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홍수위를 아시나요”
개인 무역업을 하는 H씨는 외국인을 접대할 일이 많았다. 그래서 강남에 있는 아파트와는 별도로 접대용 전원주택을 짓기로 했다. 평소 꿈꿨던 대로 강이 내려다보이는 지역을 찾다 보니 양평군 강상면 병산리의 전답을 매입하게 됐다. 강변에 바로 붙은 땅으로 현지 중개업소가 여러 사람에게 분할해서 파는 공동 매입 방식이었다.
H씨가 구입하고 싶은 땅 면적은 400∼500평 정도였으나 딱 맞는 매물이 없었다. 간혹 나온 매물조차도 강변에서 한참 떨어졌거나 가격이 비쌌다. 그래서 현지의 한 중개업소의 의견대로 5000평을 공동 구입키로 한 것. 공동 구매자는 중개업소에서 모아주기로 했다. 다행히 5개월 만에 공동 구매자 모집은 완료됐다. 공동 구매자는 H씨를 포함해 모두 14명. H씨는 강 쪽의 땅 450평을 평당 55만원에 매입했다.
땅을 매입하고 분할절차를 끝낸 다음, 우여곡절을 거쳐 어찌어찌 개발행위 허가신청을 냈으나 결과는 ‘불가(不可)’ 통보였다. 사유를 알아보니 H씨의 땅이 이른바 ‘계획홍수위(計劃洪水位)’보다 낮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양평군에서는 건축허가서가 접수되면 건축법 및 각 개별법의 규정에 의하여 관련부서와 협의절차가 이루어진다. 일반주택의 경우 허가민원과, 환경보호과, 서울지방국토관리청과 협의를 통해 건축물의 용도 및 대지조건에 따라서 허가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다.
즉 허가민원과에서는 농지전용허가협의를 진행하고, 환경보호과에서는 단독정화조(오수처리시설) 설치 여부를 확인해 급수지역인 경우 상수도원인자 부담금 협약을, 하수종말처리구역인 경우 배수설비설치허가 및 하수도원인자 부담금(사용승인 전 납부) 등을 확인한다. 그런데 H씨의 땅이 문제가 됐던 것은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의 하천정비기본계획상 ‘'계획홍수위’ 저촉여부 검토과정에서였다. 이 검토과정에서 H씨 소유 땅이 ‘계획홍수위’보다 1m 낮았던 것이다.
2003년 건축법이 개정되면서 재해관리구역 내 건축제한 및 건축기준을 시·도 조례로 정하도록 변경되자 경기도는 ‘도 건축조례 중 개정조례안’을 시행에 들어갔는데 H씨의 땅이 이 조례의 건축 제한 규정에 해당됐던 것이다. 개정 조례안에 따르면 상습 침수지역을 대상으로 지정하는 제3종 재해관리구역에서는 지하층 설치가 금지될 뿐만 아니라, 건축물 구조도 계획홍수위 이하의 경우 벽돌 등을 쌓거나 나무 등으로 만들 수 없도록 했다.
‘계획홍수위’란 하천 제방 높이보다 0.6~1.2m 낮은 위치로 수방시설 설계시 기준이 된다. 100년 발생 빈도의 강우량을 기준으로 책정된다. 양평군 옥천군 옥천교 부근의 경우 수해방지를 위해 필요한 계획홍수위가 31.7m다. 한강대교의 계획홍수위는 15.33m다.
이와 같은 계획홍수위는 정부에서 개발지역을 결정할 때 중요한 선택기준이 된다. 예를 들어 행정수도 결정시 수해 가능성이 있는 계획 홍수위 이하 면적이 어느 정도냐가 선택기준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당시 논산·계룡의 경우 수해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 계획홍수위 이하 면적은 21.98%로 재해 위험성이 높아 도시 유지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이 작용돼 후보지에서 탈락했다는 주장도 있다.
때문에 강변에 소재한 땅을 매입하려면 각종 공법상 규제뿐만 아니라 지자체 내규 등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파악해두어야 손해를 보지 않는다.
김영태
중앙일보 조인스랜드 기자
칼럼을 쓰는 김영태씨는 광운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월간 전원주택라이프 편집장을 역임했다. 이후 토지개발전문업체 JMK플래닝 개발사업부 팀장과 광개토개발 대표를 거쳐 현재는 중앙일보 조인스랜드 기자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