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국회의사당
1898년 파울 발로트가 디자인한 건물이다. 2차 대전 때 소련군의 공격으로 돔 부분이 앙상하게 구조만 남을 정도로 대파되자 포스터의 디자인은 이 부서진 건축물을 현대적인 독일 연방의회의사당으로 개조한 것이다.





▶ 브란덴부르크 문
→유럽을 제패했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가 의뢰하여 평화를 나타내고자 만든 개선문이었다. 그러나 반어적으로 그 후 동독 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 단단한 베를린 장벽이라는 고리가 되어 버려 장기간 폐쇄적인 문이었다. 동, 서독의 분단 시기에는 동서 분할의 상징이 되었고, 동서 베를린을 나누던 기점으로 훨씬 더 잘 알려지고 있다
1789년 랑한스에 의해 건축되어진 것으로 파르테논 신전의 프로필라이아을 모방한 것 으로 18세기 말에 세워진 도리아 풍의 개선문으로, 지난 날의 수도인 베를린을 상징하고 있다






▶ 독일 분단의 역사를 보여주는 베를린 장벽
→베를린 장벽은 동서독으로 분단되었을 때 서베를린을 동베를린과 동독지역으로부터 분리하기 위해서, 동독에 의해 만들어진 냉전의 상징이자 동서독의 통일을 앞당기게 된 계기를 만든 것이기도 하였다.
당시 동독에서는 자유를 찾아 서독으로 탈출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었는데, 1961년에는 1월부터 8월 12일 까지 동독인 159,753명이 서독으로 탈출하였다. 그러자 마침내 동독은 1961년 8월 13일 아침 전격적으로 베를린 장벽을 쌓기 시작하였다.
그날도 수백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 동독 장교가 철조망을 뛰어넘자 할머니가 손자를 건네주기도 하였으며, 4일후인 8월 17일에는
18세의 청년 '페터 페히티'가 베를린 장벽을 넘다가 총격을 받고 사망하자 동독군이 시체를 끌고가는 장면이 전세계에 전달되어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장벽이 설치된 후 1989년까지 동서독 국경을 넘다 죽음을 당한 사람은 모두 200여명이나 된다고 한다. 1989년 11월 9일 저녁 9시에 마침내 베를린 장벽이 헐리고 자유로운 왕래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일부는 기념으로 남겨두고 있다.
1989년 12월 22일, 독일 수상 Helmut Kohl이 동독 총리 Hans Modrow의 인사를 받으면서 걸어갔을 때 브란덴부르크 횡단로가 열렸다.
2009년 11월 9일, 독일 수상 안젤라 마르켈은,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 기념으로 러시아의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폴란드의 레흐 바레샤와 함께 브란덴부르크 문을 통하여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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