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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불사의 우주
#1. 우주력 7세기. 우주선교선 장미13호. 선교사 수선013의 기록
지구계 인류가 지성체로서의 완성을 추구하여 외계우주로 뛰쳐나온 후 제7세기의 중엽을 앞둔 어느 해에 은하우주계에는 한 가지 경이로운 사건이 있었다. 지구계 인류가 은하우주를 일통하여 이룬 공동체인 은하연방 정부가 ‘불사생명선언’을 발표했던 것이다.
지구계 인류의 ‘불사생명선언’은 사실상 완전지성체 선언인 셈이었다. 지구계 인류는 일찍부터 자신들의 불완전성을 자각하고 완전형지성체를 추구해 왔는데, ‘불사생명선언’은 완전형지성체로 가는 길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생명의 노화와 소멸 현상으로부터 해방되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2. 우주력 7세기. 은하연방정부의 발표문
-연방과학부는, 지구계 인류의 불사생명을 선언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전생의 기억이 온전히 보전된 후생에 대한 완전형 복제를 인정하고 생명의 불완전성에 대한 의문을 종식시켰습니다.
우리는 그간 우리의 불완전성을 자인하고 완전형으로 가는 길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불완전성의 대표적인 증거인 노화현상에 대한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해결책을 찾아 고향별을 등지는 모험을 불사했고, 본래의 지구적 윤리관에 수술도를 대어 우주적 섭리를 자각하고 미개지였던 은하우주계를 우리의 텃밭으로 만들어 불확정-불확실의 세계를 가시적기시(可視的旣是)의 세계로 바꾸는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종래의 생명 개념을 거부하고 영구생명적 환태를 이루기까지 우리가 겪어야 했던 고난과 좌절의 역사는 인간계의 기존 윤리관을 혁신하는 초인적인 것이었지만, 고난을 감수하여 최종진화의 산통으로 받아들인 결과, 드디어 불사생명선언을 공표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병들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초인이 되었습니다. 종래의 생명 개념의 근간이었던 유전자의 수직적 전승에 의한 혈통 이어가기를 거부하고 무한수평복제를 추구한 끝에 드디어 원하던 성과를 거두어 동시-동차원의 여러 장소에 일인 인격체의 다중 출현을 성사시키므로 염원이었던 불사생명을 확보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인간은 왜 불완전지성체에 머물러 있는가?’의 의문에 대한 해답 찾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인간 생명의 유한성에 대한 탐구로 반대 개념의 대표적인 사례인 신을 연구하게 되었고, 다방면의 노력과 거듭되는 시행착오 끝에 궁극적인 해결책을 찾은 것이 오늘의 불사생명선언이 나오게 된 배경인 것입니다……
#3. 우주력 원년 92년 전(지구력2013년). 지구별의 어떤 나라. 어떤 늙은 노숙자의 독백
-빛의 진행은 우주의 절대속도의 기간이고 중력은 우주 조화의 근간이야. 양자의 관계는 빛이 중력에 영향을 받아 본래의 진행을 잃으므로 절대속도 역시 조화의 한 갈래임이 증명된 것으로 풀 수 있지.
-우주? 유한하지만 끝이 없는 세계를 말한다지. 같은 방향으로 계속 달리면 언젠가는 원래의 곳으로 돌아오게 된다지만…… 그곳이 떠났던 곳과 같은 곳이라는 증거를 찾을 자신은 없어.
-죽음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죽음 이후에 태어났을 때에 그러했던 것처럼 또 다른 곳에 돌출하여 새로운 죽음을 향해 달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산다는 건 또 뭐야? 우리가 온 곳을 우리가 알고 있던가? 우리가 있는 곳과 이제부터 가게 될 곳을 우리가 알고 있나? 모른다고?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살고 있다는 거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느냐고? 우주식의 선문답이야. 알 듯 말 듯한 이야기를 가장 그럴 듯하게 엮어내는 놀이인데 혼자 있을 때의 무료함을 잊기 위한 놀이로는 아주 최상급이야. 자문자답이기 때문에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는 결점이 있기는 하지만,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을 구할 수 없는 우주에서는 그 정도의 불편이야 감수할 수밖에 도리가 없는 것 아니겠어?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은 지구라는 이름의 별이야. 앞의 선문답에 나오는 말들이 진리의 행세를 할 수 있을 만큼 무지의 세계인 탓에 여간 재미있는 점이 많은 게 아냐. 언젠가 당신과 함께 여행이라는 걸 했을 때 보았던 유난히 초록색 생명체가 흔하던 별 있지? 그곳을 연상하면 틀림이 없을 거야.
이곳의 지성체들은 원시의 상태를 겨우 벗어나 걸음마 단계에 있는 이들이 주종인데 얼마간 특출한 이들도 있어서 옛적에 우리가 우주로 나오기 전에 겪었던 혼란을 다시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 여간 재미있지가 않았어. 왜 있었잖아. 서로 으뜸이노라 경쟁하던 시절 말이야.
이곳에서의 내 신분은 늙고 병들어 남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거지 할아버지’야.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아이고, 늙은이 춥고 배고파서 죽겠네!”하고 엄살을 떨면 따뜻한 밥과 국이 나오곤 하는 게 신통할 정도로 재미있어. 더러는 잔돈푼도 쥐어 주고 아랫목에 자리 깔아 잠자리도 마련해 주곤 하는데 그럴 때는 조심해야 해. “우리 아이들의 할아버지가 되어 주십시오.”하거나, “시설이 잘된 양로원을 알고 있습니다. 소개해 드릴 테니 가시죠.”한단 말이야. 재미 삼아 ‘아이들의 할아버지’도 되어 보고 양로원이라는 곳에도 가보았는데 아주 죽을 맛이더라고. ‘아이들의 할아버지’ 노릇은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예를 차려야 하는 불편함도 있었지만 꼬마들과 놀아주는 재미로 심심치는 않았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그 양로원이라는 데는 정말이지 사람 살 곳이 아니더군. 이건 뭐 숫제 ‘늙어늙어 늙었으니 늙어질 때까지 늙어가다 늙어지면 늙어 죽자’의 세상이더라니까. 그러니 나같이 역마살이 덕지덕지 낀 늙은이가 견뎌낼 수 있었겠어? 단박에 탈출해서 다시금 “아이고, 늙은이 춥고 배고파서 못살겠네!”의 신분으로 돌아갔지. 당신도 언젠가 지구 여행을 하게 될 텐데 행여 공짜로 재워 주고 먹을 것 줄 테니 가잔다고 덜컥 따라 나서지 마. 그놈들의 친절 뒤에는 양로원이라는 지옥이 숨어 있기 마련이니 말이야.
아무튼 그렇게 살다가 그러구러 흘러 들어간 곳은 군인들이 많고 그 많은 군인들을 위해 사는 여자들이 또한 많은 도시였어. 여자라는 게 무어냐고 묻는 겐가? 왜 있었잖아. 3927성단 근처의 외딴 항성계에 속했던 소행성의 원시 지성체들이 자기복제를 위해 벌이던 원시적인 의식 말이야. 한 몸을 둘로 나누어 생식기를 통해 결합한 후 이세가 탄생하면 다시 동체가 되곤 했었지, 아마.
군인이라는 것은 싸움이 직업인 사람들인데 우리 세계에도 흔한 물건이니 설명이 필요하지 않겠지만 그들이 싸움을 직업 삼는 이유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 타인의 목숨을 끊어놓는 것으로 무용을 뽐내는 것은 우리 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은데, 목숨 값으로 금붙이를 받아들게 되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가 돼. 우리 세계에서 속아 낸 과시형 폐품들과 유사한 변형인데 재미있는 것은 번식기도 아니면서 수시로 짝짓기를 한다는 점이야. 우리에게서는 사라진 감각기관의 쾌락 중추가 극도로 발달되어 삶의 목표가 되어버린 듯한 행태들이더라고. 돈으로 사거나 결혼이라는 계약으로 엮거나 이성을 꼬여 자기 세력 하에 넣는다는 데는 모든 구성체가 일치해. 그 방법론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이 작용한다는 것이 우리 세계의 다중복제와 유사한데 다만 전혀 지성이 별개인 생명들이 원래부터 그러했던 양으로 일체가 되어 살아간다는 점이 특이해…
#4. 우주력 7세기. 은하연방군 지구별계 주둔함대 사령관실
(우리는 전체 생물로 진화해 가는가? 죽음을 뛰어넘는 일은 과연 행복한 행사인가? 우주에 시원(始原)이 있다는 것은 끝이 있다는 반증인데, 인간이 무한생명을 선언하는 것은 우주의 섭리에 반한 무도한 행위가 아닌가?)
은하연방군 지구별계 주둔군 사령관인 류우447이 읽고 있는 지구별 발행의 종이 신문들은 하나같이 은하연방의 불사생명선언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은하우주의 주류에게 버림받은 지구별이 문명을 시작한 시원의 별을 자처하고 현대 우주 윤리의 몰염치성을 비판하고 있는 모습에서, 이미 폐물이 된 윤리관에 지주를 두고 억지 자존심을 만들어 연명하고 있는 구세계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본 듯한 느낌이었다.
“지구별의 처치는 현지 지휘관의 재량에 맡긴다. 상황에 따라 멸망, 혹은 존속을 결정하도록.”
지구별의 반격이 시작된 이후 급거 출동한 주둔군을 지휘하게 된 지구별계 주둔군 사령관 류우447이 본가의 류우447에게서 받은 명령이었다. 지성을 공유하는 탓에 구태여 명령을 주고받을 이유는 없었지만, 형식상 그러한 사명을 띠고 온 것은 사실이었다.
“말씀하신 시대와 장소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부하 참모의 보고였다. 류우447은 지구별의 어느 시기를 향해 우주선의 항로를 돌렸다. 그는 다중생명 류우447의 하나였으므로 우주 안팎의 모든 류우447이 공감한 사명을 수행하는 중이었다.
#5. 우주력 원년 4년 전(지구력2100년 11월). 지구별의 만주 심양. 장미장원
“이 산만 넘으면, 강이 나옵니다. 예쁜 강이죠. 늘 물이 시원하고, 물고기도 많아요. 이모님을 모실 배를 준비해 놓았을 겁니다. 나, 이래 보여도, 알게 모르게 편이 많습니다. 조부님이 나그네족의 대부셨거든요.”
김진욱이 ‘이모님’을 부축하여 산을 오르고 있었다. 11월이라지만 겨울이 빠른 만주벌의 산은 푸름을 잃은 지 오래였고, 나무들의 줄기에는 눈발이 맺혀 있었다.
“우리 친구 간디 아시죠? 눈알이 새파란 별종 생물. 그 친구가 인간재생학의 권위자랍니다. 이모님 병환, 꼭 고쳐줄 겁니다. 류우에게는 나중에 잘 말해 줄 테니 염려는 붙들어 매시구요.”
산은 높지 않았지만 바위가 많고 경사가 가파른 악산이었다. 김진욱이 ‘이모님’을 류우의 아버지 선대 류우의 별장인 장미장원으로부터 탈출시킬 결심을 한 것은 ‘이모님’의 두뇌를 훔쳐본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환영예술의 전문가인 김진욱에 의하여 밝혀진 ‘이모님’의 두뇌 속에는 ‘예진’이라는 이름과 ‘나는 장미꽃 속에서 잠들었던 사람’이라는 기억밖에 없었다.
“자꾸 졸리신다고 했죠? 간디가 고쳐 줄 겁니다. 아름다운 잠을 잘 수 있도록…… 강제로 깨어난 잠을 계속할 수 있는 몸으로…… 간디 그 친구, 허풍쟁이는 아닌 것 같더라고요.”
황실이 있는 북국의 땅은 장미가 자랄 수 없는 추운 지방이었다. 외국의 대사가 진귀한 품종의 장미 묘목을 선물했을 때, 황제는 가장 사랑하는 공주를 수령인으로 지목했다.
“예진아, 길러 보겠니? 온실을 만들어 줄 테니 화원을 가꾸어 보렴.”
공주는 몸이 약했다. 늘 앓아누웠다. 북국의 추위에서 장미묘목을 지켜주기 위해 꾸민 온실은, 공주의 건강을 유지시켜 주는 병실이 되었다. 공주는 장미와 더불어 살았다.
“남쪽의 내 나라에 가면, 온실을 만들지 않아도 장미가 자랍니다. 제가 약속드립니다. 화원을 커다랗게 만들어 세상의 온갖 장미를 꽃피우는 겁니다. 흰 장미, 검은 장미, 푸른 장미, 황금색 장미까지…”
공주가 쓰러졌을 때, 황제는 사랑하는 딸을 위해 장미 온실을 묘옥으로 내려주었다. 공주는 장미 묘목들과 더불어 잠들었다.
“기왕에 이 시대에 다시 태어나셨으니, 이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셔야 합니다. 이모님은 다시는 죽을 수 없습니다. 제가, 제 친구들이, 살려 낼 겁니다.”
공주는 200년 후의 시대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 류우의 아버지 선대 류우는 절대 권력을 얻을 욕심으로 무덤 속에 잠들어 있던 공주의 유전자를 취해 복제하여 재생시켰다.
“원하지 않은 인생일지라도, 사랑해 주는 이가 있을 때 생명은 소중한 것이 됩니다. 이모님에게는 우리가 있습니다.”
공주의 재생인 ‘이모님’은 이미 죽어 뼛가루가 된 시신의 재생이었으므로 생명이 온전하지 못했다. 그녀의 나날이 쇠약해져 가는 생명력에 한 줄기 활기를 불러일으킨 것은 김진욱이었다. 장미꽃을 사랑하여 꽃과 더불어 술을 마시고, 장미꽃을 주제로 시와 노랫말과 환상극의 원고를 쓰는 사람을 만난 행복…… 공주는 자신을 ‘이모님’으로 불러주는 200년 연하의 젊은이에게 감동하여 사랑을 느꼈지만 그녀의 재생 육체는 다시금 죽음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간디의 말을 빌면, 이모님의 병은 복제피로현상이라고 합니다. 결함이 있는 유전자를 강제 재생시킨 탓에 가속노화에 빠진 것이라는데, 화성 세계에 이모님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의사가 있답니다. 조금만 참으시면, 간디와 류우를 만나 그 별에 갈 방법을 찾겠습니다.”
산등성이를 지나 강이 보이는 위치에 달했을 때, ‘이모님’은 진욱의 팔 안에서 잠들고 있었다. 영원한 잠의 기운을 엿본 진욱은 있는 대로 목소리를 높여 외쳐 댔다.
“안 돼! 안 돼!”
#6. #5의 다른 시각으로의 계속
-안 돼! 역사를 바꾸면!
-당신도 왔군.
-지금 무슨 짓을 하려고 드는 건가? 당신의 행위가 어떤 결과를 낳는다고 생각하나?
-저 여자가 원인이야. 지금 처치하면 모든 것이 원만하게 해결돼.
-우리도 궁리를 했네. 가슴 아픈 일이지만, 기왕의 역사에 변화를 주는 일은 안 되네.
-여기서 저 여자를 온 곳으로 돌려보내고, 내 여자 흑장미의 생명력을 연장해 주면 모든 은원의 뿌리가 사라져. 한 생명에 두 지성을 공존시켜 천년의 한을 심는 어처구니없는 사건 따위는, 애당초 근본부터 지워지는 거야.
-그런 마음으로 총을 들고 있나? 이모님의 얼마 남지 않은 생명을 그나마 끊어놓으려고?
-우리는 불사생명선언을 했네. 복제피로현상의 초기현상 따위를 치료하는 것은 일도 아냐. 당신들의 신천지호가 우주 안팎을 헤쳐 찾지 못한 이모님의 흔적을, 지금 이 자리에서 원인을 사라지게 하는 것으로 사건 자체를 말살하므로 해결할 수 있어. 내 사랑하는 흑장미에게 반생명을 주지 않아도 되고. 방해하지 말게.
-바보로군.
-?
-사건이 있었기에 사랑도 있었어! 굴곡이 심한 인생들이었지만 우리가 언제 후회한 적이 있었던가? 우린 열심히 싸우고 열심히 사랑했다구!
#7. 우주력 7세기. 수선013의 기록. #1의 연속
은하연방정부의 공식적인 불사생명선언에 대한 반격은 뜻밖에도 가장 낙후된 별인 지구별에서 시작되었다. 지구별의 반격은 뜻밖의 방향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죽음은 생명체가 누릴 수 있는 가장 다행한 행사입니다. 생명에는 -특히 고등지성체의 생명에는- 영과 혼이 깃들어 있습니다. 우리의 영은 원령(源靈)의 전래, 한 차례 태어남의 경이를 치른 영은 영원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혼은 육체에 연계하여 생명력을 이어가는 만들어진 영혼을 말함으로, 진화의 인연에 얽히고 지구별의 변덕에 의한 돌연변이의 기적으로 수정-조형되어 불사를 꿈꾸지만 허락 받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원령을 자각하므로 옛적의 근원세계에서 쫓겨난 비운을 회복하고…”
#8. 우주력 7세기. 은하우주군 지구별계 주둔군 사령관실
-불사생명선언에 대한 도전이로군. 지구별에 버림받은 하층인류 따위가…
#9. 우주력 7세기. 지구별의 어떤 종교 집회장 연사의 발표문. #7의 연계
“…우리 인간이 지구별을 버리고 외계우주에의 여행을 시작하는 이유는 우주라는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 싶어서였습니다-그렇게 믿고 있었던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그 결과로 은하연방 정부의 불사생명선언이 나오게 된 모양입니다마는, 저들은 착각 속에 빠져 있습니다. 생명의 수평복제로 한 세대의 영생을 이룬 지성체에게 과연 행복이 있을까요? 인간은…”
#10. 우주력 7세기. #6의 시각을 바꾼 연속
-저 하급인간들의 도전, 당신의 작품인가?
-내가 아닐세.
-우주력 원년 1세기 이전의 시대에 단생애(單生涯) 생명을 하나 심어두어 원인을 만들었던데?
-그가 원했네. 오랜 동료였는데, 해적생활에 싫증을 느꼈다고 했네.
#11. #9의 계속
“우리의 이 선언은 저들의 불사생명선언에 대한 답변으로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는 인간자존선언입니다. 우리는 인간격(人間格)에 만족한 일생을 살기로 하였고, 우리의 생명이 당대의 것으로 끝나는 다행을 감사하여…”
#12. #10의 계속
-과거에 당신의 동료였던 인물이 이 소동의 원인이라면, 신천지호도 혐의를 벗을 수는 없을 걸.
-그는 자기 수명대로 당대의 삶을 살고자 했었네. 그의 작은 소망을 방해하는 훼방꾼은 그의 과거 동료들이 용서하지 않을 걸세.
#13. #3의 계속
…나도 말이야, 한때 흉내를 내 보았는데 짝짓기라는 건 여간 기분 좋은 행사가 아니더라고. 나를 이어가는 방법으로 나 아닌 존재와 한 몸이 될 때의 감동은…… 이렇듯 늙어진 몸으로 아직 생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그때의 열정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어. 그녀가 가고, 혼자된 자의 허무를 느껴 나 역시 가고 싶었지만, 육체에 깃들인 영혼을 버리면 좋았던 기억마저 사라질 것만 같아서…… 더구나 우리 사이에 태어났던 자식이 자라 짝짓기를 하고, 또 다음 대의 자식을 낳아 나를 사랑해 줄 때에 느낀 감동은……
#14. #12의 다른 시각으로 계속. 어떤 이들의 소리
-저 친구, 왜 저런 엉뚱한 시대에 간 거야?
-즐기고 싶었겠지. 전생의 기억이 없는 한 생애를. 죽음이 선택사항이 된 시대에 대한 반발로.
혹은, 수평복제로 영생을 누리려 드는 생명의 오만에 대한 자조였거나, 오랜 반복재생에 대한 권태였을지도……
-결국 이렇게 될 것을…… 기왕의 우주 안에서의 생명을 벗어나지 못함을 확인하는 작업에 지나지 못하는 것을, 무슨 대단한 인생이라고 저렇게 아등바등……
-영생이란 무엇일까. 기억의 단절을 죽음으로 본다면, 어느 결에 획을 그어 저승과 이승을 가를까. 기억의 후생 유전이 용이해져서, 죽음이 예사로 희롱되는 이 시대에……
#15. #13의 다른 방향으로부터의 계속
…완전지성체란 무엇일까? 우리는 우리를 완전지성체인 신에 버금가는 존재라고 생각해 왔다. 원하면 수평복제로 끝없이 많은 분체를 만들 수도 있고, 더구나 기억을 공유하는 전체 생명으로서의 완성을 이룬 이 시대에 있어서의 우리라면…
그러나 역시 신은 필요했다. 지구별에 온 이후, 내 생명이 당대에 마감된다는 전제하의 삶을 살면서, 한 차례의 단절로 전체의 기억이 사라진다는 사실은 가장 큰 고통이었다. 지구별의 미개시대에 몸을 던진 후 50여 년, 만남과 헤어짐의 역사를 몸으로 체험하며 가장 즐거웠던 것은 사람 사이의 인연이었고, 그 인연을 만드는 사건들과 사건으로 인한 기억이야말로 생애의 보람이었던 것인데, 생명의 끝-죽음이 그 모든 것을 없음으로 돌린다는 사실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주었다. 내가 신을 찾은 이유는, 단생애에 묶인 불완전지성체가 절대고독으로부터의 해방될 수 있는 가장 손쉽고 가능성이 높은 해결책을 찾은 탓이었다.
“서로 사랑하라! 사랑은 신의 권능의 행사이고, 너희가 영생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려니…”
나는 나 외의 이성을 사랑했고, 그와 연계하여 내 깨달음의 증거를 남겼다. 내 기억을 잇지 않은 후손을, 모든 불완전지성체가 행하는 공통적인 방법으로의 짝짓기를 통하여 만듦으로 세대 간의 가교를 이었다.
나는 이제 죽어간다. 이런 인생을 원하여 지구별의 이 시대에 왔던 만큼 여한이 있을 까닭이 없는데, 이토록 아쉬움이 큰 것은 무엇 때문일까? 수직복제의 증거로 자식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기억의 사라짐을 아쉬워하고 있다. 더구나 신을 빌어 다음 생애에 대한 믿음을 찾았고, 그에 만족하여 기꺼이 죽음을 감수하고 있는 이 상황에, 이런 유의 미련이란……
돌이켜보면 단생애를 자청한 내 인생은 죽음과의 싸움에 다름 아니었다. 수평복제를 포기한 결과 내 죽음은 예정된 것이 되었고, 기정사실화된 사건이 불행임을 알면서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 초이성적인 존재에 대한 구애를 불렀다. 죽음 이후의 생애에 대한 여러 가지 약속을 남발한 신에 대한 반발로 내 신을 찾아내어 자신만의 내세관을 창작했는데, 종말에 이르러 내 주관이라는 것이 기존 신들의 말씀을 빈 중역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못난 행각에 대한 회의로 끝없는 나락에의 추락을 경험하기도 했다. 내 한 생애는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욱 많은 사건들로 점철되었고, 절망으로 귀결되어 이제 최후를 맞게 되었다.
이제 종말에 임해 돌이키거니와 다만 행복했던 것은, 저들의 단순함 속에 자신을 놓고 저들과 고락을 함께 했다는 사실이었다. 삶과 죽음의 통로를 시험해 보고자 원시의 문명 속에 뛰어든 이후, 나는 오로지 내가 하나의 불완전지성체에 부족하지 않음을 다행으로 알기를 원했고, 서로 사랑하는 내 가족을 얻어 또한 모든 바람의 성취를 맛보았다.
나는 죽음이 영원한 단절이 되는 생명이 그리워서 지구별에 온 미래 생명이었고, 내가 온 곳은 유명한 해적선 신천지호의 생명실험방이었다. 내가 단생애의 삶을 살면서 풀지 못한 숙제가 있다면 남긴 후손이 답을 찾아내 줄 것이고, 그러한 전제하의 후생을 기약하므로 나는 만족하여 죽는다.
(그러나 고백하거니와 내가 신에게 의지하는 이유는, 이체(異體)의 나이자 내 분신이기도 한 내 자식과 사랑을 교류하고 싶어서였다. 더불어 한 생애 동안에 맺었던 온갖 인연들의 주체인 인생들과의 공생을 꿈꾸어, 죽음 이후의 시대에서나마 사랑을 완성시키고 싶어서였다. 그러한 비논리적인 이적을 부탁하기 위해, 나는 나 이상의 절대존재를 창작했고, 절대 신뢰를 보냄으로 신념을 얻었다.)
#16. #15의 다른 시각에서의 계속
-저 친구, 거두어 와야겠군.
-남은 생이 길지 않은데 제명에 죽도록 하면 안 될까요? 저 세계의 성인이 될 것 같은데.
-그래서 위험한 거야. 지구별은 전 우주에서 가장 많은 종교를 낳은 별인데, 저 친구로 인해 하나가 더하고 있지 않나. 어떠한 경우에도 기왕의 역사에 변화를 주는 일은 안 되네.
#17. #5의 계속
‘이모님’의 굳어 가는 몸을 안고 진욱은 장미장원으로 다시 내려왔다. 탈출은 뒷전이고 사람을 구해야한다는 절대 명제가 앞섰던 것이다. 그때쯤 ‘이모님’과 진욱의 부재를 발견한 장미장원의 경비원들이 수색에 나섰으므로, 진욱은 곧 추적자들의 총구에 둘러싸였다.
“할 수 있는 한 빨리, 우리 친구 간디를 불러 ‘이모님’을 치료하게 해주시오!”
친구인 류우의 부친 선대 류우가 급거 파견한 호위병들에게 끌려가며 진욱은 애타게 소리쳤다.
#18. #6의 계속. #17의 다른 시각에서의 참관
-저 사건이 우주사의 시발이 된 셈이군요.
-섭리니, 윤회니, 업보니 하는 것들이 다 그런 게 아닐까? 하찮아 보이는 원인을 지우지 않는 우주의 섭리가 예상 밖의 결과를 낳는 것, 당장 저 친구 선대의 경우에도 한 차례의 도락이 사건을 만들지 않았던가.
-엉뚱했었지요. “기억이 단절된 나로서 지구별을 체험해 보고 싶다. 지성체에게 죽음은 선택사항이 아니다.”했던가요.
#19. #15의 다른 시각에서의 계속
-원래 우리 선장 김진욱 가계의 역사가 저렇게 시작되었던가?
-전체생물로 변태하고 있는 은하우주 인류에 대한 비아냥거림 아니었을까. 류우 가계가 이끄는 은하연방이 선택된 인류의 무한수평복제로 불사생명을 선언한 데 대한 반격 같은 것.
-결국 역사에 혼란을 주고 말았군.
-저 차원의 역사는 그렇게 될 것이었다 싶네. 우리는 우리 밖의 차원 우주를 보고 있고, 기억될 만한 성인의 탄생에는 으레 저런 정도의 경이가 개입되기 마련 아니던가.
#20. #7의 계속. 우주력 7세기. 우주선교사 수선013의 기록. 이번 이야기의 종장
우주 문명의 시발지였던 지구별은 우주력 7세기 초반의 은하우주계에서 사실상 잊혀진 세계였다. 지구별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세계를 일개 관광지로 전락시킨 외계 인류에 대한 반발로 은하연방정부의 불사생명선언에 극성이 되는 불완전지성체론을 발표했다. 시원(始原)의 별로서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지구계 인류의 고향별로서의 입지를 되찾으려는 시도였다.
단생애 생명으로 별의 명맥을 유지하면서도 한 줌의 긍지를 지키려 드는 지구별의 그러한 무모함을 외계 우주의 지구계 인류들은 만화경을 관람하듯 웃음으로 지켜보고 있었지만, 당사자인 지구별의 인간계는 자못 심각하여 백가쟁명의 열전장을 연출하고 있었다. 천만 명 사상가들이 벌이는 쟁론의 와중에 가장 돋보이는 이는 김진욱 계열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외계우주로 떠난 일맥의 김진욱들과 한 조상으로부터 피를 나눈 후손으로 B계열의 김진욱가를 이루어 지구세계 인류의 지도층이 되어 있었다.
“지구별은 시원의 땅, 신이 탄생하신 곳입니다! 우리는 지구별이 가진 본래의 성스러운 위치를 되찾아야 합니다! 우주로 나섭시다! 지구세계에는 외계 우주가 갖지 못한 신화가 있습니다! 사랑과 용서의 지혜를 가르쳐 주신 신의 역사…”
외치고 있는 이는 김진욱 B계열의 인사로, 해적선 신천지호의 선장 A계열 김진욱의 일맥인, 지구별에 남은 김진욱가의 동명이체(同名異體)인 김진욱B076이었다.
#21. 앞 장면의 다른 시각에서의 연속. 우주선교사 수선013과 용병 론775의 대화
-불사생명선언…… 결국 스스로 신을 자처하는군요.
-…….
-이제 어떻게 될까요?
-종말이 있겠지. 신께서 준비하신 최종전쟁 아마겟돈이……
첫댓글 신은 죽었다!
좋은글 올려주셔서 감사 합니다^^
인간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물론 소설 속에서.... 고맙습니다.
오늘이시간을 열심히
고맙습니다.
글 쓰느라고 무척 신경 가셨네요,
긴글 잘읽었습니다,
많은 지식 얻었습니다
읽어주셨군요. 고맙습니다.
과학 이야기만 나오면 신은 죽었다고 덮어 씌우게끔 메스컴과 여론을 몰고 가는 자들이 있습니다,,성경 한번도 읽어 보지 않은 자들이 ,,,외계인 이야기만 나오면 성경을 비웃습니다,,성경에는 우리 지구인 말고도 많은 우주 군상이 있고,,그들은 모두 우리 인류의 창조주를 섬긴다,,하고 확실하게 나와 있습니다,,
이차 대전때 히틀러가 타고 다닌 자동차와 지금 우리의 자동차가 뭐가 달라졌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기를 권합니다,,
사실 아무 것도 달라 진것이 없습니다,,원래대로 한다면 ,,벌써 인류가 차고 넘쳐서 우주로 진출을 해서 새로운 주거지를 만들고,,해야할터인데..우리를 이렇게 멱살 잡은 세력이 있다 하는 것을 삼척 동자도
알수 있는 것입니다,,과학의 발전을 좌지 우지 쥐고 있는 세력이 있다 하는 것을 누구나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허구헌날 몇월 몇일 망한다는 종말론으로 모든 인류의 깨어 있음을 덮어 씌워 모두 잠재워 버리고,,이상한 우주 종교나 들먹이고,,,우리 인류의 창조주와 대적하고 있는 세력에게 휘둘림을 당하고도,,뭐가 뭔지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벌써 과학이 발달하여 우주로 진출해야 했고,,우주 거민 들과 교통을 해야 했으며,,천상 거민과 우주 거민의 통치자와 벌써 영적인 과학의 발달로 대화를 나눴어야 했을 것입니다,,,그러지 못하도록 주관하는 세력이 있다 하는 것을 항상
깨어 있는 눈으로 봅시다,,
신에 대한 관념이 개인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좌지우지 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비종교인도 많지만 종교인들도 진실로 신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사는지도 의문이구요.
신은 지구별에서거나 우주에서거나 한 분뿐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라는 존재가 현존하고 있느니만큼 신의 존재하심도 당연하고 인간이 우주 안에 유일한 지성체가 아님도 확실합니다. 때문에 범우주적인 초이성적 존재가 계심도 당연하실 것입니다. 신을 우리의 지식안에 묶으러 드는 것 만큼 위험한 사고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충고말씀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자주 방문해 주세요.
나약하고 게으른 인간들이 종교를 만들었고, 두려운 인간들이 신을 만들었다는 인본주의적 감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작은 몸뚱이도 제 마음대로 못하고 대체 우리의 영혼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인간들이면서도 조물주인 하느님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존재로 매도하는 교만은 도대체 무어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부처님 손바닥에서 놀고있는 주제에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면서 창조주 하느님을 모독하는 사람들은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무지하거나, 아니면 사탄의 하수인이거나.
오늘도 좀 난해하지만 상상력 풍부한 형님의 글 잘 보았습니다. 흥미로운 결론이 기대되네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무신론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기본위의 철학이 번지르르한데 결론이 없어요. 죽음의 문제에 가면 "죽으면 죽는거지 무엇이 문제냐"라는 답변이 나오곤 하는데 씁쓸하더군요.
"우리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신의 존재하심에 대한 증거"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존재는 존재를 증명하는 상대역이 있어야하기 때문에 우리의 상위 개념에 신이 계시는 것이다"라는 뜻인데 전달이 잘 안 되더군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곧 종결인데 많이 망설이고 있습니다. 어떻게 결말을 맺어야 할지.... 이야기 속 세계지만 신의 뜻에 합당한 무언가를 얻고 싶은 욕심입니다마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잘읽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잘읽고갑니다 ******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