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葆光의 수요 시 산책 22)
희망에 대하여
나에게 그런 말은 하지 말라
「알제리아의 찐빵장수나 되어
혁명가들과 어울렸으면」
나에게 그런 말은 하지 말라
「예멘의 목동이나 되어
부활을 노래했으면」
나에게 그런 말은 하지 말라
「하바나의 급사나 되어
억압받는 사람들의 승리나 기원했으면」
나에게 그런 말은 하지 말라
「아스완댐의 젊은 수문장이나 되어
바위를 위해 노래했으면」
나의 친구여
나일강은 볼가강으로는 흐르지 않네
콩고강이나 요단강이 유프라테스강으로 흐르는 것도 아닐세
모든 강은 그 자신의 시원(始源)이 따로 있고
제 가는 길이 따로 있고 제 삶이 따로 있지.
우리의 조국은 친구여, 황폐한 나라가 아니라네.
때가 되면 모든 나라는 새로 태어나고
모든 전사(戰士)는 새벽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니.
- 마흐무드 다르위시(1941-2008), 『팔레스티나 민족시집』, 압델 와하브 엘 메시리 엮음, 박태순 옮김, 실천문학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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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족 난민의 경험에서 태어난 독특한 예술형식인 ‘이야기 천’ 속에서, 추에Chue와 응히아 타오 차Nhia Thao Cha는 난민 역사와 기억(을) (…) 구현하고 있다. 2인용 침대를 덮을 만한 크기로 난민 수용소에서 제작된 ‘이야기 천’ 속에는 몽족 사람들의 서사시 같은 역사가 담겨 있다. 그들의 기원인 중국에서 시작해서 버마, 태국 그리고 라오스의 산속 마을에서 정착하게 될 때까지, 그리고 걸어서 메콩강을 건넌 길고 험한 여정의 난민 오디세이가 직조되어 있다. 태국의 난민 캠프에서 수년 간 지내다가 마침내 서구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게 되는 장면은 맨 아래 왼쪽 구석에 짜넣었다. ‘이야기 천’ 속의 몽족 사람들은, 다른 많은 나라들의 국경선 위에 걸쳐 있던 그들 나라의 지도 위에 올라가서 움직인다. 이야기 직물 그 자체가 지도이다. 세계의 각 나라 영토 위에 사람들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 보통의 서구 지도와는 다르다. 서구인들은 새로운 땅을 황무지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그곳에 원래 살고 있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서구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서구의 지도는 공중 폭격의 안내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야기 천’은 폭탄이 떨어지는 바로 아래에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기억과 역사가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비엣타인 응우옌(1971-),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더봄, 2019, 362-363쪽)
“나는 다시 이스라엘 지도를 보며 내가 의도한 첫 목적지를 찾는다. 그것은 중간 크기의 검은 점인데, 내가 지금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다.”(105쪽) “1948년까지의 팔레스타인을 보여주는 지도를 펼치니 팔레스타인 마을 이름들이 여기저기서 수없이 보인다. 1948년에 주민들이 추방당하고 마을이 파괴당한 곳들이다. 그것들 중에는 내 동료나 지인들의 고향 이름들도 있다. (…) 하지만 대부분의 이름은 낯설다. 소원한 느낌을 줄 정도다. (…) 나는 이스라엘 지도를 다시 본다. 이제 그 모든 마을이 있던 지역에 캐나다 공원이라는 아주 큰 공원이 펼쳐져 있다.”(109-110쪽) “결국 나는 쉴 수 있다는 희망을 완전히 포기하고 옆자리의 지도들을 집어든다. 우선 이스라엘 지도를 펼쳐서, 좀 전에 길에서 봤던 맨 마지막 표지판의 숫자를 기준으로 지금의 내 위치를 가늠해본다. 지도상에 작고 검은 점으로 보이는 다음 목적지까지 도착하려면 이제 짧긴 해도 직선으로 운전해야 한다. 그곳은 지도에선 광활한 누런 바다처럼 보이는 곳 안에 있는 거의 유일한 점이다. 이어 나는 1948년까지의 팔레스타인을 보여주는 지도를 집어들지만 공포에 사로잡히며 그냥 접어버린다. 팔레스타인 마을들, 이스라엘 지도에서는 누런 바다에 삼켜진 곳으로 보이는 그곳들이 이 지도에는 수십 군데가 있어서 그 마을 이름들이 종이에서 나를 향해 덤벼드는 듯하다.”(120-121쪽) “나는 다시 이스라엘 지도를 집어들고 이 작은 마을이 표시된 곳을 찾아보지만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 없다. 이곳이리라고 생각되는 지도상의 지역은 텅 빈 황색 공간이 차지하고 있다.”(147-148쪽) (아다니아 쉬블리(1974-), 『사소한 일』, 강, 2023)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동조자』라는 소설로 유명한 베트남계 미국인 작가 비엣 타인 응우옌의 ‘베트남과 전쟁의 기억’에 대한 기록이고, 『사소한 일』은 팔레스타인 작가 아다니아 쉬블리의 소설입니다. 비엣 타인 응우옌은 베트남에서 태어나 4세 때 미국으로 이주했습니다. 그의 소설 『동조자』는 독특한 시각의 베트남전쟁을 소재로 한 소설입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베트남-프랑스 혼혈로 태어나면서부터 이중성을 지니게 된 한 남자인데 격변의 시기를 이중간첩으로 살아갑니다. 아다니아 쉬블리의 소설 『사소한 일』은 팔레스타인에서의 전쟁(?) 중 일어난 폭력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입니다. 작가는 이 소설로 올해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리베라투르상을 받을 예정이었으나 분쟁 발생 이후 시상이 취소되어 논란이 일었습니다. 소설의 내용이 문제가 되었지요. 2부로 나눈 소설의 1부에서 작가는 1949년 이스라엘 군인들의 베두인족 소녀 살해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살해 사건 이전에 매우 불미스러운 폭력 사건이 먼저 있었습니다. 옮긴 글은 2부의 일부입니다. 마흐무드 다르위시는 팔레스타인의 시인입니다. 십 대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30여 권의 시집과 산문집을 출간하였는데 단순하면서도 일상적인 언어로 고향을 잃은 팔레스타인 민족의 아픔을 대변하는 시를 썼습니다. 1971년 이스라엘 점령지가 된 고향을 떠나 튀니지, 카이로, 니코시아, 파리 등지를 떠돌며 창작 및 정치 활동을 했고, 오랫동안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에 가담해 활동하면서 자주 감금과 투옥을 당했습니다. 1996년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왔으나 이스라엘 당국이 고향집으로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서 팔레스타인 자치 지구단 요르단강 서안의 라말라에서 살다가 2008년 67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기시감이 들지요. 마흐무드 다르위시의 삶은 얼마 전 소개했던 자카리아 무함마드의 삶과 거의 유사합니다. 아니 같다고 해도 전혀 틀리지 않습니다. “모든 강은 그 자신의 시원(始源)이 따로 있고/제 가는 길이 따로 있고 제 삶이 따로 있지.” 시인은 반복해서 “나에게 그런 말은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 말 속에 포함되어 있는 장소는 그의 출생지가, 그의 고향이, 그의 나라가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거주지’로 삼을 수는 있지만, 신분은 이주민으로서지요. 그는 오로지 팔레스타인 사람일 뿐입니다. 오늘은 영토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관점에 따라서 누군가에게는 주거지인 땅이 누군가에게는 황무지이거나 공원이거나 바다가 됩니다. 지도에서 점으로 표시된 곳이 누군가에게는 향수 어린 삶의 공간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그냥 한 점입니다. “서구인들은 새로운 땅을 황무지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그곳에 원래 살고 있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서구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서구의 지도는 공중 폭격의 안내서 역할을 하게 된다.” 한 점 속에 인간은 없습니다. 물론 삶도 없지요. 지도 위에 체스판을 그리듯 그은 선으로 경계를 지어 영토를 분할한 야만적인 시절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삼팔선도 그 야만의 결과로 그어졌습니다. 삼팔선에는 아무런 뜻도 없었습니다. 야만만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분쟁 발생 이후 팔레스타인에서의 이스라엘의 행위에는 뜻이 있어 보입니다. 숨기고 있음이 분명한 이 뜻은 너무 선명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이유를 내놓아도 그 시작과 끝은 야만野蠻입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해결책인 정답은 이미 있어 보입니다. 내놓는 해답이 서로 다를 지라도요. (20231129)
첫댓글 야만과 야만의 해결책을 생각하게 해 줍니다. 잘 읽었습니다.
마흐무드 다르위시의 삶은 얼마 전 소개했던 자카리아 무함마드의 삶과 거의 유사합니다. 아니 같다고 해도 전혀 틀리지 않습니다. “모든 강은 그 자신의 시원(始源)이 따로 있고/제 가는 길이 따로 있고 제 삶이 따로 있지.” 시인은 반복해서 “나에게 그런 말은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 말 속에 포함되어 있는 장소는 그의 출생지가, 그의 고향이, 그의 나라가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거주지’로 삼을 수는 있지만, 신분은 이주민으로서지요. 그는 오로지 팔레스타인 사람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