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상자 약력
김애란
1980년 인천에서 태어나 서산에서 자랐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를 졸업했다.
2002년 제 1회 대산대학문학상에 <노크하지 않는 집>이 당선돼 문단에 나왔으며 소설집으로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가 있다.
2005년 한국일보문학상 수상, 2008년 <칼자국>으로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심사평
소설 <칼자국>은 오래고 전형적인 소재임에도, 새롭게 쓰여진 신세대의 어머니의 초상이다. 그 어머니는 신산한 삶 앞에 맨몸으로 서 있으면서도, 결코 약하거나 울지 않는다. 언제든 잔혹한 증오의 도구로 돌변할 수 있는 칼을 손에 들고도, 그녀의 서러움과 아픔은 망서림없이, 부엌이란 변환의 장소에서 고된 노동으로 바뀌고, 음식이 되어 다른 몸으로 스민다.
세계의 이 본질적 순환의 동선 위에 늠름하고 당당하게 부각된 김애란의 '어머니'는 생명의 원천적 고리의 한 중심에 서있다. 몸으로 깊이 스민 음식에서 유추해낸 '칼자국'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이 세계의 무자비하고도 우스꽝스러운 다의성을 일거에 엿보게 하는 멀티적 상상력이며, 감수성이다. 다음작이 기대된다.
김도연의 소설 언어는 목탄으로 그린 듯 정직하고 담백하다. <북대>는 작가의 이런 특징이 오히려 귀하게 자리매김 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드러난 부분은 다소 진부하지만, 감추어진 부분에는 연잎 위에 맺혀 있는 정결한 결정( 結晶 )처럼 작가 자신의 단아한 호흡이 숨쉬고 있다. 재능보다 삶이 증류해낸 결정이 귀한 까닭은 그것이 더이상 언어의 세계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가 서영은)
본심에 오른 작품들 모두가 개성적이면서도 수준이 높았다. 저마다의 독특한 빛깔과 목소리를 지닌 작품들을 한 자리에 놓고 보니, 그 다채로움에 절로 눈이 부셨다. 천운영 <틈>, 백가흠 <그런, 근원>, 김애란 <칼자국>, 김도연 <북대>를 특히 인상 깊게 읽었다. 그 중 어느 것을 당선작으로 뽑아도 나로서는 큰 불만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어차피 한 편을 골라야 했고, 결국 맨 마지막으로 <칼자국>에 표를 던졌다. 상대적으로 이야기의 원료가 풍부했고, 인물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정감 있는 시선에 보다 끌렸기 때문이었다. 이전의 작품들에 비해 성숙해진 것 같다는 느낌에 반갑기도 했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소설가 임철우, 한신대 교수)
김애란의 [칼자국]에서 가장 강렬하게 느꼈던 것은 힘과 속도이다. 힘은 젊음의 힘, 속도의 힘이기도 하다. 속도는 김애란이 가지고 있는 소설의 젊은 내연기관이 바깥으로 뛰쳐나가는 이야기와 문장에 강력한 에너지를 부여하기 때문에 얻어지고 있다. 낙차가 큰 폭포가 굉음과 함께 쏟아지는 것 같아서 저절로 걸음을 멈추고 지켜보게 된다. (소설가 성석제)
이효석문학상 후보에 오른 12편의 단편에는 지난 일 년 간 그 장르 부문에 발표된 가장 우수한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다. 최종 후보로 남은 4편의 작품, 「틈」(천운영), 「북대」(김도연), 「그런, 근원」(백가흠), 「칼자국」(김애란)은 저마다 뚜렷한 장점을 가지고 있고 그런 만큼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다. 「틈」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한 남자의 의식 앞에 부활한 원시적 또는 전(前)오이디푸스적 인간 세계를 강렬하고 몽환적인 이미지들로 제시한다. 포스트모던한 상상력에 특유한 재(再)마법화의 충동이 활달하게 표출된 예라고 생각된다. ‘다방 아가씨’와 사랑에 빠진 한 택시 운전사의 이야기인 「북대」는 창녀와 부처, 성과 속이 둘이 아니라는 친숙한 관념을 가정하고 있음에도 어느 순간 굴복하게 만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궁벽한 지방 도시를 배경으로 음란한 풍속 가운데서 남자들의 서글픈 욕정을 드러내고 상품화한 섹스의 범람 속에서 순정의 장면을 포착하는 솜씨가 남다르다. 「그런, 근원」은 어려서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친척에게 배신까지 당하며 어렵게 살아온 한 남자의 기억을 담고 있다. 그의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건조한 화법은 그가 속으로 견디고 있는 고통에 오히려 강세를 부여하는 효과가 있다. 20 여년 만에 어머니와 재회할 마음으로 여행에 나선 그가 산속에서 길을 잃어 어머니를 만나지 못하고 대신에 외딴집에 버려진 낯선 할머니의 시신을 땅에 묻어주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는 어머니의 상실을 불가역의 운명으로 수락하는, 또는 자기 존재의 ‘근원’으로 이해하는 남자의 제스처로서는 지금까지 한국소설이 보여준 가장 고요하고도 연극적인 것이 들어 있는 것 같다. 「칼자국」을 읽으면 김애란제(製) 가족수첩이 바야흐로 재미의 극치에 이르렀다는 느낌이 든다. 가족의 생계를 맡은 팔자 드센 어머니의 형상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그 재래시장 국수집 주인은 기존 소설의 모든 억척어멈을 무색케 하는 생동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서술자인 딸이 발휘하고 있는 특출한 방식의 지각, 즉 희극적인 지각의 효과이다. 서술자는 모든 희극적 재담의 달인이 그렇듯이 인간이 종종 망각하곤 하는 인간의 육체성과 동물성을 예민하게 의식하고 있으며 그러한 본성의 활기찬 리듬에 따라 약동하는, 어떤 위장과 허영의 문화와도 무관한 삶의 맥락 속에 어머니의 살림을 배치한다. 올해의 이효석문학상 심사위원 중에는 그 어머니의 칼, 마치 그것의 예리함, 신랄함, 명랑함의 언어적 치환인 듯한 서술 문체에 매혹된 사람이 다수였다. 나 역시 그 중 한 명이었다. (문학평론가 황종연, 동국대 교수)
“어머니는 좋은 어미다. 어머니는 좋은 여자다. 어머니는 좋은 칼이다. 어머니는 좋은 말(言)이다.”로 대변되는 김애란의 <칼자국>은 좋은 소설이다. 그리고 ‘어머니’와 ‘어미’를 구분할 줄 아는 김애란은 좋은 작가다. 젊은 듯 젊지 않은 이 작가를 통해 금속성과 모성이 결합되면서 칼자국마저 따뜻해지고 부드러워진다. 가히 장관이다. 이런 좋은 소설과 좋은 작가를 통해 이효석 문학상의 전통이 더욱 굳건해질 것이다. 심사에서 수상작 후보로 끝까지 함께 논의된 백가흠의 <그런, 근원>, 천운영의 <틈>, 김도연의 <북대>는 더욱더 열심히 읽힐 필요가 있다. 그들의 작품이 이효석 문학상의 미래다. (문학평론가 김미현, 이화여대 교수)
2008년 이효석문학상 최종심사에 오른 작품은 모두 4편이었다. 김도연의 <북대>는 환상성과 현실성을 넘나들며 삶의 어찌할 수 없는 지점들에 대한 섬세한 접근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작품 초반에 여성 주인공의 성격이 조금은 평면적인 양상으로 고정되면서 후반부의 그 어떤 ‘뒷심’으로 이어지지 못한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천운영의 <틈>은 죽음으로서 삶의 진실을 밝히고자 한 어떤 사내의 이야기를 밀도 있는 문체와 정연한 구성 속에 담아낸 작품이다. 하지만 삶의 이편과 죽음의 저편을 경험한 남자의 경험이 과연 성장의례 또는 통과의례를 상징하는 뱀의 허물로 환치되는 장면은 이 작품의 미학적인 공과가 함께 자리하고 있는 지점이 아닐까 한다. 백가흠의 <그런, 근원>은 버림과 버려짐 사이에서 구성되는 삶의 근원적인 표정을 포착하고 있다. 자신을 버렸던 어머니를 찾아가기 위해 그 동안 쌓아왔던 삶의 기반을 내버리는 역설적인 플롯은, ‘나는 나의 영혼을 입증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는 고전적인 명제의 소설적 변형이기도 하다. 김애란의 <칼자국>은 평생 칼을 갈고 칼을 써서 먹고 살았던 어머니를 통해서 삶을 긍정하고자 하는 즐거운 의지를 그려낸 작품이다. 칼국수를 만드는 어머니와 사과껍질을 한 줄로 깎는 딸의 상징적인 대비를 통해서, 여성적인 삶과 칼의 상징성 사이의 관계를 섬세하기 그려내고 있다. 상처가 될 법한 일을 상처로 구성하지 않는 작가의 독특한 발상법이 빛을 발하고 있다.
작품들을 읽어가는 동안, 나귀를 끌고 개울을 건너며 동이 엄마를 만나러 가는 허생원의 뒷모습이 저절로 떠올랐다면 그건 나만의 감상일까. 올해에는 김애란 작가가 허생원이 몰고가는 나귀의 등에 올라탔다. 수상작가를 비롯하여 한 해 동안 좋은 작품을 발표한 여러 작가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문학평론가 김동식, 인하대 교수))
2차 심사 대상 작품은 내가 올린 두 작품을 포함하여 모두 11명의 작가의 12편이었다. 두 차례의 투표를 거치고 난 뒤 「칼자국」, 「그런, 근원」, 「틈」, 「북대」 등 네 편이 최종적인 검토 대상으로 남았다. 그렇지만 나머지 작품들도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인상들을 간략하게 적는다. 「삼도노인회 제주여행기」에서 전통적 세계에 대한 체험적 관찰에서 우러나오는 작가 특유의 유머는 생생했다. 「이나의 좁고 긴 방」에서 입사의 경계에서 발원한 의식은 강렬했고 그래서 신선했다. 「푸른 괄호」의 차분하고 쓸쓸한 환상은 이 작가의 새로운 변화와 성숙의 가능성에 기대를 걸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흑문조」에서 삶의 장면마다에서 마주치는 불안과 그로 인한 환상은 이 작가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환상이 발생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새삼스런 흥미를 주었다. 「내게 아주 특별한 연인」은 이 작가의 전작들도 그러했듯이 감각적인 구어체 표현과 대화, 그리고 매끄러운 구성으로 인해 유려하게 읽히는 맛이 남달랐다. 「큰 늑대 파랑」의 큰 스케일의 상상력은 전작 「피의일요일」에서 이미 확인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의 소설적 전통에서는 낯선, 그렇기 때문에 매력적인 것이었다.
본심에서 집중 거론된 네 편의 소설 가운데 우선 「북대」는 촌읍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 특색이 있었다. 작가의 생활공간이기도 한 그곳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그래서 실감을 동반하고 있었다. 문장들은 마치 고향에 온 듯 차분하고 안정되어 있었다. 그 문장들을 통해 촌읍의 좁고도 황량한 분위기가 흘러나온다. 한편 그 안정감은 단점으로도 작용하고 있는 듯했다. 오대산 부근의 어느 촌읍에 새로 온 다방 아가씨(밀크셰이크)를 사랑한 택시기사의 이야기라는 서사의 뼈대는 상투적인 감이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부처 흉내를 내는 다방 아가씨라는 캐릭터는 평면적인 면이 있고, 뼈가 앙상한 미륵이 앉아 있는 ‘북대’라는 상징 역시 너무 전형적인 것이었다.
「틈」은 이 작가 특유의 정교한 구성력을 확인할 수 있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거기에다 신화적인 분위기까지 더해져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기도 하다. 잘 만들어진 이야기이기는 했지만, 그 이야기에 대응되는 현실적 근거가, 없을 리 없었겠지만 내게는 희미해 보였다. 이 소설을 비롯하여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그녀의 눈물 사용법」「내가 쓴 것」 등의 근작들이 작품 한 편마다의 개성은 간직하고 있으되 하나의 방향성으로 잘 모아지지 않는 것도 이 작가가 새로운 자기 세계를 발견하기 위한 고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짐작케 한다.
「그런, 근원」은 한 형제의 인생유전이라는 이야기 자체도 흥미로웠고 근원, 근본 형제뿐만 아니라 연예기획사 사장, 캐쉬라는 이름의 가수 등의 캐릭터도 선명하고 특색이 있었다. 성격의 형상화에서 최근 백가흠의 소설이 보여주고 있는 능숙한 경지를 이 작품에서도 여실하게 확인할 수가 있다. 전작들에 비해 스케일이 커진 점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그 때문인지 이 작가가 추구해왔던 심리의 문제가 다소 흐려지는 듯한 인상이어서 나로서는 아쉬웠다.
「칼자국」은 지난 1년 동안 발표된 단편 가운데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이었다. 이 소설은 작가의 전작들을 대표한다고도 할 수 있는 「달려라, 아비」의 계보를 잇는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달려라, 아비」가 ‘아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이 소설에서 그것은 ‘어미’인 까닭이다. 어머니에 대한 딸의 이야기라는 흔한 이야기를 이 작가는 특유의 감각과 표현으로 전혀 새로운 차원에 펼쳐놓고 있다. 어머니에 대해 느끼는 딸의 감정을 그저 솔직, 소박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소설이 현실의 변화 방향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여러 대목에서 드러난다. 게다가 이 소설은 그것을 젊은 작가답지 않게 대담하면서도 능청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한 윤리와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 모두 새로우면서도 거부감이 없는, 남다른 능력의 소산인 듯했다. 이 진전은 김애란 개인에게도 큰 의미가 있는 것이겠지만 한국 소설 전체의 입장에서도 소중한 성과라고 생각했다. (문학평론가 손정수, 계명대 교수)
수상소감
안아볼 무렵
김애란
오래 전, 나보다 젊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입 맞추던 밤을 떠올린다. 가로등 하나 없이 컴컴한 밤. 비가 오고 천둥번개가 쳤다는 그 밤. 도로 하나 깔리지 않은, 30여 년 전 시골 마을에 내린 진짜 고요, 진짜 어둠을 그려본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얼굴이, 아버지는 어머니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한다. 하지만 서로가 거기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어, 오래 부둥켜안고 있었더랬다. 어두워서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바람직한 일을 한 것. 소문과 이목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주는 어둠에 안도해, 비 맞으며 내내 그러고 있었더랬다. 하지만, 앞일은 누구도 알 수 없는지라, 마침 염전에 ‘물 잡으러(빗물을 빼러)’ 가던 사내가 다급히 그 앞을 지나고 있었고……. 결국 길 한 가운데에서 두 사람과 쿵 부딪히고 말았다. 그 역시 사방을 분간할 수 없고, 거기 누군가가 있으리라 예상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사내는 귀신이라도 만난 듯 놀라 자빠져 달아났다. 어눌한 충청도 말투로 연신 ‘누구여? 누구여?’를 외친 뒤, 장님처럼 허둥대며 사라졌다. 어머니는 목소리만 듣고도 그 아저씨가 누군지 알았지만, 그 자리에 한참을 꼼짝 않고 있었다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어머니로부터 들었다. 명절 때, 외가에 들러 돌아오는 길목, 옛날의 그 길 어디 즈음에서였다. 그날, 어머니가 긴 포옹을 하고 혼자 들어갔던 길을, 이젠 다섯 식구가 함께 걸어 나오고 있었다. 아이 셋을 낳아 키운 부부. 이젠 시멘트가 발라진 길 위의 다섯 사람. 길과 이야기의 번식. ‘들어가는 길’과 ‘나오는 길’이 같다는 이상함.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읍내에서 부른 렌트카 창 문 밖으로 고갤 디밀어 바람을 쐬었다. 그러곤 어쩐지 어머니와 아버지가 안고 있던 그 길, 그 칠흑 같은 어둠 어딘가에서 내가 태어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깜깜함 속에 섞인 천둥, 염전, 엉뚱한 조우, 놀람, 시치미, 고요, 길, 우연 같은 것이 나를 있게 한 게 아닐까 하고. 하여, 수십 년 전, 길에서 넘어진 아저씨가 땅바닥을 더듬으며 ‘누구여? 누구여?’라고 묻는 밤을 떠올리면, 아이같이 폴짝폴짝 뛰며 ‘저에요! 저에요!’라고 외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문득, 그렇게 소리치는 내 말, 내 글은 모두 내 조그마한 아가리 속 어둠, 내 부모가 부지런히 물 말은 밥알을 흘려보내주던 그 구멍 안에서 나온 것임을 깨닫는다. 그 입으로 당신들의 이름을 부르고, 당신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 기쁘고 슬프다. 내 입 속 어둠과 오래 전 비바람이 치던 밤의 어둠이 길게 이어져있음이 기껍다. 아직도 살아계신, 여전히 그 날 자기가 부딪힌 ‘그것’이 무언지 모르는 염전아저씨처럼. 그렇게 선뜻 ‘넘어져’ 주어 이야기를 더 이야기스럽게 만들어주는 세상 모든 ‘등장인물’들에게. 나보다 젊었던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나와 동갑이었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나보다 늙어버린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