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2015년 마지막 날
이것저것 정리하다가
제주불교문인협회에서 내놓는
‘혜향慧香’ 5호를 집어 들어
한참을 읽었다.
근래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정신없이 달려온 한 해였다.
나이가 들어가서 그런지
요즘은 1년이 한 달처럼 느껴진다.
한 해를 정리하는 의미로
시 몇 편을 골라
석양 노을 사진을 덧붙인다.
♧ 무제 3 - 강통원
아득한 우주의
겁에서 바라보면
다만 찰나에 지나지 않는 것.
한 줄기 바람이 불고 가는 사이
한 조각 떴다 사라지는
구름의 잔해.
구름과 바람의 잔상.
바로 그런 것
나는 이것을
나의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 선문답禪問答 - 정인수
욕심을 버리고
마음 하나 잘 다스리면
누구나 부처가 된다는 말씀.
인연을 끊고
정진연마하면
불생불멸不生不滅에 든다는 말씀.
색色은 곧 공空이요
공은 곧 색이란 말씀.
그것이 오직 무엇이오니까?
그것이 오직 무엇이오니까?
일체법불생一切法不生
일체법불멸一切法不滅
불생불멸은
우주의 근본원리이며
불타의 대각자체大覺自體라신다.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있는 것이 없는 것이며
없는 것이 있는 것이니
상대 모순 투쟁이 사라지는
불타의 중도법문이라신다.
부처님이 처음 성불하신 후
녹야원으로 오비구五比丘를 찾아가서
제일 첫 말씀이
“나는 중도를 정등각正等覺했다”하셨으니
그것은 즉 중도를 바로 깨쳤다는 말씀이신데,
그런데도 눈을 뜨고 보면
태양이 온 우주를 훤히 비추고 있는데도
자꾸 어둡다 어둡다 하면서
갈팡질팡하고 있으니
이 또한 무엇이오니까?
이 또한 무엇이오니까?
♧ 저문 산에 庵子 하나 지어 - 한기팔
저문 산에
庵子 하나 지어
저녁 구름 불러 앉히리
구름 몇 점 한가로운
그 아래
行者스님인 듯
산을 오르는 것이 보인다.
나에게서 나를 가두고
나를 버리며
작은 구름 하나
그 뒤를 따른다.
어느 곳을 향해 앉아도
내가 편히 바라볼 수 있는
산,
그 산의 形相은 무엇인가
신발 끈을 고쳐 매고
山門을 나서노라니
梵鐘소리 끊겼다 이어지며
산은 어느새
제 형체 속에 몸을 거두고
結跏趺坐를 튼다.
♧ 환희발심歡喜發心 - 고응삼
오분향례五分香禮 혜향慧香으로
백팔번뇌 숙배하여
삼보전에 좌선경선 하올 제
반야바라밀타 발원이라
대자비! 견아시중見我示衆이
환희발심歡喜發心 하오리다.
♧ 하루살이 - 김대봉
가장
짧은 것이
하루살이
일생일까
긴긴
여름 한낮
백년 같고
천년 같아
오늘밤
가로등 빛에
투신할까
미
물
들.
♧ 정방사 그늘에 서서 - 김용길
정正 못 물소리 흘러
천길 폭포 이루더니
서西로 돌아 칠십리 길이
예서부터 시작이네
정방사 일주문 그늘
노송가지에 걸리고
주지스님 법당문 열다 말고
발그림자 딛고 서면
저 옛적
서복徐福 일행이
여기 와서 머물 듯
전설처럼 새울음
관음觀音으로 들리네.
♧ 향나무 - 문태길
한 세상 멀리 두고
외로이 살아간다
저녁엔 별빛 향기
새벽엔 찬 이슬이
향나무
한 그루만으로
이 世上은 밝아온다.
흙바람 이는 언덕
홀로 선 저 비구니
장삼 자락 끝에
번민을 휘감으며
그윽이
흐르는 향이
염주알을 굴린다.
♧ 사려니 숲길을 걷다 - 오영호
가을빛 익어가는
사려니 길섶마다
가뭄과 긴 장마에도
인내와 침묵으로
피워낸
꽃과 열매를 단
나무들은 성자다.
얼마쯤 걸었을까
발걸음이 느려지고
그래도 불평 없이
따라온 바람과 햇살
때때로 허방을 짚는
또 다른 나를 본다.
카페 게시글
일심
혜향 2015
하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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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21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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