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우리 아버지 1
알콜중독성 치매에 관해서 문경제일병원 신경정신과 관계자 분께서
조목조목 증세를 짚어가며 일목요연하고 확신에 차서 설명한 내용과
술을 좀 과하게 드신 이후의 우리 아버지의 증세가
어쩌면 이렇게도 딱 일치하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평생을 고생고생하시다가 틈나면 술을 벗 삼아 동고동락해 오신
우리 아버지를 가까이서 모시고 관찰한 것 같은 통찰력洞察力에
나는 감탄하고 또 맞장구를 쳐가며 해법을 찾은 듯 애써 위안으로 삼았다.
여건만 되면 어디 시설 좋은 요양원에다 아버지를 모셔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이리 재고 저리 재며 고민을 많이도 하다가
술을 안 드시는 평소에는 거짓말처럼 멀쩡하시니
당분간 더 지켜보기로 하고 결론은 뒤로 미루었다.
사실, 불 칼 같은 성미의 아버지를 설령 요양병원에 모셔는 간데도
전혀 생소한 그곳에 억지로 홀로 두고 돌아서 나올 때에
몸부림치시다, 버티시다가 우리 모두를 위해 체념하실 그 눈빛을,
나는 차마 감당할 자신이 없다.
삼년 전, 평소 심근경색과 약간의 뇌혈관 질환으로 거동이 불편하시던 장인어른께서
햇볕이 적당하고 바람도 참 좋던 날 그날따라 대문을 활짝 열어 제치고
그 앞 그늘진 곳에 갖다드린 의자에 자리하시어 엎어질 듯 지팡이를 의지하여
누구를 기다리시는지,
씨익 맑은 표정으로 하염없이 밖을 내다보시며 하루 종일 앉아계시다가
장모님의 성화로 거실에 혼자 오르시다 뒤로 넘어져, 몸져눕고 말았다.
간병하느라 여러 날을 집에서 애들을 썼지만 이런저런 말들도 있고,
달리 방법이 없다는 모두의 일치된 의견에 따라
장인어른을 구미시 사곡동 길병원의 노인요양병동에 모시게 되었다.
가끔씩 날을 받아 찾아뵐 때마다
말씀은 잘 못하시지만 집에 가시겠다며 어떡하든 일어나시려
철제 침대의 손잡이를 부여잡은 두 팔에 힘이 들어가 부르르 떨리고
얼마나 애를 쓰시든지 침대가 들썩들썩 다가닥거리는 소리가 몹시 소란했다.
칸막이 너머로 어떤 환자분은 고개를 내밀어 일삼아 쳐다보시고
우리들을 일일이 둘러보며 가늠하는 것 같아 민망했다.
장인어른께서는 그러기를 한참 만에 지치신 듯,
이제는 당신의 마음을 알았으려니 많은 말씀 머금은 간절한 그 눈빛을,
우리 모두는 외면한 채
며칠 내로 꼭 집으로 모시겠다며 하나둘 병실을 서둘러 나올 때에
장모님, 맏사위인 나, 세 자매의 맏이인 집사람, 둘째처남, 처남댁, 막내동서, 처제
서로들 시선을 피했고,
장모님과 형님 내외분이 상주에서 멀리 일부러 문병 오셨으니
그래도 점심은 드시고 가시라며 막내동서가 조용히 권하기에
보리밥집 독도로 이동하는 동안 병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인 듯한데,
아주 긴 시간 아무도 말이 없었다.
요새는 부모님을 그렇게 요양시설로 모시는 게 흉은 아니라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누구나 어느 정도는 공감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뭇 사람들의 이목은 뭐 그리 큰 문제가 아닌 듯싶다.
당사자는 물론 간병하는 식구들 모두 못할 짓으로 인식되어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고심 끝에 오죽하면 그런 결심을 했겠냐고
오히려 그게 효도하는 일이라며 그런 결정을 한 자손들을 격려하고 위로해주는
참으로 이해심 많고 너그러운 세상으로 발전했다!
아니 어쩌면 이런저런 복지시설이 많이 생겨 조금은 부추기는 편이기도 하다.
장인어른께서는 그렇게 오고 싶어 하셨고, 며칠 내로 모시겠다던 그 집에는
끝끝내 들르지도 못하시고,
2007년 1월 22일, 병원에서 귀천歸天하셨다!
어른들이 계신 함창읍 증촌리의 우리집은 길갓집이라 오고가는 동네 어른들께서
이런저런 관심으로 걱정도 함께 하고 도움도 많이 주신다.
그날도 아버지께서 낮술을 드셨는지 증세가 좀 그러시단다.
함창읍사무소의 공익근무 요원인 조카가 집에 점심 먹으러 왔다가
외할머니는 과목果木 집에 일하러 나가시고 휴대폰도 안 받으신다며
외갓집에는 아무도 안 계시는데 할아버지는 점심도 안 드시고
소리소리 지르면서 마당의 맨땅에 벌렁 누워계신다며
조금은 뿌루퉁한 목소리로 외삼촌도 집에 한번 가보시라고 연락이 왔다.
연세가 드시니 어른들이 참으로 걱정이라며
수업이 없어 교무실에 계신 몇몇 선생님들께 대충 양해를 구한 후
잠시 짬을 내어 집에 들러보니
누가 돌봐주셨는지 방안에서 주무시고 계신다.
학교 업무를 미룰 수 없다는 딴은 공과 사를 구별해야 한다는 구실로
사실은 시간이 한참 흘렀다.
전기 아끼신다고 평소 코드도 잘 꼽지 않는 전기장판이지만
그래도 한 복판에서 큰 대자로 좀 당당하게 주무시면 좋겠는데
항상 그러하듯이 맨 귀퉁이에서 곧 떨어질 듯한 모습이 불안스럽기만 하다.
두 다리를 가지런히 옆으로 바싹 웅크리고 모로 누운 상태에서
두 손을 모아 두 무릎 사이에 끼우고 주무신다.
싼 맛에 야매로 맞춰서 뭘 드실 때마다 번번이 말썽을 일구는 틀니는
오늘도 윗입술을 삐죽이 들어올리고 삐져나왔고
그 틈새로 소주에 흥건히 절은 목소리로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씀이신지
무어라고 큰소리로 중얼중얼 잠꼬대를 하며,
왕새우가 껍질이 벗겨진 채 뒤집어쓴 초장을 고통으로 털어내듯이
간간이 경기驚氣하듯 두 다리를 동시에 후다닥 떨곤 하신다.
평생을 피곤으로 허물어질 대로 허물어진 심신心身이
아이구 아이아이구구우우! 고통이 묻어나는 신음 소리와 함께
깊은 한숨도 푸우우 힘 가짖건 토해내신다.
감지도 않고 빗질도 하지 않은 새하얀 머리는 윤기라곤 없이
이리저리 눌려서 옆과 뒷머리는 넓적하고 앞머리는 삐쭉하니 들려 있다.
오늘따라 아버지의 모습이 왜 이리 초라해 보이는지 모르겠다.
고생으로 찌들어 일그러진 얼굴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내 마음이 아팠는지 어쨌는지
그래도 이만하시길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하며
깨어나시기 전에 얼른 집을 벗어나려 황망히 대문을 나서려는데,
집 앞으로 지나가시던 항상 양복 차림으로 단정하신
아버지의 삶을 거의 함께 지켜보신 증촌 동네의 쌍둥이네 홍씨 어르신께서
대문 안으로 들어오시어 집안을 휘 둘러보시고는
좀 전에 우리집에서 일어났던 상황을 다 알고 계신 듯,
“김 교감, 자네 어른 저러시는 거,
펴엉생(平生) 골빙(골병) 들어서 그런 거,
자네도 자알 알지?
김 교감이 그걸 모르시만(모르시면) 안 되네.”
또박또박 힘주어 이 말씀하시곤 가던 길을 점잖게 가신다.
‘ …… ! ’
2009년 4월 어느 날에
첫댓글 사회의 노령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치매가 커다란 사회 문제가 되어가는 듯 합니다.
아버지의 문제가 아닌 우리 자신의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지요. 작년부터 구청 보건소에서 아파트 단지를 돌며 60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치매 검진을 한다기에 나도 받아 보았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힌게 치매입니다. 본인의 이름 생년월일 집주소 아파트 동호수 이딴걸 물어봅니다. 이런걸 대답 못하는게 치매라는 거지요.
아버지 문제로 고생을 많이 하셨군요
그러시던 부모님도 어느날 부터 곁에 안 계실 때 잠시라도 가끔은 힘겹다고 생각했던 스스로가 너무도 죄스럽고
그저 허락되지 않을 그리움에 가슴만 시려 집니다.
힘드심과 안타까움이 뒤섞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노인에 대한 문제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