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 1호 신부이자 순교자였던 김대건신부는
중국에서 귀국하면서 배가 풍랑에 밀려 제주에 기착하였는데
그 곳이 바로 재주시 한경면 용수리이다.
지금의 용수성당은 김신부의 기착을 기념하여 천주교의 성지로 지정되 있고
제주를 찾는 많은 천주교 순례객들의 필수 방문지이다.
당시 표류했던 배의 모양을 본떠 건축한 표착기념관과
하얀 햇빛에 더욱 하얗게 빛나는 성당의 모습은 순백이다.
당시 김신부 일행이 전시해둔 모형과 같은
멋지고 탄탄하며 큰 선박을 타고 왔을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바람에 찢긴 돛과 부러진 돛대
어설프게 짜맞춰진 낡은 목선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기왕 기념을 하고자 하면 가능한 최선의 고증을 근거로 하여야 할 것인데
척벅한 우리의 역사기록이 그것을 용인하지 못한 때문일 것이다.
성당의 내부는 검소하고 소박하다.
무엇이든 최대한 자제하고자 한듯한 깊은 절제가 느껴진다.
죽음과 맞서며 표류했을 김신부 일행과
초기 교인들의 험준했던 신앙의 길을 생각하면
벽돌 하나마저도 화려할 수 없고
의자 하나도 너무 편안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멀리 차귀도가 바라다 보이는 제주 서해안의 푸른 하늘과 바다는
그날의 인정이란 찾아볼 수 없이 시리도록 맑게 푸르고 아름답다.
천주교인으로서 여러 성지를 찾아 순례하지만
이곳 용수성지는 그래서 더욱 처연할만큼 아름답게 기억된다.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오름을 추천하라 하면
나는 큰 망설임 없이 금악오름을 꼽을 것이다.
제주엔 368개의 오름이 있고 그 오름마다의 아름다움들이 있다지만
금악오름의 능선만큼 아름다운 곡선을 찾기란 쉽지 않다.
거문오름, 금오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금악오름은
작고 소박한 오름이지만 그래서 더 아름답기도 하다.
차를 타고 정상에 오를 수 있어 너무 쉽게 접근하고
정상 한쪽에 통신탑이 자리잡아 풍광을 크게 해치기는 하지만
오름 정상부의 작은 연못과
산정을 휘감아도는 느리고 부드러운 경사면의 곡선은 찬탄을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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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은 때로 물이 말라버릴 수도 있지만
산등성이 곡선은 변할 수 없을테니
바람 좋은 가을 날 금악에 올라 억새와 함께 춤을 추거나
노을 좋은 날 산 아래 드넓은 들녁과 바다 해넘이를 바라보는 즐거움은
금악에 오르지 않으면 차지할 수 없는
금악오름에서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가 아닐 수 없다
산 동쪽으론 한라산이 보이고 남쪽으로 대정리 넓은 뜰이 펼쳐지며
서쪽으로 차귀도가 밝은 햇살아래 느긋하게 누워있다.
제주에도 이처럼 넓은 평야가 있었는가 싶을 정도로
넓고 평탄한 대정리 평야는
잘 정리된 바둑판 모양의 밭들과 빛깔 고운 붉은색 황토가 어우러져
편안하고 즐거운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