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 글은 2005년 10월 12-19일에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레토리아에 있는 자유개혁교회에서 열릴 제6회 개혁교회들의 국제회의(the International Conference of the Reformed Churches)에서 발표할 글입니다. ICRC는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에 신실하고자 하는 19개의 교회들이 모여 중요한 주제들을 함께 토론하고 교제하고 선교의 일을 함께 하는 모임입니다. 독립개신교회는 방문 대표(visiting delegate)로 초청받아서 정병길, 김헌수 목사를 보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존경하는 의장과 형제 여러분,
독립개신교회는 1964년에 세워졌지만, 2001년에 처음으로 개혁교회들의 모임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때 독립개신교회가 택한 신앙고백(보편 교회의 신조들, 웨스트민스터 표준 문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도르트 신경)과 설립된 배경, 그리고 역사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1) 여러분의 편의를 위하여 이 팸플릿에 그 글과 독립개신교회에서 사용하는 찬송들을 함께 첨부하였습니다.
4년 전에 독립개신교회를 소개하였을 때 장로교회에서 오신 대표들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을 신실하게 받고 나아가는 우리를 환영하셨고, 유럽의 개혁교회에 뿌리를 두신 분들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가르치는 교회를 만나서 반갑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분들은 ‘한국에도 개혁교회가 있느냐?’ 하면서 교제의 악수를 청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독립개신교회’라는 이름의 첫 자, ‘독립’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묻기도 하셨습니다. 교회사적으로 ‘독립’(independent)이라는 말은 회중 교회(congregational church)와 연결된 말이기 때문인 줄 압니다. 한국어의 ‘독립’은 여러분의 ‘해방’(liberated) 혹은 ‘자유’(free)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이것은 독립개신교회가 세워질 때의 역사를 보면 더 분명합니다. 한국 교회에서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초는 세계 교회 협의회(WCC,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와 관련하여 큰 소동이 있었던 때입니다. 그때 한국 장로교회는 세계 교회 협의회를 지지하는 파, 그리고 거기에 반대하는 국제 기독교회 협의회(ICCC, the International Council of Christian Churches)나 개혁교회 보편 대회(RES, the Reformed Ecumenical Synod)에 기대려는 파로 나뉘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60년대에 외국 교회들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큰 것이었습니다. 교회의 참된 통일이 무엇인가를 추구하기보다는 외국 선교사의 경제적인 영향력이 막후에서 큰 역할을 하였고, 그들과 연결된 교권(敎權)이 지방색의 모습을 지니고 나타났습니다. 그때 김홍전 박사와 신앙의 동지들은 경제적 원조, 교권, 지방색 등에서부터 ‘독립’하여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면서 독립개신교회를 세웠던 것입니다.
교회의 설립 배경이나 역사는 지난번에 말씀드렸으므로 지난 4년 동안에 주님께서 주신 은혜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사이에 독립개신교회의 초대(初代) 목사이신 김홍전 박사께서 소천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분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내려 주시고 교회의 예배에서 사용할 찬송도 주셨는데, 그분의 봉사를 다 받으시고 데려가셨습니다. 그분의 소천이 독립개신교회에는 많은 것을 의미하지만, 주님의 교회는 그 후에도 계속 힘 있게 전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독립개신교회가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는 주님의 교회임을 드러내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교회의 조직을 놓고 이야기하자면, 독립개신교회는 여전히 개척기를 다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2대 감독의 지도 아래에서 목사들이 격주로 모여서 서로 강설하고 논평하며, 신앙고백서와 예식서를 번역하고 교회의 현안에 대하여 숙의하고 결정합니다. 마치 제네바 교회법에 나오는 목사회(The Weekly Assembly of the Ministers, Elders, and Deacons)를 생각하시면 독립개신교회의 현 상태에 대하여 비교적 정확하게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독립개신교회를 4년 전에 소개할 때에는 세 교회였는데(서울 성약교회, 안양 강변교회, 대전 성은교회), 2005년에 네 번째 교회가 10년의 개척 끝에 세워졌습니다(전주 한사랑교회). 또한 지금은 캐나다에서 소수의 한국 기독교인을 돌보면서 교회로 세워지기를 소원하면서 나아가고 있고, 또 한 사람의 목사 후보생이 나와서 신학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독립개신교회는 다섯 명의 목사가 네 회중을 돌보는데, 전체 교인의 수는 544명이고 성찬에 참여하는 숫자는 304명입니다.
매 주일마다 네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신실하게 전파되고 있고 교인들은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서 살아갑니다. 고(故) 김홍전 목사님께서 교회의 기초와 나아갈 방향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풍요롭게 해명하여 주셨고, 그 기초 위에서 우리는 전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가르치려고 노력하고(행 20:27), 그 목적을 위해서 매 주일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나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을 가르칩니다. 세례를 받거나 공적(公的) 신앙고백을 하기 전에 요리문답반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여 지식과 신뢰가 있는 믿음을 고백하면서 교회에 들어옵니다. 회중이 단정하게 예배를 드리면서 목사의 강설을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의 인도를 받아서 조용하면서도 힘 있게 전진하고 있으며, 치리와 권징도 권위 있게 시행하고 있습니다. 성찬에 참여하는 것도 개인이 결정하지 않고 치리회가 결정하여 성찬의 상(床)을 거룩하게 보존합니다. 또한 도르트 대회에서 택한 여러 가지 예식문들을 번역하여 사용함으로써 교회들 사이에 통일성을 드러내고 있고, 언약의 자녀를 교육하기 위하여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매 주일 독립개신교회의 교회들에 말씀을 내려 주시고, 독립개신교회의 출판사에서는 교회들에 내려 주신 말씀을 출판하는 일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75종류의 강설집이 37만 권 발간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주님께서 독립개신교회에 선물로 주신 예배 찬송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독립개신교회는 고 김홍전 박사가 작곡한 찬송들을 예배에서 사용합니다. 캐나다 개혁교회의 고 파브르(J. Faber) 박사가 우리 교회를 방문하여 함께 예배드릴 기회가 있었는데, 귀국 후에 「클래리온」에 이 찬송은 “성경적이고 삼위일체적”이라고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2)
이 성경적이고 삼위일체적인 찬송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서주(序奏)와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으로 예배가 시작하고, 첫 번째 부르는 찬송은 하나님의 영광을 기리는 ‘영광송’입니다. 영광의 내용을 노래하면서 ‘성삼위송’으로 발전하고, 삼위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과 창조의 일을 찬송하는 ‘경배송’으로 나아갑니다. 헌상 때에는 우리가 가진 것이 모두 주님의 것이고 우리 자신을 주님께 다 드린다는 내용의 ‘헌상송’을 모든 교우가 부릅니다. 물론 그 사이에 시편 낭독, 주기도문, 목회 기도, 성경 낭독, 강설이 있습니다. 찬송과 예배의 다른 요소들이 함께 어울리면서 주님과의 언약의 교제가 더 깊은 데로 발전합니다. 예배의 마지막 찬송은 주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송영’이고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칩니다.
독립개신교회에서는 우리에게 주신 이 찬송이 다른 교회와 공유할 수 있는 귀한 선물이라고 생각하여서 영어로 번역하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찬송』에는 앞에서 말씀드린 영광송, 성삼위송, 경배송, 헌상송, 송영, 그리고 시편 찬송과 다른 찬송을 포함하여 모두 133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찬송』에는 룻기를 기초로 작곡한 오라토리오 “루디아”도 수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특별한 절기에 온 교우가 즐겨 부르는 찬송입니다. 예배를 시작할 때 연주하는 서주 24곡도 『프렐류드』로 출간하였습니다. 작곡가이기도 한 김홍전 목사님은 일찍부터 피아노와 작곡을 전공했고, 음악과 문학 분야의 은사를 하나님을 찬송하는 데에 드렸는데, 이것이 음악계에서도 인정되어 명예 음악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1951년, Central Conservatory of Chicago).
김홍전 박사는 일본이 신사 참배를 강요하던 시기에도 거기에 굴복하지 않고 생명의 위협과 극한 가난 속에서도 하나님은 찬송을 받으실 분이라고 생각하여서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을 지으셨습니다. 1938-45년에는 일본 황실의 조상을 신으로 모시는 신사(神社)에 절을 하거나[신사 참배, 神社參拜] 동쪽에 있는 일본 왕을 향하여 절을 해야[동방 요배, 東方遙拜] 양식 배급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교회나 학교는 문을 닫아야 했고, 그 압박을 이기지 못하여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1938년에 신사 참배를 허용하였습니다. 교회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암울한 시기였지만, 김홍전 박사의 가정에서는 성경적이고 삼위일체적인 찬송을 드렸습니다. 첨부한 견본 중에 경배송 1번과 성삼위송 1번이 그 시기에 작곡한 것인데, 그 곡조는 비탄조가 아니고 청아합니다. 땅에는 흑암과 고난이 있지만, 그 가정은 하늘의 보좌에 이르러서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호소하고 거룩한 삼위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참조. 사 5:30-6:3).
예배용 찬송의 5분의 4는 1964년에 독립개신교회가 설립된 이후에 지은 것입니다. 견본 중에서 영광송 8번, 헌상송 4번, 송영 2번이 교회의 설립 시기인 1965년에 작곡한 것입니다. 마치 여러분의 시편 찬송이 종교개혁의 열매이고 또한 신자들을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한 수단이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한국에서 개혁 교회를 세우실 때에 김홍전 박사에게 음악적 재능을 주셔서 감정주의적인 찬송을 배제하고 삼위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찬송을 짓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찬송과 함께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예배를 드리면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예배용 찬송과 오라토리오는 모두 4부로 부를 수 있도록 작곡되었고, 교우들이 조금 연습을 하면 어렵지 않게 4부로 아름답게 부를 수 있습니다. 독립개신교회에 속한 강변교회에서 찬송하는 것을 CD로 제작했으니 악보를 보실 뿐 아니라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함께 주님을 찬송했으면 합니다.
물론 여러분의 찬송의 유산도 훌륭하고 우리도 그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제가 목회하는 성은교회에서는 제네바 시편을 번역하여 함께 부르는데, 지금까지 70곡을 번역하였고, 전통적으로 교회에서 애송하던 다른 찬송들도 신중하게 선곡하여 번역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몸에 속하였기 때문에 여러분의 교회에서 사용하는 것이 우리 것이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도 또한 여러분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독립개신교회가 다른 교회들과 공식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는 않지만, 지난 4년 동안에 캐나다 개혁교회, 네덜란드 기독개혁교회, 네덜란드 개혁교회(해방), 뉴질랜드 개혁교회, 호주 자유개혁교회에서 오신 목사님과 교사가 독립개신교회에서 말씀을 전파하시거나 특강을 하셨습니다. 그분들 가운데서는 지금 이 자리에 계신 분도 계신데, 그분들이 독립개신교회에 대한 개인적인 증거자도 되실 것입니다. 이제 주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받아서 앞으로 여러분들과 공식적인 관계에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교회들과 우리의 교회들에게 복을 주셔서 배교(背敎)한 교회들과 불신의 세상에 대하여 개혁의 증언자로 설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1) 김헌수, “독립개신교회 소개(2001년)”,「성약출판소식」 37호, 2003. 3. 2) J. Faber, “Our Korean Connection”, Clarion, 47 (1998), pp. 556-5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