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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다섯 시에 맞춰놓은 휴대폰 알람소리에 눈을 떴다. 일 년 넘게 이 시간에 일어나다보니 몸은 이미 알고 다섯 시가 안돼서 잠은 깨여 있다. 조용히 하루일과를 그리며 사색에 잠겨본다. 간단히 씻고, 우유에 빵 등 간편식으로 아침식사를 가름한다. 요즘은 다시 아내가 차려줘서 식사한다. 시간 남으면 맨손체조로 몸을 풀고 아령과 바벨로 근력운동을 한다. 상쾌한 마음으로 여섯 시에 집을 나선다. 총총걸음으로 오분 여 걸리는 우이역에서 신설동행 경전철을 탄다. 이렇게 출근한지 일 년이 좀 지났다.
그동안 전 회사에서는 영업활동을 오랫동안 해왔다. 업무상 외근 및 출장이 많은 관계로 회사업무용차를 지급받아 출퇴근도 그 차로 겸해왔다. 물론 출근하면서 일부 구간 정체되는 것을 제외하면 불편한 것은 별로 없었다. 그러다 나이가 육십 중반을 넘어서니 영업활동에 어려움이 있어서 퇴직했다. 그 후 성남시 산성역 근처 아파트 신축현장에 자격증을 필요하는 기술직으로 취업해서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를 출근하고 있다. 처음에 아내는 40여년 해오던 정성으로 먼저 일어나 아침상을 차려주었다. 그동안 출장으로 이른 아침식사는 시간이 촉박하여 급히 식사하는 것을 자제해 왔다. 간편식으로 아침식사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아내에게 양해를 구했다. 지금까지 건강 유지하면서 직장생활 지속하는 것도 아내의 헌신적인 내조 덕분이다. 이 지면을 통해서 부족한 남편만나서 고생 많이 하셨고, 늘 감사하는 마음 간직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전하고 싶다.
첫 날 이른 아침의 지하철 안의 모습은 어떨까? 호기심이 생겼다. 종점이다 보니 몇 사람만타고 빈자리가 많았지만, 세 정거장 지나니 가득 자리를 메우고 다음 역부터는 서서가는 승객들이 늘어났다. 놀라운 것은 의외로 어르신들이 많았다. 우리나라는 선진국들의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도 오래전부터 가입되어 있었다. 각종 지표에서 우리나라는 경제부분과 IT분야에서는 앞서있지만, 복지부분과 행복지수에서는 38개국에서 30위 밖에서 머물고 있다. 특히 노인 자살률은 제일 높고, 노후생활 수준이 꼴찌라고 발표되었는데 그것이 현실인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분들은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의 고통을 겪으신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그러나 그 후 보릿고개를 몸소 체험하며 못 먹고, 못 입고, 못 배웠다. 일찍이 어린나이에 열악한 산업현장에 투입되어 가족을 위해 희생을 자원하셨다.
오늘날 이만큼 경제발전을 이루고 자식들 남부럽지 않게 공부시키고 잘살게 만든 일등공신이고, 산업역군들이라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그 중에는 여가를 즐기시려는 분들도 계시지만, 대부분 생계문제로 출근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보기에도 몸 여러 곳이 아프신 것 같은데 그 불편한 몸으로 매일 그 시간대에 어김없이 출근하시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 집에서 편히 쉬시면서 손주들 재롱부리는 것을 즐기실 때다. 노후라도 건강히 취미생활도 하시면서 안락한 삶을 사시는 것이 당연히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노인들이 행복하고 삶의 질이 좋아지는 시대가 빨리 오길 기대한다.
유럽 한 언론사의 한국특파원으로 이년 넘게 근무한 기자가 한국을 떠나면서 남긴 글이 SNS에 올라온 글을 읽어본 적이 있다. 그 일부 내용은 삼광(三狂) 즉 한국사회가 세 가지에 미쳐있다. 라고 지적했다. 그 하나가 휴대폰에 미쳐있다. 라는 것이다. 한국은 IT 강국답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휴대폰 보급률이 다른 선진국보다도 훨씬 높고 활용도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른 아침의 지하철안의 모습은 50%~60% 정도는 휴대폰을 보고 듣고 있다. 요즘은 무선 이어폰이 대세이다. 일부 오십대 이상에서 유선 이어폰을 끼고 있지만, 극히 드물다. 그 나머지는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한다. 간혹 한 두 분책을 읽지만, 극히 드문 것이 현실이다.
그 기자는 유럽 지하철에서는 상대적으로 책을 보는 승객들이 많다고 했다.
휴대폰 속에는 한 개 도서관이 들어있을 정도로 방대한량의 자료와 많은 정보가 저장되어 있다는 것을 그 기자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나라가 IT 분야에서 선진화되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고, 절대 그것이 부끄럽거나 수치스럽다. 고는 생각 안한다.
휴대폰 안을 들여다보면 20~30대들은 카카오톡, 게임, 외국어동영상 강의, 넷플릭스 드라마, 넷플릭스 영화, 만화, 유튜브, 각종 콘텐츠, 정보검색 등을 주로보고 40~50대들은 20~30대들과도 겹치는 부분도 많으면서도 현실적인 뉴스 등을 많이 본다. 우리세대인 60대 이상은 뉴스, 카카오톡, 유튜브, 음악듣기 그중에서도 흘러간 가요, 7080 통기타노래 등 옛것에 대한 향수를 불러오는 것을 많이 본다. 3차 산업을 주도했던 컴퓨터와 인터넷은 이제 우리 손안에서 즉 휴대폰 모바일에서 민원업무, 은행업무, 쇼핑, 문서송수신, 정보검색, 게임 등등 정보화시대를 이끌고 있다. 사자성어에 불광불급(不狂不及) 즉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그 유럽 기자는 제대로 본 것이다. 휴대폰에 미쳤기에 대한민국이 5G도 세계 최초로 상용화되었고, 전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디지털 IT강국으로 우뚝 섰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매일 종점에서부터 각 역마다 그 시간 때에 맞춰 타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출근하고 있었지만, 매일 반복으로 마주치니까 어색하기도 하고 호기심도 생겼다. 직업, 나이도 궁금했다. 출근까지 세 번 갈아타는데 같이 동행하는 분들도 여러 명 있었다. 그들과 말동무도 하고 싶고 출근길이 덜 지루하지 않을까 하여 내가 먼저 다가가기로 마음먹었다.
성격이 원래부터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시골 어려운 집안에서 자라왔고, 아버지가 동네에서 이름난 술주정뱅이셨다. 그 명성은 이웃 여러 동네까지 소문나 있었다. 어릴 적 아버지는 술만 드시면 어머니를 비롯하여 가족을 괴롭히셨고, 동네사람들과도 자주 다투셨다. 평상시에는 어머니한테도 잘해주셨고, 자식들을 끔찍이 사랑해 주셨는데 술만 드시면 백팔십도 변하여 가족 모두가 힘들었다. 그런 가정에서 자라왔으니 늘 주눅 들어있어 누구에게도 다가가지 못하고, 남 앞에는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소심한 성격이 되었다. 어머니는 저한테 커서 술을 먹지 말라고 늘 당부의 말씀을 하셨다.
청소년기를 거치고 사회생활하면서 어머니 말씀을 늘 가슴에 새기며 술은 입에 대지도 않았다. 군복무하면서 고참 병사들의 억압에 억지로 먹기 시작했지만, 아버지의 술버릇은 절대로 따라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여 지금도 술은 좋은 사람들과 좋은 분위기에서 기분 좋게 마시고, 힘들거나 기분이 언짢을 경우에는 마시고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군대제대 후 직장에서 영업업무를 시작하면서 성격이 바꾸지 않으면 영업부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개척영업부터 시작했기에 아무런 연고 없는 건설사 해당직원들에게 찾아가서 허리 굽혀 인사하고 명함을 돌리면서 적극적으로 거래처를 확보해 나갔다. 그런 영업활동을 삼십여 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성격도 바뀌어졌다.
첫 인사는 종점에서 늘 함께 타는 오십대 중반 남성으로 토목감리를 하는 동네 사람이었다. 명함을 주고받으며 같은 건설계통이라 소통이 잘되었다. 전화도 하고 카카오톡도 하면서 출근길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가끔 퇴근 후 식사와 막걸리도 하면서 오랜 친구처럼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다. 우리는 어느새 형님아우로 호칭하면서 아침을 밝은 마음으로 열어나갔다.
그러나 그 만남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 아우는 근무하는 현장이 종료되어 다른 곳으로 발령받아 지방으로 내려갔다. 그 후에도 전화와 카카오톡으로 안부를 전하고 있다.
두 번째 만남은 가오리역에서 타는 젊은이다. 출근길뿐만 아니라 퇴근길에서도 자주 만난다.
아들또래이기에 아버지 같은 마음으로 다가가 명함을 내밀며 “출퇴근길에 자주 만나는데 인사나 하고 지내자.” 고 했더니 흔쾌히 받아주었다. 처음에는 당황하며 경계하는 눈빛을 보였지만, 신분을 확실히 밝히니 표정이 밝아졌다. 요즘 성장하는 인터넷 쇼핑몰에 근무하며 주오일 근무지만, 토요일, 일요일 등 공휴일도 근무한다며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이 세상에 쉽게 돈 버는 일은 없다. 라고 아버지의 마음으로 격려해주면 해맑게 웃는다. 아들 같아서 장래를 같이 의논하고, 지금 일하는 유통회사에서 일을 계속하려면 관련 국가자격증을 취득하라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 업계에서 지속으로 근무하고 발전하려면 필수 과정이다. 그 말을 듣고 표정이 심각해지면서도 알았다. 는 표정으로 긍정적으로 받아준다.
일하면서 공부하고 자격증 취득한다는 것은 말처럼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 과정을 겪어보았기에 힘들었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내 나이 오십이 넘어서 시작했기에 그 대가를 치러야했다. 회사 근무로 관련 전문학원도 못나가고 퇴근 후 최소한 기본으로 자정까지는 관련 책장을 넘겨야했다. 주말에는 도서관에서 여는 시간부터 닫는 시간까지 의자에 엉덩이를 붙여야했다. 회사 외에는 친목모임, 애경사 등 모든 것을 단절했다. 애경사는 아내가 대신 참석해 주었다. 그렇게 집중했는데도 1차 필기시험 한 번 떨어지고, 2차 서술시험에는 세 번 떨어지고 네 번째 가까스로 합격하여 대망의 국가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다. 무슨 일이든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성실하게 노력하면, 반드시 꿈은 이루어진다.
출근길은 열차를 세 번 갈아탄다. 우이역에서 경전철로 신설동역, 2호선 신설동역에서 성수역, 성수역에서 2호선 잠실역, 잠실역에서 최종으로 8호선 성남 산성역까지 간 후 십오 분 걸어서 현장사무실에 도착한다. 성수역에서 잠실역까지는 승객들이 대부분 앉아서 간다. 마찬가지로 휴대폰도 보고 휴식도 취하면서 몇 정거장을 덜껑거리는 소리 외에는 열차 안에서는 정막이 흐르면서 지나간다. 잠실철교를 지나면서 넓은 한강의 멋진 경치를 바라보면 가슴이 탁 트이고 행복하다. 그날도 지인들에게서 온 카카오톡을 보고, 휴대폰에서 눈은 앞좌석으로 자연스럽게 향했는데 한 아가씨와 눈이 마주쳤다. 민망하여 시선을 다시 휴대폰으로 옮겼다. 그러나 가슴에서는 한동안 느껴보지 못한 묘한 감정이 일어났다. 그날은 우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성남행 8호선을 환승하려고 걸어가는데 그녀도 같은 방향으로 총총걸음으로 가고 있었다. 노트북가방과 다른 어깨에도 가방을 메고 좀 힘겨워 보이지만, 씩씩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우리 딸처럼 느껴졌다.
며칠 후 그날도 평상시처럼 그 칸에서 좌석은 다르지만 잠실역으로 가고 있었는데, 그 아가씨와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그녀는 가방에서 명함을 꺼내서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일까? 착각도 하면서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지며. 그 자리가 불편해졌다. 내 나이가 칠순을 바라보고 있는데, 마치 고목나무에서 꽃이 핀다고 할까! 젊은 여성으로부터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아직도 내게 남성적인 매력이 남아있는 것일까? 한때 삼무(三無)시대가 사회적 현상을 대변한 때가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신과 직접 이해관계가 없으면 무관심이고, 안전문제 및 응급상황이 아니면 그냥 각자 가는 길
간다. 누구든지 타인으로부터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에너지를 얻는다.
한편으로 건설회사에 근무하는 막내아들 생각이 났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 일하고 있는데 아직 사귀는 여자 친구가 없다. 사회적인 어려움으로 결혼적령기가 늦춰지는 것이 마치 유행처럼 흐르고 있는데, 부모의 마음은 빨리 짝을 채워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자신의 발전과 꿈을 이루기 위해 매일 이른 아침에 출근하는 그녀가 대견스러웠다. 내 청년시절 꿈을 향하여 힘들게 불철주야 동분서주하던 모습을 떠올리며 그 아가씨에 대해 또 다른 관심이 생겼다. 직업, 나이, 사는 곳 등 그리고 제일 중요한 인성도 궁금해졌다. 모든 것이 원만하다면 장래 며느리 감으로 아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었다. 물론 나의 일방적인 생각이다.
그런데 난감해졌다. 그동안 남성들은 인사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는데, 여성 그것도 아가씨한테 다가가 인사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싶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요즘 언론에 스토킹 사건이 자주 오르고, 그 피해도 심각하다. 주로 남성이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집착해서 그릇된 사고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내 생각은 그것과는 거리가 있기에 부딪쳐보기로 했다. 인사를 받아준다면 “아빠의 마음으로 온화한 미소를 담아서 그윽한 눈빛으로 인사를 아침마다 나눈다.” 라는 생각을 머릿속에 그리니 마냥 행복해졌다. 그러나 그런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어도 선뜩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무엇인가 마음에 걸리고, 나이 탓일까 내키지 않았다.
며칠 후 그 아가씨를 만나서 오늘은 용기를 내야겠다고 다짐하며 뒤에서 걸으며 기회를 엿보았다. 아내와 결혼 전에 만날 때도 이런 느낌은 없었는데, 어찌나 긴장되고 가슴이 두근거리는지 제정신이 아니었다. 성남행 열차를 기다리는 그 틈에 명함을 내밀며 “자주 보는데 인사하고 지내지요.” 라고 명함을 주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그녀의 표정은 말은 안했지만, 왜 명함을 받아야 하는 건가요? 마지못해서 받는 것을 보고 얼굴이 붉어져서 재빨리 다른 칸으로 이동했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혹시나 연락이 올까 기다려봤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다. 역시 우연이고, 환상이었다. 그 녀는 부담이 느껴졌는지 열차 타는 시간을 변경하여 지금은 만나는 일이 거의 없다. 요즘 아가씨들 현명하니까 바로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가끔 다른 사람들처럼 뒷모습만 보여주며 바쁜 걸음으로 걸어간다. 잠시 설렘을 주고, 아름다운 환상을 심어준 것에 고맙고, 특별한 추억을 담아줘서 감사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느낀 것은 나이들 수록 용모 단정히 하고, 목욕도 자주하여 남에게 불쾌감을 주지 말아야한다. 간혹 퇴근길에 몸도 가누기도 힘들 정도로 약주를 과하게 드시고, 마치 집안인 양 큰소리치시는 어르신이 계신데 경계할 일이다. 본인의 건강과 안전에도 심각하게 위험수치가 높아진다. 집에서 기다리는 가족을 위해서도 정도껏 드셔야한다. 또 명품 옷과 신발은 아니더라도 늘 청결함을 유지하며 다녀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요즘 지하철 안의 신조어 쩍벌남은 주로 남성 어르신들에 의해 행해진다. 노화로 인한 자연현상이라고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직접 겪어봤는데 어르신이라 시정해 달라고는 차마 못했지만, 몸을 움츠려야 했고 자리는 불편했다. 조금만 배려하면 모두가 즐거운 출퇴근길, 나들이길이 될 것이다. 나이 들었다고 젊은이한테 자리 양보바라는 마음은 아예 접고, 서서가는 것도 다리운동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지금은 어르신들도 노약자석 외에는 관심 없이 학습된 체념으로 묵묵히 서서 잘 다니신다. 모두가 선진사회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흐뭇하다.
지하철 출퇴근하면서 얻은 것이 많다. 퇴근 후 만보기를 확인하면 하루 평균 일 만보, Km 로는 7Km 정도 나온다. 제법 많은 운동이어서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 전에는 관절건강이 여기저기 좋지 않아서 한의원이나 정형외과병원 출입이 잦았는데 지금은 관절건강이 좋아져서 다니지 않는다. 전에는 입맛이 없어서 의무적으로 한 끼를 때웠는데, 이제는 소화활동도 정상으로 돌아와서 허기짐을 느끼며 식사 때가 기다려진다. 친구들은 대부분 은퇴해서 쉬고 있는데 소일거리가 있다고 부러워한다. 오늘도 퇴근길에 한강을 붉게 물들이는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감상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설렘이 가슴깊이 스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