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호영이의 공부법 ②
패자부활전은 쉬웠다.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한글을 만든 임금이 누구인지 모르는 육학년이 있겠느냐 말이다. 상호는 자기가 아는 게 너무 신나서
“이야, 이것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하고 낄낄거렸는데, 그 말이 정식이에게 독화살로 꽂힌 꼴이 되고 말았다. 정식이는 답을 쓰지 못했던 것이다. 정식이가 늘 하던 것처럼 수줍은 듯 피식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이자, 상호는 좀 미안했는지
“선생님, 패자부활전 한 번 더 해요.”
떼를 썼지만 통할 리가 없었다.
정식이만 남고 다들 자기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문제가 시작되었다.
“자, 세 번째 문제는 삼국시대 문제다. 아니 사국시대라고 해야 하나?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이렇게 말이야. 어쨌든 그 시대 문제다. 잘 듣고 답을 쓰도록. 이 지역은 한반도에서 남북으로 봤을 때 거의 중심에 위치하는 곳이다. 재미있게도 이 지역을 차지했을 때 그 나라는 매우 강했다. 그 지역을 차지한 순서는 백제, 고구려, 신라인데 결국 가장 늦게 그 곳을 차지한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지. 그 지역을 한번도 차지하지 못했던 가야는 가장 먼저 멸망했고 말이야. 지금도 그 지역은 우리나라에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자, 그 곳은 어디일까?”
“아, 아-. 생각이 날 듯 말 듯!”
“아, 아. 아는데, 아는데…….”
여기저기서 신음소리와 안타까운 소리가 터져 나왔다. 상호와 기형이다. 나는 선생님의 문제가 끝나기 전에 이미 답을 썼다. 공부시간에 선생님이 많이 강조를 했던 부분이기 때문에 문제를 듣기 시작할 때 답이 탁 떠올랐다. 돌아보니까, 평상이와 유미도 만족한 얼굴이고 호영이는 싱글싱글 웃고 있다.
“자, 답이 뭘까요? 아는 사람?”
선생님 말에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평상이, 유미, 호영이도 역시 손을 든다.
“유미가 말해 볼까?”
“한강유역입니다.”
“좋아! 정답!”
“이야!”
“에잇.”
기쁜 탄성과 실망스런 탄성이 동시에 나왔고, 상호와 기형이가 주섬주섬 일어서 뒤로 나갔다. 자기 곁으로 오는 상호와 기형이를 정식이가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었다.
“이제 네 번째 문제. 이번엔 사람 이름 맞추기다. 이 분은 승려인데, 당나라로 유학을 가다가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시고 가던 길을 되돌려 돌아온 일화가 유명하다. 불교는 산속에 홀로 들어가 앉아 도를 닦는 것이 아니라, 저자거리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승려이면서도 공주와 혼인을 하여 설총이라는 뛰어난 학자를 낳기도 했던 이 승려는 누구일까?”
이번엔 유미가, 입술을 쭉 내밀고 고개를 갸웃갸웃 한다. 잘 모르는 눈치다. 나는 자신 있게 답을 썼다. 역시 유미가 틀려서 뒤로 나갔다. 이제 남은 사람은 평상이 호영이 나, 이렇게 셋이다.
그 다음 문제에서 평상이가 틀려서 뒤로 나갔고, 이제 호영이와 나 둘이 남았다. 선생님이 말했다.
“호, 이제 결승전인가? 야, 호영이 대단한데? 은물결은 패자부활을 했지만, 호영이는 한 번도 안 틀린 거잖아.”
선생님 칭찬에 호영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좋아한다. 사실 놀란 것은 성생님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 놀란 눈으로 호영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 그럼 문제를 낸다. 결승전이니까 좀 어렵게 낼까?”
“아니요!”
내가 항의를 했다.
“예, 그래요. 어렵게 내요!”
상호가 외친다. 나는 상호를 노려보았다. 상호놈이 혀를 쪽 내민다. 호영이는 아무 말이 없다. 호영이 얼굴엔 자신감이 넘쳐흐른다.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자, 문제. 고려시대엔 세계적으로 뛰어난 문화재를 많이 생산하였다. 이 문화재도 마찬가지 인데, 이건 세계최초로 만들어졌다는데 우리는 큰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다. 자, 세계최초의 인쇄술인 이것은 무엇이며, 그것으로 인쇄하여 현재 남아 있는 책은 무엇인지 써라. 참고로 그 책은 지금 우리나라에 없다.”
아, 나는 틀렸다. 세계최초의 인쇄술이라면 금속활자인 것이 바로 떠올랐지만, 책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어휴, 이 금붕어 기억력! 나는 머리를 통통 두드려봤지만, 이미 하얗게 백지로 변한 머릿속에 떠오른 글자는 아무것도 없다. 나는 금속활자만 써놓고 선생님에게 원망 가득한 눈총을 쏘았다. 선생님은 그런 내 눈빛을 싹 무시하고, 소리 높여 답을 외쳤다.
“답은, 금속활자와 직지심체요절이다. 직지심경이라고 해도 좋아.”
“와~~”
호영이가 오른 손을 높이 들고 흔들며 소리쳤다. 뭐야, 맞았다는 거야? 나는 벌떡 일어서서 호영이 자리로 가서 공책을 보았다.
-금속활자, 직지심체요절.
정확하게 써있다. 나는 눈을 비비고 다시 봤지만, 틀림없었다. 단 한 글자도 틀리지 않았다. 뒤에 있던 아이들도 우르르 몰려와서 호영이 공책을 들여다본다. 선생님도 다가와서 봤다.
“음, 정확하군. 호영이 너 어떻게 된 거냐? 어쩜 그렇게 잘해? 선생님이 소름끼친다, 야.”
선생님의 소름이 끼친다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았다.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다들 소름이 도도록하니 솟은 팔들을 쓸고 있을 때, 호영이가 씩 웃으며 한 마디 했다.
“사회책을 많이 읽었어요.”
상호가 떼를 써서 패자부활전을 한 번 더 했다. 거북선 문제를 내서 모두 살아난 다음, 삼차전에 들어갔으나, 결국 최종 우승자는 호영이었다. 삼차전까지 모두 열 두 문제를 풀었는데, 호영이는 단 한 번도 틀리지 않고 다 맞추었다.
우승자에게 주는 빨간 볼펜을 주면서 모감주선생님이 말했다.
“호영이를 역사공부의 왕으로 임명 하노라.”
선생님이 빨간 볼펜으로 호영이 머리의 왼쪽과 오른쪽을 번갈아가면서 쓸어내려서 말할 때 우리는 다 손뼉을 쳤다. 나는 진심으로 호영이의 실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호영이의 실력은 호영이의 형이나 누나에 비하면 그리 뛰어난 것이 아니다. 호영이의 형인 호중이 오빠는 재작년에 우리 학교를 졸업했지만 중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다녔으면 지금 중2인데, 벌써 고등학교졸업학력검정고시에 합격했다고 한다. 대학교에 갈 공부를 하고 있다고 호영이가 말한 적이 있다.
“호중이 오빠는 왜 중학교에 안 다녀?”
언젠가 내가 물은 적이 있는데 호영이 대답은 이랬다.
“응. 형이 다리가 아파서. 형은 다리가 아파서 오래 서 있으면 안 되는데, 중학교에서 조회할 때 오래 서 있어야 한대. 그래서 안 간대.”
나는 잘 이해가 안 되는 이유였다. 그렇다고 뭐 이유를 더 따져 물을 까닭도 없어서 그냥 그렇게 듣고 넘긴 적이 있다.
호영이네는 호중이 오빠만 중학교를 안 다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대학생인 호영이네 누나도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안 다녔다고 한다. 그러니까 홈스쿨인데, 나도 좀 고민이 되는 부분이다. 엄마도 가끔 이런 말을 한다.
“공부하기 싫으면 그냥 집에 있어. 설거지 하고 빨래하고 그래.”
엄마가 농담으로 하는 말이지만, 정말 그래볼까? 하는 생각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보충학습에, 야자에, 보습학원에…….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 제천에 있다는 간디학교나, 서울 고모네 옆 동네에 있다는 성미산학교 같은 곳에 가고 싶다. 하지만 엄마 아빠는 말도 못 꺼내게 한다. “최소한 중학교 때는 부모 옆에 있어야 돼.” 이게 늘 엄마가 하는 말이다. 휴, 어째야 좋을까? 호영이네 가족처럼 집에서 공부하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나는 그럴 자신이 없다. 집에 있으면 텔레비전이 맨 먼저 보고 싶을 테니 말이다. 참,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