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정월의 추억
오 명 성
어머님 고향은 평양이고 아버님 고향은 사리원이다. 월남 이 세대인 나에게 음력 정월은 여러 음식을 해 먹던 추억과 함께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가장 많이 나고 그리워지는 때이기도 하다. 섣달그믐 즈음이 되면 어머님은 만둣국을 만들기 위한 재료 준비로 분주해지신다. 먼저 김장김치를 다져서 김칫국물을 쪽 빼놓으시고, 돼지고기를 잘게 다져놓으신다. 그리고 숙주나물을 살짝 데쳐놓으신 후 두부를 잘게 으깨놓으신다. 마지막으로 준비된 모든 재료를 함께 섞어서 갖은양념들을 곁들여 맛을 내는 것이 어머님 손맛의 비결이었다. 지금은 만두피를 마켓에서 팔고 있지만 나의 어린 시절에는 집에서 직접 만들었다. 밀가루 반죽을 해서 둥그레 밥상 위에 놓고 홍두깨를 이용해서 넓고 얇게 밀어놓은 다음에 밥사발 둘레의 원을 이용해서 반죽 위를 찍는 방법으로 원형의 만두피를 만들었다. 그 만두피로 만두를 빚으시면서 어머니는 꼭 한 말씀을 하셨다. “만두는 속 먹자 만두야” 하시면서 제한된 피 안에 만두 속을 다른 사람은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을 담으면서도 만두를 이쁘게 빚으셨다. 지금도 눈에 선하게 보인다 수건 쓰고 앉으셔서 만두 빚던 어머님의 모습이. 그리고 너무나도 그립다. 내가 조금 커서 초등학교 다닐 때, 다른 집들은 그 날 만둣국이 아니라 떡국을 먹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처음에는 떡국에 있는 떡을 씹을 때 낯선 음식이기에 미끈거리는 것 같은 식감이 싫어서 잘 먹지 않았다. 나중에 성장해서 떡국의 맛을 알게 되었다.
다음으로는 빈대떡을 만드는 것이다. 빈대떡도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재료는 만두 속을 만드는 것과 거의 같으며 다만 녹두를 갈아서 함께 버무려서 기름에 부쳐내는 것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계란의 흰자를 알맞게 섞어 버무려서 그들을 찰지게 잘 부치는 것이다. 어머님은 부치시면서 처음 몇 개를 식구들에게 시식하게 하면서 맛의 정도를 가늠하게 하고 난 후 양념을 더 넣어서 알맞은 맛을 완성하곤 하셨다. 그때, 물어보는 말씀이 “짜냐, 싱겁냐 아니면 찰지냐, 아니냐” 등이셨다. 참으로 자상하게 물으시면서 만드시던 그 모습이 지금도 보고 싶다. 다른 집에서는 빈대떡을 볼 수 없었고 김치, 배추 또는 파 등을 밀가루 반죽을 이용한 지짐 누름적이 대부분이었다. 떡국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생경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정월 초하루 차례 상에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만둣국과 빈대떡을 올린다. 다행히도 아내와 딸이 시어머니와 할머니에게 잘 배워서 어머니와 거의 같은 맛을 내는 것에 대해 나는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최근에는 아들까지 합세하여 함께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그리고 어머니가 만두 빚는 것을 옆에서 보고 자라서인지 만두 빚는 일은 내 전문 분야가 됐다. 어머니 솜씨만은 못해도 비슷한 흉내를 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섣달그믐 날이 되면 모든 식구들이 함께 모여 빈대떡 부치고 만두 속을 만들어 만두를 빚고 하는 떠들썩함 속에서 부모님을 생각하는 시간이 되어 참 행복하다.
그런데 금년 섣달그믐날에 함께 빈대떡을 부치고 만두 속을 만들면서 사십이 된 큰 딸이 이제 삼년 만 더하고 빈대떡을 그만 부치자고 한다. 만두도 만두전문회사에서 나오는 것이 집에서 만드는 것과 거의 비슷해서 사서 하자고 한다. 이유는 만드는 과정이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그 말에 나도 동감을 한다. 나 어렸을 때, 어머니 혼자서 모든 것을 준비할 때, 어린 내 마음에서도 어머니가 너무 힘들게 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큰 딸은 그 말을 해놓고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생각을 해보았다. 월남 이 세대로 내 나이가 칠십을 넘었으니 이런 음식문화도 얼마 있지 않으면 사라질 것을 생각하니 아쉬움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식구들이 모두 힘들다는데 나만 고집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족들에게 말했다. 그럼 이후로 하지 말자고 했다. 모두 좋아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나는 슬펐다. 앞으로는 함께 만드는 과정에서 느꼈던 부모님에 대한 추억을 느낄 수 없다는 아쉬움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부모님의 음력 정월 먹거리 추억이 잊혀져 가는 것이 너무나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