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지난지가 엊그제인데 겨울이 물러가기가 싫은지 아직도 춥고 벌써 춘분도 지났고 우후 7시 퇴근 무렵에도 하늘이 밝으니 해가 부쩍 길어져서 낮이 길어진 걸 실감한다.
반시간만 일찍 퇴근하면 한강에서 일몰을 볼 수가 있으니 일치감치 한강으로 직행으로...
한강둔치의 너른 밭에 보리가 많이도 심어졌다.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는 유월에는 황금 보리밭을 볼 수가 있겠다.
이 보리는 수확을 하면 어디에 사용되는지 궁금하다.
한겨울이나 다름이 없이 매서운 찬바람 몰아치는데 자전거를 타거나 걸으며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다.
세상의 인심이 흉흉해지니 사월도 중순에 접어 들었는데 손발과 귀가 시려운지 모르겠다.
한강변도 서서히 어둠이 내려 앉으며 또 하루가 저물었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산길을 따라 출근한다. 숲의 빛깔이 무채색이었다가 봄이 되니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
산길따라 출근을 하다 보면 여러 새종류를 만나게 된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시작되었으니 이들도 계절을 어기지 않고 새 보금자리를 마련해야할테고 제짝을 찾아 번식을 해야하니 지저귐도 심하고 떼를 지어 몰려 다니며 상대에게 온갖 교태를 부리는 것 같이 보이는 게 사람들의 삶과 별 다름이 없어 보인다.
여러 새들을 관찰해보며 산책도 겸해서 출근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참새들은 아침이 되면 무슨 소동이라도 난 것 마냥 몹시 시끄럽고 번잡하여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질 못하니 찍기가 어려웠고 한낮이나 되어야 조금 잠잠해질 것 같다.
개체수가 제일 많은 오목눈이는 떼를 지어 다니며 서로의 안전을 위하여 제 위치와 남의 위치를 알리며 소곤대듯이 지저귀며 복잡하게 얽힌 수풀 틈새를 잘도 날아다닌다.
그외에도 서너종류의 딱다구리종류와 오목눈이, 꿩과 멧비둘기, 동고비와 박새.딱새.까치 종류가 많다.
오늘은 개체수가 젤로 많고 가까이까지 접근하는 오목눈이를 찍어 보고자 망원레즈를 장착하여 새만 찍을 요량을 하고 나왔다.
어치 부부가 함께 앉아 사랑을 나눌려다가 나를 보더니 부끄러워 하며 각자 다른곳으로 날아갔다.
붉은머리오목눈이 녀석의 털을 몽땅 뽑어버린다면 아마도 내 엄지 손가락 크기정도 밖에 되지 않을 듯하고 복잡한 수풀속일수록 숨기에도 적당하고 벌레의 알같은 먹이도 많을 듯하다.
오늘도 약 백여마리는 될듯한 녀석들이 떼를 지어 수풀속을 헤집고 요리조리 날고 뛰며 쉬지도 않고 재잘거리며 다니는모습이 여간 귀엽지가 않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그동안 그냥 산책만 하시더니 오늘은 큰 카메를 들고 오셨네요. 우리를 열심히 찍으시는 걸보니 오늘은 무슨 얘기를 하실려고 그러세요? 우리 얘기는 아주 아주 좋게 좋게 써 주세요. 알았지요?"
"얼았다. 내가 너희들에게 좋고 나쁘고가 있냐? 그냥 생각나는대로 지껄이고 마는거지. 하지만 되도록 좋게 쓰도록 해보마."
"우리는 요즘 날도 풀려고 아기도 없으니 그리 많은 먹이가 필요한 건 아니니 이런 곳을 뒤지며 벌레의 알같은 것을 찾아 먹기도 하지요.
조금전에 엄지 손가락 같이 작다고 했지만 저희는 몸이 작아도 할 건 다하고 살아간단 말이예요. 알도 대여섯개나 낳아 훌륭하게 키울 자신도 있으니 작다고 무시하지 마세요"
"그래? 알았다... 듣고 보니 내가 미안하다. 사과하마. 나는 아이 둘 키우는 것도 벅차고 진이 빠지는데 너는 참으로 대단하구나."
"그리고 우리의 눈은 할아버지 눈보다 몇배는 밝다고요. 아무리 작은 씨앗이 수풀 바닥속에 떨어져 있어도 찾아 먹을 수가 있으며 사람들에게 해롭다는 벌레도 수없이 먹어주니 고맙다고 인사를 하셔야 한다고요."
"어허... 그것 참 듣고 보니 그렇구나. 그래 고맙고 고맙다, 또 너희들이 우리 인간들에게 좋은 일을 하는 게 뭐가 있다냐?"
"우리는 몸이 작으니 적게 먹을 뿐만아니라 쓰레기도 생산하지 않으니 지구 오염도 시키지 않고 이렇게 날렵하게 날아갈 수가 있지요. 무지몽매한 사람들은 제 배가 터지는 줄도 모르고 억척스럽게 먹어대니 배가 불러 그 살을 빼느라 얼마나 힘과 공과 돈을 얼마나 드리는지 알기나 하세요. 할아버지도 그 뱃살 좀 빼서 저와 같이 날려해 보시라고요. 알았지요? 참으로 한심한 동물중에 제일이 인간이란 동물이라니까요."
"에이.. 그래도 그렇지. 나를 앞에 두고 그렇게 마구 욕을 해대니 조금 머쓱하고 쑥스럽다.
저번에 내가 티비에 나오는 걸 보니 너는 네 알과 남의 알을 구별도 못해서 뻐꾹이를 네둥지에서 부화시켜 키우는 걸보니 참으로 네가 한심하고 바보스럽고 멍청해 보여서 내가 너무 안달이 나서 저절 어떻게 해 하며 안타까워 했었지. 진정 너는 바보가 아닌 것 같아서 하는 소리다만 너는 네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냐?"
"하이고!! 속이 너무 좁은 할아버지시네요. 그깐걸 가지고 금방 삐치셔서 남의 치부를 드러낼려고 하는 걸 보니...
그럼 저희들이 그 뻐꾹이란 눔의 알을 키워주지 않으면 이 세상에 뻐꾹이는 사라지고 말 것 아니예요? 우리가 희생정신을 발휘해서 남의 자식을 키워 주는 거란 말이예요.
인도의 간디 영감님께서 그랫잖아요. 우리는 흰두교도지만 이스람교도의 고아들을 최고의 이스람교도로 훌륭하게 키워 주라고요."
"우리는요. 약 2~3년 밖에 살지 못하지만 그래도 일년에 두번정도 번식을 하니 많은 자손을 남기는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는 집을 지어도 자연의 것만 가지고 자연스럽게 지으니 쓰레기가 없습니다. 풀과 이끼와 버려진 새털로 지으며 거미즐을 걷어다가 단단히 매어 놓지요."
"에이 !!할아버지 동무해주느라 식사도 제대로 못했네요. 같이 드실래요? 제가 벌레 알을 잡아다 입에 넣어 드릴테니..."
"아니... 난 그런 거 먹으면 배탈날까 겁난다."
"저만 먹고 있으니 미안하잖아요. 체면은 건강을 헤치니 같이 먹어 보자고요."
"어이 식사하는데 방해해서 미안하다. 오목눈이야 오늘 고마웠어. 다음에 만날때는 네집에 초대 좀 해줄 수 있겠니?"
"햐!!! 듣자 듣자 하니 이상한 말씀만 하시네. 우리의 구여운 아기들의 안전은 어떻게 하고요. 산적같이 생긴 할아버지를 우리가 어떻게 믿을 수가 있남요?"
"어어!! 나는 잘대로 괴롭히지 않을 자신이 있는데???"
"얘들아!!! 저런 시커먼 할아버지 하고는 애초에 상대를 하지 말아야 하는거다. 에이... 귀청소나 해야겠다."
"그래 그래.. 나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너희들에게 불신만 심은 걸 미안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