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작가 진우석의 우리산 기행 <22>청도 운문사와 지룡산
<청도의 가을은 온통 주홍빛이다. 감나무가 마을과 거리를 가득 메우고,
나무마다 탐스러운 청도 반시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청도의 최고 자랑은 운문사다. 비구니 승가대학이 자리한 청정도량 운문사는
과거 신라 화랑들의 수련장이었으며 일연이 삼국유사를 집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운문사 단풍은 밝고 환하지만, 비구니 스님의 파르라니 깎은 머리 같은 애잔함이 숨어 있다.>
장대하면서 정갈한 운문사는 볼거리가 많은 절이다. 절뿐 아니라 부속 암자인 북대사, 청신암, 사리암 등이
독특한 매력을 품고 있다. 사리암은 정성으로 기도하면 누구나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고 해서 밤낮없이
인파가 몰려들고, 인적 뜸한 청신암은 고즈넉한 솔숲과 참나무 숲이 일품이다. 북대사는 지룡산의 웅장한
암벽 아래 제비집처럼 매달려 있는데, 운문사보다 먼저 세워진 유서 깊은 곳이다. 지룡산의 험준한 산세를
이용한 지룡산성은 후백제를 세운 견훤의 탄생 설화가 내려온다.
지룡산 전망대에서는 지룡산~운문산~억산~호거대의 드넓은 품에 안긴 운문사의 진면목을 감상할 수 있다.
매표소~운문사~북대사~지룡산을 둘러보는데 넉넉하게 3시간쯤 걸린다.
운문사 입장은 매표소에서 걸어가는 좋다. 매표소부터 운문사의 자랑인 그윽한 솔숲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매표소를 지나 절 앞 주차장까지 휙~ 차를 타고 지났지만, 지금은 다르다. 매표소에서 솔숲을 지나
운문천을 따라 절까지 예쁜 길을 내놓았다. 일명 ‘솔바람길’이다. 매표소를 지나면 수백 년 묵은 구불구불한
소나무들이 서 있다. 일주문이 따로 없는 운문사에서 이 솔숲은 일주문 역할을 한다.
빨리 걸으면 절까지 10분이면 닿겠지만 느릿느릿 걷는 것이 제 맛이다. 그윽한 솔향에 온몸의 숨구멍이 열리는
기분이다. 저 앞으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걷는 모녀의 모습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 없다. 솔숲 길은 운문천을
오른쪽으로 낀 길로 바뀐다. 길바닥에 나무 데크를 깔아 걷는 맛이 좋고, 오른쪽으로 계곡 물소리가 시원하다.
그렇게 황홀하게 걷다보면 절 입구인 범종각 앞에 닿는다. 범종각에는 ‘호거산(虎距山) 운문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운문산 운문사’가 아니다. 그렇다면 호거산은 어디일까. 크게 세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절 남쪽 가장 높은 산인 현재의 운문산(1천195m)을 호거산이라고 하는 주장, 둘째는 북대암이 자리 잡은
북동쪽의 복호산(伏虎山ㆍ678m)과 지룡산(池龍山ㆍ659m) 일대가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닮았다는 주장,
마지막으로 운문사 매표소 오른쪽(서쪽) 산등성이 위에 커다란 바위인 ‘호거대(장군바위, 등선바위ㆍ516m)’
주변 일대 산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 중 가장 유력한 것은 대동여지도와 고문헌의 기록 등을 토대로 한
호거대 설이다. 운문사 경내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둘러보는 것이 좋다. 빼먹지 말아야 할 것은 비로전 천정의
반야용선에 매달린 악착보살의 익살스러운 모습이다. 여기에는 ‘어느 옛날 신앙심 깊은 이들을 서방의 극락정토로
인도해 가는 반야용선이 도착했을 때, 용선을 타야 할 어떤 보살이 자식들과 마지막 작별인사로 그만 너무 늦게
도착하고 말았다.
이미 용선이 떠나가고 있었기에 보살은 용선의 밧줄에 악착같이 매달려서 서방극락 정토로 갔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구전으로 내려온다. 운문사 경내에서 북동쪽을 바라보면 산 중턱에 내려앉은 암자 하나가 보이는데
바로 북대암이다.
운문사를 나와 매표소 방향으로 100m쯤 가면 북대암 가는 길이 갈린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창한 길이지만,
시멘트 포장이 되어 좀 아쉽다. 가파른 길을 오르다 뒤돌아보면, 너른 터에 들어앉은 운문사의 모습이 보인다.
북대사는 운문산에 최초(557년)로 세워진 절이다. 뒤편에 보이는 우람한 바위봉이 지룡산성으로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계기를 만든 곳이다. 산성을 쌓았던 후백제 왕 견훤이 신라 수도 금성을 공략하자 신라는
고려에 항복하고, 그 뒤 고려는 후삼국을 통일한다. 지룡산성에 전해오는 유명한 이야기가 지렁이의 후손으로
태어났다는 견훤의 전설이다. 북대암에서 지룡산 가는 길은 북대암 뒤편으로 오솔길이 나 있다. 설렁설렁 한동안
길을 따르면 능선을 만나고, 곧 전망바위가 나온다.
여기서 운문사의 깊은 속살이 펼쳐진다. 지룡산~운문산~억산~호거대가 둥그렇게 감싸고 그 안에 운문사가 자리
잡은 모습은 그야말로 감동적이다. 자세히 보면, 산의 모든 지맥들이 운문사를 따뜻하게 안고 있는 형상이다.
운문사를 세운 스님 역시 이곳에서 운문사 터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명당 터를 발견한 그는 얼마나 희열 넘쳤을까.
산골짜기에서 구름 한줄기가 솟구치자 온통 세상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고, 시나브로 운문사가 나타난다.
<이 기사는 대구시체육회가 후원합니다.>
▨주변 명소
△청도소싸움 청도 반시만큼 유명한 것이 소싸움이다.
최근 화양읍에 개장한 1만1천245석 규모의 돔형 소싸움경기장에서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소싸움 경기가 벌어진다.
두 마리의 싸움소가 직경 39m의 원형경기장에서 밀치기, 뿔걸이, 들치기, 머리치기, 뿔치기 등 다양한 기술을 선보인다.
입장료는 무료다. 우권을 구입해 이긴 소를 맞히면 배당금이 지급된다.
△와인터널 감나무가 지천인 송금마을의 와인터널은 청도 감와인 저장고다.
본래는 1904년 완공된 경부선 남성현 터널로 1937년 아랫마을에 복선 터널이 생기면서 폐쇄됐다.
와인터널은 길이 1천15m, 너비 4.5m, 높이 5.3m로 상층부가 아치형의 붉은 벽돌이라 제법 운치 있다.
철길을 따라 와인터널 속으로 들어가면 시음장과 레스토랑, 와인 저장고 등의 시설이 마련돼 있다.
분위기가 좋아 레스토랑에서 간단하게 감와인 한잔하는 연인과 가족이 많다.
▨교통
대구부산고속도로 청도 나들목으로 나온다. 대중교통은 경부선 열차를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숙식
고택이 즐비한 금천면 신지리의 선암서원(070-4150-8445)의 한옥체험이 좋다.
취사는 불가능하고 식사는 미리 주문하면 가능하다.
숙박비 5만~15만원. 소싸움경기장 맞은편에 위치한 용암온천관광호텔(054-371-5500)은 온천욕으로 피로를 풀 수 있다.
동곡리의 중국음식점 ‘강남반점’(054-373-1569)은 운문사 스님들이 먹는 ‘스님짜장’과 ‘스님짬뽕’으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누리는 곳이다.
청도에서는 맑게 끓여낸 민물고기 어탕을 추어탕이라 한다. 청도역 앞의 원조 청도추어탕(054-371-5510)이 맛집이다.
사진 설명 : 지룡산 전망대에서 본 운문사 전경. 산세 그윽한 곳에 자리한 명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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