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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전라남도 진도군의 진도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일자 : 2022년 04월 15일 (금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아침까지 흐리고 구름이 껴 있었으나 오전부터 맑고 화창했으며 강한 바람이 불어 시원함를 느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상 10도에서 영상 16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굴포재(18번 진도대로 2차선 포장도로)-시멘트 포장도로-비포장임도-잡목지대 통과-양봉장과 비닐하우스-보리밭 경작지-능선진입-연대산(150.9봉, 이정판, 조도415 삼각점)-무명묘지-
무명묘지1-묘지1-비포장임도-시멘트 포장도로-농막(녹슨 콘테이너 박스)-묵은밭 경작지-보리밭 경작지-전주이공 부부묘지-대파밭 경작지-묘지지대-밭 경작지-신동삼거리(18번 진도대로
2차선 포장도로와 임회신동길 2차선 포장도로)-거대한 공사장-밭 경작지-남평문공 묘지들-가시잡목등로-김해김공 묘지들-능선진입-72.7 무명봉(노랑과 파랑 물탱크2)-밭 경작지-비포장임도-
밭경작지-시멘트 포장도로-잡목 능선진입-월출산(110봉, 정상판)-무명안부-102 관목의 참나무봉-바위암릉-희여산 갈림삼거리-희여산(269.3봉, 정상판, 돌탑)-갈림삼거리 복귀-바위암릉-
잡목능선-돌담등로-바위암릉-암벽 탈출-무명안부-185.4 무명봉(띠지들)-자연화 묘지들-무명묘지-녹슨 철조망-비포장임도-가시잡목등로-길주의 지점(녹슨철조망과 띠지들, 좌측 잡목능선)-
무명묘지-비포장임도-석성삼거리(백동재, 18번 진도대로 2차선 포장도로와 남도석성로 2차선 포장도로, 백동무궁화동산과 세월호기억의숲, 남도진성 표지석, 육각정자 2)-동백나무 조림지-
비포장임도-능선진입-무명묘지-잡목능선진입-돌담등로-134.7봉(이정판)-동백나무 등로-김해김공 부부묘지-묘지와 잡풀등로-비포장임도-남두재(남도석성로 2차선 포장도로, 다도해해상
국립공원 안내판과 표지판)-초지 경작지-능선진입-바위암릉-전망바위-159.3 무명봉(띠지들)-176.3 삼각점봉(176.3봉, 이정판, 조도304 삼각점, 작은돌탑)-바위암릉-무명안부-잡풀 묘지지대-
바위암릉과 전망바위-바위암릉-정리된 뚜렷한 등로-앞산(236.5봉, 정상판, 작은돌탑)-바위암봉-바위암릉-바위무명봉-잡목등로-한복산(231.6봉, 정상판)-바위암릉과 암벽 하산-급경사 내리막
바위너덜-암벽 통과-돌담등로-비포장임도-돌담과 잡풀등로-돌담 묘지-바위암릉-129.5봉(이정판)-바위암벽-급경사 내리막 등로-지독한 잡목등로-묘지지대-전주최공 묘지-18번 진도대로 2차선
포장도로-서망고개(18번 진도대로 2차선 포장도로와 시멘트 포장도로)-묵은 밭경작지-비포장임도-능선진입-무명묘지-지독한 잡목등로-대나무 등로-비포장임도-가파른 오르막 바위와
잡목등로-동백나무 터널등로-173.1봉(173봉 이정판)-동백나무 터멀등로-잡목등로-바위너덜등로-93.2봉(이정판)-급경사 하산등로-백미도 앞 남해바다-진도지맥 산행종료-서망항-산행종료
산행거리 : 13.72 Km (굴포재에서 서망항까지 접속구간 포함하여 산행)
지맥산행 : 12.58 Km (굴포재에서 진도지맥 날머리인 만해바다 해안바위까지)
접속구간 : 01.14 Km (진도지맥 날머리인 남해바다 해안바위에서 서망항 주차장까지)
산행트랙 :
산행시간 : 07간 21분 (05시 41분부터 13시 02분까지 접속구간 포함한 산행시간)
교통 및 숙박편 : 갈때 - 4월 14일 21시 00분 옆지기가 준비해 준 김밥과 어묵국 및 과일을 챙겨 서망항 주차장을 향해 집에서 애마로 출발
01시 30분 진도군 임회면 서망항 주차장에 도착 해 차박
04시 30분 기상해 준비한 김밥과 어묵국으로 아침해결
05시 00분 예약한 택시로 산행 들머리인 줄포재를 향해 출발 (임회택시 010-3838-1167, 20,000.-원)
05시 15분 줄포재에 도착을 해 반대방향으로 약 20여분 반대 방향으로 올랐다 내려 옴
05시 41분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정상적인 진도지맥 마지막 구간 산행 시작
올때 - 13시 02분 서망항 주차장에 도착 해 배낭 정리하고 곧바로 애마를 몰아 황산면사무소로 출발
14시 30분 내일 진행을 해야 할 화원지맥 도로 구간 확인
16시 40분 화원택시로 내일 새벽 예약하고 진도로 들어 가 하룻 밤 숙박 (모텔 30,000.-원과 저녁식대 14,000.-원)
진도지맥이란 ???
진도지맥은 해남반도와 진도를 잇는 진도대교에서 시작해 진도를 남북으로 관통하며 남쪽 끝 서망항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로서 망금산(112m), 도암산(122m), 금골산(196m), 고두산(252.5m), 금골산(198m), 고두산(252.2m), 챙재, 철천산(161.2m), 상봉(266m), 출일봉(226.7m), 첨철산(485.2m), 수리봉(389m), 여귀산(458.7m), 연대산(148.8m), 월출산(110m), 희여산(269m), 한복산(232m)를 지나 백도앞 갯바위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7 Km인 산줄기이다.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올라 온 후 1년이 지나 다시 찾은 진도에서 가시잡목으로 고생은 했지만 고운 추억을 남겼던 진도지맥에서의 아름다웠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이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아직 정확하게 내려진 올바른 해답이 없기 때문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진도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전남 진도군과 그 주변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 및 네이버의 지식백과 그리고 다음의 백과사전, 산림청, 한국관광공사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이번과 거의 비슷한 시기인 지난 해 4월 이곳 진도로 내려 와 진도지맥을 두구간으로 나눠 마무리한 후 올라가려고 첫날 산행을 조금 길게 진행을 해 일반적인 구간나누기의 날머리인 왕무덤재를 지나 붉은재까지 완주하고 진도읍으로 들어가 하룻밤 묵게 되었는데 피곤했었는지 아니면 알람에 문제가 있었는지 계획된 시간보다 훨씬 늦게 일어 나 어짜피 하루에 남아 있는 구간 모두를 진행하기 어려워 보이기에 오후 이른 시간에 굴포재에서 일찍 산행을 마치고 귀가를 하게 되었는데 그 굴포재를 다시 찾는데 꼬박 1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이번에는 진도에서 남아 있는 한구간을 마무리하고 해남으로 들어가 진행하고 있는 화원지맥 마지막 두구간을 모두 완주한 후 올라갈 계획으로 3일간 산행 준비를 하다 보니 짐이 많아지고 날씨가 많이 풀렸기에 옆지기가 준비해 준 아침 식사까지 애마에 실고 진도지맥 마지막 날머리인 서망항으로 전날 저녁 평소보다 조금 일찍 내려가니 새벽 1시 30여분을 지나고 있어 새벽 4시 30분에 알람을 맞추고 오랫만에 침낭을 이용해 차박을 실시한다.
선답자들의 산행후기를 살펴보니 8시간 정도면 완주가 가능할 것 같아 여명이 밝아오는 시간에 산행을 시작하려고 새벽 5시에 택시를 예약하고 차박을 하다 보니 마음 편히 생각보다 잘 잔듯 느껴진다.
오늘부터 일요일까지 3일간 무리하지 않고 아프거나 다치지 않게 계획된 모든 산행을 마무리하고 기분 좋게 귀가할 수 있기를 희망해 본 시간이지만 언제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기에 긴장의 연속이기도 하다.
오랫만에 다시 찾은 굴포재에서 어둠속에 약간의 헤프닝이 있었지만 금새 정상적인 등로를 따라 연대산을 넘고 비산비야의 마루금을 따라 신동삼거리를 통과하니 갑자기 거대한 공사장이 앞을 가로막지만 진행에 어려움을 주지는 않는다.
약간의 가시잡목들이 발목을 잡지만 그동안 많은 선답자들이 지나갔는지 예상과 달리 등로는 나쁘지 않아 정상적인 속도를 내다보니 능선 상 월출산 지나 바위암릉으로 이뤄진 희여산으로 오르니 일망무제로 펼쳐진 멋진 풍경과 조망들이 발목을 잡으며 한동안 머물며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겨 본다.
먼저 지난해 힘들게 넘었던 여귀산과 오늘 걸어 만났던 월출산과 연대봉 방향인 동쪽을 살펴보니 사진 좌측으로 높게 솟아 있는 여귀산이 오늘 하루 길라잡이 노릇을 해 주고 그 우측으로 굴포재 지나 연대산에서 이곳으로 이어지는 능선 우측 앞으로 월출봉도 보인다.
그 월출봉 뒷쪽으로는 아담한 굴포항이 내려다 보이는데 저 굴포항은 어둠속에 서망항에서 굴포재로 이동을 하면서 지났던 곳이기에 더욱 새롭게 다가온다.
바위암릉으로 이뤄진 희여산에서 아름다운 풍경들과 조망들을 즐기고 조심해 내려가며 진행 방향인 남서 방향을 살펴보니 드디어 저 멀리 한복산 넘어 서망항이 있는 진도지맥 날머리가 살짝 보이기 시작하고 사진에 담으며 바위암릉을 내려가니 잡목들이 태클을 걸지만 진행이 어려울 정도는 아니다.
그렇게 한동안 잡목숲을 헤치며 진행하니 갑자기 하늘이 열리면서 석성삼거리 넘어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조성된 백동 무궁화 동산의 세월호 기억의 숲을 지나면서 착잡한 마음을 가늠하기 어려운데 하루라도 빨리 그 아픈 상처가 아물 수 있기를 희망해 보는 것이 전부이다.
이어지는 잡목숲을 지나 남두재를 통과하고 앞산 넘어 한복산을 지나자마자 남서 방향으로 펼쳐진 연두빛 129.5봉과 173.1봉이 특이한 날개 형상으로 이어지고 그 우측 옆으로는 진도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고 들려야 할 서망항이 드디어 아름답게 내려다 보이기 시작해 고단하고 힘들었던 시간들이 눈녹듯 사라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드디어 1년 넘게 세구간으로 나눠 마무리를 하는 진도지맥이란 이름으로 걸었던 진도섬의 산줄기 잇기 산행의 마지막 종착점에 도착을 해 생각보다 강하게 흐르는 해류의 흐름으로 손을 바닷물에 담그지는 못하였지만 앞에 보이는 백미도와 그 좌측 뒤로 보이는 각거도를 사진에 담으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벅찬 희열속에 빠져 본다.
누가 시키것도 어니고 스스로 좋아 하는 산행이지만 날머리에 서면서 늘 스스로에게 던졌던 왜 이런 산행을 이어가고 무엇을 위해 그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지에 대한 답변은 오늘도 다음으로 미루고 그저 가슴속에서 느껴지는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시간이기에 다시 그 고통과 힘듦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나는지도 모르겠지만 얼마남지 않은 지맥 산행에 대한 아쉬움도 조금씩 커져만 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서망항에 도착을 해 3시간 정도 생각보다 푹 잠을 자고 옆지기가 정성스럽게 준비해 준 아침식사를 즐기고 커피까지 마신 후 예약한 택시를 타고 1년만에 상만리와 굴포리의 경계인 굴포재에 도착을 하니 이제 새벽 5시 15분이 지나는데 아직도 세상은 검은 암흑속에 빠져 있어 조금 더 기다려 보지만 여명이 밝아 오려면 시간이 필요할 듯 해 헤드렌턴 불빛을 밝히며 산행을 시작하는데 오랫만에 들려서 그런지 방향 감각을 잃고 연대산 방향인 서쪽이 아닌 지난해 어렵게 내려 온 182.7봉이 있는 동쪽 방향으로 거칠게 올라 182.7봉에 거의 도착할쯤 지도와 트랙을 확인해 보며 연대산은 언제 나타날 것인지 확인하는 순간 뜨억하는 기분인데 지금까지 반대 방향으로 힘들게 올라 왔던 지점이다.
스스로에게 자책해 봐야 의미가 없음을 알기에 오늘 하루 멀리 진도까지 내려 와 조금 더 운동을 할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을 하니 견딜만 하고 다시 굴포재에 도착을 하니 새벽 5시 42분이 지나면서 여명이 밝아 와 헤드렌턴을 배낭속에 넣고 다시 심기 일전을 해 보는 18번 진도대로 2차선 포장도로이기에 사진 몇장 남기고 서쪽 방향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정상적으로 진행을 다시 시작하니 어둠속에 30여분 간 몸을 데우는 시간으로는 적당했던 거리였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우측으로는 푸른 초지지대가 펼쳐지고 좌측으로는 야생의 노란 유채꽃이 피어 있는데 그곳에는 출입을 금지하는 철사가 설치되어 있다.
잠시 후 밭경작지가 끝이나고 시멘트 포장도로는 비포장임도로 바뀌면서 능선으로 진입하는데 여전히 넓은 비포장임도가 이어지고 있어 편안하게 진행하는 시간이다.
잠시 후 비포장임도가 좌측으로 휘어지는 우측 잡목 능선으로 들어가니 금새 그 잡목능선이 끝이나고 넓은 공터에 벌이 보이지 않는 벌통들과 우측으로 비닐하우스가 보이는데 빈 벌통을 지키는 강아지 한마리가 이방인의 출현에 놀라 울부짖기 시작해 달래주며 그 비닐하우스 뒷쪽으로 돌아 산행을 이어간다.
이제 서서히 어둠의 사라지고 세상이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하는 시간에 묵은 밭경작지를 지나 능선으로 들어가니 관목의 동백나무들과 잡목들이 우거져 다시 어둠이 살아나기 시작해 불빛을 비추며 힘들게 진행한다.
잠시 그 우거진 관목숲을 빠져 나가니 분홍빛 진달래꽃이 아직도 남아 미소짓고 잠시 뒤돌아 보니 어둠속에 어이없이 올랐다 내려 온 182.7봉이 바로 지척으로 올려다 보이는데 그 능선을 가득 채우는 연두빛 산하와 하얀 산벗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사진에 담고 잠시 더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삼각점이 박혀있고 준희님의 정상판이 걸려있는 150.9미터의 연대산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담아 본다.
연대산(150.9m, 조도415 삼각점)에 대한 자료는 보이지 않는데 다만 이곳 정상에 있던 연대지에 대한 자료가 눈에 들어 와 인용을 해 본다.
연대지는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백동리 연대산에 있는 조선시대의 연대(煙臺)터로서 조선시대의 연대(煙臺)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정치와 군사적으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통신수단이고 주로 구릉이나 해변지역에 설치하고 봉수대는 산 정상에 설치하였는데 그런 연대가 있었던 터이다.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백동리 신동마을 북동쪽 100m 지점의 연대산 정상부에 있고 연대산 동쪽은 상굴포와 짝벌 사이에 형성된 해안 지역이며 북동쪽으로는 여귀산 봉수대가 있다.
자연석을 이용하여 연대를 축조하였는데 현재는 붕괴되어 석재만 산재해 있는 상태이고 현존하는 석축의 흔적으로 보아 원형 연대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지름은 6.8∼7m 정도이다.
자료를 읽고 산행을 진행하면서 유심히 살펴봤지만 산재된 석재도 잘 발견할 수 없어 실제 연대지가 있었는지조차 헷깔리는 연대산이었다.
연대산 정상 주변으로 잡목들이 자라면서 조망이 상당히 제한 받고 있는데 다행스럽게 서쪽으로 약간의 풍경이 눈에 들어 와 살펴보니 좌측으로 259미터의 질매산과 그 우측으로 잠시 후 만나야 할 월출산과 희여산 줄기 지나 18번 진도대로 상 석성삼거리에 있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하자는 백동 무궁화 동산도 살짝 보이기 시작해 몇장의 사진으로 남겨 본다.
사진에 담으며 살펴보니 질매봉 우측 뒤로는 앞산과 한복산으로 이어지는 진도지맥 마루금이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어 몇번인가 지도로 확인해 보니 마루금은 연대산 우측 위로 돌아 우측의 희연산에서 백동 무궁화동산 지나 좌측의 앞산과 한복산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질매봉(259m)은 희여산(269m)에서 월출산(110m), 질매봉(258m), 연대봉(148.8m) 지나 여귀산(458.7m)으로 이어지는 산릉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에 마을들이 입지한 위에 솟아 있는 봉우리로서 진도지맥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산행을 하면서 계속 좌측으로 솟아 따라오듯 서 있는 봉우리이다.
연대산 지나 북서 방향으로 평이하게 이어지는 희미한 등로를 찾아 전진하니 무명묘지를 만나고 잡목 사이로 조금 더 뚜렷한 등로를 따라 생각보다 편안하게 걸어가니 다시 파란 잡풀들이 새싹들을 틔우는 무명묘지 한기 넘어 능선을 빠져 나간다.
그 능선을 빠져 나가자마자 눈 앞으로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 한기 넘어 푸르게 변해가는 밭경작지와 작은 신동저수지 우측으로 비산비야로 이어지는 진도지맥 마루금이 펼쳐지고 그 뒤 저 멀리 월출산 지나 암봉으로 이뤄진 희여산 능선에는 겨울 외투를 벗고 알록달록한 봄빛과 새생명을 잉태한 듯한 연두빛이 과하지 않게 산객의 가슴을 울리기 시작한다.
진행해야 할 마루금을 확인하고 천천히 그 묘지를 지나 주위 풍경들을 사진에 담으며 산행을 이어가는데 초반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가시잡목으로 인한 고통없이 아직까지는 즐겨보는 시간이다.
세번째 만나는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를 지나 내려가며 살펴보니 원 마루금은 밭경작지 우측 위로 이어지는 나즈막한 능선이지만 보기에도 마루금을 따라 진행하기 어려울 듯 보여 편안하게 조금 더 내려가 대파밭 옆으로 나 있는 비포장임도를 따라 전진하니 농로의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가니 진행 방향으로 녹슨 콘테이너 박스가 보이고 그 뒷쪽으로 원마루금이 보이는데 잡목들이 우거져 어짜피 그 뒤로 나 있는 밭경작지를 따라 진행을 해야 하는데 농사철이 되면서 밭경작지로 진행하는 것도 어려워 보인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콘테이너 박스까지 진행하니 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는지 녹이 쓸어있고 잡풀들이 사방을 에워싸듯 자라고 있어 흉물스럽게 다가온다.
그 콘테이너 박스 지나 북은 밭경작지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노란 유채꽃이 밭가장자리를 따라 예쁘게 피어 있고 그곳 지나 밭둑을 넘으니 드넓은 파란 초지지대가 펼쳐지는데 보리같기도 하고 가축 사료용 초지같기도 한데 어느것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초지지대 좌측 가장자리를 타고 오르니 전주이공 부부묘지가 나타나고 언덕을 넘으니 채소 수확이 끝난 드넓은 밭경적지 넘어 저 멀리 잠시 후 만나야 할 월출산과 희여산으로 이어지는 진도지맥 마루금이 환상의 풍경으로 유혹하고 있어 몇장의 사진에 담아 본다.
진행 방향과 지나온 마루금을 확인하고 조금 더 걸어 전진하며 등로 우측을 보니 드넓게 펼쳐진 파란 초지지대 넘어 안산과 그 뒤로 머리에 구름을 쓰고 있는 458.4미터의 여귀산이 보이는데 진도지맥 산행을 진행하기 전까지만 해도 점찰산과 동석산 정도만 유명세를 타고 알았는데 저 여귀산 역시 환상의 풍경과 조망이 펼쳐진 곳이기에 뇌리에 깊이 박혀 있는 산이 되어 있는 곳이다.
여귀산(458.4m, 산불감시 카메라, 돌탑, 정상석)은 전라남도 진도군의 남동부인 임회면 상만리와 용호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459m이고 남동부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규모가 커서 임회면 동북부를 거의 차지한다.
임회천이 발원하고 18번 국도가 남쪽 산록을 지나며 남쪽에서 보면 산의 모습이 단정하게 차려입은 선녀가 가야금을 타는 형상이라 하여 옥녀탄금형의 한다.
상만리 비자나무숲에는 비자나무(천연기념물 제111호)가 있는데 수령이 무려 100여 년에 달하는 고목이고 정상부는 바위산으로 오르기 힘들며 옛날 봉화대가 있어 북쪽의 첨찰산과 남쪽의 관매도의 봉수와 통했다.
조선팔도지도(전라도)에 봉수가 묘사되어 있고 주변에 사구곶봉(沙仇串烽)과 굴포봉(屈浦烽) 등이 남해안에 잘 보이고 광여도 등에 명칭 변경 없이 모두 표기되어 있으며 세종실록지리지에 여귀산의 봉화가 나온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남 30리에 있다 라고 기재되고 있고 대동지지에 여귀산은 남 30리에 있다고 기록하였으며 진도군읍지에 여귀산이 부(府)의 남쪽 30리에 있고 첨찰산에서 내려온 산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조선지지자료에도 지명 그대로 표기되어 있다.
옛날 진도에 명당이 있다는 말을 듣고 배로 굴포를 지나던 지관이 여귀산을 바라보니 서남쪽에 명당혈이 뭉쳐 있으므로 배에서 내려 장군바위를 찾아왔는데 이미 묘가 있어 탄식하며 돌아갔다는 전설이 있다.
아직도 임회면 여귀산 자락에는 복토망월과 비봉포란, 보검장갑, 호승예불, 비룡상천, 천녀등공 등 명당이 많다고 한다.
등로 우측인 동쪽 방향으로 구름속에 머리를 숨기고 있는 여귀산을 살펴보고 대파밭 사이로 나 있는 좁은 밭둑을 따라 진행하니 이제 등로 우측 앞인 북쪽 방향으로 석교리 마을 지나 부용산과 지력산이 여전히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진행 방향인 북서서 방향으로는 월출산과 희여산이 조금 더 가깝게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더 걸어가며 이번에는 등로 좌측인 서쪽을 살펴보니 백동리 마을 뒤 좌측의 질매봉과 우측의 희여산 사이로 18번 진도대로 2차선 포장도로가 달려가고 그 끝자락 저 멀리 희연산과 백동 무궁화동산 지나 올라야 할 앞산과 한복산으로 이어지는 진도지맥 끝자락에 솟아 있는 산들도 살짝 머리를 내밀기 시작해 사진에 담으며 진행을 이어간다.
밭경작지 사이로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걸어가며 사방팔방으로 펼쳐진 이국적인 진도의 풍경과 조망들을 사진에 담고 그 이름들을 불러주며 걸어가니 다시 밭경작지 가운데에 몇기의 잡풀이 수북한 묘지들을 지나 고추묘목들을 파종한 거대한 비닐하우스 단지를 통과하니 18번 진도대로 2차선 포장도로와 임회신동길 2차선 포장도로가 분기하는 신동삼거리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신동(서망과 팽목, 굴포로 가는 18번 포장도로 갈림삼거리)은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백동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 곳으로 백동리는 백야동과 만세동 및 신동리를 병합하면서 백야와 신동의 이름을 따 백동리라 하였다.
백동리는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있는 리로서 구릉성 평지에 자리한 마을이고 하천이 흘러 논농사가 주로 이루어지는 곳이며 백야동, 만세동, 신동리를 병합하면서 백야와 신동의 이름을 따 백동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백동, 문텅골, 서당골, 병풍바웃골, 소엎진바웃골마을 등이 있는데 백동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이고 문텅골마을은 물탕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서당골마을은 서당이 있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고 병풍바웃골마을은 병풍처럼 생긴 큰 바위가 있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며 소엎진바웃골마을은 소가 엎드린 것처럼 생긴 바위가 있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신동삼거리를 출발하기 전 도로 옆에 세워진 고산둑 윤고산사당이란 표지판이 눈에 들어 와 고산둑이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 찾아 보니 방조제의 둑을 말하는데 고산이 축조를 했다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고산 윤선도는 기근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위해 1650년 굴포리 지역에 높이 3m, 길이 380m의 방조제를 쌓아 100ha의 농지를 조성한 다음 마을 주민들에게 나눠주고 농사를 짓게 했는데 이후 진도 굴포, 남선, 백동, 신동 등 4개 마을 주민들은 이 곳에 사당을 세우고 조상 대대로 매년 정월 대보름에 은공을 기리고 풍년과 풍어를 기원하는 감사제와 당제를 지내왔다.
고산 윤선도는 60세(1646, 인조 24)때 진도에 유배되어 있던 백강 이경여와 시를 주고받은 것으로 보아 아마 이 시기에 진도에 잠시 머물면서 간척을 한 것이 아니었나 추정하고 있는데 고산은 이곳 굴포리에 머물면서 경주설씨를 만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고산이 이곳에 원둑(제방)을 쌓으면서 생긴 일화(전설)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 고산은 이곳에 제방을 쌓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으나 그때마다 무너지고 쌓으면 또다시 무너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로 인해 깊은 시름에 빠져 있었는데 어느 날 제방을 쌓고 있는 곳으로 큰 구렁이가 기어가고 있는 꿈을 꾸게 되었다.
고산은 이를 기이하게 여기고 새벽녘 사립문을 열고 나가 제방을 쌓는 곳을 보니 꿈에 보았던 구렁이가 기어가던 자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려있었다.
고산은 이를 이상히 생각하고 구렁이가 지나간 자리에 제방을 쌓으라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여 그곳에 뱀의 지나간 형상대로 석축을 쌓도록 하였는데 그 이후부터는 둑이 무너지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곳의 지형이나 조류의 흐름을 이용하여 쌓은 결과 무너지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인이자 정치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수리에도 일가견이 있었던 고산이 아닌가 생각하며 높은 콘크리트 옹벽을 올라가니 갑자기 드넓은 공사장이 펼쳐지는데 채석장 같지는 않는데 그 용도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 공사장 상단부로 올라 여귀산 방향인 동쪽으로 조망을 살피고 곧바로 진행을 이어가니 묘지들이 줄지어 나타나기 시작한다.
공사장을 지나 노란 야생의 유채꽃이 피어 있는 묵은 밭경작지를 통과하니 남평문씨 묘지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가시덤불지대를 넘어 국가유공자이자 중요 무형문화재 진도다시러기 예능보유자인 김해김공 묘지를 통과하니 등로는 다시 잡목능선으로 이어지고 잠시 후 잡목속에 방치된 노랑색과 파랑색의 두개의 물탱크를 지나 잡목지대를 빠져 나가니 눈 앞 진행방향으로 드넓은 밭경작지가 펼쳐지는데 우측 저 멀리 한쪽에서는 부부가 농사일에 바쁜 몸놀림을 하고 있어 주의하며 밭경작지 사이 둑을 타고 건너편 능선 방향으로 진행한다.
진행하며 살펴보니 밭경작지 넘어 나즈막한 월출산과 그 뒤로 희여산이 올려다 보이는데 아직까지는 바위암릉이란 느낌이 전혀 없이 부드러운 육산에 알록달록한 연두빛 봄이 왔음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드넓은 밭 사이로 나 있는 밭둑을 따라 걸어가며 주위를 살펴보니 다른 지방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이국적인 풍경에 자꾸만 사진에 담다 보니 산행속도가 느려지지만 급할 것 없는 하루이니 여유도 부려본다.
잠시 후 비포장임도를 만나 마늘과 양파밭을 통과하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이어지고 도로 우측으로 고추농사와 담배농사를 위한 비닐하우스를 지나 다시 비포장임도를 타고 능선으로 들기 전 뒤돌아 보니 지나 온 마루금 뒤 저 멀리 여전히 머리 위에 검은 구름을 드리운 채 길라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 여귀산이 드높게 솟아 있다.
드넓게 펼쳐진 밭경작지를 따라 통과한 후 여귀산을 뒤돌아 보고 다시 잡목들이 보이는 나즈막한 능선으로 진입하니 희미한 등로가 보이고 곧이어 몇장의 선답자들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101.5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무명봉 지나 여전히 길을 내주지 않는 약간의 희미한 잡목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진달래꽃이 지면서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고 잡목 사이로 올라야 할 희여산의 바위암릉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잠시 더 전진하니 지독한 가시잡목이 잠시 긴장시키고 곧이어 능선 상 봉우리에 도착을 하는데 설치한지 오래되어 때가 낀 준희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110미터의 월출산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해남의 월출산에 관한 자료는 보이지 않는다.
지나가는 능선 상 봉우리인 110미터의 월출산을 통과하니 관목의 참나무 아래 활엽수 낙엽이 수북히 깔려있는 무명안부 지나 다시 관목의 참나무가 서 있는 102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곧이어 조금 더 우거진 잡목들을 헤치며 전진하니 바로 눈 앞으로 가대한 바위암봉으로 이뤄진 희여산 정상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고 간간히 보이는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을 확인하며 오르니 거대한 바위벽이 앞을 가로막는다.
살펴보니 직벽이 아닌 잡풀들이 자라고 있는 조각난 바위들이 모여있는 듯한 바위암릉이기에 조심하며 직벽으로 올라 뒤돌아 보니 1년 전 만났던 여귀산이 사진 좌측 뒤로 우뚝 솟아 있고 그 우측 아래로 굴포재 도로 지나 연대산과 바로 앞으로 월출산 지나 이곳으로 이어지는 진도지맥 마루금이 강렬하게 내려쬐는 햇살아래 아름답고 그 마루금 우측 뒤로는 오늘 새벽 어둠속에 택시로 통과한 아담한 굴포항이 보이기 시작한다.
굴포나루(항)는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굴포리에 있는 나루로서 예전 중선(中船)이 다니던 시절에는 조기잡이 배들이 많이 출항하였으며 굴포항은 1978년 6월 14일 지방어항으로 지정되었다.
굴포나루는 진도군 임회면 남부의 굴포리와 짝별리 사이 만입부에 위치하고 있고 굴포나루 남동쪽에는 보물섬 소동이 일어났던 죽도(竹島)가 위치하며 굴포나루를 나서면 구자도와 조도면의 독거도(獨巨島) 등으로 갈 수 있었는데 18번 국도가 굴포나루를 지난다.
굴포나루는 굴포리와 신동리 및 중만리 그리고 상만리 네 곳의 주민들이 이용하고 굴포진(屈浦津)이라고도 한다.
지나온 마루금을 확인하고 사진에 담은 후 이어지는 거대한 바위암릉을 따라 조심스럽게 올라가니 등로 좌우측으로 아름다운 진도의 풍경들이 산객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하고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며 조금 더 걸어 오르다 남쪽을 뒤돌아 보니 방금 전 걸어 진행한 바위암릉이 우측으로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질매봉 아래 백동저수지와 백동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그 백동마을 뒤로는 굴포리 들판 뒤로 소산으로 이어지는 나즈막한 산줄기와 그 뒤로 하늘인지 바다인지 분간조차 할 수 없는 하나의 빛이 완성되어 이 산객의 마음을 빼앗고 있다.
오랫만에 하늘과 바다 빛깔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하나된 자연 빛을 감상하고 눈을 남동에서 동쪽으로 돌리니 오늘 이 산객이 지나 온 진도지맥 마루금 뒤 저 멀리 드높게 솟아 있는 여귀산이 보이고 그 좌측 뒤 저 멀리 희미하게 1년 전 힘들게 걸었던 진도지맥의 최고봉인 점찰산 줄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 점찰산 좌측 뒤로 흐르는 진도대교와 내일과 모레 이틀간 머물러야 할 화원지맥 마지막 구간의 산줄기는 거리감과 약간의 박무로 인해 봉지 않아 아쉬움으르 남기는데 이 정도로 확인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알록달록 연두빛과 흰물감을 뿌려 놓은 듯 수놓은 아름다운 능선 아래로는 거대한 건물이 내려다 보이는데 진도군 변전소이지만 지도상에는 표기가 없는 건물로 나타나는 곳이다.
그렇게 한동안 그 바위암릉 위에서 남쪽과 동쪽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진도지맥 마루금과 그 주변으로 펼쳐진 황홀한 풍경과 조망들을 살펴보고 이름까지 불러 준 후 다시 나타나는 울퉁불퉁한 바위암릉을 따라 오르니 고도감이 높아질수록 조금 더 깨끗하고 멀리 보이는 조망들이 압권으로 다가온다.
잠시 갈림삼거리에 배낭을 내려 놓고 모바일폰만 들고 북쪽의 희여산 방향으로 오르며 뒤돌아 보니 방금 전 타고 올라 온 바위암릉 뒤로 질매봉이 또 다른 모습으로 조금씩 멀어지고 그 우측 아래로는 잠시 후 내려 가 만나야 할 백동리의 석성삼거리 위 무궁화동산과 세월호 추모공원이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눈을 남서쪽으로 돌리니 질매봉 우측 아래로 백동 무궁화동산이 드넓게 펼쳐져 있고 그 우측 뒤로 잡목을 뚫고 남아야 할 134.7봉 지나 남두재로 가라 앉았다가 176.3 삼각점봉과 앞산 및 한복산 넘어 진도지맥 마지막 지점이 바다와 만나는 풍경도 살짝 보이는데 서망항은 한복산에 막혀 보이지 않지만 그 우측인 사진 제일 우측으로 기억조차 하기 싫은 세월호의 아품과 추모의 장이 있는 팽목항 일명 진도항이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팽목항은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팽목리에 있는 항구로 연안항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재는 진도에서 대마도, 조도, 관매도 등을 연결하는 항로의 출발지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2013년 팽목항에서 진도항으로 개명하였으나 2014년 세월호 참사시 팽목항으로 알려져 지금도 진도항보다는 팽목항으로 더 널리 불리고 있다.
전남 진도에서 제주도를 최단거리로 연결하는 카페리 여객선이 2022년 5월 취항할 예정이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하기 전 가족들과 진도 여행을 하면서 고운 추억을 남겼던 곳인데 이제는 예전같은 기분 좋은 마음으로 방문하기 어려운 팽목항이 되었으니 모두에게 큰 비극이자 극복해야 할 아품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저 팽목항에서 조만간 관매도를 다녀오자 가족들과 약속을 했었는데 세월호 사건과 코로나19 사태로 아직도 관매도는 들리지 못했으니 지맥 산행이 마무리되면 한번쯤 다녀올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다는 바램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진행해야 할 마루금과 팽목항을 살펴보고 계속 이어지는 바위암릉을 따라 오르니 정상부에 작은 돌탑 지나 잡목 나뭇가지에 준희님의 정상판이 걸려있는 269.3미터의 희여산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기고 주위 풍경과 조망들을 살펴 본다.
희여산(269.3m)에 관한 특별한 자료는 보이지 않는데 진도의 다른 산들처럼 희연산 역시 500미터 이하의 저산성 산지의 중생대 백악기에 활발한 화산활동으로 용암이나 화산재에 의해서 만들어진 산이다.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등 분수계를 통해서 진도 본 섬에 나타난 산지들을 이어보면 진도 초입의 망금산을 지나다 분수계가 희미해지면서 기암괴석의 금골산을 만나고 금골산에서 고두산으로 이어지는 분수계는 얕은 연산으로 진도 동안과 서안을 가르고 있다.
고두산에서 진도 동쪽의 군내면으로 들어가 출일봉을 기점으로 다시 남하하여 만나는 진도 제일의 산이 첨찰산으로 첨찰산은 군내천, 고군천, 신천, 향동천, 의신천, 진도천의 분수계를 이루는 대분수령이다.
첨찰산에서 수리봉, 남산으로 이어지고 남산에서 남쪽 방향으로 흐르다 여귀산에 닿는데 여귀산에서 남쪽 연대산을 돌아 희여산을 지나고 부흥산, 지력산으로 해서 소포리 뒷산으로 이어져 바다에 몰입한다.
현재 이 산객이 걷고 있는 진도지맥 산줄기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진도지맥의 산줄기가 진도를 커다란 분수계를 중심으로 하천을 나누고 있다.
희여산 정상에서 제일 먼저 북서쪽을 살펴보니 바로 앞에 176미터의 비치산 줄기 넘어 송호리와 심동리의 드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고 그 바로 뒤로 좌측부터 급치산과 석적막산 그리고 바위암봉으로 유명해진 217.7미터의 동석산이 울퉁불퉁한 근육질을 자랑하며 봄으로도 당당하게 펼쳐져 있다.
내일 산행이 없다면 느긋하게 하룻밤 진도에서 보내고 저 동석산과 주변 산들을 만나고 얼라가면 좋을텐데 다음으로 미루고 눈으로만 만족을 해 보는 시간이다.
그 동석산 우측 저 멀리로는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지만 해발고도가 높고 돌립적으로 형성된 산으로 길라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 지력산이 여전히 주위 산군들을 확인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이제 북동쪽으로 눈을 돌리니 좌측 뒤 멀리 진도읍 뒤로 망적산과 철마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 우측으로 진도에서 가장 높은 점철산이 좌우측으로 긴 산줄기를 형성하고 그 우측 앞으로는 오늘 산행 내내 길라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 여귀산이 우뚝 솟아 있으며 사진 우측 바로 아래로는 거대한 진도의 변전소 건물도 내려다 보인다.
이제 오늘이 지나면 언제 다시 이곳 진도를 들어 와 이런 풍경들과 조망을 즐길 수 있을지 기약조차 할 수 없기에 그리움 가득 담아 많은 사진과 추억으로 남겨 보는 시간이다.
이제 눈을 서쪽으로 돌리니 바위위에 피어났다 시들어 가는 분홍빛 진달래 넘어 연동리의 초록빛 들판이 내려다 보이고 그 끝자락으로 마음 아픈 세월호 사건을 추모하던 팽목항 일명 진도항이 내려다 보이는데 세월호 사건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던 없던 이제 평생 잊혀질 수 없는 한이 서리고 아품이 남아 있는 곳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 아품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좌측 옆으로는 이제부터 이 산객의 두발로 걸어 진도지맥이란 이름으로 3구간으로 나눠 진행하는 산줄기 산행을 마무리해야 할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데 팽목항과 겹치면서 묘한 여운을 남기는 시간이다.
잠시 더 불어오는 봄바람에 흐르는 땀방울을 식히며 일망무제로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들을 많은 사진과 추억으로 남기고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배낭을 벗어 놓은 갈림삼거리로 뒤돌아 내려간다.
내려가면서도 질매봉과 백동 무궁화동산 그리고 진행해야 할 마루금을 살펴보고 사진에 담으며 전진하니 올라 온 방위 암릉 우측으로 가파른 바위암벽이 이어져 진행 방향을 찾아 이리저리 살펴보니 바위암릉 아래 저 멀리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보이고 그곳을 통해 조심하며 걸어 내려가다 뒤돌아 보니 바이벽 지나 울퉁불퉁한 바위암릉이 거칠게 보이지만 그렇기에 내려가는 길엔 더 큰 도움을 받고 있다.
가파른 내리막 바위암릉을 타고 조심하며 내려가니 다시 높지 않은 바위 절벽 위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질매봉 방향인 남쪽으로 잠시 후 올랐다 우측으로 크게 꺽어 진행을 해야 할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185.4 무명봉이 보이고 그 우측 뒤로 백동 무궁화동산과 134.7봉 그리고 저 멀리 한복산과 마지막 날머리로 이어지는 진도지맥 마지막 산줄기 우측으로 여전히 아름다운 풍경속에 웃을 수 없는 아품을 간직한 팽목항과 우측 앞으로 연동제 넘우 측 저 멀리 급치산과 석적막산 그리고 동석산이 강렬한 태양빛에 반짝이는 암봉을 잘ㅇ하며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진행방향과 팽목항을 살펴보고 높지 않지만 까다로운 바위암벽을 조심하며 내려가니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무명안부에 도착을 해 사진에 담고 다시 평이하게 잡목들을 헤치며 전진하니 관목의 활엽수에 몇장의 선답자들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어 사진에 담고 지도를 확인해 보니 이곳이 185.4 무명봉으로서 질매봉으로 가는 직진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크게 꺽어 서쪽으로 진행을 해야 할 길주의 지점이다.
우측으로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관목의 나무들과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가 이어지더니 어느 순간 잡목들이 사라지고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는 잡풀들이 무성한 무명묘지 지나 굵은 참나무를 파고 든 녹슨 철조망이 보이는 등로와 만난다.
녹슨 철조망에 걸리지 않토록 조심하며 전진하니 갑자기 관목들 사이로 뚜렷한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최근에 개설한 듯한 넓은 비포장임도에 도착을 하는데 임산물을 수송하기 위한 목적인지 모르겠다.
그 비포장임도 건너 가시잡목들과 덩굴식물 그리고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랐다 말라있고 새롭게 자라고 있는 줄기들이 보이는 난해한 등로를 어렵게 통과하니 다시 관목의 활엽수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곳에 도착을 해 지도와 트랙을 확인해 보니 이곳 역시 길주의 지점으로 직진의 등로를 버리고 좌측인 남쪽으로 크게 꺽어 녹슨 철조망 넘어 진행을 해야 하는 지점이다.
길주의 지점에서 어렵게 정상 등로를 찾아 짧고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보라빛 각시붓꽃이 반겨주고 무명묘지를 통과하니 갑자기 공사 소음이 귓전을 울리기 시작한다.
키 작은 소나무를 피해 우측 옆으로 우회하니 절개지 위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가 나타나고 우측 절개지 아래 포크레인과 트럭들이 도로 넓히는 공사를 하는지 분주하게 작업중이고 진행 방향으로는 석성삼거리와 드넓은 세월호 기억의 숲이 있는 백동 무궁화동산이 펼쳐져 있고 그 우측 뒤로는 올라 만나야 할 마루금 상 134.7봉이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우측으로 절개지 아래 18번 진도대로 2차선 포장도로에서 공사중인 포크레인과 트럭들을 사펴보며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이제 석상삼거리 건너 백동무궁화동산 입구 지나 좌측 저 멀리 또 다른 모습으로 올려다 보이는 질매산 정상부와 우측 가장자리 방향으로 마루금인 134.7봉 그리고 그 중간에 이어주는 무명봉이 일렬로 쭉 늘어선 모습이 아름답게 눈에 들어 온다.
몇장의 사진으로 더 남기고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따라 내려가니 금새 석성삼거리가 지척으로 다가온다.
비포장임도를 내려가니 18번 진도대로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우측으로 도로를 따라 조금 올라가니 석성갈림삼거리 건너편으로 남도진성과 성연동이란 커다란 표지석이 서 있고 바로 앞 좌측으로는 백동 무궁화동산 입구가 나타나며 그곳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백동 무궁화동산과 세월호 기억의 숲이란 글자가 새겨진 구조물이 보이는데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세월호 기억의 숲 설명판이 보인다.
세월호 기억의 숲은 오드리헵번의 큰 아들 션 헵번의 제안으로 시작됐는데 2015년 4월 10일 착공식을 갖고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는 의미의 노란색 단풍이 드는 은행나무 306그루를 심었으며 또한 희생자를 추모하고 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기억의 벽도 설치됐다.
양수인 건축가의 설계로 설치된 기억의 벽은 전체적으로 거울과 같은 스테인레스스틸의 ㅅ자 평면으로 이뤄졌고 외부에는 304번 접힌 면이 형성돼 있으며 주름에 의해 형성된 실재하지 않는 304개의 선이 희생자를 상징한다.
백동 무궁화동산 내 세월호 기억의 숲 설명판을 읽어 보고 진행하려는데 정면으로 작은 연못에 섬을 만들고 6각정자를 세웠는데 그 뒤 저 먼 곳으로는 오늘 산행을 하면서 늘 봤던 질매봉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그곳을 좌측에 두고 우측의 나무 식재지 옆으로 보이는 잔디능선으로 오르니 6각정자가 2개 더 연속적으로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오르니 동백나무 식재지가 길게 이어지고 그곳 정상부 우측 능선으로 진입하기 직전에 지나 온 방향인 북동과 북쪽을 살펴보니 바로 아래 백동 무궁화동산과 석성삼거리 지나 방금 전 어렵게 내려 온 무명봉 넘어 바위암릉으로 이뤄진 269.3미터의 희여산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지나 온 희여산을 확인하고 우측으로 꺽이는 지점을 확인하며 계속 오르니 지독하게 우거진 잡목들로 인해 진입이 불가능해 보여 걱정과 고민을 하는데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생각보다 뚜렷한 등로 입구가 보이고 그곳으로 우측으로 크게 꺽어 들어가니 묘지 한기가 나타나고 그 묘지를 지나니 우거진 관목의 동백나무가 빼곡하게 들어 차 있어 한동안 어려운 산행을 이어간다.
사람 한면 어렵게 빠져 나갈 수 있는 희미한 공간을 찾아 힘들게 오르니 나즈막한 돌담이 보이고 그곳을 넘자마자 관목의 소나무에 준희님의 이정판과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134.7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긴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134.7봉에서 등로는 다시 우측인 서쪽으로 크게 꺽여 진행되고 여전히 빼곡하게 우거진 동백나무 군락지를 어렵게 헤쳐 전진하니 김해김씨 부부묘지가 나타난다.
그 묘지를 지나니 묘지로 통하는 뚜렷한 등로가 나타나고 잠시 편안하게 걸어 전진하니 갑자기 나무들이 사라지고 등로 좌측인 남쪽 방향으로 도서제와 그 뒤로 남동리 마을과 진도남도진성 방향의 바다가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진도 남도진성은 고려 원종(재위 1259∼1274) 시절 삼별초가 진도에서 몽골과 항쟁을 벌일 때 해안지방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으로 삼별초가 제주도로 옮겨갈 때 이곳에서 출발했다고 전해지나 백제 때 진도에는 3개의 마을이 있었고 그 중 한 마을의 중심지가 이곳으로 여겨지는데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시대까지 이어져 오는 것을 보면 삼국시대에 이미 성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13세기부터는 왜구가 나타나서 노략질을 계속해 오자 고려 충정왕 2년(1350)에 진도의 관청과 백성들이 내륙지방으로 피해서 살다가 세종대왕 초에 돌아오기도 했다.
결국 세종 20년(1438) 해안지방에 주로 설치되던 군사조직인 만호부가 이 지역에 생기게 되고 왜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성을 쌓았는데 지금 남아있는 성은 그 이후에 쌓은 것으로 여겨진다.
동과 서 및 남문이 있던 자리가 잘 남아 있으며 둘레가 400여m 정도이지만 해안지방을 보호하기 위한 중요한 위치임을 보여주고 있는 유적으로 가치가 매우 크다.
등로 좌측으로 남동리와 진도 남도진성을 살펴보고 잘 관리되고 있는 듯 보이는 묘지 2기 지나 진행 방향인 서쪽으로 잠시 후 올라 만나야 할 바위암봉으로 이뤄진 176.3 삼각점봉이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등로는 묵은 비포장임도처럼 보이는 잡풀이 우거진 마루금으로 변하고 그 등로를 타고 천천히 전진하니 금새 잡풀들이 사라진 넓은 비포장임도와 만나 그 임도를 따라 진행을 이어간다.
비포장임도를 따라 걸어가며 진행 방향으로 176.3 삼각점봉을 올려다 보며 조금 더 전진하니 다시 묵은 비포장임도 같은 잡풀이 우거진 등로로 바뀌고 있다.
잠시 후 다시 잡풀들이 많이 사라진 비포장임도로 바뀌고 그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진행하니 금새 남도석성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고 가로수에 반바지님이 65미터의 남두재란 종이코팅지를 걸어 둔 남두재에 도착을 하는데 우측으로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이란 입간판과 안내판이 서 있다.
자료를 찾아보지만 남두재에 관한 설명이 전혀 보이지 않는데 이곳 좌측은 남동리이고 우측은 연동리의 경계지점으로 우측 연동리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걸어가면 방금 전 지나 온 석성삼거리와 백동 무궁화동산으로 이어지는 도로이다.
남도석성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남두재를 지나 밭둑으로 오르니 드넓은 초지지대가 펼쳐지고 그 초지지대 좌측 뒤 잡목지대로 들어가니 여전히 관목의 활엽수와 잡목들이 우거져 몸 하나 빠듯이 지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힘들게 진행을 이어간다.
한동안 잡목과 관목이 우거진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눈 앞으로 바위지대가 나타나고 우회하며 통과하니 연이어 바위암릉이 이어지고 있다.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며 그 바위암릉을 올라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뒤돌아 보니 남동 방향으로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는 질매봉이 올려다 보이고 그 좌측 앞으로 방금 전 넘어 온 134.7봉 좌측 뒤 저 멀리 여귀산 정상부가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다.
다시 잡목 등로를 타고 힘들게 오르니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뒤돌아 보니 질매봉과 134.7봉 그리고 좌측으로 석성삼거리 넘어 희여산이 더욱 뚜렷하게 보이고 북서 방향으로는 급치산과 석적막산과 동석산의 바위암봉들이 보인다.
희여산과 134.7봉 사이 석성삼거리 뒤로는 여전히 여귀산이 이쪽의 맹주임을 자랑하듯 고개를 내밀고 주위를 굽어 보고 있어 사진에 담고 조금은 완만해진 오르막 잡목 등로를 타고 천천히 걸어 오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159.3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긴다.
선답자들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무명봉을 지나 남도 특유의 단단한 박달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 차 있는 능선 등로를 따르니 얼마 가지 않아 조도304란 삼각점이 박혀있고 독도님의 종이코팅지와 준희님이 이정판을 걸어 둔 176.3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긴다.
기온이 상당히 오른듯 한데 다행히 시원한 바람이 불어 와 흐르는 땀방울들을 금새 말려주니 초여름 날씨에도 무더운 줄 모르게 진행되고 있어 다행이다.
삼각점봉을 지나 여전히 단단하게 보이는 관목의 활엽수 등로를 타고 걸어가지 나무 사이로 낙엽들이 수북히 쌓여 있는 바위들도 보이기 시작하고 그렇게 잠시 더 전진하니 다시 희여산 오를때와 비슷하게 긴 바위암릉이 펼쳐지는데 진행 방향 앞쪽 우측으로는 올라야 할 앞산도 살짝 보이기 시작한다.
바위암릉으로 오르니 다시 일망무제로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들이 발목을 잡기 시작하고 시간도 충분하고 내일과 모레 이틀동안 더 긴 산행을 이어가야 하기에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즐기며 많은 사진을 남기며 진행을 이어간다.
바위암릉을 타고 걸어가며 제일 먼저 등로 우측인 북쪽과 북북서 방향을 살펴보니 아직 지지 않은 산벗꽃이 아름답고 그 넘어 연동리의 거대한 내연제가 내려다 보이고 그 좌측 뒤로 송호리 들판 지나 223.5미터의 급치산과 가운데로 235.1미터의 석적막산 그리고 정중앙부의 바위암봉으로 이뤄진 217.7미터의 동석산이 반짝이고 그 우측으로 특이한 암봉 가장 우측으로 모습이 바뀐 327.6미터의 지력산이 길게 펼쳐져 있다.
다음에 진도로 내려오면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저 산줄기를 한번 더 걸어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사진으로 남기고 이어지는 바위암릉을 타고 걸어 오른다.
많은 사진을 담고 그 바위암릉을 통과하니 다시 약간의 관목 활엽수로 이뤄진 능선 등로로 진입하고 안부 지나 잡풀들이 우거진 묘지지대를 통과하니 다시 관목의 활엽수 능선 지나 바위암릉에 도착을 한다.
그 바위암릉을 따라 조금 더 걸어 오르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나 온 176.3 삼각점봉 지나 우측으로 134.7봉과 질매산이 우뚝하고 좌측으로 희연산이 솟아 있으며 그 중간 저 먼곳으로 여귀산이 뾰족하게 솟아 있는 풍경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 여귀산 좌측 뒤로 점찰산을 찾아보니 희여산 뒤로 숨어 보이지 않고 진도대교 방향의 나즈막한 산줄기들만 박무속에 희미하게 존재감을 알리고 있지만 이름까지 불러주기엔 너무 멀다.
잠시 더 몇장의 사진으로 아름다운 조망을 담고 뚜렷한 진달래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또 다시 거대한 바위암릉이 눈 앞에 펼쳐지는데 바위벽이 아니라 오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 바위암릉으로 올라 제일 먼저 등로 우측인 북서쪽을 살펴보니 연동리 들판에 노란 유채꽃이 아름다운 들판을 이루고 그 바로 우측 뒤로 내연제가 펼쳐져 있으며 그 뒤 먼 곳 좌측부터 급치산과 석적막산 그리고 동석산이 아름답고 그 우측으로는 부흥산과 지력산이 여전히 존재감을 알리고 있어 자료를 찾아보니 동석산(219m)은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심동리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219m이고 급치산(221m) 낙조대의 동북쪽에 자리한 화산암 계열의 바위산이며 거대한 암봉능선이 약 1.3km 길이로 이어지고 매우 가파른 절벽을 이룬다.
심동저수지를 사이에 두고 서쪽으로 급치산이 해안을 바라보고 있고 동석산은 그 건너편에 있으며 산자락엔 천 개의 종을 매달았던 천종사라는 절이 있다.
동석산의 동쪽 6부 능선쯤에는 마파람이 불면 은은한 종소리를 낸다는 동굴이 위치한 종성골이라는 골짜기가 있고 이 산에서 바라보는 서해 일몰은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으며 등산로는 하심동에서 출발하여 미륵좌상암굴을 지나 동석바위전망대, 칼바위전망대, 동석산 정상, 삼각점, 석적막산, 가학재,작은애기봉, 세방낙조휴게소로 이어지는 코스이다.
워낙 가파른 절벽이기 때문에 위험한 구간 군데군데 철제로 안전난간과 계단이 설치되어 있으며 지방도 801번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진도읍에서 30분 거리이다.
다시 진도지맥 마루금이 펼쳐진 동쪽을 살펴보니 바로 앞으로 방금 전 올라 온 바위암릉 지나 176.3 삼각점 우측으로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는 질매산 좌측으로 석성삼거리가 숨어 있고 그 좌측 위로 희여산이 바위암봉임을 감추고 아름답게 솟어 있으며 그 우측 뒤 저 멀리 1년 전 만났던 이곳의 맹주인 귀여산이 뾰족하게 솟아 있는 모습으로 확실한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좌측 가장자리 가장 먼곳으로 진도의 최고봉인 점찰산이 살짝 보이는데 눈으로는 확실했던 인공구조물이 사진으로는 구별하기 어렵다.
이제 눈을 북쪽과 북북동쪽으로 돌리니 바로 발 아래로 연동리의 드넓은 들판이 푸르게 변해있고 좌측 중앙부로 내연제가 잘려있는 모습으로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부흥산 지나 지력산이 좌우측으로 길게 펼쳐져 있으며 그 우측으로 삼당산과 대곡산 방향으로 이어지듯 펼쳐진 산줄기들이 환상을 노래한다.
연동리 들판 우측 옆으로는 연동마을과 내연동 마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바로 뒷쪽으로는 174미터의 비치산이 마을을 감싸듯 펼쳐져 있으며 그 바로 우측 아래로는 연동제도 파란물을 가득채우채 환상의 모습으로 내려다 보인다.
거의 비슷한 풍경과 조망들이지만 북쪽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환상의 모습들을 많은 사진에 담고 이제 등로 좌측 뒷쪽인 남쪽과 남동방향으로 눈을 돌리니 초록과 연두로 변해가는 자연의 부드러운 빛깔이 황홀하고 그 바로 아래 평화롭게 펼쳐진 남동리 마을과 진도남도진성 그리고 마치 저수지처럼 보이는 바다가 넋을 잃게 만들고 그 뒤 바다 위에 떠 있는 장죽도와 길마도 및 사자도가 화룡점정을 찍고 있다.
그렇게 바위암릉을 걸으며 사방팔방으로 펼쳐진 환상의 풍경과 조망을 즐기고 사진에 담으며 전진하니 다시 바위암릉이 끝이나고 잡목들이 우거진 능선으로 들어가고 초반만 무탈하게 통과하니 생각보다 뚜렷한 등로가 열려있어 편안하게 진행한다.
그렇게 잠시 더 편안하게 뚜렷한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바위 위에 작은 돌탑이 나타나고 그 뒤 저 멀리 관목의 나뭇가지 위로 준희님의 정상판이 걸려있는 236.5미터의 앞산에 도착을 해 몇장의 사진에 담아 본다.
앞산(236.5m)은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연동리와 남동리에 솟아 있는 산으로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연주리란 마을의 이름을 낳게 하였는데 앞산이 구슬처럼 생겼다 하여 연주(連珠) 또는 연지동이라 한 데서 연주리가 유래하였다.
앞산 정상에서 몇장의 사진을 남기고 주변을 둘러보니 잡목들에 막혀 풍경이나 조망은 전혀 볼 수 없기에 약간의 잡목속에 보이는 바위암릉을 따라 전진하며 진행을 이어간다.
잠시 후 잡목 속 바위암릉 구간도 끝이나고 다시 관목의 활엽수들이 보이는 능선으로 들어가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반겨주고 곧바로 다시 산벗꽃이 피어 있는 바위암릉으로 올라 진행 방향을 살펴보며 걸어가니 등로 좌우측으로 남해바다가 눈에 들어 온다.
주변 풍경들을 사진에 담으며 바위암릉 끝자락으로 이동하니 드디어 등로 좌측 앞으로 이제부터 걸어 마무리를 해야 할 진도지맥 마지막 173.1봉과 그 뒤로 펼쳐진 장죽도와 길마도 뒤 저 멀리 오래 전 가족들과 고운 추억을 남겼던 조도가 길게 펼쳐진 모습도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생각보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을 살펴보고 사진에 담다 보니 산행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은 어느새 사라지고 악명 높은 진도지맥 산행도 이제 막바지에 도착했음에 힘이나며 조금은 더 즐겨보는 시간이다.
이제 진행 방향으로 보니 키 작은 잡목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이곳에서 바위암릉이 끝이나기에 이곳부터의 등로는 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지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다시 한번 더 진행 방향으로 서망향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확인하고 바위암릉을 내려가 키 작은 잡목속으로 들어가니 다시 관목의 활엽수 등로가 이어지고 좌측으로 가끔 조망이 터지면서 금새 준희님의 정상판이 걸려있는 231.6미터의 한복산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겨 본다.
한복산(231.6m)은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연동리에 솟아있는 산으로 산자락 서쪽 비탈에 팽목 유물산포지가 분포하고 앞으로는 서망해수욕장이 펼쳐져 있다.
한복산 정상에서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조금 더 직진의 서쪽 방향으로 관목속을 헤치며 걸어가니 바위암봉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등로는 서쪽 방향에서 좌측으로 크게 꺽어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주의 지점인데 그곳에 서니 진행 방향으로 129.5봉과 잘록한 서망고개 지나 173.1봉이 내려다 보이고 우측으로 93.2봉 지나 바다로 그 맥이 가라 앉는 마지막 구간까지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날머리에서 우측으로 돌아 도착하게 될 서망항도 이제 뚜렷하게 내려다 보인다.
그 진도지맥 마지막 산줄기 뒤로 남해바다 건너로는 상조도와 하조도가 하나의 산줄기처럼 길고 좁게 이어진 풍경이 옛 추억을 환기시키고 다시 한번 더 좋은 계절에 좋은 시간을 만들어 볼 수 있기를 희망해 본 시간이다.
진행 방향으로 진도지맥 마지막 산줄기 모습을 확인하고 그 좌측인 남서쪽을 살펴보니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많은 섬들이 눈길을 사로잡고 남동리 방향의 마을들도 아름답게 펼쳐진 풍경도 보인다.
다시 많은 사진을 남기고 직벽의 암벽을 타고 조금 좌측으로 내려가 돌계단처럼 등로가 나 있는 곳을 통해 조심스럽게 그 바위암릉을 내려가니 좌측으로 붙어 있는 바위벽과 우측의 잡목 사이로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보이고 그 띠지들을 확인하며 가파르게 내려가니 연속되는 바위 너덜 위로 낙엽들이 쌓여 있고 그 바위 사이로는 여전히 관목의 활엽수들이 무질서하게 자라고 있어 최악의 하산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계속 이어지는 가파른 내리막 바위 너덜등로를 타고 어렵게 내려가니 이제 지독하게 우거진 잡목들과 쓰러진 고사목들이 더욱 힘들게 만들고 이리저리 선답자들이 지나간 희미한 등로를 찾아 한발 두발 전진하니 다시 높지 않은 바위벽이 나타나는데 내려서기 참으로 힘든 지점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안전하게 조심하며 그 바위벽을 통과하니 나즈막한 돌담이 나타나고 돌담을 지나자마자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뚜렷한 비포장임도가 열려있어 깊은 한숨을 내쉬고 그 비포장임도를 따라 좌측으로 내려가니 갑자기 등로 우측 잡목가지 위로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어 지도와 트랙을 확인해 보니 길주의 지점으로 비포장임도를 좌측으로 보내고 우측 잡목 사이로 들어가며 어렵게 산행을 이어가야 할 지점이다.
직진의 비포장임도를 보내고 우측의 잡목 등로로 진입하니 빛바랜 억새지대가 짧게 나타나고 그곳을 통과하니 지저분한 잡목 등로가 이어지더니 금새 이 산객의 허리춤까지 높은 돌담이 길게 쌓여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돌담을 지나니 굵은 소나무와 관목의 활엽수들 그리고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곧이어 안부같지 않은 안부 지나 평이한 잡목등로를 따르니 다시 거대한 바위암릉 위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 역시 환상의 조망처이다.
이제 진행 방향인 남서쪽을 살펴보니 바로 발 아래로 서망고개를 지나는 포장도로 건너 173.1봉이 올려다 보이고 그 우측으로는 오늘 산행 후 마지막으로 들려야 할 서망항과 주차장도 내려다 보이는데 이제 오전 11시가 가까워진 시간이라 조금은 여유를 부려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진행 방향 좌측인 남쪽과 남동쪽을 살펴보니 바다에 떠 있는 섬들 지나 남동리 마을이 보이고 그 좌측 뒤로 질매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여전히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사진에 담고 서망항 방향을 자세히 살펴보니 죽도 지나 성남도와 대병도 같은 수많은 섬들이 점점이 떠 있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사진에 담고 그 바위암릉을 내려가다 뒤돌아 보니 연두빛 새순들이 돋아나는 잡목들 위 저 멀리 방금 전 내려 온 한복산 정상이 빤히 올려다 보이는데 그 정상부가 바위암봉으로 이뤄져 있는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나 있고 그 우측으로 앞산 지나 이어지는 마루금이 이어지는 모습들도 올려다 보인다.
다시 등로 좌측으로 남동리와 질매봉 방향을 살펴보고 드넓은 만으로 이뤄진 바닷가를 살펴보고 그 뒤 저 멀리 떠 있는 많은 섬들을 살펴 본 후 진행 방향으로 아름답게 펼쳐진 진도지맥 마지막 산줄기를 다시 사진에 담고 조금 더 전진하니 관목의 참나무 가지 2개가 보이는 나뭇가지에 준희님이 이정판을 걸어 놓은 129.5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그 정상을 지나자마자 다시 진행 방향의 진도지맥 마루금이 환상의 모습으로 펼쳐져 있다.
다시 나타나는 바위암벽 위에서 진행 방향과 서망항 그리고 주위 풍경들과 조망들을 살펴보고 많은 사진에 담고 조심스럽게 그 바위암릉을 내려가니 지독한 잡목 등로가 나타나고 힘들게 이리저리 희미한 등로와 공간을 찾아 천천히 내려가니 구세주를 만난듯 잡풀들이 보이는 묘지지대에 도착을 하니 조금은 등로가 좋아진다.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묵은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전주최공 지나 금새 18번 진도대로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해 그 도로를 타고 우측 언덕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는데 그 건너편으로는 서망항으로 이어지는 서망고개이다.
서망리의 원래 명칭은 서망(鼠望)으로 쥐가 앞의 쌀섬(白米島)을 바라보며 어떻게 건너갈지를 생각하는 형세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나 후에 마을 이름에 쥐를 의미하는 서(鼠)자를 쓰는 것은 좋지 않으며 마을의 위치가 서쪽이니 발음이 같은 서(西)로 바꾸어 서망(西望)이 되었다 한다.
18번 진도대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서망고개로 올라 와 좌측으로 분기되는 시멘트 포장도로 방향으로 들어가 니 차량진입금지 및 쓰레기 투기듬지라는 경고판들이 서 있고 우측으로는 묵은 밭에 지난해 잡풀들이 우거졌다 말라있는 넓은 공터가 보여 그곳으로 들어가며 마지막 봉우리로 오르는데 등로 우측 아래로 잠시 후 진도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고 들려야 할 서망항이 빤히 내려다 보여 서망리를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자료들이 보인다.
서망리는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로서 명칭유래를 보면 원래 명칭은 서망(鼠望)으로 쥐가 앞의 쌀섬(白米島)을 바라보며 어떻게 건너갈지를 생각하는 형세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였으나 후에 마을 이름에 쥐를 의미하는 서(鼠)자를 쓰는 것은 좋지 않으며 마을의 위치가 서쪽이니 발음이 같은 서(西)로 바꾸어 서망(西望)이 되었다 한다.
1750년경 평산신씨가 처음 들어왔다고 하나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으며 1885년 지산면에 살던 김해김씨가 옮겨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해지는 마을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동리로 병합하여 임회면에 편입되었다.
자연환경을 보면 한복산(漢福山, 232m)에서 뻗어 나온 저산성 산지 사이에 입지하며 서쪽 바다를 조망할 수 있고 임회면 남서쪽 끝에 위치하며 18번 국도가 지나가는데 서망항은 서망리 전면에 위치한다.
ㅏ로 이 서망리에 있는 고개라서 붙여진 서망고개인데 현지인들은 잘 사용하고 있지 않는 듯 보이는 고개이다.
묵은 밭경작지를 통과하며 우측으로 서망리와 서망항을 내려다 보고 비포장임도로 오르니 잠시 편안하게 그 비포장임도를 따라 마루그이 이어지지만 곧이어 비포장임도는 우측 직진으로 보내고 좌측 잡목 능선 방향으로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보여 살펴보니 그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이 이어진다.
오르자마자 무명묘지 한기 지나 우거진 잡목과 대나무들이 혼재되어 있는 어지러운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넓은 비포장임도가 지나고 잠시 가쁜 숨을 진정시키고 사진에 담은 후 임도 건너 능선으로 오르니 여전히 우거진 잡목들 아래 바위너덜들이 깔려있어 진행이 쉽지 않다.
그래도 우거진 잡목 사이로 선답자들이 지나간 희미한 흔적들이 남아 있어 급하지 않게 그 잡목들을 헤치며 조심해 전진하니 큰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제법 굵은 동백나무와 잡목들 사이로 간간히 굵은 소나무들도 보이는 오르막 등로가 계속 이어진다.
진행하는 도중에 간간히 보이는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를 확인하며 정상적인 등로를 따라 진행하고 있음을 안도하며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빼곡하게 우거진 관목의 동백나무 군락지 사이로 바위들이 보이면서 산객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좁은 등로가 열려있어 감사한 마음으로 마지막 힘을 내 본다.
이제 동백꽃도 끝물인듯 오르는 등로에는 붉은 동백꽃들이 떨어져 붉게 물들이고 있어 몸의 고통과는 달리 마음은 평온해지는 시간이다.
잠시 더 빼곡하게 들어 찬 동백나무 군락지 사이로 좁게 나 있는 등로를 따라 오르니 이마에선 굵은 땀방울이 흘러 내리는데 동백나무 숲을 뚫고 불어오는 시원한 바닷바람이 그나마 지옥에서 벗어나게 도움을 주고 있어 다행이다.
그렇게 잠시 더 빼곡하게 우거진 관목의 동백나무 군락지를 따라 오르니 커다란 바위가 앞을 가로막고 우회해 오르니 지금보다는 조금 더 넓은 등로를 만들어 주고 등로를 붉게 물들인 동백꽃잎들을 살펴보며 전진하니 작은 바위들이 산재되어 있는 가운데 가지들이 많은 활엽수에 준희님의 이정판과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173.1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기는데 이정판에는 173미터봉이라 적어 놨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173.1봉에서 등로는 남쪽에서 서쪽인 우측으로 크게 꺽어 진행되는데 이곳 역시 빼곡하게 우거진 관목의 동백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그 사이로 좁게 나 있는 등로를 찾아 어렵게 진행하는 시간이다.
잠시 더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이제 제법 굵은 소나무 사이로 질서없이 자라고 있는 동백나무들이 보이지만 지금과는 달리 밀집도가 떨어져 그나마 진행에 도움을 받는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경쾌한 발걸음으로 마지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뚜렷한 등로가 보이기 시작하고 푹신하게 깔려있는 낙엽들을 밟으며 진행하니 갑자기 바위너덜길이 나타나더니 앙상한 관목의 참나무에 준희님이 이정판을 걸어 둔 진도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93.2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시원한 물 한모금 마시며 잠시 쉬어 간다.
마지막 봉우리인 93.2봉에 도착을 하니 이제 낮 12시 20여분을 지나고 있어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하였음을 느끼고 다시 평이한 동백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를 따라 전진하니 등로는 자꾸만 우측 사면 방향으로 이어지는 듯 진행되고 의문을 가지며 조금 더 걸어가며 지도와 트랙을 확인해 보니 날머리 가까운 지점에서 드디어 좌측으로 크게 꺽어 가파르게 내려가고 내려가다 우측 앞을 살펴보니 드디어 진도와 백미도 및 그 뒤로 숨어 있는 신도 그리고 좌측으로 각거도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백미도 사이로 흐르는 조류가 너무나 빨리 떨어져 있는 이곳까지 그 물살의 소용돌이 소음이 들릴 정도이다.
진도지맥 산행의 마지막 날머리 앞을 지키고 있듯 떠 있는 백미도와 신도 및 각거도를 살펴보며 다시 갈림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급하게 내려가니 드디어 바닷가 바위 위에 도착을 해 총 3구간으로 나눠 1년 넘게 걸린 진도지맥이란 이름으로 걸었던 산행을 마무리 한다.
바닷가에 도착을 해 바닷물에 손이라도 담궈보고 싶었지만 조류의 흐름이 너무가 빨라 포기하고 이제 북서 방향을 살펴보니 바로 지척으로 서망항 앞에 떠 있는 죽도가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조도의 성남도와 소성남도 및 그 주변의 많은 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눈길을 남쪽으로 돌리니 우측 중앙부로 각거도가 자리하고 그 좌측 뒤 저 멀리 조도면의 슬도와 독거도가 흐릿해진 옛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고 좌측 앞으로는 사자도가 보이는데 언듯 보기에 사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오래 전 가족들과 저 조도면에 들어 몇일간 잊지 못할 고운 추억을 만들며 먼 발치에서 바라보던 섬들인데 이곳에서 진도지맥이란 산줄기 잇기 산행을 하면서 다시 바라볼 수 있음에 감사하며 아쉬운 마음을 접고 이제 이곳 진도지맥 날머리를 출발한다.
다시 내려갔던 가파른 바위 등로를 타고 올라 갈림삼거리에서 이제 좌측으로 나 있는 사면 등로를 타고 좌측 아래로 남해 바다를 두고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굵은 가지가 2개로 분기한 소나무 소나무 아래 바닷가 바위가 내려다 보이는 조망처가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몇장의 사진을 담고 출발하려는데 저 멀리 망망대해를 뚫고 물보라를 일으키며 달려오고 있는 통통배 하나가 아름답게 보여 사진에 담으며 그 뒤로 펼쳐진 섬들을 확인해 보니 좌측부터 진도군 조도면 상조도와 우측으로 돌아 내병도와 성남도로 이어지는 독립된 섬들이지만 이곳에서 보니 붙어 있는 하나의 산줄기처럼 길게 펼쳐져 있다.
해안가를 따라 나 있는 사면 등로를 타고 환상의 풍경과 조망들을 즐기면서 계속 전진하니 어느새 등로는 다시 바닷가와 멀어져 능선 숲으로 이어지는데 이곳은 누군가 등로를 만들었는지 뚜렷한 등로가 보여 편안하게 걸어 본다.
남도 특유의 산림생태계를 확인하며 완만하게 올라 언덕으로 오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보이고 좌측 언덕으로 오르지 않토록 주의하며 직진의 희미한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비포장임도와 만나더니 바다에서 사용되는 온갖 쓰레기들이 널부러져 있는 창고 건물 뒤로 도착을 해 그 건물을 빠져 나가니 좌측의 진도수협직판장과 우측의 일신제빙냉동 건물 사이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조금 더 걸어 나가니 드디어 바닷가와 맞닿아 있는 서망항길에 도착을 해 바닷가에 정박되어 있는 어선들과 서망항 건너 보이는 진도항로표시사무소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 한장 남긴다.
이제 그 서망항길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걸어가며 좌측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서망항을 사진에 담다 보니 어느덧 새벽에 주차를 시키고 택시를 이용해 출발했던 주차장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하고 그곳에서 지나 온 서망항 건너 진도비맥 마지막 날머리 방향을 살펴보니 무수히 떠 있는 선박들 사이 저 멀리 마지막 산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저 산줄기 위에도 봄을 지나 여름으로 달려가고 있는 빛의 변화가 확인되고 이제부터 녹음이 진 등로를 타고 무더위와 싸워야 됨을 몸소 체험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서망항길 도로를 타고 계속 걸어가니 드디어 새벽에 주차시키고 차박을 했던 주차장에 도착을 해 배낭 정리하고 등산복 상의를 갈아 입은 후 출발하기 앞서 서망항의 대표 건물인 진도항로표시사무소를 배경으로 마지막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애마를 몰아 해남으로 출발한다.
서망항은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서망리에 있는 국가어항이다. 황해와 남해의 중간 지점인 진도군 임회면 남서쪽 끝에 있다.
지리적 요건상 서해와 남해에서 일하는 어선들의 입항항 노릇을 하고 1981년 4월 1일 착공하였으며 1985년 12월 30일에 1종항으로 지정되었다.
2005년 5월 31일에는 어촌·어항법에 따라 1종항에서 국가어항으로 구분·지정되었는데 국가어항은 이용 범위가 전국적 어업 근거지로서 현지 어선의 수가 80척 이상이고 그 합계 총 톤수가 200톤 이상인 항구·포구에 한한다.
어획고는 연간 1,000톤 이상이어야 하고 또한 이용하는 외부 어선이 연간 100척 이상일 것으로 예상되는 항포·포구 및 도서에 있어서 기상 악화 시 대피항으로서 기능해야 한다.
서망항은 서망리에 있는 항구라는 데서 이름 붙여졌는데 국토해양부에서 관리하며 서망항 내에 있는 주요 기관으로는 진도항로표지종합관리소와 선원복지회관이 꼽힌다.
너무 무덥기 전 화원지맥과 연계해 남아 있던 짧은 진도지맥 산행을 일찍 무탈하게 마무리하고 내일 진행을 해야 할 화원지맥 제3구간 들머리부터 도로를 따라 걸어야 할 마루금을 사전 확인하다 보니 황산초교 뒷동산을 거쳐 오기에 덕암마을까지 차량으로 방향만 학인하면서 몇장의 사진을 남기고 잠자리를 정해야 하는데 가까운 화원면에 모텔이 없어 문내면으로 가 보지만 면사무소 근처까지 가지 못하고 바닷가 근처의 허름한 여관들만 둘러 보다 다시 진도읍으로 들어가 하룻밤 더 묵게 되었는데 다음날 택시 기사님의 도움으로 문내면 시내로 들어가 깨끗한 모텔을 찾아 다음날 쉴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이제 내일과 모레 이틀간 화원지맥 산행까지 마무리가 되면 가시잡목들로 악명 높은 대부분의 긴 지맥 산행들은 완주가 되지만 덕산지맥과 황병 그리고 금대지맥이 여전히 목에 걸린 가시처럼 마음에 남아 조만간 신경 쓰이는 이 지맥 산행부터 진행을 해야 될 것 같다.
이어지는 화원지맥 산행에서도 안전하게 많은 의미있는 인연들을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첫댓글 고생많이 하셨습니다
험난한 남도지방 지맥길 화원.진도을 종주하셨내요-
서울에서 가고 오는 길이 멀어 산행보다 더 힘들게 느껴지는 진도지맥도 마무리를 하니 개운하였답니다.
말씀처럼 어렵고 힘든 산길이었지만 선답자들이 어렵게 만들어 준 등로로 인해 생각보다는 편안하게(?) 잘 마무리가 된 듯 싶습니다.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후기와 띠지들로 인해 많은 도움도 받아 감사한 마음도 전합니다.
진도지맥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1년 만에 진도길을 이어가셨나 봅니다.
남도 특유의 정취를 물씬 풍기게 하는 정경이 아름답습니다.
언젠가 지나는 날 많은 도움이 되겠군요.
이어진 화원지맥 남은 두 구간 마무리로 이어지신 듯 합니다.
멋스런 산하와 동요하시면서 진행하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네 방장님,
힘들고 어려운 산줄기이고 서울에서 워낙 멀다 보니 마무리를 하는데 또 1년이 걸렸네요
진도는 개인적으로 몇번이나 다녀왔고 가족들과 여행으로 다녀 온 기억도 있어 친숙하지만 산길은 역시 어렵고 난해한 길이더군요
그래도 예전에 선답자들이 지나며 느꼈던 어려움 보다는 많이 편안하게 잘 마무리를 하게 돼 선답자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