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장 (樹木葬)
오월의 햇빛이 숲 속으로 들어와 나무와 꽃과 풀잎에 입맞추고 벌과 나비를 눈부시게 한
다. 햇빛은 어린 멸치 떼처럼 파닥거리며 숲 속의 모든 식구들에게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잎들은 빛나고 꽃의 고운 색깔은 더욱 선명해진다. 나무는 햇빛의 애교스런 간지럽힘에 기분
이 좋아 이파리들을 쫑긋거린다. 벌과 나비들은 꿀을 조금 나누어주면 멋진 이에게 중매를
서겠노라고 꽃들을 꼬드기고 있다. 창공을 숨쉬던 새들이 숲 속으로 쏟아진다. 새들은 푸른
하늘을 노래로 토해내고 노래는 나무들 사이 빈 공간으로 방울처럼 굴러다닌다. 간간이 부
는 바람은 맑은 공기를 더욱 맑게 헹구어 오솔길에 꽃들의 향기를 실어 나른다.
"댁은 언제 이곳에 오셨어요?" 이곳의 새 식구가 된 <고인 김영희 나무>라는 명패가 달린
오리나무가 다소 상기된 목소리로 <木友 김상태선생 나무>라고 쓰인 참나무에게 말을 건넨
다.
"한 3년 됐지만 이곳은 시간이나 나이 같은 것은 아무 상관없는 곳이라오. 나이 많아 죽
은 사람이 어린 나무가 될 수도 있고 아주 젊어 죽은 사람도 큰 나무가 될 수 있으니."
"그렇군요. 허기사 제가 몸으로 빌린 오리나무는 10년 생이니까 나이로 따지자면 너무 젊
지요."
"이곳에 참 잘 오셨어요. 와서 보니 어떠세요?"
"저는 예전엔 죽으면 별이 되려 했어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별들은 이웃간의 거리
도 너무 멀고 두고 온 사람들과도 만날 길이 없을 것 같아 이곳 수목원으로 오기로 했어요."
"오리나무를 좋아했었나 봐요."
"처음엔 늘 푸른 소나무나 전나무가 되려 했어요. 그런데 상록수는 변화가 없어 심심할
것 같아 계절마다 바뀌어 가는 오리나무가 되기로 한 거예요. 나무도 맵시 있고 이파리도 예
쁘잖아요."
"두분 안녕하세요?" 그때 옆에 있던 <고 배경수 나무>라는 명패의 잣나무가 인사를 청한
다. "목우 선생님은 변함 없어 시군요. 김영희씨도 새 식구가 된걸 환영합니다. 제가 이곳
에 있어보니까 공원묘지로 가지 않고 이곳으로 온 것이 너무너무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말이 공원묘지이지 멀쩡한 산을 깎아 다닥다닥 규격을 정해 놓은 땅 속에 들어가 조화 몇 송
이만 보고 살아야 했을 걸 생각해 봐요. 이곳은 그야말로 천국이예요. 주위를 한번 둘러보세
요. 싱그러운 바람, 아름다운 꽃, 지저귀는 새소리. 정겨운 이웃. 소풍 오듯 찾아오는 자식
들과 지인들. 무엇보다 묘지로 인하여 좁은 국토가 훼손되지 않고 사람들이 자연을 사랑하
는 아름다운 마음들이 생겨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맞아요. 저도 여기로 온 게 정말 잘 한 일이란 생각이 들어요."
"저는 생전에 나무를 좋아해서 아호도 木友로 지었었는데 죽어서도 나무 속에 깃드니 이
런 행복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이곳의 모두는 행복해 보인다. 숲 속에는 평화라는 요정이 살아서 일까.
이런 곳이라면 죽어서도 머물 만 하지 않은가.
나이 들어가며 자연을 보는 시선과 마음이 무심치가 않다. 머잖아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이
바로 저곳이던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나 사후에 자연이 거두어들이는 무게나 의미
로 따진다면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보다 나을게 무엇인가. 누구든 삶의 끝자락이 가까워
지면 가끔씩은 죽음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된다. 그 생각이 철학적 상념일수도 있지만 사후
의 실체적이고 형이하학적, 즉 주검의 처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기 마련이다. 매장을 할 것
인가 화장을 할 것인가, 매장을 하면 어디에 묻힐 것인가, 화장을 하면 유골은 어떻게 처리
할 것인가, 내가 유언으로 선택할 것인가 자식들의 선택에 맡겨버릴 것인가.
이제 이런 여러 가지 선택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나의 사후관이나 자연관에
딱 들어맞는 장례 방식을 찾아내었기 때문이다.
사후 세계나 영혼이 있고 없고는 죽어보지 않고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어쩌면 영혼
이 있을 거라는 전제가 인간을 선량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영혼의 유무와 상관없이 한가
지 분명한 것은 육신은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자연으로 돌아가면서 이왕이면 후손들
에게 유익하고 자연 친화적이면 더 바랄게 없지 않겠는가. 여기에 딱 들어맞는 게 수목장이
다.
수목장이란 고인의 시신이나 화장한 유골을 숲이나 수목원의 지정된 나무 아래에 묻으므
로 나무가 성장하는 자양분이 되어 그 영생목(永生木)에 깃들어 나무와 생을 같이 한다는 취
지의 새로운 장례 양식이다.
여행길에서 본 몇 백년 된 고목들을 보면 사람들이 베지만 않으면 나무는 영원히 살 것만
같다. 그런 나무와 사람이 함께 한다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우리나라의 묘지 면적은 전국 주거지 면적의 절반 정도나 된다. 매년 20만기의 묘지가 새
로 생겨나며 그만큼 산림 면적은 줄어들고 있다. 나중엔 산 사람의 땅보다 죽은 사람이 차지
하는 땅이 더 많아질지 모른다. 먼 훗날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그 외에도 묘지 시설로
인하여 수반되는 잠재적 피해도 만만치가 않다. 경관파괴, 생태계 파괴, 산사태 및 붕괴, 토
양 침식, 수질 오염, 묘지로 드나드는 사람들의 실화에 의한 산불 등. 매장 묘지 관습의 폐
해가 한계점에 와 있다. 그러나 인간은 참 지혜롭다. 궁하면 통한다고 이때 대안으로 등장
한 것이 좀 더 자연 친화적 장묘 방법인 수목장이다.
얼마 전에 끝난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인생이여, 고마워요>의 마지막회 마지막
장면이다.
화창한 초여름. 햇살은 눈부시고 바람은 부드럽다. 강물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한 그루
잘 생긴 소나무 아래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화사한 옷차림에 유쾌한 표정들. 즐거
운 소풍을 온 분위기다. 사람들은 반가운 인사들을 나누고 정담을 나눈다. 소나무 등걸엔
<의사 이인석 선생의 나무>라는 명패가 매달려 있고 그 아래로 고인의 사진이 놓여 있다.
자신은 난치병에 걸렸음에도 환자들을 희생적으로 돌보다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어
느 의사의 일주기를 맞아 고인을 아끼고 사랑했던 모든 이들이 수목장을 치른 그의 나무 아
래 모여 그를 기리는 장면이다.
"아빠, 수목장이 뭐야?" 꼬마가 아빠를 올려다보며 묻는다.
"저기 저 사진 속, 엄마를 살려 주신 의사 선생님 보이지? 저 아저씨가 저 나무 속에 들어
가 사시는 거야."
"사람이 나무 속에 들어가 살아?"
"저 아저씨가 죽어서 저 나무 밑에 묻혔거든, 그래서 아저씨의 영혼이 나무 속에 들어가
영원히 같이 사는 거야."
"아- 그렇구나, 나도 죽으면 수목장 해야지. 나도 나무가 되어 꽃과 새들과 행복하게 살아
야지." 아이의 눈빛이 꿈을 꾸고 있다.
드라마의 한 장면이 나의 사후 선택을 깔끔하게 결정지어 주었다.
수목장을 처음으로 생각한 사람은 틀림없이 수필이나 시를 쓰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카페 게시글
하빈의 창작 수필
수목장 (樹木葬)
너러바회
추천 0
조회 30
13.04.06 16:07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