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의 농도와 건강
폭탄주가 더 빨리 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자가 남자보다 술에 더 빨리
취한다는 것은 사실일까. 술은 마실수록 세어진다는데, 감기약을 복용한
상태에서 술을 먹어도 될까. 음주운전 측정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알코올과
관련해 떠돌던 모든 이야기를 속 시원히 풀어본다.
글/ 변재준(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술을 마시고 얼굴이 벌게지는 사람, 호흡이 빨라지는 사람, 말이
많아지는 사람, 우는 사람, 이유없이 싸움을 거는 사람, 악쓰고 노래
부르는 사람, 평소에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에 용기를 얻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듯 술이 우리들의 몸 속에 들어가서 보이는 반응은
제각각이다. 도대체 술이 무엇이길래 우리 몸 속에서 이렇게 다양한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우리가 술을 먹고 느끼는 모든 신체적인 반응은 술의 주성분인 알코올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알코올은 에틸알코올(줄여서
에탄올)이다. 그렇다고 술이 100%의 순수한 알코올은 아니다. 술은 대개
50% 미만의 농도를 가지고 있는데 종류에 따라 농도는 천차만별이다.
흔히 독한 술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알코올 농도가 높은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술의 알코올 농도는 소주가 25%, 맥주는 4.5%,
청주는 14%, 포도주는 12%, 위스키는 40% 정도 된다. 따라서 소주
한병을 먹었다고 해서 알코올 1병을 먹은 것은 아니다. 약 4분의 1병의
100% 알코올을 먹은 셈이다. 어떤 종류의 술을 마셨을 때 실제로 마신
알콜의 양(g)을 계산할 수 있다(마신 술의 양(mL) x 술의 알코올농도(%) x
알코올의 비중(0.8)÷ 100). 예를 들어 소주 반병(150mL), 맥주
2캔(750mL), 포도주 반병(300mL), 위스키 2잔(90mL)에는 모두 30g 정도의
알코올이 포함돼 있다. 즉 양주 같은 독한 술에 더 잘 취하는 이유는
알코올 농도가 높기 때문이다.
폭탄주가 더 잘 취하는 이유
소주가 맥주보다 빨리 취한다. 이는 소주가 맥주보다 혈액으로 빨리
흡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다른 술들은 어떨까. 술에 취하는
것은 여러 가지 요인과 관련돼 있다.
알코올은 소화기의 점막을 통해 혈액 속으로 흡수된다. 약 20%는
위에서, 약 80%는 소장 윗부분에서 흡수된다. 그런데 위 내에 음식물이
없으면 흡수 속도가 빨라진다. 빈 속에 술을 먹을 때 술이 빨리 취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또 알코올의 흡수 속도는 알코올 농도가 약 20%
정도일 때 가장 빠르다. 즉 알코올 농도가 20%인 술이 위에서 가장
빠르게 흡수된다. 소위 폭탄주라고 해 양주와 맥주를 한 술잔에 섞어서
마시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알코올 농도가 약 20%가 되기 때문에 빨리
취한다. 술을 탄산화시켜도 흡수가 촉진된다. 샴페인을 먹으면 더
취한다고 말하는 것도 샴페인이 같은 농도의 일반 포도주보다 흡수가 더
잘 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술에 사이다나 콜라를 섞어 마시는 것도
흡수를 촉진시켜 취기를 빨리 느끼도록 한다.
날숨으로 측정하는 혈중 알코올 농도
가끔 TV화면에 입으로 '후'하고 내ꒈ으면서 음주측정을 하는
운전자의 모습이 비춰진다. 술을 먹으면 술냄새가 나는 것은
당연하지만 어떻게 그로부터 혈중 알코올 농도를 알아낼 수 있는
것일까. 혈중 알코올 농도는 술을 얼마나 많이 마셨는가와 마신 술이
몸에서 어떤 작용을 할 것인지를 지를 가늠해보는 좋은 지표다. 즉
술을 먹었을 때 일어나는 대부분의 반응은 술이 장에서 흡수돼 혈액을
통해 온 몸으로 운반되면서 벌어진다.
혈중 알코올 농도는 성별, 체중, 술을 마실 때 위가 비어 있었는지 여부,
술을 마신데 걸린 시간 등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마신 술의 종류와 에탄올 농도로부터 혈중 알코올 농도를
대략 계산할 수 있다. 예를들면 체중 70kg인 사람이
소주 1병을 마시면 혈중 알코올 농도는 대략 0.16%정도가 되며,
마찬가지로 맥주 1캔(360mL)을 마시면 알코올 농도는 대략 0.03%
정도가 된다(혈중 알코올 농도(%)=마신 술의 양(mL) x 술의
알코올농도(%) 체중(kg) x 0.0013(상수)).
음주 운전 단속에서 날숨을 이용하는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폐를
통해서 배설되는 알코올은 날숨에서 검출할 수 있고, 이 양은 혈중
알코올 농도와 비례하므로 날숨의 알코올농도로 음주량을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알코올 농도를 측정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혈액을 채취하는 것. 최근에는 채취된 혈액을 알맞은 용기에 담아서 4℃
이하에서 보관하면 약 1개월 후에도 알코올 농도를 측정할 수 있다. 혈중
알코올 농도를 법적증거로 이용해야 할 때 유용하게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