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흰 매화는 더욱 더 하얗게 빛나고 ..... 이옥봉

이옥봉 이옥봉은 옥천 군수를 지낸 이봉【1526-?, 양녕대군의 고손자】의 서녀(첩의 딸)로 태어났다. 본래 이름은 이숙원이고 그녀 스스로 호를 옥봉 이라고 하였다. 옥봉은 용모와 재능이 아주 뛰어났다고 한다. 아버지 이봉은 벼슬에는 별 뜻이 없고 산천을 유람하며, 당시 名士인 정철, 이항복, 유성룡 등과 문학적 재주와 박식함으로 친하게 어울리는 사이였다. 옥봉 이숙원은 이봉의 첩에게서 태어난 서녀이기에, 아버지 이봉은 옥봉이를 비슷한 처지의 서자에게 시집보내기로 했는데, 이옥봉이 그런 결혼을 완강하게 반대하고, 당시 과거에 급제하여 수재로 소문났고, 詩文를 잘 알고 있던 조원【1544-1595, 승지 역임, 승지는 현재 청와대 수석】 이라는 사람의 소실(첩)로 들어가길 원하였다. 그래서 옥봉의 아버지 이봉이 조원을 찾아가 소실을 둘 생각이 없느냐고 묻자, 조원은 일언지하에 거절 하였다 한다. 당시 조원의 가정환경은 조원 자신이 처자식을 거느린 유부남으로 숙부(작은 아버지)의 양자로 들어간 상태이고, 양어머니이자 숙모는 과부였고, 조원 자신의 생모마저 과부였다고 한다. 이렇게 조원에게서 거절을 당한 이봉은 고민 끝에 조원의 장인이자 당시 판서로 있던 이준민(1524-1590)을  찾아가 저간의 사정을 얘기하며 도움을 청하였다. 이야기를 다 들고 난 이 판서가 나서니, 옥봉의 혼사문제가 해결되었다. 이 판서가 날짜를 택일하여 사위(조원)의 소실로 옥봉을 데려오도록 하였다. 옥봉을 본 이준민은 외모도 재주만큼이나 아름다운 女子라서, 매우 기특하게 여기고 사위의 소실로 맞아들인 것에 크게 만족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이렇게 조원은 장인 때문에 옥봉을 첩으로 받아들였다. 옥봉의 남편인 조원은 남명 조식【1501-1572, 벼슬을 외면하고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던 영남학자】의 문하생인데 조식이 조원을 보고, ″아름다운 선비″라고 하면서 감탄하였다 한다. 조원은 신동으로 진사시험(과거 예과)에 율곡 이이와 공동으로 장원 급제하였고, 효자에다 詩文에 있어선 당대 최고인 최경창(홍랑의 연인)과 거의 비슷한 평가를 받았다. 조원에게는 아들이 넷이 있었다. 옥봉을 첩으로 거느리고 살던 조원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임금을 모시고 의주로 피난길에 오르고, 효자동 집에 살던 조원의 장남과 차남은 자기 어머니(조원의 본부인)의 목숨을 지키다가 왜군에 죽고 말았다. 전쟁이 끝나고 선조 임금은 이 얘기를 전해 듣고, 효자동에 쌍홍문을 세우고, 동네 이름을 효자동이라 부르게 하였다고 한다. 조원과 옥봉의 결혼 생활을 살펴보면, 조원은 옥봉을 소실로 받아들이면서 앞으로는 詩를 쓰지 말도록 하였다. 옥봉이 워낙 조원을 사랑했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낭군으로 모시게 되었으니 첩 생활인들 어떠며 시도 안 짓기로 했다. 조원이 괴산 군수, 삼척 부사(1583년), 성주 목사(1589년) 등 지방관으로 나갈 땐 본부인은 한양에 남겨두고 옥봉을 데리고 지방에 내려가 함께 살았다. 이렇게 행복한 생활을 하던 중 호사다마라고 할까?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불과 몇 해 전에 조원과 옥봉 사이에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옥봉과 같은 동네에 산지기를 하는 촌부가 살았는데, 그 아내가 찾아와 자기 남편이 소도둑 누명을 쓰고 관에 잡혀 갔으니, 조원과 절친한 파주 목사에게 손을 좀 써달라고 옥봉에게 애원하였다. 이에 옥봉은 남편인 조원에게는 감히 얘기도 꺼내지 못하고, 漢詩 한수를 써서 보냈는데 이 시를 본 파주 목사가 산지기를 풀어주었다 한다. 나중에 이를 알게 된 조원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여자와는 살수가 없다” 고 하면서 옥봉을 쫓아냈다. 조원의 집에서 나와 뚝섬 근처에 방을 얻어 지내면서 조원의 마음을 돌려보려 애썼으나 허사였다. 결국 조원을 포기하고 시를 짓는 생활을 다시 시작하였고 수많은 한시를 지었다. 당시 文名으로 최고의 자리에 있던 허균【1569-1618, 허난설헌 동생, 형조판서, 좌참찬, 홍길동전 저자, 1610년 명나라를 방문하고 조선 최초의 천주교 신도가 됨.】은 “요즘 와서 제법 규수 시인이 나와서 경번(허난설헌의 자)은 하늘 선녀의 재주가 있고 옥봉 또한 대가임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고 했다. 옥봉의 한시를 평하기를 “그 시가 매우 맑고(淸) 강건하여(健) 거의 아낙네들의 연지 찍고 분바르는 말들이 아니다.“ 라고 하였다. 漢詩(한시)를 평할 때 淸(청)이라고 함은 더 이상 칭찬이 필요 없는 최고의 평을 의미했다. 또한 후세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다음과 같은 문장. 〃桐千年老恒藏曲梅一生寒不賣香 (동천년로항장곡 매일생한불매향)〃 뜻을 풀이하면 오동은 천년이 흘러도 변함없이 가락을 간직하고 매화는 일평생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라는 구절을 남겨 오늘날 까지도 식자층에서 애송되고 있는 상촌 신흠의 名文章. 16세기 당시의 정치가이자 대학자이며 대문장가인 상촌 신흠 【1566-1628, 21살에 별시문과에 장원급제, 이조정랑, 대사간, 대사성, 대제학, 도승지, 한성판윤,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역임, 뛰어난 文章力으로 당대를 주름잡던 漢文學의 태두로 대명외교문서를 전담. 조선왕조 500년을 통하여 漢文學의 최고수는 신흠, 國文學의 최고수는 정철을 꼽는다. 】은 옥봉의 시를 ″천고의 절창″이라 평하였다. 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한 男子의 첩으로, 또 첩에서 버림받고 홀로 살며 서럽도록 아픈 사연을 갖고 있는 불후의 시인 이옥봉. 옥봉의 시들은 『가림세고 』의 부록에 「옥봉집」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옥봉집에는 숨겨진 애절한 슬픔의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조선 인조 때 참판 조희일(조원의 아들)이 명나라 사신으로 가서 원로대신이 보여준 『옥봉시집 』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임진왜란의 전쟁 와중에 아버지 조원은 세상을 뜨고, 조원과 이별하고 홀로 세파를 헤쳐야만 했던 이옥봉.  아버지 조원의 소실이었던 이옥봉의 생사를 모르는지 벌써 40년이 지났다. 그런데 중국에서 옥봉시집을 보았기 때문이다. 원로대신이 들려준 이야기로는 중국 동해안에 시체가 떠다녀서 건져보니, 온몸을 종이로 수백 겹 감고 노끈으로 묶은 여자의 시체였으며, 안쪽의 종이를 펴보니, “해동 조선국 승지 조원의 첩 이옥봉” 으로 되어 있었다. 漢詩 작품이 워낙 빼어나서 책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조원의 죽음을 알고 이옥봉은 죽기로 결심하고 바다에 몸을 던졌다. 세상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음은 슬픔으로 썼던 수많은 시들을 온몸에 칭칭 감고 죽어, 중국 동해안에서 옥봉의 시체가 발견되니, 그녀의 漢詩가 옥봉의 시집으로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조원의 고손자인 조정만(1656-1739, 형조판서 역임)은 이옥봉 행적에서 ″임진왜란을 만나 이씨가 마침내 절의에 죽었다. 그 삶은 불행하였으나 그 죽음은 불후하였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시대 여류문학은 규수문학으로 허난설헌(1563-1589), 김호연재(1681-1722), 서영수합(1753-1823), 김삼의당(1769-1823)이 있고, 황진이(?-?), 이매창(1573-1610)으로 대표되는 기방문학 있으며, 또한 옥봉 이숙원(?-?), 운초 김부용(1800년경 - 1857년 이전), 박죽서(1819-?)의 소실(첩)문학이 있다. 참고로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은 漢詩(손에 꼽을 몇 편의 작품만이 전해짐) 보다는 글씨, 자녀교육과 자수와 山水(산수), 포도 등의 그림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숙종(1661-1720)임금, 송상기(1657-1723), 홍양한(1724-1802), 오세창(1864-1953)도 신사임당의 그림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다. 신사임당에 관하여 부언 설명하자면, 조선시대의 당쟁을 이야기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조선시대 선조 임금 당시 김효원(한양의 동쪽에 집이 있다하여 동인)과 심의겸(한양의 서쪽에 집이 있다하여 서인)의 이조정랑【정5품, 당하관이하(종3품 이하) 인사권자로 최고요직】직을 놓고 시작된 싸움이 사색당파(오늘로 말하면 한나라당, 열린우리당 등과 같은 개념)의 효시가 되었다. 東人은 퇴계 이황, 남명 조식을 따르는 주리철학의 영남학파가 중심이었고, 西人은 주기철학에 근거한 율곡 이이, 우계 성혼의 기호학파가 중심이었다. 동인의 대표적 인물로는 이발, 정인홍, 정여립, 허엽(허난설헌 아버지, 화담 서경덕 제자), 이산해, 유성룡, 우성전(허난설헌의 이복언니 남편) 등이 있는데, 퇴계 이황의 제자들인 유성룡과 우성전(우성전 집이 남산 밑에 있음) 추종세력이 남인(온건론)으로 분파되고, 이발(이발의 집이 북악산에 밑에 있음)과 이산해, 정인홍, 이이첨 추종세력은 북인(강경파)으로 분파되었다. 북인에는 간신과 중상 모략꾼이 많아서 시대가 바뀌면서 진실이 밝혀져, 부관참시까지 당하고 패가망신 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한편 남명 조식을 따르는 북인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 많이 배출되기도 하였다. 한편 서인의 대표적 인물로는 박순, 이이, 정철, 성혼 인데 율곡과 송강이 죽고 나자 선조 후기, 광해군 시대는 동인 특히 북인의 세상이 되었다. (광해군과 동인은 스타일상 잘 맞았고, 광해군은 특히 북인을 편애하였다.) 정치적 집권세력에서 밀려나 있던 이귀, 김류, 최명길 등의 서인세력은 조정에 등을 돌린 민심을 등에 업고, 인조반정(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인조가 등극한 사건)을 주도하면서, 정치적 실세로 전면에 나서게 된다. 사계 김장생【1548-1631, 일찍이 과거를 포기하고 학문 연구. 후학 양성에 주력함】 문하에 조선시대 내노라 하는 인재가 무수히 많이 배출되었는데, 이들이 거의 대부분 서인으로 활동하였다. 서인은 송시열(노론: 노장파)과 윤증(소론: 소장파)의 대립으로 분파가 된다. 그런데 송시열 이후, 김조순의 안동김씨의 세도정치 때까지 조선후기의 정치를 율곡 이이의 학통을 이어받은 노론이 오랜 기간 동안 거의 주도하다시피 하였다. 【중간 중간 남인, 소론의 집권(조정의 주요 요직을 한 당파가 장악)이 있었다.】 사임당의 아들인 율곡 이이는 율곡 자신이 대학자이자 대정치가이며 애국적이고 선비의 표상인 賢人(현인)이라는 이유가 있었지만, 송시열을 중심으로 하는 후세의 서인들이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을 미화시킨 일면도 있다. 조선시대 말까지 사임당에 대한 언급의 핵심은 賢母(현모)였다. 더구나 최근 현대사에서 율곡의 10만 양병설 등의 부국강병책이 박정희의 통치이념과 맞아떨어지면서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을 성역화 하여, 사임당의 詩文(시문)도 실제 이상으로 과장된 측면이 있다. 現代에 와서 사임당에 良妻(양처)의 개념이 덧붙여지면서, 신사임당 하면 「賢母良妻(현모양처」로 이미지가 완전 고착화 되었다. 나는 신사임당의 작품을, 업적을 폄하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다. 사임당의 삶과 작품 그 자체가 물론 훌륭하다. 다만 作家는, 詩人은 그(그녀)가 이룩한, 발휘한 실력에 또는 업적에 걸 맞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과소 또는 과대평가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실상에 합당한 대접을 받아야 자연스럽고 담백한 것이 아닐까? 하얀 저고리를 입고 검은 트레머리에, 입가엔 약간 어색한 미소를 흐릿하게 띠고 있는 중후한 신사임당의 초상화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그래서 감정적인 표현은 속에서 한번 걸러져서 밖으로 표출될 것 같은 이미지. 소소한 일상사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믿음직하고 강건한 현모양처. 그러나 실상 아들인 율곡이 문서에 기록하고 있는 어머니 사임당은 눈물이 엄청 많아서, 한양에 살면서도 친정 생각에 밤에 눈물을 흘리며 울었고, 친척집 여종이 놀러 와서 거문고를 연주하는데 그 소리를 듣고도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었다고 한다. 또 남편 이원수가 수운판관(종5품, 세금으로 낸 곡식을 실어 나르는 운수사무직)으로 평안도 지방에 장기 출장을 가 있을 때 남편에게 편지를 쓰면서도 줄줄 눈물을 흘렸다고 율곡 이이는 문서에 기록하고 있다. 이렇듯 사임당의 실제 모습은 신경이 예민하고 감수성이 매우 풍부한 여성이었다.         신사임당의 4男 3女 중 장녀로 이매창(부안 기생 이매창이 아님.)이 있는데, 어머니 사임당의 예술적 재능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거기에 식견과 학식까지 탁월하였다. 율곡 이이가 높은 벼슬에 올라 업무를 행함에 있어서도 누나의 식견과 지혜를 신뢰하여, 무엇을 의논하고 싶으면 누나인 매창을 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매창에게는 율곡 이이 근처에 가볼만한 그런 수준의 자식이 없었다. 누가 사임당의 딸 이매창을 기억하는가?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하고 천재이자 정치가이고, 당대의 대문장가이며 해박한 시문평론가들인 상촌 신흠(1566-1628), 교산 허균(1569-1618), 서포 김만중【1637-1692, 공조판서. 대사헌 역임, 구운몽. 사씨남정기 저자】 등등은 신사임당 詩文(시문)을 그렇게 걸작으로 평가하지는 않았다. 반면에 황진이, 허난설헌, 이매창, 이옥봉 등은 대단한 詩人으로 평가를 하였다. 登樓(등루: 누각에 올라)  小白梅逾耿(소백매유경)  작고 흰 매화는 더욱 더 하얗게 빛나고 深靑竹更姸(심청죽경연)  우거진 푸른 대나무는 한층 아름다워라. 憑欄未忍下(빙란미인하)  난간에 기대서니 내려가기 싫어져 爲待月華圓(위대월화원)  둥근 달 뜰 때 까지 기다려봐야겠네. ※ 참고      1. 지은이는 조선시대 소실 이옥봉      2. 逾耿(유경)은 넘을 유, 빛 경 이므로 더욱 빛나다.      3. 深靑竹(심청죽)은 깊을 심, 푸를 청, 대 죽 이므로 우거진 푸른 대나무.      4. 更姸(경연)은 고칠 경, 다시 갱, 고울 연, 아름다울 연 이므로         다시 아름다워지다.      5. 憑欄(빙란)은 기댈 빙, 난간 란 이므로 난간에 기대다.      6. 未忍下(미인하)는 아닐 미, 미래 미, 참을 인, 아래 하, 내릴 하 이므로         내려가는 걸 참을 수가 없다. 지금 내려가기는 싫다.      7. 爲待(위대)는 할 위, 위할 위, 기다릴 대 이므로 기다리겠다.      8. 月華圓(월화원)은 달 월, 빛날 화, 번성할 화, 둥글 원 이므로         둥근 달이 되다.      9. 옥봉의 한시는 8행 이상으로 긴 한시는 4-5 편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작품은 4행으로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