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10일~
한때 전직 대통령을 두고 <물 대통령>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 국가 원수를 향해 이런 칭호를 사용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다. 우리 교회에도 <물 집사님>이 계셨다. 물 집사란 어감은 그리 좋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 교회에서는 아주 귀한 뜻으로 쓰이는 고유 명사다.
물 집사는 이경애 집사님을 두고 부르는 애칭이다. 1954년도 교회당 건축을 할 때 흙벽돌을 직접 교인들이 만들었다. 이때 여성 교인들은 마을 가운데 있는 통샘에서 물을 길어오는 일을 맡았다. 그중에서도 이경애 집사님의 헌신은 더욱 유별났다. 밤낮으로 물을 길어 오는데 전심을 다하였기 때문이다.
집사님께서 물을 길어 오는 헌신을 하게 된 동기는 헌금을 드릴 수 없음 때문이었다고 한다. 우물과 언덕에 있는 건축 현장까지의 거리가 가까운 게 아니어서 연약한 여인이 감당하기에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이경애 집사님의 헌신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전해오는 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한 임금이 자기 이름을 넣은 기념교회를 짓고 싶어서 아무에게도 헌금을 하지 말라고 명하였다. 드디어 건축이 완성되자 머릿돌에 임금의 이름을 새겨 넣게 되었다.
그날 밤 임금은 이상한 꿈을 꾸었다. 자기 이름을 지우고 가난한 과부의 이름을 새겨 넣는 꿈이었다. 세 번이나 같은 꿈을 꾸었다. 임금은 과부를 찾아가 교회당 건축을 할 때 무엇을 했느냐고 엄히 물었다. 과부는 임금의 명령을 따라 교회당 건축을 위한 헌금을 낸 적이 없고, 다만 교회당 건축할 벽돌을 나르는 말에게 건초더미를 준 일이 있었다고 답했다.
이에 왕은 건축자를 시켜서 머릿돌에서 자기 이름을 지워내고 과부의 이름을 새겨 넣도록 했다. 과부는 교회당 건축을 위해 아무것도 드리지 못했고, 말에게 마른 풀을 집어 주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지극히 작은 과부의 헌신을 기쁘게 받아주신 것이다.
교인들은 예배당이 건축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이경애 집사님을 두고 물 집사로 불렀다. 70년 전의 일이지만 여전히 그녀를 물 집사로 기억하고 있다. 적어도 우리 교회에서만큼은 물 집사라는 이름은 명예스러운 칭호다.
하나님께서도 집사님의 헌신과 수고를 기억하고 계실 것이다. 지금쯤 물을 이어 날리던 머리에는 황금 면류관을 씌워주셨을 것이고, 집사님의 아름다운 헌신이 천국에서 해같이 빛이 나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헌신으로 세운 교회를 두고 여수로 이사를 했다. 그 이후로 꾸준하게 신앙생활을 잘 하셔서 권사가 되었다고 한다. 언젠가 권사님의 아들 가족이 고향 교회를 방문하여 예배를 드린 적이 있는데, 그 후로는 소식이 끊겨 근황을 알 수 없다. 천국 가셨다는 이야기만 나중에야 들었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