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문신.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백순(伯純), 호는 약봉(藥峯)이다.
아버지는 청계(靑溪) 김진(金璡), 어머니는 여흥민씨(驪興閔氏)로 민세경(閔世卿)의 딸이다.
김진의 다섯 아들 중 장자로 당시 동생 김수일(金守一), 김명일(金明一), 김성일(金誠一), 김복일(金復一)과 함께 ‘김씨오룡(金氏五龍)’으로 불렸다.
김극일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서 태어났다.
가학으로 글공부를 하다가 20세 무렵 아우 김명일, 김성일과 함께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뛰어난 재질과 함께 풍채와 언변을 두루 갖추었으며 학문에 대한 열성이 돋보여 일찍부터 주위의 주목을 받았다.
사마시를 거쳐 27세 때인 1546년(명종 1) 과거에 급제하여 교서관정자를 시작으로 벼슬을 시작하여 사헌부감찰, 형조정랑, 예조정랑, 성균관사성 등 내직과 홍원현감, 청홍도도사(淸洪道都事), 경상도도사 등의 외직을 지냈다.
1580년(선조 13) 부모의 상을 당하여 3년상을 치룬 후 정3품 내자시정(內資寺正)으로 복귀하고 사헌부장령을 잠깐 지냈으나 당쟁이 격렬해짐에 따라 1583년 관직에서 물러났다. 2년 뒤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