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장 복의 근원 강림하사
사무엘상 7:12
오늘 은혜를 나눌 28장 찬송은 영국의 로버트 로빈슨(R. Robinson;1735~1790)목사가 작시한 찬송입니다. 로빈슨은 8세에 부친을 잃고 가정 형편이 어렵게 되자, 모친이 로빈슨을 런던에 보내 이발 기술을 배우게 하였습니다. 그는 몇 년 뒤에 이발소를 운영하면서 수입도 좋아지고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자 방탕한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로빈슨은 술을 먹으면 주사가 심해 남을 해코지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어느 날도 술을 먹고 길거리를 배회하다가 근처 교회에서 부흥회가 있는 것을 보고 부흥사와 성도들을 골탕 먹이자는 생각으로 교회에 갔다가 부흥강사 죠지 휫 필드의 설교를 듣고 변화가 됩니다. 자신의 지나온 잘못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합니다. 그 이듬해 1758년 새해 아침에 23세의 나이인 그가 쓴 시가 오늘 찬송가사입니다. 그는 이후 목회자로서의 소명을 느끼고 독학으로 신학을 공부하여 1761년에 영국 침례교회 목사가 되었습니다. 로빈슨은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가난한 사람이었지만 타고난 능력과 불굴의 의지와 노력으로 라틴어와 불어를 배웠고, 유명한 신학자와 설교자가 되었습니다. 곡은 영국의 작고가 죤 와이에스(J.Wyeth)가 1813년에 지었습니다. 이 찬송가는 우리에게 복주시기를 좋아하시는 주님을 온 마음을 다하여 찬송할 때 주님이 받으시고 천국인을 쳐주심으로 천국벡성이 되게 하신다는 찬송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도 천사의 마음으로 구원의 하나님을 찬송하여 영원한 천국 백성의 인을 다 받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1절
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송하게 하소서
한량없이 자비하심 측량할 길 없도다
천사들의 찬송가로 나를 가르치소서
구속하신 그 사랑을 항상 찬송합니다
1절은 한량없이 자비하시고 측량할 길 없는 은혜를 부어주시는 하나님을 천사의 마음으로 영원토록 친양하겠다는 고백입니다. 복의 근원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지난 4천 년 동안의 인류 역사에서 아브라함은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이름이 구약에는 수없이 나오고, 신약에만 70여 번 나옵니다. 심지어 회교의 코란경에도 아브라함에 대해 188회나 나온다고 합니다. 기독교에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며, 복의 근원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런데 누가 아브라함을 이렇게 복의 근원으로 세워주셨느냐는 것입니다.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히브리서 6:13~14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너를 복주고 복주어 번성하게 하리라>할 때에 자기보다 더 큰 자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였다”고 말씀하시면서 아브라함에게 복의 근원이 되도록 해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가르쳐 줍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어떤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들어 ‘복은 근원’이 되었을까요? 그리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창세기 12:1~3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은 크게 6가지입니다. 첫째,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 둘째, 네게 복을 줄 것이다. 셋째, 네 이름을 창대케 할 것이다. 넷째, 너를 축복하는 자를 축복할 것이다. 다섯째, 너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할 것이다. 여섯째. 모든 민족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곧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입니다. 아브라함이 잘나서 복의 근원이 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우상장사 ‘데라’의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으로 선택하셔서 축복하시고 복의 근원이 되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 같은 부름의 원리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지는 역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고 거듭난 것이 우리의 외모가 잘나서거나 똑똑해서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복의 근원’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나 자신만 복을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받은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와 사랑을 아직도 알지 못해 세상에서 통하며 방황하는 수많은 영혼들에게 나누어 줄 ‘복의 근원’ ‘축복의 통로’ 로서의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사명을 하늘의 천사처럼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가 기도와 찬양을 할 때 단순히 하나님으로부터 복 받을 것만 요구하지 말고 아직도 주님을 알지 못해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복을 나누어주는 복의 근원이 되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고 찬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2절
주의 크신 도움 받아 이 때까지 왔으니
이와 같이 천국에도 이르기를 바라네
하나님의 품을 떠나 죄에 빠진 우리를
예수 구원하시려고 보혈 흘려주셨네
2절의 주제는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해방 시키셔서 날마다 하나님의 도움을 덧입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하신 은혜’에 대하여 찬송하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금까지 베풀어 주신 은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품을 떠나 죄에 빠진 우리를 구원하고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요 3:16),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시고자 죄 없으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구세주로 보내셨습니다. 이 세상은 옛날부터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역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이 세상을 사랑하셨고, 그 사랑의 가장 확실한 증표로 당신의 독생자를 속죄양으로 보내신 것입니다(요일 4:10).
둘째, 아버지의 사명을 받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끊어진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자 십자가에 피 흘려주신 예수님의 사랑입니다(롬 5:8). 당시 로마제국의 십자가는 흉악범에게 적용시키던 가장 끔찍하고 잔인한 처형방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십자가에 못 박힘을 당하고 물과 피를 흘리시고 고통스럽게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십자가에서 당장 내려올 수 있음은 물론 자신들을 괴롭혔던 사람들에 대하여 심판하실 수 있는 능력이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십자가의 고통을 감내하시며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며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이 같은 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끊어진 죄의 문제가 해결 받고 하나님과 다시 화해할 수 있고 영생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셋째,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하나님의 보좌우편에 올라가주님과 함께 영원히 왕노릇할 때까지 돌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겔 34:11~12, 24~31, 롬 8:38~39). 하나님은 나의 목자가 되어 우리를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시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동원하셔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시고 이방인에게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십니다. 마태복음 11:28~30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주님께서는 우리가 어려움당할 때 직접 찾아오셔서 어루만지고 도와주실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 하나님 우편에 앉기까지 우리를 지키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3절
주의 귀한 은혜받고 일생 빚진 자되네
주의 은혜 사슬되사 나를 주께 매소서
우리 맘은 연약하여 범죄하기 쉬우니
하나님이 받으시고 천국인을 치소서
3절은 은혜의 사슬로 묶어주시니 죄를 범하지 않고 천국 인으로 살아가겠다는 결의를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여 ‘복의 근원’으로 삼으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던 이브라함의 삶의 특징, 먼저 아브라함이 순종함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사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까지 갔었지만 그곳에서 가뭄을 이기지 못하여 애굽으로 피신했고, 그곳에서 자기의 생명에 대한 두려움을 느껴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으며(창 12장), 이일로 큰 창피를 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또 그랄 땅에서도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창 20장) 부끄러운 짓을 두 번이나 하였습니다. 이렇듯 아브라함에게도 불순종의 모습이 있었지만, 이 일 이후 아브라함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변했으며, 이 같은 믿음을 시험하시고자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 가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는 명령을 하나님에게 받았을 때에 모든 도덕과 편견을 버리고 철저하게 순종함으로 ‘복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복의 근원이 되는 사람은 자기의 지식이나 경험, 의지를 믿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믿고 따르는 사람입니다. 집나간 탕자도 하나님 보다 물질을 자기 능력을 더 위대하고 여겼던 사람의 예표입니다. 그리고 아버지 품안보다 세상 품이 더 즐겁고 좋은 줄로 착각하고 그 속에서 자기 뜻을 펼쳐보려던 어리석은 자였습니다. 그러나 물질을 다 탕진하고 체면과 자존심마저 다 버려진 이후에 비로소 아버지의 품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집을 기억하게 됩니다. 그런 이후에 아버지 집의 종으로라도 써 달래야지 하는 마음으로 아버지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만나 진실로 회개하고 용서를 빌어야지 하면서 발걸음을 옮길 때 거리가 먼데도 불구하고 먼저 아버지가 알아보고 뛰어나가 아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그를 받으셨고 즉시 아버지의 아들로서의 권위와 위상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이처럼 모든 것을 용서하시고 받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늘 기억하고 범사에 순종하며 감사함속에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천국에 마련되어진 아버지 집에 이를 때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복의 근원이 될 수밖에 없었던 아브라함의 특징 중 또 하나는 아브라함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았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2:8에 보면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보다 하나님을 더욱 신뢰했습니다. 또한 현재보다 미래를 신뢰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믿음으로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듯이 우리도 날마다 기도의 제단 예배의 제단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한 치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우리의 미래를 주님께 내어 맡기는 믿음의 제단을 드려야 합니다. 세계 경제 불황 시대에 더욱 우리는 예수님의 능력을 신뢰하고 그분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은 축복의 근원이 될 것입니다.
첫댓글 귀한 자료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