평리)
준희선생님 산패가 오리나무에 매어 있고 4등삼각점이 있다. 수철리 북쪽 임도에서 남계리로 넘는 서낭댕이재인 성황당 안부에서 잡목을 헤치며 약 15분 빡시게 올라선 봉우리로 지맥은 우틀이다. 지맥의 왼쪽이 임실군 성수면 성수리 → 태평리로 바뀌는 삼리봉 지점이다. 삼각점에서 우틀로 확 꺽어 내려서면 정면에 내동산(萊東山, 887.8m)이 바라보인다.
♤ 473.7m봉
왼쪽으로 임도로 가는 우회길이 있다. 산너머대장님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고, 지맥은 좌틀로 대운재 방향으로 내려선다.
성수지맥 오른쪽이 진안군 백운면과 헤어지고 성수면으로 들어서서 여기부터 구암고개까지 짧은 구간(약 1.5km)이지만 진안군 성수면과 임실군 성수면의 경계를 따릅니다.
♤ 502m봉/ 군계/ 삼면봉(임실군 성수면, 진안군 백운면 → 진안군 성수면)
돌로 둥글게 쌓은 용도 모를 구덕이 있고, 내동산과 마이산 30번 국도가 보인다. 502m봉은 벌목 능선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비켜나 있고 502m봉 조금 못 미친 전의 이씨 묘가 있는 471m봉에서 서쪽(왼쪽)으로 임도길을 따른다. 지맥의 오른쪽이 진안군 백운면 남계리 → 성수면 구신리로 바뀌는 군계이자 삼면봉 지점이다.
버스정류소는 없지만 임실에서 백운 오가는 버스를 대운치에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오른쪽 진안군 백운면 방향으로 1.6km(약 25분) 내려서면 오정삼거리에서 좌틀(왼쪽)하여, 관촌으로 나가는 원구신 버스정류장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 대운재(413.5m)/ 대운치/ 큰재/ 30번국도(임진로)/ 수준점/ 소공원/ 군면계(진안군 성수면 - 임실군 성수면)
임실군 성수면 태평리 운현에서 진안군 백운면 남계리 오정으로 넘나드는 고개로 30번 국도가 지난다. 소공원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마이산도립공원표지판 건너편 임실군 성수면 표지판 뒤로 오른다. 지대가 하도 높아서 구름 위에 올라앉은 것 같다'고 하여 대운(大雲)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운현(雲峴)은 이성계가 상이암으로 백일기도를 갈 때 상서로운 구름이 맴돌며 머물렀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이성계가 이 마을과 마이산을 넘어 등극하였다는 의미로 마을 앞에 대왕령촌비(大王嶺村碑)를 세웠다 한다. 한편 진안 백운면으로 넘어가는 길 오른쪽에 2005년 10월 19일 성수면민들의 뜻을 모아 세운 운현전적의혼추모비(雲峴戰蹟義魂追慕碑)가 세워져 있는데 이는 구한말인 1908년경 성수면 삼봉리 출신인 정재 이석용 의병장과 28의사를 추모하는 비로 이곳에서 일본군과 싸우다가 17명이나 되는 의병들이 일본군의 총에 맞아 순직했다. 지맥은 임실군 성수면 교통표지판 뒤로 오른다.
♤ 주걱봉(507.5m)
대운치에서 447.2m봉을 지나 오르는 잡목 봉우리로 참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와 독도대선배님 코팅지 산패가 있다. 성수면 태평리 주암 북쪽에 있다. 진안군 성수면 구신리와 경계를 이룬다. 밥주걱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철망을 따라 좌틀로 내려선다.
성수지맥이 분기점에서부터 같이한 진안군과의 경계를 떠나 완전하게 임실군 관내로 들어서는 지점입니다.
♤ 구암고개/ 군계/ 삼면경계면(임실군 성수면 태평리, 진안군 성수면 → 임실군 관촌면)/ 고덕산등산로종합안내도/
지맥의 오른쪽이 진안군 성수면 구신리 → 임실군 관촌면 운수리로 바뀌는 군면계이자 삼리경계면 지점입니다. 마루금 오른쪽(북쪽) 임실군 관촌면 운수리 구암마을과 남쪽 성수면 대운리를 잇는 양회임도 농로이다. 진안군과 임실군의 군계를 따르던 지맥이 진안군을 떠나 임실군 관내로 진입하여 여기부터는 관촌면과 성수면의 면계를 따르는 지점이다. 고개에 남원 양씨 납골묘가 있다. 양회임도가 오른쪽 구암리로 휘는 곳에 저수지가 있고 마을 정자 밑에 수도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 구암고개는 전북 임실군 관촌면 운수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하나인
구암마을에 있는 고개로서 구암은 마을에 거북이를 닮은 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고 그 바위 옆에 정자를 지었다고 한다. 풍수지리학적으로 구암은 팔공산에서 성수산으로 이어진 태평재(대운재) 분기맥이라 하여 동산으로 가고 서향하여 고덕산이 이루었고 그 고덕산을 앞뒤로 성수라 한 것은 반드시 성스럽고 인자한 고을을 만들고 후덕하여 창생제도를 이루고자 물줄기도 남북으로 갈리운다고 한 것에 연유가 있다. 임실 태안은 소쿠리의 안과 같고 물로 싸여 떠 있는 형상이라 하였고 그래서 운수(雲水)라는 지명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 전북 임실군 관촌면(館村面)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최북단에 있으며 완주군 상관면과 진안군 성수면 사이에 남북으로 길쭉하고 잘록하게 끼어 있다. 북부에 있는 면으로 면의 대부분이 산지이며, 면소재지는 관촌면 관촌리 사선1길 13이다. 임실과 전주를 연결하는 길목으로, 임실군 북부 지역의 교통결절점이다. 그래서 전주시 시내버스 중 중 임실군을 유일하게 다니는 노선인 752번이 관촌터미널까지 들어온다. 관촌(館村)은 과거 원이나 역참이 있어 사람들이 머물던 마을이라는 의미로 관촌면의 지명은 조선시대 통영별로의 오원역이 있어 남원에서 전주로 가는 상인들도 오가는 길에 휴식을 취하는 마을이었다. 태조 이성계가 벼슬을 사양하기 위해 들렀던 오원역(장소)이 현재의 관촌에 해당한다. 고덕산(580m)·성미산(428m)·용암산(356m) 등이 솟아 있다. 오원천이 면의 중앙을 흘러 옥정호로 흘러들며, 상월리·신전리에는 신전저수지가 있다. 산간지대에서는 고랭지채소 재배가 활발하다. 면사무소 주변으로는 시설원예단지와 화훼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오원천의 쏘가리가 유명하며 오원천의 남쪽에 있는 사선대는 여름철과 겨울철에 유원지와 스케이트장으로 이용된다. 순천완주고속도로가 면 중심부를 관통하며, 전라선과 남원-전주를 연결하는 국도가 남서부 지역을 지난다.
♤ 전북 임실군 관촌면 운수리(雲水里)
관촌면 운수리와 성수면 삼봉리 경계에 있는 고덕산의 화기를 누그려뜨려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던 선조들의 비보풍수 사상이 깃든 이름이다. 이 산이 풍수지리상으로 불의 기운인 화산(火山)으로 여겨졌다. 이 고덕산의 강한 화기가 인근 지역, 특히 옛 임실현(조선시대 임실의 별호 중 하나가 '운수'였음)에 영향을 미쳐 잦은 화재가 발생하고 재난이 일어난다고 믿어, 수기(水氣)를 늘려야 한다는 비보풍수(裨補風水) 사상으로 조선시대에 이 고을의 별호가 운수가 되었다. 또한 이러한 지리적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읍의 동북쪽 이도리와 갈마리 일대에 고덕산의 화기를 막고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숲정이 방풍림을 조성하였다.
왼쪽으로 약 0.7Km(왕복 30분) 떨어진 삼봉산을 다녀올렸는데 부지불식간에 지나버렸네요. 아까비라~
♤ 삼봉산갈림길/ 면계/ 삼리봉(임실군 관촌면 운수리, 성수면 태평리 → 삼봉리)
고덕산등산로 17번 이정표가 서있다. 안부에서 계단따라 올라온 곳으로 지맥의 왼쪽이 성수면 태평리 → 삼봉리로 바뀌는 삼리봉 지점이다.
♤ 전북 임실군 성수면 삼봉리(三峰里)
삼봉리는 평지가 적고 대부분이 산지로 이루어져 벼농사 이외에 양봉업을 많이 한다. 자연마을로 금동과 삼봉이 있는데 삼봉마을은 양봉을 많이 하는 지역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이 지역에 있는 시도기념물 제 91호인 이석용(李錫庸, 1878∼1914) 생가는 19세기 후반에 지어졌다. 이석용은 1878년에 이곳에서 태어나 1903년까지 살다가 성수면 태평리로 이사했다. 1907년 진안 마이산에서 호남의병장의 동맹단을 결성하고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항일운동을 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14년 대구형무소에서 처형됐다. 멀리 톱날 형상의 금남호남정맥 산줄기가 보인다.
♤ 삼봉산(三峰山, 529.4m, -0.6km)/ 4등삼각점(임실 433/ 1984 재설)
영진 5만지도에 삼봉산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봉우리이다. 반바지운영자님 코팅지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고 4등삼각점이 있다. 오룩스맵에는 여기가 삼봉산(538.6m)이고 4등삼각점이 있는 삼봉산(529.4m)은 조금 더 가야 한다. 남쪽 성수면의 산 아래 마을 이름도 삼봉리다. 잡목봉이라 조망은 없고, 다시 되돌아 나가야 한다.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이라 삼봉산이라 하며 삼봉천을 사이에 두고 고덕산과 동서로 마주하고 있다. 삼봉산은 많은 설화가 전해지고 있는데 난리 때 이 산으로 피난가면 살아남는다 하여 피은골이라 불리기도 했다 한다. 또 이 산 북편에 투구 모양을 한 봉우리가 있는데 옛날에 장군이 투구를 벗어놓은 자리라 하여 투구봉으로 불리고 그 아래 골짜기는 말에게 먹일 풀을 뜯던 곳이라 하여 망태골, 투구봉 위쪽 골짜기에는 말에게 여물을 주던 구수가 있었던 곳이라 하여 구수골, 그리고 건너 편 북쪽의 산 중턱에는 말이 죽어 묻었던 자리라 하여 말무덤(馬墓)으로 불린다. 삼봉산 가운데 봉우리 아래에는 화전을 일구었던 자리가 있다. 절터골이라 불리는 곳으로 주민들에 의하면 봉죽암(峯竹庵)이란 암자가 있었다고 하나 기록에는 보이지 않는다. 삼봉산 주변의 죽전(밭뜸)에는 의병장 이석용의 생가가 있고 원삼봉리 아래의 두리봉(308m)과 검바위에서 옛적에 기우제를 지냈다는 무제날등이 있다.
♤ 491.3m봉
특징없이 지나치는 봉우리로 아무런 표시가 없으나 선답자 시그널이 여러개 펄럭인다. 구신리 염북마을 뒤로 내동산이 바라보인다. 고덕산까지는 약 2km로, 까칠한 암릉구간의 연속으로 몇개의 전위봉을 넘어서야 한다.
되봉이 있고 되재가 있군요. 되다, 힘들다의 고되다의 표현이 아닌가 합니다. 바위에 기대 잠시 물과 행동식을 먹고 출발하려는데 뒤쪽에 산패가 보이는군요.
♤ 되봉(505.6m)
안전목책이 설치되어 있는 로프를 잡고 오른다. 암릉 왼쪽편으로 산너머대장님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
여름에 데크길에서 풍욕을 쐬며 비박하면 바람이 무지 시원할듯 합니다.
♤ 선바위재/ 삼봉리갈림길/ 느지내 평전
고덕산으로 오르는 바위지대를 지나 만나는 왼쪽으로 삼봉리로 내려가는 갈림길이다. 이정표(고덕산정상0.9km/삼봉리1.6km)가 서있다. 위험한 암릉 능선을 우회하는 데크길이 조성되어 있다.
♤ 570.8m봉
고덕산 전위봉이다. 선답자님들 띠지가 자리를 지키고 있고 왼쪽 아래로 삼봉/삼양저수지가 내려다 보인다.
전주 모악산과 천황지맥 만행산 너머 지리산까지 조망이 되네요. 제일 휴게소 삽치까지는 약 6km 거립니다.
♤ 고덕산(高德山, 625.1m)/ 면계(성수면 삼봉리 - 관촌면 운수리)/ 전망데크, 무인산불감시카메라
바위지대 오름을 지나 정상석이 있는 암봉 정상에 오르면 조망이 아주 좋다. 임실군의 북동쪽에 위치하고 성수면 삼봉리 신덕마을 뒷산으로 관촌면과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통천문은 정상 바로 아래 왼쪽에 있다. 1봉 산불감시초소까지 왕복하면 약 1시간 정도 소요된다. 고덕산 정상석 앞쪽 로프가 매어져 있는 암릉을 내려서면 급경사 나무 계단을 만난다. 숙종 원년에 펴낸 『임실군지』의 전신인 『운수지』의 형승조形勝條에 ‘고달산(高達山)이라 개칭하는데 이 산은 임실읍의 동북방에 위치하여 마치 강한 지세를 진압하는 형세를 이루고 있다.’고 기술되어 있다. 풍수지리상 8개의 기암괴석의 봉우리가 연이어져 임실의 안녕을 위해 지세를 알맞게 억제하고 있다 한다. 임진왜란 때는 이 산의 큰 덕으로 백성들의 희생이 적었다고 믿어 이후 고달산(高達山)이 고덕산(高德山)으로 이름이 변한 것으로, 또한 고덕산은 임실 소재지에서 바라볼 때 화산으로서 임실에는 좋은 의미의 산이 아니기에 임실읍 동쪽에 나무를 많이 심어 고덕산이 보이지 않게 하였다는 숲정이가 있고 화산(고덕산)의 액을 막기 위하여 세운 절이 운수사이며 운수사의 미륵불도 고덕산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이 산은 한적한 곳에 떨어져 있지만 동서로 길게 연이어진 8개의 바위 봉우리는 스릴과 조망이 빼어나고 험한 암릉 산행미가 일품인데 1~7개의 봉우리는 관촌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봉인 8번째 봉우리만이 관촌면과 성수면의 경계에 있다. 지금은 계단과 데크가 설치되어 짜릿한 맛이 떨어진다. 남근바위, 산부인과바위, 마당바위, 전망바위, 통천문, 촛대바위 등 특이한 바위가 많다. 8봉의 암릉이 군신처럼 늘어서 있고, 남쪽은 덕봉사와 고덕마을, 건너편엔 삼봉산이 지척이다. 서쪽은 임실읍과 백련산·회문산·나래산이 다가오고, 북쪽은 내동산·덕태산·선각산, 동쪽은 성수지맥과 금남호남정맥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하늘금을 그린다. 관촌, 임실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병풍처럼 둘러쳐진 고덕산 암봉들이 내동산과 함께 눈앞을 가득 채우며 산꾼을 유혹한다. 임실 고덕산 주변에는 특이한 지명이 많음을 알 수 있다. 동쪽 골짜기는 피난가면 살아남는다는 피아골인데 지금은 축사가 들어서 염소들이 진을 치고 있다. 남쪽에는 두리봉과 검바위가 있는데 옛적에 기우제를 지내서 무제날등으로도 불린다. 관촌면 운수리는 선바위, 거북바위가 있는 구암 등 바위와 관련된 지명이 있다. 대운리(垈雲里) 대왕촌은 태조 이성계가 성수산 상이암으로 백일기도 갈 때 구름이 맴돌며 머물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이 마을과 마이산을 넘어 등극하였다는 의미로 마을 앞에 대왕령촌비(大王嶺村碑)를 세웠다고 한다. 바로 옆의 도화동에는 도화낙지명당이 있고, 도인리(道引里)는 이태조가 성수산으로 기도하러 갈 때 길을 내면서 갔다는 뜻이다. 삼봉산을 비롯한 천황지맥 연봉과 호남정맥 영취봉, 월경산, 시리봉, 고남산 줄기 끝에 있는 지리산 만복대까지 파노라마 조망을 감상하기 좋은 최고의 조망대다. 특별한 문화 유적지는 없지만 고덕산 자체가 임실8경 중 합도취적(蛤道吹笛)에 속한다. 즉 석양이 비칠 때 고덕산에 모여 피리를 불며 즐겼다고 한다. 서사면에서 하천이 발원해 구신천에 합류한다. 구신천이 산 북편을 흐르며 이를 경계로 진안군 성수면과 경계한다. 산에 덕봉암이 있다. 『여지도서』(임실)에 "고덕산은 사자산에서 뻗어나온다. 관아의 북쪽 40리에 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임실읍지』, 『호남읍지』 등에는 고덕산을 북쪽 20리에 있는 산이라고 하였다.
처음 만나는 고덕마을 갈림길 삼거리에서 지맥은 좌틀입니다.
♤ 가마봉(459m)갈림길/ 고덕마을갈림길
고덕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능선을 타고 내려온다. 삼봉리 신덕 서북쪽으로 고덕산 남쪽에 있다. 관촌면 운수리와 경계를 이룬다. 가마명당이 있다고 전해온다. 삼봉리 신덕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나고 가마명당이 있다고 전하는 가마봉에 올라선다. 큰두목재는 도인리 홍산터 쪽에서 관촌면 운수리 고덕으로 넘어가는 고개다. 홍산터는 옛날에 홍산군수가 나왔던 곳이라 해서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
지맥이 구암지맥에서 함께한 관촌면과 헤어지고 완전하게 성수면 관내로 들어서는 지점입니다.
♤ 405m봉/ 424.8m봉 갈림봉/ 면계/ 삼리봉(성수면 삼봉리, 관촌면 운수리 → 성수면 도인리)
고덕산에서 약 1시간 거리로 무명암봉을 통과하는 지루한 지점이다. 직전에 오른쪽으로 물을 찾아 내려갔다 오기도 하며, 사면으로 우회하여 왼쪽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왼쪽 아래로 삼양저수지와 삼봉리 마을이 손에 잡힐듯 보이는 405m봉으로 지맥이 구암재에서부터 함께하던 관촌면과의 면계를 떠나 완전하게 성수면 관내로 진입하여 삼봉리와 도인리의 경계를 따른다. 도인저수지 북쪽에 있는 신흥촌에서 운수리 고덕으로 넘어가는 작은두목재가 있다.
♤ 전북 임실군 성수면 도인리(道仁里)
도인리는 성수면에 속한 마을로, 도인리는 태조 이성계가 남원 운봉 황산에서 왜적을 물리치고 개경으로 돌아가던 중에 말치재(馬峙峴)를 넘어 성수산 상이암에서 백일 기도를 올리면 등극한다는 도승 무학대사의 예언에 따라 상이암으로 향하며 이 지역을 지나갔는데, 이처럼 도승(道僧)이 길을 인도하여 지나갔다는 데서 마을 이름이 도인리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마을 이름 중에는 대왕(大王)마을처럼 이성계와 관련된 이름이 많다.
♤ 379.1m/ 곡촌봉/ 3등삼각점(임실 309/ 1984 재설)/ 삼리봉(임실군 성수면 도인리, 삼봉리 → 양수리)
선답자님들 띠지와 독도대선배님 코팅지 산패, 준희선생님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 3등삼각점이 있다. 지맥의 왼쪽이 성수면 삼봉리 → 양수리로 바뀌는 삼리봉이다. 80m쯤 진행하여 Y자 삼거리에서 오른쪽 급경사로 내려서면 능선 안부 오른쪽 가까이에 둠벙이 보인다.
멧돼지목욕탕에서 왼쪽으로 도인리고개로 내려서려다 가시잡목에 길도 보이지 않고 개고생했습니다. 편안하게 조금 더 진행하다 우사가 있는 곳으로 좌틀로 내려섭니다.
♤ 양지리고개/ 도인리고개/ 721번지방도로/ 성수면 도인리 - 양지리
성수면 도인리 신흥촌과 양지리 은행정이를 이어주는 도로이다. 벌목능선을 지나 왼쪽 가시나무 지대로 내려서면 우사가 나오고, 축사 옆의 절개지를 내려서면 포장도로를 만난다. 도로 건너 농로를 따라 왼쪽으로 오름을 이어간다.
♤ 329.2m봉
일대구정 산주대장님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다. 329.2m봉은 오른쪽으로 잠깐 다녀와야 한다.
♤ 후촌고개
도인리 후촌마을과 은행정이를 연결하는 깊게 패인 절개지로, 양회임도로 비탈사면을 타고 내리고, 고개 오른쪽으로 가서 임도를 따라 지맥을 이어간다.
직진하면 알바, 급우틀로 내려서야 하는 알바 주의 지점입니다.
♤ 304.5m봉
선답자님들 띠지와 준희선생님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다. 진주 강씨 묘지에서 왼쪽으로 내려서고, 양지육교를 건너 파란물통을 향하며 마루금에 접속한다.
♤ 양지육교/ 순천-완주고속도로
왼쪽 양지육교로 고속도로를 건너 마루금에 접속해야 하나 오른쪽으로 임실IC교를 넘는 경우도 있다.
♤ 310.8m봉/ 삼리봉(임실군 성수면 도인리, 양지리 → 월평리)
순천-완주간 고속도로 위에 양지육교를 건너 올라서면 만나는 봉우리로 소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매어 있다. 봉우리를 내려서며 지맥이 왼쪽이 성수면 양지리 → 월평리로 바뀐다. 임실공설묘지를 지난다.
10분을 단축하려고 국도를 무단횡단 할 수는 없습니다.
♤ 304.0m봉
공동묘지를 통과하여 올라서는 봉우리로 선답자님들 띠지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커다란 묘지가 있는 304m봉을 넘어 kt성수통신탑으로 내려서면 능선 오른쪽으로 "임실치즈테마파크" 마을이 보인다. 능선을 고수하여 30번 도로 건너 제일휴게소를 바라보며 국도 절개지 상단부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서 왼쪽에 주유소가 보이는 방향으로 울타리를 넘어 17번 국도 4차선도로를 만나고, 맥꾼들이 차가 고속으로 달리는 국도의 중앙분리대를 무단횡단으로 넘어서는 경우가 다반사라 위험하기 그지없다.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오른쪽에 보이는 화물자동차 공영차고지에서 굴다리로 살짝 돌아가는 우회로를 이용해야 한다. 17번 국도를 통과하는 굴다리를 지나면 구철도길 옹벽이 나온다. 옹벽 끝나는 지점에서 왼쪽으로 오르면 철조망 울타리를 넘지 않고도 제일휴게소 밭으로 연결되는 잡목숲길이 있다. '백두대간보호에관한법률'이 있는데 이런 불비점을 보완하여 지맥에까지 동물이동통로나 지하도를 만드는건 맥꾼들의 희망사항이려니....
♤ 임실치즈테마파크
임실군은 치즈의 고향이다. 1958년 임실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해온 벨기에 선교사인 지정환(디디에 엇세르스테번스) 신부가 산양유 치즈를 만든 게 시초로 1969년 카망베르 치즈, 1970년 체다 치즈를 본격 생산하면서 유명세를 치르기 시작했다. 임실읍 금성리에는 임실치즈마을, 성수면 도인리에는 임실치즈테마파크가 있다.
성수지맥이 임실읍을 처음 만나는 지점입니다.
♤ 삽치(颯峙)/ 17번 국도, 30번 국도/ 제일휴게소, 주유소/ 읍면계/ 삼리경계면(임실군 성수면 월평리, 도인리 → 임실읍 갈마리)
현재의 임실역에서 오수로 넘어가는 국도 17호선으로 임실읍 갈마리와 성수면 도인리의 접경 고개로 삽치(颯峙)란 바람이 센 고개라는 말이다. 이곳은 조선시대 통영별로(統營別路)라고 부르던 큰 고갯길로 전주에서 경상도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으며 또한 삼례에서 전주를 경유 관촌과 임실 오수 남원과 운봉 진주 사천 통영까지 이어지는 통영별로다. 현재의 임실역을 지나 삽치를 넘어 신촌에 이르고 다시 성수면 구곡마을을 경유하여 한치 재를 넘으면 지사면 관기리가 나온다. 다시 장수군 산서와 번암을 거쳐 지지리 골짝을 지나 백운산 자락으로 넘으면 경남 함양 땅으로 당하게 되니 이 길이 남 중부를 이어준다. 성수에서 임실이나 전주로 가기 위하여 고개를 올라올 때 고개 정상에 닿으면 서북쪽에서 세찬 바람이 불어오기에 이곳을 삽치라고 한다. 주변에는 과거 도둑 떼들이 성행하던 때 도둑들의 은신처인 도적골이 있는데 이곳에 임실군 공동묘지를 조성하여 어려운 사람들 이 묘를 쓰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맥의 오른쪽이 임실군 성수면 도인리 → 임실읍 갈마리로 바뀌는 지점이다. 뒷산의 형국이 말과 같아서 갈마가 물을 만나듯 마을에 복락이 가득하다 하여 갈마리(渴馬里) 라고 하였다. 오른쪽으로 어서오십시요 성수면입니다 표석으로 내려서면 굴다리 위로 지맥 접속점이 있다. 지맥이 여기부터 임실읍을 만나 임실읍과 성수면의 경계를 따라 말치로 향한다. 오른쪽 임실변전소 너머에 임실공용터미널로 나가는 임순여객 버스종점 차고지를 찾아 탈출할 수 있는데 임실나들목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임순여객차고지로 가야한다.
♤ 전북 임실군 임실읍(任實邑)
남원부의 임내 속현 관련을 보면, 조선 건국 후 남원부의 임내 속현이던 구고현, 임실군 청웅면·운암면·강진면·덕치면 지역)이 1394년(태조 3) 임실현의 임내로 이속되어 임실군의 영현이 되었다. 조선조에서는 일도면이라 칭하여 상성, 중성, 기동, 중동, 이도, 신기, 향교, 식산, 약암, 용은, 두곡, 남성, 오정, 무등, 신촌 등 15개 마을로 형성되었으며,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신안, 이인, 대곡, 정월면을 통합하여 임실면이라 칭하였고 성가, 이도, 오종, 두곡, 갈마, 감성, 대곡, 정월, 이인, 두만, 장재, 신안, 현곡리 등 13개리로 나누었으며, 1979년 5월 1일 읍으로 승격하였으며, 1990년 4월 1일 관촌면의 금성리와 1994년 12월 12일 삼계면 신정, 망전리를 편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오른쪽 아래로 탕마지저수지가 내려다보입니다.
♤ 275.9m봉
소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매어 있다. 구 전라선 폐 기찻길에서 흐릿한 길을 따라 오른 275.9m봉을 내려서면 송전탑 임도 안부를 지나 잡목으로 직상하기 어려워 마네킹이 여러개 서있는 사유지 농막 뒤로 돌아서 무덤이 있는 봉우리로 올라선다. 묘지기 휴식공간인지 창고 안에 들어가지 말라고 써놓았다. 묘지 주변으로 마네킹을 세워두었다.
♤ 332.5m봉
산너머대장님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 두둑한 두덩이 있는 움푹 파인 함몰지가 있다. 왼쪽 봉우리로 간다. 성균 김공지묘 묘비를 지난다. 성균관 좌찬성이랄지 생원이랄지 벼슬 이름을 적어야 하는데 후손이 잘라 먹었다.
구치, 감성고개, 말치는 임실읍내와 도로로 연결된 가장 가까운 고개입니다.
♤ 구치고개(275m)/ 안부
반바지운영자님 코팅지 산패가 나무에 매어 있다. 임실읍 이도리 구치마을에서 성수면 월평리 원댕이골로 넘나드는 양회임도가 지난다. 등로 오른쪽에 견사가 있다. 임실읍 갈마리에 구치골이 내려다보인다.
♤ 358m봉/ 읍면계/ 삼리봉(임실군 성수면 월평리, 임실읍 갈마리 → 감성리)
구치를 지나 꾸준하게 올라선다. 지맥의 오른쪽이 임실읍 갈마리에서 감성리로 바뀌는 읍면계이자 삼리봉 지점이다.
♤ 용요산(龍繞山, 491.4m)/ 사요산(蛇繞山)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용요산은 사요산이라고도 하는데, 현의 북쪽 5리에 있는 진산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읍치 뒤편의 용요산이 임실의 진산이다. 용의 몸통처럼 꿈틀대는 모양새를 산 이름에 반영하여 '읍성의 진산'이라는 의미까지 담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대동여지도』에는 지맥이 섬진강과 오수천의 합수점으로 표시되지 않고 용요산 방향으로 묘사되어 있다. 성수산에서 시작된 산줄기가 고달과 두만으로 이어지고, U자형으로 굽이치면서 말단에서 우뚝 선 것이 바로 용요산으로 그려져 있다. 이 산은 '읍성의 주산'과 다름이 없는 위치에 있다. 뱀보다 용이 격상(格上)된 위치에 있으므로, 본래의 뱀이 용으로 바뀌게 되었다. 현대지형도에서는 이 산을 용요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음운에서 같더라도 의미에서 다르다. 요(腰)는 허리를 뜻하므로 구부러진 모습에서 비슷하지만, 몸 전체가 꿈틀대는 용의 모습과 다르기 때문이다. 산의 산록에는 성가(城街)와 현곡(玄谷)이란 마을이 있다. 전자는 읍성의 안전을 위하여 '축성된 유적지'와 관계되고, 후자는 산 아래에 펼쳐진 '검은 골짜기'와 관련된다.
사람 사는 동네라고 오른쪽 아래에서 개가 짖습니다. 불빛도 높이 올라와 있어요.
♤ 감성고개/ 감성마을 임도
양회임도가 지나는 감성고개 오른쪽으로 감성마을 임도가 보이고 멀리 가야할 매봉과 노산봉(魯山峰, 540m)이 보인다. 등로 왼쪽으로 순천-완주고속도로 성수교와 그 뒤로 고덕산, 내동산, 삼봉산이 보인다.
♤ 전북 임실군 임실읍 감성리(甘城里)
임실군 임실읍 감성리 감성마을은 조선말 창원 황씨들이 이곳으로 피난을 와서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였는데, 산이 높고 골이 깊어서 피난처로는 좋았을지언정 마을이 산 중턱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물을 얻기가 매우 어려운 형편이었다. 병환을 앓고 있는 시아버지를 위해 황씨댁 며느리 한명이 매일 약초를 캐어 시아버지를 봉양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백호산에 올라가 약초를 찾던 중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큰 바위 아래로 피신을 하였다. 그때 건너편 개울에서 잉어 한마리가 펄쩍펄쩍 뛰어 며느리는 잉어를 붙잡아 가슴에 안고 집에 돌아왔다. 그 잉어를 가마솥에다 장작불로 3일을 고아서 시아버지에게 드렸더니 시아버지의 병이 나았는데 그때 나이가 61세였다고 한다. 병이 나은 시아버지 황노인은 나이답지 않은 힘이 솟아나기 시작하여 어떤 일이든지 힘들이지 않고 일을 했는데 하루는 산신령이 꿈에 나타나 어느 장소에 우물을 파라고 했다고 한다. 황노인은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산신령이 가르쳐준 장소에 우물을 파기 시작했는데, 바위산이라 파기도 어려웠지만 아무리 파도 물이 나오지 않아 실망을 했으나 밤낮으로 파다보니 물이 나오기 시작하여 쉼 없이 솟아나는 우물을 완성했다. 마을사람들이 양바우라고 부르는 이 바위틈에서 나오는 우물은 산신령이 가져다준 샘물이라 하여 산약샘이라 불렀는데, 여름에는 물이 차가워서 삼복더위에도 그냥 목욕을 못할 정도였고, 씻기만 해도 피부병이 나았다고 한다. 또한 물이 감초처럼 달다 하여 감천(甘泉)이라 했고, 지명도 감천리로 불리다가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 때 지금의 감성리로 고쳐졌다.
♤ 366.7m봉/ 읍면계/ 삼리봉(임실읍 감성리, 성수면 월평리 → 오류리)
일대구정 산주대장님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 전라선 임실터널 위 양회임도 안부를 지나 오른 봉우리로 지맥의 왼쪽이 성수면 월평리 → 오류리로 바뀌는 삼리봉 지점이다. 지맥은 급좌틀로 내려선다.
♤ 383.1m봉
산너머대장님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다. 특징없는 383.1m봉을 왼쪽 지름길로 내려서면 마루금 오른쪽에 임실 읍내 아파트가 보인다.
♤ 깃대봉(429.1m)/ 3등삼각점(임실 310/ 2002 복구)/ 읍면계/ 삼리봉(성수면 오류리, 임실읍 감성리 → 대곡리)
선너머대장님 산패, 독도대선배님 코팅지 산패와 3등삼각점이 있다. 안부에서 가파르게 오르는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이다. 지맥의 왼쪽이 감성리 → 대곡리로 바뀌는 읍면계이자 삼리봉 지점이다. 대곡리(大谷里)는 골짜기가 넓다하여 대곡이라 불렀다.
♤ 갈미봉(500.5m)/ 임실군 임실읍 대곡리 - 정월리
말치로 향하며 등로 오른쪽으로 전주에서 이전한 향토 35사단 충경신교대 뒤로 노산봉에서 분기한 임실읍 대곡리와 정월리 경계에 있는 갈미봉 능선이 보인다. 왼쪽으론 오수 봉천리로 가는 도로가 보이고, 건너편에 호남정맥 옥녀봉(玉女峰, 578m)도 보인다.
말치부터 봉화산까지 약 3Km(1시간)를 군부대 철조망을 따르는데 사계청소를 해놓아 비교적 진행하기가 수월합니다.
♤ 말치(斗峙, 285m)/ 말궁구리재/ 삼읍면리경계면(임실군 임실읍 대곡리, 성수면 오류리 → 오수면 봉천리)
반바지님 코팅지 산패가 이정표에 매어 있다. 17번 도로에서 임실읍과 성수면의 경계를 따르던 지맥의 왼쪽이 성수면에서 오수면으로 바뀌는 지점으로 마재는 통영별로가 지나는 역사가 깊은 옛길이다. 임실읍과 오수면을 연결하는 고개로 『대동여지도』에는 마치(馬峙)로 기록돼 있지만 현대 지형도에는 말치(斗峙)로 표기하고 있다. 말재의 고갯마루에는 다섯 기의 마애선정비가 새겨진 바위가 있는데, 이 마애선정비 바위가 고갯마루의 이정표였을 것이라고 하며, 고개 아래에는 평당원이 있어 여행하는 관리와 나그네에게 숙식을 제공 하였다고 한다. 임실에서 남원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 지금은 오른쪽 17번 국도를 이용하지만, 조선시대는 물론 성수면을 통하는 4차선 국도가 준공되기 전까지는 임실에서 오수로 가는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유일한 큰 길이었다. 한편 성수면 오류리 대판마을에서 임실읍 대곡리를 거쳐 임실읍으로 통하는 육로로도 사용하였다. 임실읍 대곡리 막음개마을에서 오수면 봉천리로 넘어가는 양회임도가 지나고 양쪽으로 축사, 이동통신탑, 물탱크가 있다. 군부대 울타리를 따라서 오르는데 가시나무가 많아 길이 좋지않다. 약 3km를 군부대 울타리를 따라 진행한다.
♤ 통영별로(統營別路)/ 통영로
통영로는 조선시대에 한양에서 한강을 지나 충청도 및 전라도를 경유하여 경상도 서부로 이어지던 간선도로로 통영별로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영남지방과 호남지방의 문물이 통영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통로이기도 했다. 통영로의 종점이라 할 수 있는 통영은 임진왜란 이후 1604년부터 1896년까지 경상도·전라도·충청도의 수군을 관할하던 삼도수군통제영이 있던 수군의 본거지였다. 과거에는 통제사가 새로 부임하거나 떠날 때 한양과 통제영을 오가던 길이라 하여 통제사길로 불리기도 했다. 전라도와 경상도 사람들은 이 옛길을 통해 서로 어울리고 함께 생활을 했다. 통영로는 조선시대에 수도인 한양에서 한강을 지나 충청도 및 전라도를 경유하여 경상도 서부로 이어지던 간선도로로서, 통영대로라 불리기도 하는 옛길이다. 18세기에는 통영로라는 이름이 없었으나 19세기 들어 통영로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처음에는 한반도를 방사상으로 연결하던 도로 가운데 제6로에 해당했고 9대로 체제에서는 통영별로라는 이름을 가졌다가, 이후 10대로 체제로 바뀌면서 제10로 통영로라는 이름으로 다시 변경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통영별로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 옛길은 한양에서 한강 건너 동작진을 지나 과천-사근천-수원-청호역-진위-소사점-아주교-성환역-직산-천안-삼거리-차령-모노원-공주-이성-여산-삼례역-전주-조원역-오수역-남원-여원치-운봉-팔랑치-함양-진주-사천-고성을 거쳐 통영까지 이어지던 도로이다. 지금의 행정구역 이름으로는 서울-수원-평택-천안-공주-논산-완주-전주-임실-남원-함양-산청-진주-사천-고성-통영이 포함된다. 통영로에는 경기도 6개 지방, 충청도 26개 지방, 전라도 31개 지방, 경상도 9개 지방이 포함되었으며, 그 가운데 대로에 14개, 지선에 58개가 자리했다.『여지고』의 기록을 토대로 한 총 거리는 986리에 달했다. 그러나 제주로의 삼례역에서부터 통영까지의 구간을 통영별로로 인식하기도 한다. 영남지방과 호남지방의 문물이 통영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통로이기도 했다. 지리산지를 통과하는 남원에서 함양 구간은 운봉고원을 지난다. 이 구간의 옛 통영로는 대체로 국도 24호선과 일치한다. 험준한 산지 사이의 골짜기를 따라 옛길이 통과했는데, 지금의 지리산 둘레길 가운데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서 남원시 인월면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백두대간을 바라보며 운봉고원을 걷는 옛 통영로 길이다. 특히 이 구간은 전라북도와 경상남도로 행정구역이 다르지만, 선조들은 등구재를 넘어 전라도와 경상도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결혼하는 일이 많았고 통혼권이 형성되었다. 왜냐하면 운봉고원에서 흘러 내려가는 물줄기가 함양으로 흐르면서 그들은 같은 생활권과 문화권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인월 5일장은 우리나라 최대의 약초시장이었으며 섬진강변의 화개장터와 함께 전라도 사람과 경상도 사람들이 어우러지던 만남의 장이었다.
♤ 전북 임실군 오수면(獒樹面)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최남단에 위치한 중산간지대로 전형적인 농업면이며, 남원시 사매면과 만나는 곳이다. 지리적 접근성이 용이하여 상업 중심지로 자리매김 해온 곳이다. 고려시대에 남원부 둔남방이라 불리어오다가 조선시대는 둔덕방과 남면으로 분리되어 있었는데 그 중 남면은 임실군에 속하고 둔덕방은 48방중 1방이라 하였다. 그 후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둔덕방과 남면을 통합하고 여기에 남원군 덕과면의 행정구역이었던 오수리와 대명리 일부를 편입하고 면의 이름을 둔덕방과 남면의 첫 자를 따서 둔남면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다시 1983년 2월 15일 남원군 덕과면 금암리를 편입하여 14개 법정리 31개 행정리로 운영, 1991년 행정리 조정으로 14개 법정리 32개 행정리, 2019년 행정리 재조정으로 14개 법정리 33개 행정리로 면의 행정을 운영하여 왔다. 그간 면민의 숙원이었던 행정구역 명칭변경이 내무부에 의해 승인되어 1992년 8월 10일 오수면으로 바뀌게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바 오수면이라 바뀌게 된 동기는 이 고장은 원래 충심있는 개의 이야기로 유명한 곳으로서 이곳 지명을 따라 큰개 오(獒)자, 나무수(樹)자 오수면(獒樹面)이라 불리우게 되었다.
두개의 산불감시초소와 지면에 설치된 군초소가 있는 봉우리를 지나 461.4m 공터봉으로 오릅니다.
♤ 임실 두치(斗峙)봉수대(461.4m)/ 읍면계(임실읍 - 오수면)
준희선생님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다. 말치에서 철망을 따라 급경사로 올라 산불감시초소 두개가 있는 곳을 지난 지점으로 정상에 돌무데기가 있다.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전주문화유산연구원에서 봉화산 봉수대를 발굴한 결과 임실군에서 처음으로 가야시대의 토축봉수대를 확인하였다. 2018년과 2019년 시굴조사를 통해 봉수의 흔적과 봉수를 운영하던 생활터를 찾았다. 봉화산의 정상에는 평평하게 땅이 조성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3m정도의 원형으로 된 토축이 남아 있다. 토축의 규모는 너비 약 2.5m, 높이는 1m정도이다. 1942년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에 의해 작성된 『조선보물고적자료(朝鮮寶物古蹟資料)』에는 봉화산 봉수대를 “둘레 144m의 토축으로 일명 두치(斗峙)봉수대라 한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발굴한 결과 암반층을 깎아 평탄하게 조성한 후 나무기둥을 세웠던 여러 개의 구멍을 발견하였으며, 봉수에 불을 피웠던 흔적도 발견되었다. 기둥구멍은 직경 25~45cm, 깊이 10~20cm 내외이다. 생토면 위로 여러 겹의 목탄과 소토층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기둥구멍 주변에서는 삼국시대 가야계의 유적인 회청색 경질토기 뚜껑이 나왔고, 생활토기인 굽다리접시, 목 짧은 항아리 등도 출토되었다. 임실 두치 봉수 표지목이 있다. 좌틀로 철망따라 계속 간다.
♤ 질마재
묘지가 있고, 과거 오른쪽 임실 대곡리에서 왼쪽 오수면 봉천리로 넘나드는 고갯길이었다.
♤ 461.4m봉/ 봉화산
선답자님들 띠지와 함께 준희선생님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다. 오룩스에는 여기가 봉화산이라고 나온다. 봉화산에 봉화터 흔적은 찾아 볼 수 없다.
♤ 봉화산(烽火山, 473.0m)
선답자님들 띠지와 준희선생님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다. 아무런 특징이 없고 군부대 철망을 따라 계속 간다. 전주에서 35사단이 이전하면서 울타리 공사를 하며 봉화터를 군홧발로 완전히 뭉개버린건 아닐까. 임실군 오수면 봉천리와 임실읍 대곡리 막음재 동쪽에 봉화산이 위치해 있다. 주변에 노산(魯山), 되재, 응봉 등이 있다. 군 철책 주변을 따라 길이 나 있으며, 이 봉화산의 정상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운영되었다. 봉화산 정상은 비교적 평평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봉수를 운영하는데 안성맞춤이라고 할 수 있다. 봉화산 봉수의 길은 중요한 교통로였는데, 임실 봉화산 남쪽으로는 임실군 오수면에서 청용면을 거쳐 정읍시 칠보면으로 이어지는 되재와 매봉 봉수가 있었다. 이 산은 되재와 응봉으로 이어지는 삼국시대 가야계 사람들이 이동하던 중요 통로였다. 바로 이곳에 가야시대의 토축봉수가 있었다. 2018년과 2019년에 걸쳐 발굴한 결과 봉수의 흔적이 고스란히 나왔다. 나무기둥을 꽂았던 흔적이 선명했으며, 봉수를 운영하던 생활터에서는 가야계 사람들이 쓰던 생활 토기가 발견되었다. 이 길은 삼국시대 섬진강 상류지역의 교통 중심지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 임실에 있는 12개의 봉수
임실에는 현재까지 조사된 자료에 의하면 12개 정도의 봉수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신덕면 조월리의 경각산 봉수(689.3m), 삼길리의 노적봉 봉수(405.3m), 운암면 학암리 학산마을의 학암리 봉수(395.1m), 임실읍 신안리의 백이산 봉수(530.7m), 현곡리의 용요산 봉수(489.9m), 두만리의 옥녀봉 봉수(369.2m), 이인리의 무제봉 봉수(558.1m), 망전리의 매봉 봉수(608.5m), 오수면 대곡리의 봉화산 봉수(467m), 성수면 봉강리의 덕재산 봉수(487.1m), 지사면 관기리 한골마을의 매봉 봉수(430.1m), 성수면 왕방리의 영태산 봉수(666.3m)이다. 이 가운데 봉화산 봉수는 서북쪽으로 옥녀봉 봉수, 남쪽으로 무제봉 봉수와 서쪽으로 덕재산 봉수와 연결된다.
봉화산에서 조금 더 진행하여 군부대 철책과 헤어지고 왼쪽으로 들어선 지점입니다. 철책을 따라서 마냥 가면 갈미봉으로 알바합니다.
♤ 노산봉(魯山峰, 545.8m)/ 갈미봉 분기점/ 사리봉(임실읍 대곡리 → 정월리, 오수면 봉천리 → 오암리)
준희선생님 산패와 백두사랑산악회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다. 전북 임실군 오수면 봉천리와 임실읍의 경계에 있는 성수지맥의 산줄기로 노산(魯山, 540m), 응봉(609m), 봉화산(烽火山, 467.6m) 등과 나란히 병풍처럼 어우러져 있다. 노산의 주변에는 선비가 거주하는 마을이 존재했다는 연역적 풀이가 가능하다. 철책이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지점으로 부대 철망과 헤어져 왼쪽으로 들어선 지점이다. 오룩스지도에는 무명봉인데 영진 5만지도에는 노산봉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오른쪽으로는 임실읍 대곡리와 정월리의 경계를 따라 갈미봉(501m)으로 가는 능선이 빠져 나간다.
♤ 노산(魯山, 540m)
전북 임실군 삼계면 오지리와 임실읍 망전리, 오수면 주천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노산은 공자의 산이다. 중국 춘추시대의 사상가이며 유교의 개조인 공자(BC 552~479)는 노(魯)나라 사람이다. 단양군 적성면의 맹자산(577m)과 정선군 북면의 노추산(1335m)도 공자와 맹자에서 연유한 산이름이다. 수도지맥 고령신씨 시조묘를 지나는 곳에도 노산이 있다. 이 산은 호남정맥의 팔공산에서 서쪽으로 갈라진 성수지맥의 산줄기로 노산 옆으로 응봉(鷹峰, 609.8m)과 봉화산(473.0m)이 병풍처럼 어우러져 있다.
♤ 되재(465m)/ 읍면리계(임실읍 정월리 - 오수면 오암리)
반바지운영자님 코팅지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고 세종 홀산아선배님 성수지맥 되재 산패가 타이랩으로 나무에 매달려 있다. 임실읍 정월리 음지마을에서 오수면 오암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묵은 임도가 지나고 커다란 느티나무가 고개를 지키고 있다. 좌우로 봉우리가 있는데 그냥 임도를 따라간다. 되재부터는 제법 길이 좋다.
여기부터 지맥이 오수면과 헤어지고 청웅면과 만나는 무제봉((558.1m)까지 임실읍 관내를 횡으로 통과합니다.
♤ 응봉(鷹峯, 609.8m)/ 매봉/ 산불감시카메라 철탑/ 1등삼각점(임실 11/ 재설)/ 노산(魯山, 539.7m) 갈림봉/ 읍면계/ 삼리봉(임실읍 대곡리, 오수면 오암리, 임실읍 망전리)
산불시설물 카메라철탑 연두색 펜스에 선답자 띠지, 백두사랑산악회 산패, 널판지 산패가 매어 있다. 임실읍 정월리, 망전리와 오수면 오암리, 주천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매봉이라고도 한다. 귀한 1등삼각점이 있다. 우틀로 지난다. 산불경보시설물이 자리하고 봉수대터 답게 원래 조망은 좋을텐데 없다. 노산(魯山), 노산봉, 봉화산 등과 나란히 병풍처럼 어우러져 있다. 지맥은 오른쪽 임실읍 관내 망전리로 내려서고, 오수면과 경계를 따라 남쪽으로 벗어나 있는 노산에 다녀올 수도 있는데 등로는 좋으나 왕복 약 1시간이 소요된다.
찾아가기 힘드네요. 빽빽한 가시잡목 구간입니다.
♤ 583.5m봉/ 삼리봉(임실군 임실읍 정월리, 망전리 → 이인리)
산너머대장님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다. 지맥의 왼쪽이 임실읍 망전리 → 이인리로 바뀌는 삼리봉 지점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노전, 망정을 합쳐 이인리(里仁里)라 하였다.
왼쪽에도 붕우리가 있습니다.
♤ 563.1m봉
되재와 응봉 사이에 오른쪽으로 약간 떨어져 있는 봉우리이다. 선답자 띠지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참나무에 산패는 살아 남아 있습니다.
♤ 564.7m봉
산너머대장님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 지맥은 급좌틀이다. 잡목 구간이 계속되고 벌목해 쌓아놓은 나무들도 밟고 넘어서야 한다.
소나무에 산패는 살아 남아 있습니다.
♤ 528.5m봉
산너머대장님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다. 벌목구간이 끝난 지점이다.
지맥이 번화치로 내려서면서 정월리와 경계를 떠나 이인리 관내로 들어서네요. 죽계에서 임실터미널가는 농어촌버스 막차 시간은 19:35분입니다.
♤ 번화치(繁花峙, 415m)/ 745번지방도로/ 임삼로/ 2차선도로
반바지운영자님 코팅지 산패가 단풍나무에 매어 있다. 임실읍 정월리에서 삼계, 동계로 넘어가는 745번 지방도가 지나는 고개로 오른쪽 아래에 독산마을 버스정류장이 있으며 1일 4회 버스가 운행한다. 임실읍내로 나가는 독산마을 오른쪽 아래로 번화골/번아골/번회골 골짜기가 있다. 이름 그대로 해석하면 화란춘성 만화방창, 꽃이 만개하는 고개이다. 건너편 전봇대가 있는 절개지 옹벽으로 512.9m봉을 향하여 약 15분 경사로를 올라선다.
♤ 전북 임실군 임실읍 이인리 독산마을
독산마을은 임실군에서 가장 높은 지역(해발370~400m)에 위치하고 있다. 행정구역상 임실읍 이인리 노전마을에 속한 자연마을 중 하나로 한때 독점(獨店)이라 불리웠다. 독산마을 옛길 들머리는 죽계저수지 상류지점 신정리 가량동에서 시작하여 독점교를 지나 배재삼거리를 거쳐 용수골과 해돋이골 계곡을 따라가는 농로 산길인데 이미 오래전 통행이 끊겨 수풀로 뒤덮인 묵은길을 따라 힘들게 걸어야 한다. 되돌아 나오는 길은 성수지맥 7~8부 능선에 최근에 개설한 임도를 따라 오다 임도가 끊긴 곳에서 산길을 따라 용수골로 내려와 죽계저수지 상류지점 들머리로 돌아오면 된다.
조망이 두루 좋은데 자꾸 부모님이 계신 임실호국원 백련산(754m)에 시선이 꽃히네요. 지맥은 원통산까지 아주 오랜동안 오른쪽으로 백련산과 함께 합니다.
♤ 490.4m봉/ 4등삼각점(임실 445/ 1984 복구)
참나무에 높이 준희선생님 산패가 매어 있다. 번화치에서 묘지길을 따라 올라선 예안 김씨 문중 묘역에서 컨테이너 오른쪽 조림지대로 내려선 평평한 능선봉이다. 산패는 없고 선답자님들 띠지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번화치에서 올라서서 처음 만나는 조망이 좋은 봉우리로 오른쪽 철조망 울타리 안쪽으로 4등삼각점이 있다.
무제봉을 보며 양회임도를 내려가는데 지맥이 독산마을을 빙 돌아서 다시 옆으로 내려갑니다. 양회임도에서 직진하여 능선으로 올랐다가 독산고개로 내려서는데 잡목의 능선을 오르지 않고 임도를 따라 무명봉 하나를 우회하여 독산고개로 향하기도 합니다.
♤ 독산고개/ 양회임도
임실읍 이인리 독산마을의 양회임도가 지나는 독산고개에 닿고 임도 오른쪽 산길로 지맥을 따른다. 이인리는 성수지맥의 산자락에 위치하여 비교적 고도가 높고 산지가 많은 곳으로 남쪽에는 봉화산, 노산봉 등의 산지가 이어져 있고 하천의 시작점이 여럿 있다. 자연마을로는 망정마을이 있으며, 이는 임진왜란 당시 이 곳으로 피난했던 마을 사람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달래고자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능선에 올라 오른쪽으로 약 20m 다녀옵니다. 아무것도 없어 띠지 하나 걸어두었구요.
♤ 515m봉/ 삼리봉(임실군 임실읍 이인리, 정월리 → 두만리)
무제봉 전위봉으로 지맥이 좌틀하며, 지맥의 오른쪽이 임실읍 정월리 → 두만리로 바뀌는 삼리봉 지점이다. 두만리(斗滿里)는 이 마을 뒷산에 다섯 봉오리가 있는데 꽃봉오리 같이 아름답고, 비옥한 땅을 만들어 살게 되니 생활이 유족하여 외지에서 곡식을 사러오는 사람들에게 말 가득히 담아준 것이 알려지면서 두만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성수지맥은 여기서 임실군 청웅면과 만나 새목재를 지나 올라선 삼면봉(541m)까지 함께 합니다.
♤ 무제봉(558.1m)/ 운제봉/ 읍면계/ 삼리봉(임실읍 이인리, 두만리 → 청웅면 청계리)
안전 밧줄을 따라 급경사를 가파르게 올라 청웅면과 경계에 있는 무제봉에 오른다. 백두사랑 산패와 독도대선배님 산패, 선답자 띠지가 나무에 매어 있다. 임실군 청웅면 청계리에 있는 산으로 운제봉이라고도 하며 가물때 무제(기우제)를 지낸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두만산(斗滿山, 524.5m)까지는 0.6km(왕복 약 20분) 거리이고, 청계리(淸溪里)는 두만산에서 발원한 맑고 깨끗한 시냇물이 흐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오른쪽(서북쪽)으로 칠백리고지로 향하는 두만산(斗滿山, 524.5m)-모래재-백이산(530.4m)으로 가는 갈림봉이다. 지맥의 오른쪽이 임실읍 두만리 → 청웅면 청계리로 바뀌며 조망은 없다. 지맥은 무제봉에서 좌틀로 잡목능선으로 내려서며 청웅면 청계에서 임실읍 이인리 독산으로 넘나드는 독산고개를 지나 임실읍과 청웅면의 경계를 따라 지초봉으로 향한다.
♤ 전북 임실군 청웅면(靑雄面)
동쪽은 임실읍, 서쪽은 강진면, 남쪽은 덕치면·삼계면, 북쪽은 운암면과 접한다. 해발고도 400∼600m의 성수지맥의 고원 중 고도 200m 내외의 작은 분지가 섬진강 상류의 지류인 갈담천 주변에 발달하여 면의 중심을 이룬다. 임실 청웅현과 구고현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임실 지역의 행정구역으로, 각각 거사물현과 돌평현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청웅현은 삼국시대 백제의 거사물현에서 유래했으며, 통일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청웅현’으로 개칭, 청웅현은 신라의 10정(停) 중 하나로 설치되어 군사적·행정적 중심지 역할을 했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거령현으로 바뀌었다. 구고현은 삼국시대 돌평현에서 유래해, 역시 경덕왕 때 구고현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순화군의 영현이 되었다. 남원부의 임내 속현 관련을 보면, 조선 건국 후 남원부의 임내 속현이던 구고현, 임실군 청웅면·운암면·강진면·덕치면 지역)이 1394년(태조 3) 임실현의 임내로 이속되어 임실군의 영현이 되었다. 임실 청웅현과 구고현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임실 지역의 행정·군사적 중심지로 기능하며, 시대별로 명칭과 소속이 변화해 왔다. 주곡 농업 외에 산나물과 은어 등이 토산물이다. 수리시설이 양호하여 주로 벼농사를 짓고 있으나, 고추, 복분자 등도 많이 재배되고 있으며, 청웅시설원예단지에서 생산되는 토마토, 가지 등이 특산물로 인기가 높다. 강진면 갈담과 임실 사이에 국도 30호선 청웅우회도로가 2014년 준공되었다. 구고리, 두복리를 거쳐 백련산으로 오를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종합사격장이 있다.
무제봉에서 두만산~칠백리고지~백련산으로 산줄기가 분기하는 곳입니다.
♤ 두만산(斗满山, 524.5m)
전북 임실읍 두만리와 청웅면 옥전리, 청계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두만’은 화전민이 들어와 산을 일구어 비옥하게 만들었으며 외지에서 곡식을 사러오는 사람들에게 말(斗) 가득히(滿) 담아준 것이 알려지면서 지명이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서북쪽으로는 백이산이 높이 솟아 올라 있고 동쪽으로는 용요산이 길게, 남쪽으로는 무제봉이 이어지며 성수지맥을 타고 내려온 용요단맥에 속하고 성수산, 두만산, 백련산, 회문산 등 우뚝 솟은 산골짜기 사이를 흐르는 섬진강 상류를 이루고 있다, 두만산에서 발원한 임실천은 섬진강의 지천으로 임실읍내를 관통한 후, 신평면에서 섬진강과 합류한다.
♤ 칠백리고지/ 임실군 운암면 청운리
칠백리고지는 백련산의 북쪽에 위치해 있는 산이다. 이 산은 해발이 706m인데도 칠백리고지로 불리게 된 동기는 아마도 한국전쟁 때 빨치산을 토벌하며 불렀던 이름일 수도 있다. 임진왜란 때에도 갈氏들이 칠백리고지 주변의 옛터에 살다가 화를 당한 뒤 창녕 조氏들이 현재의 터로 옮겨왔다는 기록이 보인다. 칠백리고지는 금남호남정맥 팔공산에서 성수지맥이 뻗어오는 사거리의 중요한 길목이다. 동쪽은 성수지맥의 백이산(530.4m), 남쪽은 백련산(754m), 북쪽은 모시울산과 나래산, 서쪽은 필봉산(580m)이 나뉘는 길목이기 때문이다. 백운산(갈미봉)에서 성수지맥은 북서쪽으로 가며 임실 성수산과 고덕산, 삽치(17번국도), 깃대봉, 말치, 봉화산, 매봉(응봉)에 닿으면 남쪽으로 노산줄기를 나뉜다. 무제봉에서 두만산, 깃대봉, 모래재(30번국도), 백이산을 지나 칠백리고지를 일으킨다. 그리고 청웅의 용구산과 매봉, 운암의 모시울산, 나래산, 강진의 백련산과 필봉산 등으로 세력을 펼친다. 칠백리고지의 물줄기는 북쪽은 섬진강 상류인 옥정호에 합수되고 남쪽은 이윤천을 통해서 섬진강에 합수된다. 동쪽은 백이천이 갈담천을 통하여 섬진강 상류에 합수되어 전남 광양의 남해로 향한다. 행정구역은 임실군 청웅면 두복리, 강진면 학석리, 운암면 선거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매봉에서 서쪽으로 번화치를 지나 무제봉에서 남쪽으로 원통산 줄기를 나뉜다.
♤ 476.9m봉/ 읍면계/ 삼리봉(임실읍 이인리, 청웅면 청계리 → 남산리)
산너머대장님 산패가 나무가지에 매달려 있다. 지맥의 오른쪽이 임실군 청웅면 청계리 → 남산리로 바뀌는 읍면계이자 삼리봉 지점이다.
♤ 485m봉/ 읍면계/ 삼리봉(임실읍 이인리, 청웅면 남산리 → 옥석리)
벌목지를 지나 오른 봉우리로 제법 굵은 소나무 아래 크다란 장흥고씨공인묘가 있다. 지맥의 오른쪽이 임실군 청웅면 남산리 → 옥석리로 바뀌는 읍면계이자 삼리봉 지점이다.
오른쪽으로 청웅면 백련산이 계속 보이고, 진행하면서 회문산 그리고 지리산연봉까지 조망됩니다.
♤ 배재(405m)/ 배치/ 읍면리계(임실읍 이인리 - 청웅면 옥석리)
반바지운영자님 코팅지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 오른쪽으로 임도가 지나가나 왼쪽 능선 잡목 봉우리로 올라선다. 왼쪽의 임실읍 신정리, 이인리 가랑골에서 오른쪽의 청웅면 옥석리 상주치를 이어주는 고개 안부인데 양쪽에 길이 있고, 오른쪽은 임도이다.
♤ 회문산(回文山, 837.1m)/ 전북 순창군 구림면
회문산은 전북특별자치치도 임실군 덕치면 회문리, 일중리와 순창군 구림면 안정리, 금창리의 경계에 속하며, 회문산은 정읍시 태인면에 있는 운주산이 동쪽으로 뻗어 내려와 이루어져 있다. 회문산 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있다. 이 산에는 바위로 된 천연의 문이 있어 회문(回文)을 회문(回門)이라고 쓰기도 한다. 북서쪽에는 투구봉으로도 불리는 장군봉(780미터)이, 북쪽 중앙에는 큰지붕으로 불리는 회문봉(837m)이 솟아 있다. 동쪽 산줄기에는 천마봉과 깃대봉, 남쪽 산줄기에는 돌곳봉과 시루바위가 있다. 반석같이 웅장한 바위들이 약 4km에 걸쳐 뻩어 잇고 높고 우뚝 솟은 봉우리는 항상 구름에 잠겨 있다고 옛 문헌에 나와 있다. 회문산의 물줄기는 일중천을 통해 섬진강에 합류하여 남해의 광양만으로 흐른다. 회문산은 영산으로 불릴만큼 신비로운 산이다. 산의 둘레가 순창, 임실, 정읍, 담양 등 수개의 시와 군에 접해 있다. 고려 말기에 무학이 이성계를 위해 기도했다는 만일사와 무학바위가 있는 등 무학에 대한 전설이 전한다. 1846년 천주교 병오박해 때 김대건 신부의 일가가 피신했던 곳으로서 이들의 묘소가 남아 있다. 조선 말기에는 동학혁명과 의병들의 근거지였고, 면암 최익현과 임병찬이 이 곳에서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구림천과 옥정호에서 흘러내린 섬진강이 회문산을 감싸듯이 휘감고 있어, 이러한 사실들은 지형이 험준하고 골이 깊어 피난처로 삼기에 유리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전쟁 중에는 지리산과 더불어 조선노동당 전북 도당위원장 방준표가 이끄는 700여 조선인민유격대가 회문산에 아지트를 설치하여 빨치산과 격전이 있었다. 지금은 빨치산의 훈련장이 있던 곳에 체력단련장이 들어서 있고, 이 때문에 양민 희생자를 위한 위령탑과 빨치산 사령부를 재현한 비목공원이 세워져 있다. 80년대 남부군이라는 소설과 함께 영화로 소개되면서 회문산이 남북간 이념 대립의 현장으로만 알려졌지만 회문산은 고추장 전설의 유래지,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의 진원지로서도 유명하다. 증산교에서 김제시와 완주군에 걸친 모악산을 어머니 산으로, 회문산을 아버지 산으로 삼고 있어 증산교와 청학동 도연으로 불리고 있는 갱정유도의 발상지가 이 산의 금강암이다. '한국의 5대 명당'으로도 불려 암반 위에까지 묘지가 많이 설치되어 있기도 하다.
준희선생님의 '힘힘힘'표지판이 필요한 지점입니다.^^
♤ 제비봉(482m)/ 읍면계/ 삼리봉(청웅면 옥석리, 임실읍 이인리 → 신정리)
배재에서 올라선 급경사 오름의 535.1m봉 직전에 닿는 봉우리이다. 선답자들의 띠지만 나무에 매달려 있다. 지맥의 왼쪽이 임실읍 이인리 → 신정리로 바뀌는 읍면계이자 삼리봉 지점이다.
성수지맥이 임실군 삼계면과 처음 만나는 삼읍면봉 지점입니다.
♤ 535.1m봉/ 삼읍면봉(청웅면, 임실읍 → 삼계면)
산너머대장님 산패와 선답자 띠지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초봉의 전위봉으로 지맥의 왼쪽이 임실읍 신정리 → 삼계면 죽계리로 바뀌는 삼읍면봉 지점이다.
우리나라에 박사가 특히 많이 배출된 4대 박사마을이 있는데 전북 임실군 삼계면, 강원도 춘천시 서면, 경북 영양군 주실마을, 예천군 호명면입니다. 그중에서도 삼계면이 면 단위 행정구역으로는 약 200여 명(2023년 9월 기준)의 박사를 배출해 전국 최다 박사 배출 마을로 알려져 있습니다.
♤ 전북 임실군 삼계면(三溪面)
삼계면은 임실군의 남쪽에 위치하며 삼한시대에는 마한 고랍국, 백제시대에는 고룡군, 신라시대에는 남원소경, 고려시대에는 대방군에 속한 지역이며, 조선시대에는 남원도호부에 소속된 땅으로 48방중 아산방, 석현방, 오지방, 말천방 지역이었다. 1895년 방(坊)을 면(面)으로 고쳤다. 1906년 남원군에서 갈려나와 임실군으로 편입되었으며 1914년 군·면 통폐합때 아산면, 석현면, 오지면, 말천면을 합하여 삼계면으로 개칭하고 16개리로 편성하였는데, 이는 머내(磊川, 뇌천), 뒷내(後川, 후천), 버드내(柳川, 유천)의 유역, 또는 삼계(오수천, 율천, 사매천)의 하류라 하여, 즉 세개의 시내가 흐르는 곳이라 삼계면이라고 했다. 1994년 신정리 망전리를 임실읍에 편입시키고 14개 법정리 21개 행정리 72개 반으로 조정되었다. 임실군 삼계면은 서쪽으로 청웅면과 임실읍, 덕치면과 순창군 동계면, 남쪽으로 임실읍과 덕치면, 오수면과 남원시 사매면, 순창군 동계면, 북쪽으로 임실읍과 오수면, 청웅면과 덕치면, 남원시 사매면, 동쪽으로 임실읍과 오수면, 남원시 사매면과 순창군 동계면과 접한다. 삼계면은 박사골로 불리는 인재의 고장이다. 삼계면 마을에 박사 출신이 많은 이유는 조선시대 무오사화(1498년) 등을 피해 한양에서 낙향해 터를 잡은 선비들이 많았고, 경주 김씨, 청주 한씨, 풍천 노씨, 양천 허씨 등 선비 가문이 많은 데다 향학열이 남달리 높았기 때문이다. 근래 삼계면에서 배출된 박사가 200명에 육박하고 있다. 지금도 임실군 삼계면은 발길 닿는 곳마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묵향이 흠뻑 배어 있는 고을이다. 노동환 가옥, 한상준 고택, 육우당 등 200년 전후에 건축된 선비들의 한옥이 즐비하다. 고을 곳곳에 만취정, 광제정, 오괴정 등 정자가 많아 산골 마을 사람들이 예로부터 글과 풍류를 사랑했고, 시인묵객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음직 하다. 선비들의 고결한 인품과 학문을 존중해 세운 서원, 각 성씨들이 조성한 사당과 묘동도 수두룩 하다. 박사골 학정마을은 전통 유과와 엿이 유명하다.
♤ 전북 임실군 삼계면 죽계리(竹溪里)
죽계리는 본래 남원부 석현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에 죽계리, 신평리를 합병하여 그 중심마을 이름을 따 죽계리라 하고 삼계면에 편입되었다. 북쪽으로는 깃대봉과 지초봉, 서쪽으로는 원용산, 남동쪽으로는 풍악산 등으로 둘러싸인 산간지역 내의 좁은 평야에 자리하고 있으며, 동쪽에는 오수천이 흐른다. 죽계저수지는 세심자연휴양림 위쪽에 위치하며 1997년 농업용수 확보 및 가뭄에 대비하여 총 470여억원을 투입하여 2013년 공사를 마쳤다. 삼계면 죽계리와 오수면 주천리, 임실읍 신정리 등 3개 읍면지역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한다. 임실군청에서 관리하는 세심자연휴양림이 2008년 7월에 개장하였다. 원통산과 지초봉 사이에 있으며 수용인원은 800명, 최적 인원은 200명이다.
신설 임도를 가파르게 올라서서 지초봉으로 향합니다.
♤ 지초봉(芝草峰, 569.9m)/ 면계/ 삼리봉(청웅면 옥석리, 삼계면 죽계리 → 학정리)
준희선생님 산패가 참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고, 나무에 매단 널판지 산패와 지초봉 이정표와 국가지점번호가 있다. 조망은 없고 지맥은 우틀이다. 임실군 삼계면 죽계리, 학정리와 청웅면 옥석리에 걸쳐 있는 참나무에 둘러싸인 봉우리이다. 산에서 약초가 많이 난다고 하여 지초봉으로 불린다. 새로 생긴 임도를 올라선 지초봉 오름길부터는 일반등산로라 길이 좋다. 세심자연휴양림삼거리로 갈라지는 지초봉 삼거리에서 오른쪽 새목재방향으로 내린다. 정상에서 북쪽으로 백련산, 그 옆으로 모악산, 연석산, 운장산, 동으로 고덕산, 팔공산, 덕유산, 남동으로 지리산 천왕봉과 반야봉 주능이 아스라하게 하늘금을 이루고, 북서쪽으로 회문산, 남서쪽으로 용궐산을 마주 바라보는 조망이 좋은 곳이다.
♤ 백련산(白蓮山, 754m)
전북 임실군 서쪽으로 강진면과 청웅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영취산(靈鷲山)이라고도 한다. 산 아래 강진면 백련리 신기마을에서 산을 보면 봉우리가 연꽃 몽우리처럼 보여 백련산이라고 부른다. 팔공산(1,157m)에서 남서쪽으로 뻗어나간 능선이 706고지를 지나 이 산까지 연결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영취산(靈鷲山)은 현의 서쪽 30리에 있다." 라고 하였다. 이후 『여지도서』, 『호남읍지』 등의 지리지에 "백련산"으로 수록되어 조선 중기를 전후해 지명 표기가 변화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여지도서』에는 "백련산은 사방이 험준하게 뼈 쭉 솟아 있다. 둘레는 30리 남짓이다. 안에는 용추가 자리하고 있다. 예로부터 갖가지 말이 있던 곳이다." 라고 하였다. 산 지명과 관련해 상봉 모습이 하얀 연꽃 봉우리 같아 지명이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다. 또한 시묘살이를 함께 했던 흰 제비가 이 산으로 날아가 '흰 백(白)' '제비 연(燕) 자를 써서 백연산이라고 하였으나 백련산으로 변했다는 설도 있다. 산 아래 방현리에서 오르면 높이 10m의 용소폭포가 있다. 정상에는 부처바위가 넓게 자리잡고 있고, 이외에도 쌍선대라는 두 개의 큰 바위가 솟아 있으며, 모악산(793m)·만덕산(763m) 회문산(830m)이 한눈에 들어온다.
♤ 새목재(鳥項, 465m)/ 국가지점번호, 이정표/ 면리계(청웅면 옥석리 - 삼계면 학정리)
반바지운영자님 코팅지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 청웅면 옥석리 조항마을에서 삼계면 학정리 용수골로 가는 묵은 임도가 지나는 고개로 [지초봉 0.8km, 원통산 1.4km, 조항마을 3.1km] 새목재 이정표가 서있다. 새목재에서 임도를 버리고 왼쪽 계단을 따라 오른다. 멀리 가야할 무량산과 그 오른쪽으로 용궐산이 바라보인다.
성수지맥이 임실군 덕치면과 처음 만나는 곳으로 시루봉까지 짧게 함께 한다. 강진의 백련산이 오른쪽으로 가깝게 바라보이고 그 오른쪽으로 호남정맥이 그 뒤쪽으로 우뚝한 모악산도 보입니다. 부모님이 잠들어 계신 곳, 임실국립호국원이 가까운 곳입니다. 아버님은 17살에 지리산토벌작전에 참전하셨습니다.
♤ 541m봉/ 삼면봉(삼계면 학정리, 청웅면 옥석리 → 덕치면 두지리)/ 541고지 이정표
임실군 청웅면, 덕치면, 삼계면이 만나는 삼면봉으로 오른쪽 덕치면 두지리 건너편으로 백련산과 회문산이 환하게 조망되는 곳이다. 엄청나게 높은 안테나도 서있다. 541고지라고 써있는 539.9m봉 이정표에 [새목재 0.42km, 원통산 1.01km, 학정리 3.52km]를 가리키고 있다. 회문산도 가깝고 고지라는 지명은 빨치산 토벌을 암시한다. 지맥은 청웅면과 헤어지고 왼쪽으로 90도 꺽어 좌틀로 내려간다. 443고지 등 인근 일대에 빨치산 토벌을 위해 작전을 벌인 결과 금남정맥 육백고지 전승탑이 있는 백령고개 처럼 봉우리 이름이 고지로 표시되는 경우가 많다.
♤ 전북 임실군 덕치면(德峙面)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서남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소재지는 회문리, 덕치면 인덕로 1401이다. 섬진강의 지류인 오원천이 면내를 곡류하여 남동쪽으로 흐르며, 산간을 흐르는 하천 양안에 소규모의 충적지가 분포하고 그외 대부분이 산지를 이루고 있다. 회문산 등 높은 재를 넘어야 하는 길목이라 고덕치라고 칭하였으나 조선 인조 때부터 덕치로 개칭 현재에 이른다. 성수지맥이 남부 경계를 이루며, 주위에는 원통산(604m)·성미산(589m)·약담봉(408m) 등이 솟아 있으며 섬진강의 잔잔한 흐름이 번갈아 이어지며 휘감아 돌아나간다. 호박고구마와 땅두릅, 감, 매실, 복분자 등이 재배되며 전통한과와 청국장, 한봉꿀 등이 특산품으로 생산된다. 회문산은 통일신라시대에 경주와 당나라와의 무역 중심지였던 부안군의 줄포를 연결하던 교통로였으며, 홍성문(洪成文)의 회문산가도 전해지고 있다. 진안리·순천 방면을 연결하는 국도가 하천을 따라 남북 방향으로 나 있다.
♤ 원통산(遠通山, 603.5m)/ 면계/ 사리봉(임실군 삼계면 학정리, 덕치면 두지리 → 사곡리 → 가곡리)/ 무인산불감시카메라/ 3등삼각점(갈담 310/ 1984 복구)
임실군 덕치면 두지리, 사곡리, 가곡리와 삼계면 학정리에 경계하고 있다. 세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정상에는 묘지 1기와 바로 아래 무인산불감시카메라, 이정목, 백두사랑산악회 산패와 3등삼각점이 있다. 멀원(遠), 아플 통(痛)을 쓰는 원통산은 김해 양씨가 이 산으로 조상들을 모실 명당을 찾아왔으나 산세는 좋은 반면 명당을 찾지 못하자 아픈 마음을 달래며 순창 동계면 현포리에서 명당을 찾은 후부터 부르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지형도에는 통할 통(通)으로 돼 있으며, 임실군지에는 산 아래에 있는 원치(遠峙)는 조선 초 밀양 박씨가 이곳의 산세를 살펴보고 명당자리가 분명하다고 여기고 살았으며, 선조 때는 수원 백씨가 터를 잡았는데, 멀리서(遠) 재(峙)를 넘어와야 한다는 뜻으로 이름지었다고 한다. 원통산 정상에서 조망은 가슴이 뻥 뚫린다. 북쪽은 분지를 이룬 청웅면 소재지와 백련산이 보이고, 그 옆으로는 전주의 모악산, 만덕산, 연석산, 운장산과 임실읍이 시야에 들어온다. 동으로는 전주의 고덕산, 팔공산, 그리고 멀리 덕유산이 다가오고, 남동으로는 지리산 주능이 아스라하게 하늘금을 이룬다. 원통산 주변에는 한국전쟁 때 회문산과 지리산을 오가며 활동했던 빨치산들의 참호와 비트 흔적들이 남아서 동족상잔의 비극과 참상을 대변해 주고 있다. 6.25전쟁 전후 원통산은 빨치산 활동의 중심부이기도 하였다. 9ㆍ28수복 이후 인민군이 퇴각하게 되자, 임실군당과 내무서는 그간 검거했던 우익 인사들과 그 가족들을 9월 27일 모두 집결시켜 학살한 뒤, 퇴각하는 인민군을 따라 북으로 후퇴하였지만, 또 일부는 지방 좌익들과 함께 관내의 회문산, 성수산, 원통산 등지로 입산하여 빨치산 활동을 시작하였다. 전북인민위원회 위원장 방준표가 협력자들과 함께 국군 및 UN군의 수복에 앞서 전주를 탈출 회문산에 입산하여 조선노동당 전북도당 유격사령부를 설치하여 회문산 일대를 중심으로 순창 쌍치, 임실 덕치·삼계에 위치한 원통산에서 활동하였으며, 원통산 정상은 국군과 빨치산의 치열했던 전투 격전지로 전해지고 있다. 1950년 9. 28. 이후 1951. 1월까지 회문산 주변 일대 마을 주민들 가운데 공산 유격대에 의해 살해된 주민수는 모두 172명에 이른다. 원통산 정상에서 좌틀로 내려서면 넓은 헬기장을 만나고 여기서 우틀로 내려선다.
오른쪽으로 희미한 등로가 지맥길입니다.
♤ 학정리삼거리
지맥능선에서 학정리로 하산할 수 있는 삼거리이다. 이곳에서 지맥은 444.5m봉을 지나 원치에 닿고, 원치에서 도로(세학로)를 따라 약 0.9km 거리의 학정리로 내려간다. 이곳에서 원치를 거치지 않고 빠르게 학정리에 닿을 수 있는 갈림길이다.
♤ 444.5m봉
헬리포터를 지나 우틀로 가파르게 내려섰다가 학정리삼거리에서 올라선 봉으로, 선답자님들 띠지와 준희선생님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다. 벌목지에서 시루봉이 건너다보이고 오른쪽 멀리 지맥에서 벗어나 있는 용궐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합수점까지 약 15.2Km로 지맥이 후반부로 접어듭니다. 어치까지 갈 수 있을까요. 거기에 수도가 있다는데....
♤ 원치고개(遠峙)/ 학정고개/ 면리계(임실군 삼계면 학정리 - 덕치면 가곡리)/ 2차선도로(세학로)
임실군 삼계면 학정리 사촌마을과 덕치면 가곡리 원치마을을 잇는 나즈막한 고개로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지나고 고개 좌우로 묘지가 많다. 오른쪽 임도를 따라 약 300m진행후 오른쪽 산으로 들어선다. 오른쪽 아래로는 임실군 덕치면 가곡리에 원치마을이 있고, 왼쪽 아래로 삼계면 학정리 학정마을이 있다. 정자와 화장실이 있는 학정리 버스정류장까지는 도보로 10분 거리이다. 오수에서 오는 학정리 종점이다.
원치고개에서 약 10분 올라선 봉으로 성수지맥이 순창군과 처음 만나는 곳입니다. 임실과 순창의 군계를 따라 사자바위 갈림 삼거리까지 갑니다.
♤ 시루봉(334.6m)/ 군계/ 삼면봉(임실군 삼계면 학정리, 덕치면 가곡리 → 순창군 동계면 어치리)/ 4등삼각점(순창 421/ 2001 복구)
일대구정 산주대장님 산패가 나무에 매어 있고, 백두사랑 산패, 독도대선배님 코팅지 산패도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 4등삼각점이 있고, 시루봉 답게 정상은 나무로 둘러싸였고 펑퍼짐하다. 시루봉은 순창 북쪽에 솟구친 산으로 순창군 동계면 어치리와 임실군 삼계면 학정리, 덕치면 가곡리의 경계에 있는 군계이자 삼면봉이다. 북쪽으로는 원통산으로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동계면의 자라봉으로 이어진다. 지맥이 순창군에 닿아 군계를 따라 사자바위로 향한다. 시루봉은 풍수지리상 시루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또한 산의 형상이 마치 떡시루를 엎어 놓은 형상이라 하여 시루봉이라 불린다. 시루봉 정상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임실 원통산과 백련산이 자리 잡고 있고, 섬진댐 너머로 호남정맥의 오봉산과 경각산이 버티고 있다. 동쪽으로는 남원 만행산(천황봉) 너머로 백두 대간의 고남산과 봉화산이 우뚝 서 있다. 남쪽으로 용궐산과 무량산 너머로 남원의 문덕봉과 고리봉이, 서쪽으로는 성미산, 여분산, 용추봉 너머로 정읍 내장산과 고창 방장산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순창군 동계면은 천황지맥과 성수지맥을 다함께 품고 있습니다.
♤ 전북 순창군 동계면(東溪面)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북동부에 있는 면으로 남원시·임실군과 인접한다. 1914년 아동면과 영계면을 병합하여 아동면의 ‘동’ 자와 영계면의 ‘계’ 자를 따서 동계면(東溪面)이라 하였다. 면소재지는 동계면 현포리 동계1길 15이다. 지형은 용골산과 두류봉이 남쪽을 향해서 전개됨으로써 구릉성 산지와 함께 소규모 분지가 나타나고, 그 사이로 섬진강이 남쪽으로 흐르고 있다. 오원천이 서쪽 면계를 흐르며, 오수천이 면의 동부를 남류한다. 평야는 오수천과 그 지류를 따라 소규모로 분포한다. 한편 천황산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보절면과 둔남면을 거쳐 임실군 삼계면 산수리를 지나면서 동계천이란 이름으로 적성면 평남리에서 북쪽으로 흘러온 섬진강과 동계면 끝자락에서 합류한다. 호남정맥의 지맥으로 용궐산·무량산·노적봉·풍악산 등이 솟아 있다. 평야는 오수천과 그 지류를 따라 소규모로 분포한다. 동쪽으로 노적봉 등을 경계로 남원시 사매면·대산면, 남서쪽으로 섬진강(적성천)을 경계로 적성면 북쪽으로 임실군 덕치면·삼계면과 접한다. 동계면의 동부와 서부를 섬진강의 지류인 오수천과 섬진강이 흘러 남서쪽의 적성면 평남(平南)에서 합류하며, 높이 300~600m의 산과 그 사이 분지로 되어 있다. 주산업은 농업이며, 고추 생산이 많아 예로부터 특이한 맛을 가진 순창고추장이 특산물로 유명하다. 그밖에 밤·매실·오디·블루베리 등도 생산된다.
♤ 전북 순창군 동계면 어치리(於峙里)
용골산을 서편으로 하고 용골산 한 가닥의 산맥이 동편으로 내려와 있는 산맥의 중턱에 남동쪽을 향하여 자리잡고 있는 마을이다. 시루봉이 있는 순창군 동계면 어치리는 산줄기가 늘어지게 뻗어있어 느재 또는 어치(於峙)로 불린다. 어치리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느제 점촌ㆍ돌무덤ㆍ놋점ㆍ멀테의 5개마을을 통칭하였는데 오늘날에는 놋점과 멀테는 무인촌이 되어 3개마을이 어치리를 형성 하고 있다.
♤ 용궐산(龍闕山, 645m)/ 용골산(龍骨山)
용궐산은 전북 순창군 동계면 어치리에 있는 산이다. 산 이름은 산세가 마치 용이 하늘을 날아가는 듯한 형상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성수지맥이 원통산을 지나며 오수천과 섬진강 원류를 가른다. 원통산과 무량산 사이에 적성강을 앞에 품고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용궐산이 솟구쳐 있다. 원통산에서 남진하는 산릉이 마치 용이 자라와는 어울릴 수 없다는 듯 서쪽 섬진강 변으로 가지를 치며 솟구쳐 있다. 용같이 우뚝 솟아 꿈틀거리는 듯 준엄한 형세를 띠고 있으며, 앞에는 만수탄(섬진강)이 흐르고 있다. 용궐산은 순창군 북쪽에 있는 섬진강의 본류이자 상류인 적성강을 바라보고 있다. 원래는 용골산(龍骨山)이라 불렸는데 이 명칭이 ‘용의 뼈다귀’라는 죽은 의미를 갖고 있으므로, 산이 살아서 생동감 넘치는 명기를 제대로 발휘하도록 하자는 주민들의 요구가 있었다. 이에 정부는 중앙지명위원회를 열어 2009년 4월 용궐산(龍闕山)으로 명칭을 개정하였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매우 빼어나다. 북으로 섬진강이 흐르는 덕치면 가곡리의 협곡 너머 청웅의 백련산, 덕치의 원통산이 자리하고, 동으로는 남원 보절에 있는 천황봉 너머 지리산의 제2봉인 반야봉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동남으로는 무량산이 우뚝 서고, 그 아래로 섬진강이 흐른다. 서로는 요강 바위, 자라 바위 등 기암 괴석들을 품에 안은 섬진강이 장구목 마을과 함께 아슬아슬하게 내려다보인다. 멀리 눈을 돌려보면 강천산과 내장산의 연봉들이 다가오고, 북서쪽으로는 회문산과 필봉산이 섬진강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낸다. 용궐산은 용과 관련된 지명과 전설이 많으며 자연 경관이 수려하다. 용궐산의 남쪽 방향인 어치리 내룡 마을에서 북동쪽으로 오르면 천연 동굴인 99개의 용굴이 있다. 세 번째 용굴까지는 사람이 갈 수 있으나, 네 번째 용굴부터는 불을 켜도 앞을 분간할 수 없어서 갈 수가 없다. 화강암으로 이뤄진 용궐산 정상인 상봉에는 신선 바위가 있고, 산중턱에는 삼형제 바위, 그리고 최근까지 승려들이 찾아와서 축조했다는 절터, 물맛 좋기로 소문난 용골샘 등이 있다. 용궐산의 정상에 있는 신선 바위에는 바둑판이 새겨져 있는데, 옛날에 용궐산에서 수도하던 승려가 바둑을 두자는 내용의 서신을 호랑이의 입에 물려 인근의 무량산에 기거하는 승려에게 보내서, 서로 만나 바둑을 두었다고 전해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6·25 전쟁 때 아군들이 적군을 토벌하기 위해 막사를 설치하며 쇠말뚝을 박는 과정에서 바둑판의 형체가 사라졌다. 용궐산 서쪽 기슭에 있는 장구목은 예전에 지역 주민들이 왕래하던 큰 길목이었으며, 그 주변에 장군의 명당이 있어서 장군목, 혹은 지형이 장구 형상이라 장구목으로 불린다.
♤ 493.1m봉/ 군면계/ 삼리봉(순창군 동계면 어치리, 임실군 삼계면 학정리 → 세심리)
준희선생님 산패가 소나무에 걸려있다. 시루봉에서 보면 뾰족하여 가파르게 보이나 막상 산에 들어서면 갈만하다. 지맥의 왼쪽이 임실군 삼계면 학정리 → 세심리로 바뀌는 군면계이자 삼리봉지점이다. 그런대로 조망이 좋다. 가야할 왼쪽 무량산과 그 오른쪽 용궐산 사이로 어치마을이 끼어 있다. 바위 사이에 묘 한기가 있는데 묘지 앞으로 내려선다.
성수지맥이 순창군과 임실군의 군계와 헤어지고 완전하게 순창군 동계면 관내로 들어서는 지점입니다.
♤ 사자바위삼거리/ 군면계/ 삼리봉(순창군 동계면 어치리, 임실군 삼계면 세심리 → 순창군 동계면 동심리)
시루봉에서 순창군 동계면과 만나 군면계를 따르던 지맥이 사자바위 갈림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크게 꺽여 임실군과 헤어지고 순창군 동계면 관내로 진입하는 지점이다. 약 5분 정도 임도를 따라 걷는데 임도 오른쪽으로 용궐산이 잘 보인다. 사자바위 갈림삼거리에서 원형 나무계단을 올라서서 왼쪽으로 약 0.2km 떨어진 곳에 사자바위가 있어 사자바위 정상에 올라 조망을 감상하고 삼거리로 되돌아 온다.
왕복 0.4Km로 조망이 좋다니 다녀옵니다. 양쪽으로 바위봉우리가 있군요.
♤ 사자바위(486.1m)/ 군계/ 면계(임실군 삼계면 - 순창군 동계면)
준희선생님 '그곳에오르고싶은산' 사자바위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다. 임실군 삼계면 세심리와 순창군 동계면 동심리, 유산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나목의 겨울에 보면 바위 암봉의 모습이 웅크리고 있는 사자의 형상으로 보인다고 한다. 임도에서 지맥은 오른쪽으로 올라서나 사자바위를 다녀오기 위해 계속 임도를 따른다. 지나온 지맥길과 가야할 방향으로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좋다. 천황지맥 끄트머리 너머 지리주능도 멋지게 조망된다.
♤ 464.3m봉/ 순창군 동계면 어치리 - 동심리
커다란 바위가 있는 봉우리로 선답자님들 띠지가 봉우리를 지키고 있다.
♤ 380m봉
소나무가 멋진 암봉으로 어치고개가 조망된다. 어치고개 방향으로는 암릉길 바위 절벽이라 곧바로 하산하지 못하고 왼쪽으로 우회하여 하산한다. 양회임도를 따라 커다란 우사 옆으로 내려선다. 축사 옆에 수도가 있다.
무량산을 넘을까하다가 사실 처음 계획은 무량산 정상의 큰각시봉 산불감시초소를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만 어치에서 비박하기로 했습니다. 도로를 따라 어치 마을 쪽으로 약 100m 가다가 밤나무단지 양회임도 두개를 만나는데 무량산 입구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두번째 양회임도로 무량산을 능선으로 오르면 아주 편합니다.
♤ 어치(於峙, 255m)고개/ 느재/ 717번지방도로(강동로)/ 수도, 우사/ 순창군 동계면 어치리 - 동심리
반바지운영자님 코팅지 산패가 석축 철망에 매어 있다. 오른쪽 어치리에서 왼쪽 동심리로 넘어가는 717번 도로가 지난다. 길이 따로 없어 반사경이 있는 곳에서 석축으로 올라도 되고 오른쪽에 띠지를 보고 올라서도 되고 반바지운영자님 코팅 산패에서 올라도 된다. 390.6m봉으로 트랙을 보며 올라선다. 무량산까지 해발고도 약 340m를 쳐올려야 하는 힘든 구간이다. 일대구정 산주대장님 '힘힘힘'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다.
아무 생각없이 가다가 산패를 놓쳤습니다.
♤ 390.6m봉
급경사의 비탈을 올라 능선에 올라서면 오른쪽으로 살짝 벗어나 소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매어 있다. 한숨 돌리고 다시 왼쪽으로 까칠하게 무량산으로 올라선다.
♤ 용궐산 갈림길
용궐산까지는 왕복 6.2Km이다.
무량산 가는 능선은 부드럽고 곳곳에 멋진 전망터가 있습니다. 동심리 마을과 천황지맥의 노적봉-풍악산-응봉-비홍치 구간이 일자로 펼쳐져 보이고 그 뒤로 지리능선의 반야봉이 높아보이네요.
♤ 무량산(無量山, 587.6m)/ 구악(龜岳)/ 정상석, 무인산불감시카메라/ 삼리봉(동계면 동심리, 어치리 → 구미리)
바위 위에 아담한 정상석이 있다. 조망은 천황지맥의 동쪽으로만 조금 트이고 무인산불감시카메라가 있다. 백두사랑 산패, 글씨가 지워진 이정표 쇠기둥에 골판지 산패도 있다. 무량산은 전북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에 있는 산이다. 순창군 북쪽의 섬진강 상류인 적성강 변에 솟구쳐 있으며, 송림이 울창하고 바위가 어우러져 비경을 이룬다. 불교 용어 무량은 시공간적으로 제한이 없는 상태, 헤아릴 수 없이 많음을 뜻한다. 무량산 정상에 서면 북쪽으로 섬진강이 흐르는 덕치면 가곡리의 협곡 너머 청웅 백련산, 덕치 원통산이 다가오고, 동쪽으로는 남원 만행산(천황봉)과 그 너머로 지리산 반야봉이 펼쳐진다. 무량산 아래는 섬진강이 출렁거린다. 서쪽은 수직 절벽의 용궐산(변경 전 명칭 용골산)과 요강 바위, 자라 바위 등 기암괴석들이 즐비한 섬진강이 장구목 마을과 함께 내려다보인다. 주변으로 강천산과 내장산의 연봉들이 펼쳐지고, 북서쪽으로 회문산·필봉산과 섬진강의 어우러진 풍광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현감 양산보(梁山甫)가 멧돼지를 잡았는데 뱃속에 무량이란 글자가 있어 무량산으로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 하지만 예부터 선조들은 이 산을 금거북 형상이라 하여 구악(龜岳)으로 불러왔다. 예컨대 풍수지리상 금거북의 꼬리라는 지명을 가진 구미(龜尾)는 700년의 장구한 세월 동안 남원 양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거대한 명당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구미는 금거북이 진흙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꼬리만 남은 금구몰미(金龜沒尾) 형상이고, 건너편의 적성면 구남 마을은 금거북이 남수(湳水)로 들어가는 금구남수(金龜湳水) 형상이라고 한다. 남수란 서하수(西河水)의 의미로 동계천과 섬진강 원류가 합수되는 지점이자 성수지맥이 섬진강으로 숨어드는 구남마을 어은정 앞을 일컫는다.
♤ 전북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龜尾里)
1914년 이전에는 순창군 아동면에 속하였으며,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원군 영계방과 순창군 아동방을 합하여 동계면에 속하게 되었다. 구미리의 주산 무량산이 일명 구악(龜岳)이라 하여 거북 형상인데, 마을 근처에서 거북이 진흙 속으로 빠져드는 형상을 하고 있다. 따라서 ‘거북 구(龜)’ 자와 ‘꼬리 미(尾)’ 자를 합하여 구미리라 부르게 되었다. 남원 양씨가 마을의 중앙에 살아서 가운데 마을이라는 뜻으로 중동으로 표기하였으며, 동쪽 마을인 장작골(龍洞)은 거북이 용으로 변하는 동물이라는 구변용체(龜變龍體)에 따라 붙인 이름이다. 서쪽 마을은 뒤주골(注書洞)이라 불렀다. 다시 설명하자면 구미리 북쪽으로 우뚝 솟은 무량산이 있고, 이 산의 남단에 매때기 바위를 정점으로 끝을 맺고 서있는 별바위를 지나면 녹갈암(鹿葛巖)에 이른다. 녹갈암 밑이 남원 양씨의 종대다. 이 종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을 지칭해 가운데골(中洞)이라 하고, 동쪽 마을을 장작골, 서쪽 마을을 뒤주골이라고 한다. 이 세 마을을 통칭해 구미리라 한다. 이곳은 동남 3방이 둘러놓은 듯한 산중 마을이다. 물의 흐름은 대체적으로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아 서쪽으로 흘러 섬진강에 유입된다. 구미리 동쪽으로 몰미재(馬上洞)가 있고, 서쪽으로 용궐산과 두리봉, 우두봉을 스쳐 흘러가는 섬진강 상류의 수심 깊은 소(沼)가 나오고, 물 맑고 은어가 서식하는 만수탄(滿水灘)에 이른다. 순창군 동계면과 적성면의 경계가 되는 이 강을 건너면 적성면 석산리, 일명 강경동 도왕동이 나온다. 남으로 옥녀봉이 있으며, 이 산을 넘어가면 적성면 구남리에 있는 어은정(漁隱亭)이 있다. 이 바로 앞에서 섬진강과 동계천이 합류하여 섬진강 중류에 이른다.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사방으로 조망이 좋다니 잠시 들러서 지리산을 찾아보고 갑니다. 산아래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가 내려다 보이고 가야할 지맥 끄트머리도 자세히 살핍니다.
♤ 큰 각시봉(508.3m)/ 산불감시초소
일대구정 산주대장님 '그곳에오르고싶은산' 508.3m봉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다. 동계면 구미리 용동 마을 뒤 각시봉에 오르면 동계면 용동 마을과 구미 마을, 그리고 체계산, 풍악산 고리봉, 용궐산을 휘감아 도는 섬진강 줄기인 적성강이 한눈에 보인다. 무량산 중턱의 신선과 선녀가 노닐 성 싶은 비경을 자랑하는 작은각시봉에는 이끼와 고사리, 그리고 부처손이 자라고, 묘소 주변에는 백년송들이 줄지어 서 있다. 지리산 통천문을 연상케 하는 석문과 작은 쇠사다리로 이어진(지금은 계단)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큰각시봉을 지나면 무량산 정상에 다다른다.
묘가 있는 너럭바위에서 가야할 방향의 지맥 마지막 봉우리들을 살펴보고, 밤나무 농장을 지나 추동고개로 내려섭니다.
♤ 추동고개/ 2차선도로/ 21번 국도/ 구미로/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 동심리
확장하여 새로 깔은지 얼마되지 않은 2차선 포장도로(구미로)이다. 오른쪽 구미리 용동마을에서 왼쪽 동심리 추동마을로 넘어가는 21번 도로가 지난다. 길건너 흥성장씨가문 열녀해주오순녀열행비 묘지 뒤 밤나무단지로 243.4m봉에 오른다. 추동 마을의 본래 이름은 가라울이다. 가라울은 ‘가래골’의 음운 변화로 생긴 마을로 농기구 ‘가래’처럼 생긴 마을이란 뜻으로 이 마을의 지세가 농기구 ‘가래’를 닮았다는 것이다. 혹은 추자와 비슷한 가래나무가 많아 가래나무에서 유래되었을 수도 있다. 옛부터 우리나라에 자생했던 토종 호두라고도 할 수 있는 가래나무의 열매를 '추자(楸子)'라고 부른다.
합수점까지 추동고개에서 약 7.2km, 구미고개에서 약 6.2km 남았습니다.
♤ 구미고개(205m)/ 마상굴재/ 삼리봉(동계면 구미리, 동심리 → 현포리)
왼쪽은 마상리 오른쪽은 구미리이다. 동계면 구미리에서 면소재지인 현포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과수원 가운데 양회임도가 왼쪽으로 돌아가는 삼거리로 오른쪽 길은 묵어있다. 길건너 오른쪽 잡목 능선 급경사로 오른다. 구미고개는 전북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에 있는 고개라서 붙여진 이름으로 구미리의 명칭 유래를 보면 구미리의 주산 무량산이 일명 구악(龜岳)이라 하여 거북 형상인데 마을 근처에서 거북이 진흙 속으로 빠져드는 형상을 하고 있어서 거북의 꼬리를 뜻하는 구미리(龜尾里)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구미고개에서 약 15분 올라 왼쪽으로 잠깐 다녀오는 봉우리이다.
♤ 289.1m봉/ 면계(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서호리 → 적성면 평남리)
구미고개에서 잡목을 헤치고 오른 봉우리로 선답자님들 띠지와 준희선생님 산패가 밤나무에 매어 있다. 사자바위갈림삼거리에서 동계면 안으로 진입한 지맥이 성수지맥의 마지막 행정구역인 순창군 적성면 평남리에 닿는 지점이다. 우틀로 방향을 전환하여 면계를 따라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라 양회임도가 지나는 재로 내려선다.
♤ 전북 순창군 적성면(赤城面)
적성면은 순창군의 동부 평야부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동쪽으로는 동계면과 남원시 대강면, 북쪽으로는 임실군 덕치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면소재지는 고원리에 있다. 삼한시대부터 통일신라 시대까지 적성현으로 불렸다. 삼국시대 때는 백제에 속해 섬진강에 조약돌처럼 빛난다 하여 역평현으로 불리다 통일신라시대 적성현으로 개칭되었다. 고려 후기 적성현이 폐현되고 조선시대에 들어와 적성방(적성면)이 되었다. 적성면의 북쪽은 바위산으로 산악 지대이며, 남쪽은 비옥한 평야로 이루어져 있다. 호남정맥의 동단에 위치한 지역으로 두류봉(546m)에 의해 임실군 덕치면과 북쪽으로 경계를 이루며, 적성강이 두류봉 밑으로 흐르며 용궐산(645m)이 순창군 동계면과 경계를 이룬다. 천태산(284m) 끝자락인 평남리에서 적성강과 임실군 오수면에서 흘러온 오수천이 합수되면서 여기서부터 섬진강으로 불린다. 섬진강을 끼고 적성 평야가 펼쳐지는데, 동쪽으로는 순창군의 3대 명산인 채계산(342m)이 남원시 대강면과 경계를 이룬다. 남쪽은 섬진강이 순창군 유등면과 경계를 가르고, 서쪽은 순창군 인계면 중산리 대부산(大釜山, 183m)이 적성면 지북리와 경계를 이룬다. 적성면은 섬진강이 중심부를 흐르는 고장으로서 용수가 풍부하고 곡창 지대로 유명한데, 적성면 평남리 어은정(漁隱亭) 앞 순창군 광역 상수원 취수장(2005년 12월)이 완공되어 순창군 내 마시는 물로 이용되고 있다. 시설원예(딸기, 토마토, 오이, 버섯, 두릅 등)가 발달해 있다.
♤ 전북 순창군 적성면 평남리(平南里)
적성면 평남리는 서북부에 두류봉이 솟아 있으며, 100~300m의 구릉성 산지를 이룬다. 섬진강과 오수천이 구남 마을 바로 앞에서 합류하여 서남쪽으로 흐르는 곳에 어은정이 있다. 풍수 형국을 보면,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북쪽의 용궐산(지명 변경 전 용골산)은 용이 승천하려는 형상이고, 남쪽 무량산은 물산을 헤아릴 수 없음을 뜻하지만 선조들은 예부터 거북 형상, 즉 거북 구(龜), 큰산 악(岳)을 쓰는 구악(龜岳)으로 불러 왔다. 구남 마을은 금거북이 남수(湳水)로 들어가는 금구남수(金龜湳水) 형상이다. 거북은 수명이 길고 물에서도 뭍에서도 살기 때문에 신성한 존재로 여겨졌다. 특히 금거북은 하늘에 사는 영물로 천지의 기운을 흡수해서 만물을 낳는다고 한다. 거북이 땅속의 기운을 더욱 힘차게 빨아들이므로 집터로 더 바랄 것이 없다. 남수란 서하수(西河水)의 의미로 동계천과 섬진강 원류가 합수되는 지점이자, 성수지맥이 섬진강으로 숨어드는 어은정 앞을 칭한다. 원래의 남수는 중국 산시성(山西省)에 있는 시냇물을 상징하는 것으로, 거북이 남수에 내린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 279.4m봉
농막이 있는 회임도를 건너 선답자 띠지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279.4m 바위봉으로 오르며, 왼쪽으로 오수천이 흐르는 평남리 들판과 체계산/책여산(376.5m)이 보이고, 그 오른쪽 뒤편으로 천황지맥의 문덕산-고리봉이 보인다.
♤ 구남봉(284.3m)/ 4등삼각점(순창 422/ 1995 복구)/ 동계면 구미리 - 적성면 평남리
가시덤불을 헤치고 정상에 올라서면 선답자님들 띠지와 준희선생님 산패, 독도대선배님 코팅지 산패, 4등삼각점이 있다. 구미리와 평남리를 잇는 임도로 내려선다.
낮은 봉우리들이지만 길이 워낙 사나워 잡목과 가시에 할퀴고 뜯기고, 찢기고 만만하지가 않습니다.
♤ 286.3m봉/ 옥녀봉/ 산불감시초소/ 순창군(동계면 → 적성면)
비포장 임도고개를 건너 소나무재선충 나무주사지역 안내도로 오른다. 선답자님들 띠지와 산너머대장님 산패가 죽은 참나무에 매어 있다. 평남리임도로 내려서서 임도를 따라 최악의 잡목지인 286.3m봉을 우회하면 편하겠지만 제선충 방지 현수막 뒤로 길도 없는 급오르막을 가파르게 오른다. 정상에 조망은 없지만 여기부터 성수지맥이 동계면과 적성면의 면계를 벗어나 완전하게 적성면 관내로 접어드는 봉우리이다. 오른쪽에 전망이 있는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내려설 때가 더 심하다. 가시덩굴을 헤치고 고갯마루 임도로 약 600m 구간은 성수지맥 최악의 잡목구간으로 꼽는 곳이다. 고로 286.3m봉을 왕복하는 경우도 있다. 내려서서 마지막 봉우리 239.8m봉으로 향하여 절개지를 치고 오른다.
♤ 239.8m봉/ 성수지맥 끝봉
임도에서 왼쪽 절개지로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성수지맥의 마지막 봉에 오른다. 10분 정도 오르면 선답자님들 띠지와 준희선생님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다. 지맥은 좌틀이다. 섬진강을 바라보며 섬진강과 오수천이 합수되는 날머리 방향으로 하산한다. 합수점 방향 정면으로 체계산이 바라보인다.
어은정에서 산줄기는 끝이 나고, 반바지운영자님 성수지맥 종착점 코팅지 산패를 확인하고 전망대에서 섬진강 제방길도로(구남제)를 따라 합수점을 향해 약 300m를 이동합니다.
♤ 어은정(漁隱亭)/ 영하정/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132호/ 육각정/ 순창군 적성면 평남리 구남마을
순창군 적성면 평남리 구남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의 누정이다. 어은정의 누마루에 올라서면 물 흐름이 아름다운 섬진강이 내려다보인다. 이렇듯 수려한 섬진강의 조망처로 안성맞춤인 언덕에 자리한 어은정 주위에는 수십 그루의 배롱나무 고목이 서 있어 장관을 이룬다.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과 함께 왜적을 무찌른 양홍(楊洪)의 막내아들 양사형(楊士衡, 1547~1599)이 지은 어은정이 성수지맥 끝자락인 적성면 평남리 귀남마을 섬진강 변에 있다. 어은정을 지은 양사형은 자가 계평(季平), 호는 영하정(暎霞亭)·어은(漁隱)이다. 어은은 어지러운 세상을 등지고 낙향한 선비들이 내수어(內水魚)가 많이 나는 이곳 섬진강 지역에서 낚시를 즐기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어은정은 양사형이 1567년(명종 22) 혼인을 한 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에서 재 너머인 평남리 구남 마을로 분가하면서 세운 것이다. 처음에는 영하정이라 하였는데, 여러 차례 중건되는 과정에서 양사형의 호를 따서 어은정으로 바뀌었다. 1892년(고종 29) 1차 중건에 이어 현재의 건물은 1919년에 고쳐 지은 것이다. 1988년 어은정 남원양공기적비를 어은정 담장 안에 세웠고, 1991년 기와 및 목재를 보수하였다. 남원 양씨 어은공파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 호남의 젖줄기인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서쪽의 용궐산은 용이 승천하는 형상이다. 반면 무량산은 거북이가 섬진강으로 들어가다 꼬리만 보이는 형상이다. 이 때문에 구미리 앞에는 거북 바위가 있고, 만수탄에는 구암(龜岩) 양배(楊培)의 덕망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해 1818년에 세운 구암정(龜岩亭)이 있다.
성수지맥을 종료합니다. 이제 밖으로 빠져나가는 마지막 고개를 넘어야 하네요. 대중교통이 나빠 빠져나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 합수점/ 구남교/ 오수천-섬진강
어은정에서 섬진강 제방길(구남제)을 따라 합수처로 간다. 논가운데 책여산이 있고, 그 오른쪽으로 체계산 송대봉-당재-금돼지굴봉 능선을 바라보며 합수점인 구남교로 향한다. 섬진강(우)과 오수천(좌)이 합류하는 구남교를 건너 합수처 뒤로 화산과 출렁다리를 바라보며 성수지맥을 마친다. 합수점에서 1.2km 거리인 괴정, 평남정류장으로 간다. 장수~담양을 잇는 13번 도로까지 나와야 동계에서 남원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 동계에서 남원 가는 버스 시간은 12:55, 15:45, 18:50 이다.
♤ 체계산(376.5m) 출렁다리
순창군 적성면 괴정리 채계산은 순창 적성면과 남원시 대강면 일원에 자리하고 있는 산이다. 채계산은 회문산, 강천산과 더불어 순창의 3대 명산 중 하나로 일면 화산이나 적성산과 책여산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바위가 책을 쌓은 것처럼 보인다 하여 책여산, 적성강변 임동의 매미 터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마치 비녀를 꽂은 여인이 누워서 달을 보며 창을 읊는 모습인 월하미인(月下美人)의 형상을 하였다고 하여 채계산이라 불리고, 적성강을 품고 있어 적성산으로도 불린다. 채계산에는 우리나라 사람이 3년 동안 먹을 것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는데, 현대로 들어와 산 전체가 규석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채계산 출렁다리는 24번국도 사이에 적성 채계산과 동계 채계산으로 나뉘어지는 채계산을 하나로 이어주는 역할을 하며 길이는 270m이고 높이는 최고 75~90m이다. 고려말 최영 장군이 무술을 익히며 그의 장인인 오자치가 살던 장수군 산서면 치마대에서 화살을 날린 후 바로 말을 달려 이곳에 도착했다. 하지만 화살이 날아오지 않아 화살보다 늦게 도착했다고 판단하여 이곳에서 불호령과 함께 단칼에 말의 목을 베어 버리고 말았다. 그 순간 화살이 바로 이 바위에 꽂힌 것을 뒤늦게 알고 자신의 경솔한 행동에 대해 한숨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홍성 용봉산 아래에도 최영장군 활터가 있는데 유사한 이야기이다. 채계산에는 적성원님의 부인과 금돼지 전설이 전해오는 금돼지굴이 있다. 새로 부임한 원님의 부인이 자주 실종되자 지혜있는 원님이 부인 치마 허리에 명주실을 달아 두었다. 얼마 후 갑자기 일진광풍이 일면서 정신이 혼미해진 원님이 한참 후에 깨어보니 부인이 없어져서 명주실로 행방을 찾아보니 채계산 굴쪽이었다. 수색대와 같이 올라가 보니 금돼지가 원님의 부인을 희롱하고 있었다. 부인이 금돼지에게 가장 싫어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본즉 사슴가죽이라 하자 원님은 사슴가죽으로 된 장롱 열쇠끝을 몰래 전해주어 그 부인이 녹비를 금돼지의 코에 넣었더니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 오수천(獒樹川)
오수천은 장수군 팔공산에서 동남으로 분기한 천황지맥과 서남으로 분기한 성수지맥에서 물줄기가 모여 흐르는 하천으로 유역면적은 약 370.95㎢에서 374.3㎢이며 길이는 공식 36km이나 실거리는 40여 km에 이른다. 오수천으로 유입되는 주요 하천으로는 동화천, 사계천, 군평천, 산서면 태산과 개동산 북봉 골짜기에서 발원해서 성수면에서 내려오는 둔남천을 합치고 오수면에서 율천, 삼계면의 어은천, 후곡천, 오동천 등을 합치고 행정구역상 남원시 보절면 덕과면 사매면, 장수군 산서면, 임실군 지사면 성수면 오수면 삼계면, 순창군 동계면 등을 거쳐 최종 적성면 평남리에서 섬진강 본류와 합수하여 적성진으로 흘러든다. 오수천 역시 남원의 요천처럼 충적 평야를 형성해서 실제로 산이 많은 장수군과 임실군에서도 산서면과 오수면 일대는 오히려 평탄한 편이다. 그런 탓인지 오수면은 임실군에서 임실읍 다음으로도 인구가 많은 지역이고, 시가지도 제법 넓게 형성되어 있는 편이다. 결론적으로 오수천이 임실군 동부 지역에서는 중요한 하천이라고 할 수도 있다. 오수천은 전북에서 가장 긴 지방 하천이었으며, 2023년 말에 국가하천으로 승격됨에 따라 하천 정비 및 관리가 보다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예정이다. 용성지에는 발원지를 개치(介峙)라 소개하고 있다.

첫댓글 성수지맥 원샷 완주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매봉전 군부대 사진으로 경찰조사를 받고 기소까지 되고 기억에 남습니다
날머리가 유난히 아름다운 섬진강입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화이팅입니다 ~~~
35사단에서요? 저는 개미새끼 한마리 안 보이던데~
화이팅................................................................................................!
감사합니다~ 선배님도 매일매일 화이팅 하세요.^^
퐁라라운영자님
2박3일에 걸친 성수지맥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지맥 어느곳 하나 쉬운 산줄기는 없으며 각기 특색을 나타냅니다.
특히 여름 잡목기에는 결코 만만치 않은 곳이기도 하네요.
산길에서 비박 즐기는 모습은 천상 산꾼입니다.
멋진 발자취를 남기시느라 수고많으셨고, 화이팅!입니다.
방장님!
이사하며 집에 컴터가 고장났습니다.
키보드판을 바꿔야 되는데 다이소에서 5,000원에 사기는 그렇고... 조금 기다리고 있어요.
성수지맥은 천황보다 전반적으로 부드러웠구요.
마지막 옥녀봉에서 임도로 내려서는 가시잡목 구간도 그다지 어렵지 않았습니다.
제가 띠지도 정비하고, 전지가위로 가지 잡목도 치고, 청미래넝쿨도 적지않게 제거했어요.
올여름엔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성수지맥 장군봉에서 대운재로 가며 상이암으로 오르는 임도를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왕건도 이성계도 저 길을 통해서 상이암으로 갔을까?
대운재는 아마도 동학도들도 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정읍, 임실에서 진안 무주를 거쳐 영동 옥천, 보은으로 이동했을테니깐요.
마지막으로 합수점에서 약 10여분 걸어나가니 남원과 오수로 가는 버스가 자주 있었어요.
시간만 늦지 않는다면 대중교통 편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