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의 역사를 씁시다
인간은 모두 죽는다. 죽음과 함께 머릿속의 기억도 사라지기 마련이다. 힘들고 험한 세상에서 나의 이야기들을 글로 남기는 것은 자아성찰과 후손에게 남겨줄 위대한 유산이다..
역사를 망각한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반드시 그 과거를 되풀이한다.
자신이 살아온 생생한 이야기를 남겨 교훈을 삼도록 하는 것은 돈을 남겨주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섣불리 조언을 하면 소위 ‘꼰대’가 되기 십상이 되는 세상이다. 한순간의 감정만으로 포장한 말을 하는 것도 오해의 소지가 생긴다.
삶의 진정한 지혜는 많이 아는 것보다 체험적이고 정확한 것을 아는 것에서 출발한다.
신영복의『처음처럼(돌베게, 2016)』에서는 창(窓)과 문(門)의 차이점을 설명한 대목이 나온다. 사람은 오직 손으로 창문을 열고 닫는다. 창은 실내에서 실외를 바라보는 기능이 있기에 고요함, 관조, 명상 등의 정서를 연상한다. 문은 밖으로 나가는 통로라서 현장성, 실천, 진보성의 느낌을 준다. 창과 문의 차이점을 글쓰기 작업에 비유해 본다면 창의 생각이고, 문은 실천이다. 창가에 앉아서 머릿속으로 구상했으며, 문을 열고 나가듯이 문자로 표현해야만 글이 된다.
자서전(自敍傳)을 사전에서 찾아보면,“저자 자신의 일생을 소재로 스스로 짓거나, 남에게 구술하여 쓰게 된 전기”라고 설명한다. 한자로 풀어보면 스스로 자(自), 펼 서(敍) 전기 전(傳)으로 개인의 일생을 사적 중심으로 기술한 산문이다.
자서전(autobiography)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알려져 있다.
‘auto(나) + bios(삶) + graphein(쓰기)’라는 세 단어의 합성어로‘자신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스스로 쓴 글’이다.
서울대학교 프랑스문학과 유호식 교수는『자서전(민음사, 2015)』이란 책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자서전(autobiography)이란 용어는 그리스어 어원을 가진 세 단어의 합성어로 알려져 있다. ‘auto + bios + graphein’은‘나-삶-쓰기’라는 의미로,‘내가 나의 삶에 관해 쓴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에서 행위의 주체인‘나’, 서술의 대상인‘나의 삶’, 그리고 글쓰기라고 하는‘행위’가 분명히 드러나 있다. 자서전은 자신의 삶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행위이다.”
결국 자서전에서 가장 본질적인 부분은“내가 직접 나에 관해서 쓴다”는 점이라고 하겠다. 평전이나 전기는 제삼자가 객관적으로 어떤 인물에 대해 묘사한다. 그러나 자서전은 당사자가 직접 자신의 삶을 쓰는 것이다.
“자서전이란 자신의 이야기, 그러니까 자신이 기억하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자서전을 읽으면 그 속에 그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고 있는 나 또한 그 속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삶의 이야기를 교환한다. 또한 과거의 이야기를 하면서 만들고 싶은 미래의 이야기를 한다. 그러므로 자서전은 개인에게 기억된 역사이며, 동시에 그 사람의 꿈이다. 위대한 사람만 자서전을 쓰는 것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은 평범하므로 자신의 기억을 남겨야 한다. 자서전이란 오히려 자신이 기록하지 않으면 누구도 기록해주지 않을 기억을 남겨야 하는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의무인지도 모른다. 나는 10년에 한 권씩 자서전을 쓰기로 했다. 누가 내 이야기에 관심을 둘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나를 위해 쓴다. 기록이 없으면 역사도 없고 자신의 세계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사라질 것이고 나의 이야기는 남을 것이다.”
자서전과 비슷한 말로 회고록(回顧錄, memoir)이 있다.
전자는 한 사람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을 어린 시절부터 집필 시점까지 솔직하고 체계적으로 다룬다면, 후자는 외부의 정치적, 사회적인 상황을 중심으로 한 삶을 기록한다는 측면으로 차이가 난다.
평전이나 전기는 제삼자가 객관적으로 어떤 인물에 대해 묘사한다. 나의 역사 쓰기는 자서전과 대부분 동일하지만 기술 형태, 분량, 체계적 기술에서 자서전에 비해 자유롭다는 차이가 있다.
자서전의 본질인 적나라한 자기 내면의 토로인 반면에 개인적 미학을 탐구하는 글쓰기와도 차이가 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자신만을 위해 쓰는 형태다.
글의 형태, 분량, 출판 여부, 이야기 방식에서 별다른 기준이 없는 나의 역사를 쓰는 것이 ‘내 마음을 느끼고 삶으로 실천하는’뛰어난 창조적 방법 중의 하나로 오늘날 각광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의 역사쓰기는 저자-화자-주인공이 같으며, 변화와 지속성에 걸맞는 시간적 연쇄로 이루어진 삶 자체가 소재가 되는 이야기이다.
평범한 사람일수록 오히려 평범하기에 자신의 기억을 남겨야 한다. 자신이 기록하지 않으면 누구도 기록해주지 않을 기억을 남기는 것. 결국, 자서전 쓰기는 나 자신을 위한 일이다.
자서전은 누군가 기록할 수 있겠지만 나의 역사는 자신이 기록하지 않으면 누구도 대신 해 주지 않는다.
삶을 기억하고 반추하면서 미래를 설계하는 일은 거룩하다. 또한 살아가는 가치와 의무인지도 모르겠다.
누가 내 이야기에 관심을 둘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사라지겠지만 나의 이야기는 남지 않은가?’글로 삶을 묻고 대답한다.
자서전의 역사는 오래됐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의『명상록』.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의 『수상록』 등은 익히 알고 있는 자서전 성격을 지낸 책이다.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로마, 354∼430)는 청년시대의 죄와 방황을 회고하며, 회심으로 인도한 신의 은총을 찬미한다. 신앙자서전『고백록(Confession)』의 첫머리에서 이렇게 썼다.
“주님은 우리를 주님 자신을 위하여 창조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주님 안에서 편안함을 얻을 때까지 안식을 누릴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었던 김구의 『백범일지(白凡逸志)』는 단순한 삶의 행적만이 아닌 저자의 시대와 인물을 체험할 수 있는 개인의 삶을 다루었다. 성직자 조지 뮬러(George Muller)의 자서전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만 의지한 사람이 쓴 일기문의 형식이다.
나의 역사 쓰기는 자신의 삶에 대한 정보이면서 스스로 쓴 글이다. 평전이나 전기는 제삼자가 객관적으로 어떤 인물에 대해 묘사한다. 그러나 자서전은 당사자가 직접 자신의 삶을 쓰는 것이다.
자서전은 지금까지도 계속 집필되고 있다. 앙드레 지드(Andre Paul Guillaume Gide)나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최근엔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등 내노라 하는 저명 인사들이 자서전을 썼다.
“삶의 이해를 돕는 가장 알기 쉬운, 최상의 형식”이 자서전이라는 독일의 역사학자 빌 헬름 딜타이(Wilhelm Dilthey, 1833∼1911)의 설명을 접하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금까지 자서전이 활발히 쓰이고 읽히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자서전 쓰기가 그만큼 쓸모 있는 일이라는 것이리라.
자서전 쓰기는 인생을 구성하는 일련의 사상적 흐름을 자신과 대비하면서 ‘자기 삶에게 묻고 현명한 대답을 찾는 일’에 집중하면 좋겠다.
‘나는 누구인가?’
‘나에게 삶이란 어떤 의미인가?’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비록 글쓴이의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계점도 있지만 역사적 연대를 첨부한 객관적 사실과 저자의 정신적 사상과 생활의 지혜를 함께 발굴해야 한다.
나의 역사를 쓰면 좀 더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
카타르시스(catharsis)와 통찰을 이끌어 내는 최상의 전략이다.
지금의 나이는 자기 역사를 쓰기 좋은 적령기다. 자신의 삶을 오롯이 되돌아보며 그 기억들을 마이 스토리로 적는 도전하는 당신이 아름답다.
나는 종종 내 인생이 길을 잃고 방황하는 하루살이 같다는 생각을 했어
아주 잠깐 살다가는 인생인데
태풍에 방향을 잡지 못한 조그만 배처럼 위험천만해 보이는 모습
죽을 힘을 다해 달려왔건만 원했던 길이 아닌 느낌
다시 달리기가 힘들어 포기할까 고민하며 달렸는데
또 이상한 곳에 도착한 느낌
언제쯤이며 닿을 수 있을까 늘 걱정이었지
갈 길이 멀어 보이지만 여기서부터 중간점검을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