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성장해 가는 중에 맺게 되는 다양한 관계는 가정에서부터 출발하여 점점 더 폭넓고 복잡하게 발전해갑니다. 가정을 떠나 가장 먼저 맺는 인간관계는 이웃의 자기 또래들과 어울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혈육은 아니지만 이웃집에 사는 자기 나이의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점점 사회적인 존재로 성장하기 때문에 어떤 친구를 사귀는가는 한 사람의 성장에 큰 영향을 줍니다. 특히 유치원과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청소년기에는 오히려 부모나 형제자매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학교와 학원에서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탓에 때로 가족보다도 더 친구들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그래서 일부 학교에서는 같은 학생이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는 “또래상담”이란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하지요. 학교를 졸업한 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복잡하게 얽힌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가면서 대인 관계도 더욱 방대해지고 만나는 사람들도 다양해집니다. 좋은 친구를 많이 둔 사람의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들 보다 더욱 쉽게 그 사회에 적응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을 사귄다는 것, 그것도 특별히 누군가와 친한 친구가 된다는 것은 개인의 삶에서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누구와 어떻게 사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라는 문제를 벤 시라 역시 그냥 지나쳤을 리가 없겠죠? 당연히 「집회서」에서도 교우관계에 대한 몇 가지 조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친구를 사귀려면
6,5-17에서는 참된 우정과 거짓 우정을 구분합니다. 도입부에 해당하는 5-6절 다음으로 7-13절에서는 특히 친구를 사귈 때 신중을 기할 것을 당부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4-17절에서는 집회서가 인생의 참된 지혜로 찬양하는 ‘주님을 경외함’으로써 좋은 친구를 얻을 수 있다고 일러줍니다.
우선 잠언 15,1의 부드러운 말에 대한 권고를 떠올리게 하는 가르침으로 ‘우정’에 대한 소고가 시작됩니다. 부드럽고 온화한 말이 친구를 많게 해줍니다. 좋은 말은 사람을 친구와 지인들을 많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친구가 많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벤 시라는 그렇게 사귄 친구들의 양보다는 질에 더욱 주의를 기울입니다. 주위에 제 아무리 많은 친구가 있다한들 그 모두를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있겠는가? 라는 것이지요. 그 중에는 소위 내가 잘 나갈 때에만 내 주위를 맴도는 기회주의자도 섞여 있을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이름만 친구인 자들도 있으니(37,1) 그들은 곤경에 처한 나를 원수 대하듯 할 것이며 나의 약점과 비밀을 폭로할 것입니다( 6,9; 27,16; 37,4. cf. 13,21). 그러므로 친구를 사귈 때는 서두르지 말고 그가 정말 나의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을 지를 따져보라고 권고합니다(6,7). 그러므로 친구 사이에도 함부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말 것을 주문하기도 합니다(19,).
그렇다면 어떤 이를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내 고난의 날(6,8.10)’에 함께 있어줄 친구, 내가 어려움에 처했다 해서 등을 돌리지 않을 친구를 사귀어야 합니다. 나의 조건이나 나의 외적인 능력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줄 친구라야 참된 친구일 것입니다. 집회서는 이러한 친구를 가리켜 ‘성실한 친구’(6,14.15.16)라고 부릅니다.
신의와 성실함
‘신의’와 ‘성실’이라는 개념은 성경 전체의 가장 중요한 주제입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에게 그리고 더 넓은 의미에서는 우주 전체에 ‘성실하신 분’, ‘신의를 지키시는 분’으로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인격적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바로 성실과 신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신의’와 ‘성실’이야말로 하느님의 ‘자비’와 ‘정의’의 다른 이름이라고 가르칩니다. 하느님은 성실하신 하느님이십니다(신명 7,9, 32,4; 이사 49,7; 1코린 1,9; 10,13). 불의한 인간은 하느님을 배신하지만 하느님은 결코 세상과 인간을 배반하지 않으시는 하느님, 계약에 성실하신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참된 친구는 성실하신 하느님께서 세상을 대하시는 그 마음으로 자기 형제와 이웃을 대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착한 친구
벤 시라는 성실한 친구를 사귈 것을 당부하기만 하지 않고, 너 스스로가 그런 친구가 되어야함을 일깨워주기도 합니다.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마태 7,12; 루카 6,31)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벤 시라는 성실한 친구를 바라기 이전에 성실한 친구가 되도록 노력할 것을 주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 친구를 버리지 말고(9,10) 친구에게 잘 대해 주라고 권고합니다(14,13; 27,17; 29,10; 37,6). 또 친구에게 잘못을 저질렀다하더라도 절망하지 말고 화해할 길을 모색하라고 충고합니다(22,21-22).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 마음 편하게 만나서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만큼 인생길에 필요한 것이 있을까요? 물론 벤 시라는 남편에게는 친구나 동무보다도 더 나은 것이 아내라고도 이야기하지만(40,23) 이 역시 친구와 가족을 비교하라는 가르침이기보다는 가족관계야말로 친밀한 관계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글을 마치면서 착한 친구에 대한 좋은 글 하나를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벤 시라도 공감할 것 같네요.
“자기를 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드문 일이다. 이것이 자기 단점을 장점만큼 솔직하게 지적해 주는 진실하고 현명한 친구가 필요한 까닭이겠다. 우리는 누구라도 격려가 필요하고 향상이 필요하다. 착한 친구는 그러한 필요를 오래 가면서 공급해 준다.” (吳經熊, 「東西의 彼岸」, 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