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 위기 고라니, 우리나라에선 ‘유해동물’
멸종 위기종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유해 야생동물’인 고라니인데요.
중국에 서식하는 종류는 중국고라니, 한국에 서식하는 종류는 한국고라니라고 부릅니다.
고라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야생동물 중 하나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와 중국에만 토착종으로 서식하는 희귀종이라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선정한 멸종 위기종
‘적색 목록’에도 포함돼 있습니다.
중국의 고라니 수는 급격히 줄어 현재 1만여 마리만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보호 종으로 지정돼 있으며 한국의 반달가슴곰이나 산양, 여우처럼 복원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고라니는 너구리, 족제비, 오소리, 노루, 토끼, 늑대처럼 순우리말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조상들에게는 오랫동안 친숙한 동물 중 하나였을 것 같아요.
하지만 고라니가 원래 무슨 뜻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고라니에 ‘송곳니’라는 뜻이 담겨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아직 정확히 증명되지는 않았습니다.
노루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체구가 작아 ‘보노루’ 또는 ‘복작노루’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학계에서 쓰는
이름은 아닙니다. 중국에서 ‘어금니노루’라는 의미로 ‘아장(牙獐)’이라고 부르는데, 그 의미를 따서 고라니라는
이름이?...입술 밖으로 길게 뻗어 나온 한 쌍의 송곳니 때문에 ‘흡혈귀 사슴’으로 부르는 나라도 있다고 하네요.
고라니는 물사슴
영어로 고라니는 물사슴이라는 의미의 ‘워터 디어(water deer)’라고 불립니다.
중국 양쯔강 지역에서 한 외국인이 고라니가 물가에서 노니는 것을 처음 보고 붙인 이름인데요.
고라니의 학명인 ‘Hydropotes inermis’ 에도 ‘물을(Hydro-) 좋아하는 (-potes)’이라는 뜻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처럼 고라니는 물을 좋아하고 수영도 잘 하는 동물이어서 호수나 하천과 같은 곳에서도 이동에 제약을 받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뿔 대신 송곳니를 가진 고라니
고라니는 다름 사슴과 동물보다 체구가 작은 편으로 사슴류에서는 사향노루 다음으로 작습니다.
보통 몸 전체 길이가 80~100㎝까지 자라고 몸 높이는 55㎝ 정도, 몸무게는 15㎏ 내외입니다.
이처럼 체구가 작은 고라니는 크고 단단한 뿔 대신 작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슴의 뿔과 고라니의 송곳니, 어느 것이 더 진화된 것 일까요. 여기에는 두 가지 가설이 있습니다.
하나는 고라니가 처음부터 송곳니를 가지고 있었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고라니가 송곳니와 뿔을
함께 가지고 있다가 송곳니만 남고 뿔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고라니 이후에 나타난 종 중 일부는 송곳니와 뿔을 모두 가지고 있거나 뿔만 가지고 있습니다.
학계에서는 이 점을 고려해 송곳니는 일차적인 진화의 산물이고 뿔은 그 후에 나타난 이차적인 산물이라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뿔이 먼저냐? 송곳니가 먼저냐”라는 질문의 답은 ‘송곳니가 먼저’인 셈이죠.
고라니는 왜 한반도와 중국에만 살까
고라니는 왜 한반도와 중국 동북부 등 일부 지역에만 살고 있을까요.
사슴류의 공통 조상은 아프리카에서 인도를 거쳐 중국에서 한반도로 넘어왔는데, 중국과 한반도에서 분화되어
새롭게 고라니가 생겨난 것으로 보입니다.
고라니의 조상은 점차 먹이가 풍부한 초지와 산림의 접경지대에 안착했는데 이 접경지대는 주로 습지와 하천
같은 물 주변입니다. 아마도 고라니에게는 이런 곳이 경쟁자들이 적어 생존에 더 유리했을 것입니다.
과거 신생대 홍적세에 있었던 빙하기의 영향은 아시아보다는 유럽과 북미에서 훨씬 더 극심했습니다.
아시아 지역에서 멸종한 생물 종의 수는 상대적으로 적었죠. 한반도와 중국 남부 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따뜻해
많은 동물들의 피난처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빙하기 때의 고라니도 이 지역에 잘 적응해 정착한 것은 아닐까요. 고라니보다 늦게 갈라져 나온 노루는 산악
지대를 선호해 중국 동북부와 몽골, 러시아, 유럽으로도 퍼져 나갔습니다.
고라니와 사람이 공생하는 방법은
세계적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많은 포유류가 있으며, 이중 일부 지역에만 서식하는 희귀종은 그 지역에서의 멸종이
곧 지구상에서의 멸종을 의미하죠. 중국 등 일부 지역에서만 서식하는 판다는 특이한 외모가 종의 보전 노력에 한 몫
했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특이한 송곳니를 가진 중국고라니도 복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고라니의 경우
개체수가 많아 흔히 볼 수 있고, 사람과 마찰이 잦아 관심은 고사하고 골칫거리로 전락해 버린 것이 사실입니다.
중국고라니의 개체수가 적고 복원 작업도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반도 내 고라니의 보전이
지구상에서 이 종의 멸종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다고 해서 소중히 여기지 않고 넘어간다면 결국 후대를 위해 물려줄 귀중한 생태적 자산 하나를
잃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