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4일 –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할 때 우리는 어떤 느낌을 제일 먼저 받을까요? 당연히 예수님의 고통과 희생이라는 무거운 감정을 갖는 것이 일반적인 느낌일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표상은 우리에게 죄를 뉘우치고 잘못된 삶에 대한 후회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십자가는 인류를 구원한 승리와 영광의 표상이기도 합니다. 십자가의 희생이라는 역설을 통해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축일은 헬레나 성녀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발견하시고 기념 성전을 지어 봉헌한 날인 오늘로 정해졌습니다. 예루살렘에 가 보신 분들은 당연히 거룩한 무덤 성당을 가 보셨을 것이고,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과 무덤 성당이 한 성당 안에 있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헬레나 성녀 시대에는 작은 성당 세 개만이 이 언덕 위에 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 성당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다고 알려진 곳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언덕을 발굴하여 십자가를 찾아냈던 것입니다.
십자가는 당연히 고통의 표상이지만 그리스도교가 십자가를 발견하고 가졌던 놀라움과 열정의 정체는 고통이 아니라 승리의 기쁨이었습니다. 박해와 억압 속에서 진리의 말씀대로 살기가 어려웠고 세상으로부터 홀대를 받던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십자가는 영광의 표징이 되었습니다. 악은 반드시 사라지고 예수님께서는 승리하시는다는 믿음이 마침내 승리를 차지한 것입니다. 그래서 고통을 넘어설 수 있다는 확신과 함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에 대한 신앙이 더욱 강해졌던 것입니다. 이렇게 승릴르 깊게 체험한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다시는 돌아서지 않을 굳은 믿음을 가지고 현세의 역경을 뚫고 살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축일은 고통이 아니라 승리의 축일입니다. 십자가는 멸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는 확실한 길인 것임을 믿는 우리에게는 거대한 축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면서 주님께서 사용하신 승리의 방법인 십자가를 다시 한 번 배울 마음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 가르치듯이 악과 죄가 있다면 그것이 정체를 드러내도록 끝까지 그에 대해 맞서 싸우고, 혹시 우리 안에 악과 죄가 있다면 그것과 결별하도록 애쓰도록 합시다. 구리뱀이라는 상징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죄를 지었던 원인이었습니다. 하와를 유혹했던 뱀은 가장 근원적인 악으로서 인간의 교만함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의 교만함을 구리뱀을 통해서 직면하고 그것에 대해 결별을 했듯이 우리도 주님의 은총으로 매 순간 그런 노력을 해야합니다. 그것이 오늘 축일이 말하는 승리의 십자가의 방법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함께 거룩한 하루를 지내시기 바랍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3,14-15)
[비전동성당]주임신부 정연혁 베드로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