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생사망
미상 |
918년 |
후고구려를 건국한 왕(재위 901~918년).
성은 김. 몰락한 진골 귀족의 후예로, 신라 제47대 헌안왕 또는 제48대 경문왕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898년 송악(개성)을 근거로 자립하여 901년에 후고구려를 건국했다.
사라져 간 통일의 꿈
후고구려를 건국한 궁예는 흔히 폭군으로 묘사된다. 그는 몰락한 진골 귀족의 후예로 신라에서 태어나 정권 다툼에서 밀리면서 외지로 쫓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 제47대 헌안왕의 아들로, 어머니는 이름이 전하지 않는 궁녀라고 하는데 48대 경문왕의 아들이라는 기록도 있다. 901년 후고구려를 세워 강원, 경기, 황해 일대를 점령했고, 한때 서남해 해상권도 장악했다.
궁예의 삶은 태어날 때부터 순탄치 않았던 것 같다. 그는 5월 5일 단오에 태어났는데, 그가 태어날 때 이상한 빛이 나타나고 태어나면서부터 치아가 나 있었다는 설화가 있다. 이에 국가에 해로운 존재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다고 한다. 궁예의 아버지는 예언이 실현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갓난아이를 죽이라고 명했다. 신하가 강보에 싸인 아이를 다락 밑으로 던져 죽이려 했지만 유모가 숨어 있다가 궁예를 받았다. 이때 목숨은 건졌지만 유모가 실수로 눈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는 바람에 애꾸가 되었다. 이런 설화에 대해 학자들은 궁예가 신라 왕족으로 태어났지만 내분에서 밀렸다는 것을 뜻한다고 본다. 이후 궁예는 출가해 선종(善宗)이라는 법명으로 활동했다.
궁예 미륵
안성 국사당에 위치한 궁예 미륵.
ⓒ 청아출판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892년 궁예는 신흥 호족인 양길(梁吉)의 수하로 들어갔다. 당시는 몇 년째 계속된 흉년과 세금 포탈로 민란이 잦았다. 궁예는 양길의 군사를 일부 이끌고 주천(酒泉, 지금의 예천), 내성(奈城, 지금의 영월), 울오(鬱烏, 지금의 평창), 어진(御珍, 지금의 울진) 등 여러 곳의 현과 성을 정복했다. 894년 궁예가 명주(溟州, 지금의 강릉)에 도착했을 때는 그를 따르는 무리가 3,500명이나 되었다.
그의 세력은 인제, 화천, 철원까지 뻗었고, 독자적인 군대도 운영했다. 그에게 자진해서 복속하는 무리도 생겨났다. 그는 더 이상 양길의 부하로 있을 수 없었다. 896년 궁예는 임진강 주변을 공격하여 개성의 왕건 부자로부터 항복을 받아 냈다. 충주 남쪽에서 세를 불리던 양길이 궁예를 기습 공격했지만, 되레 기세에 눌려 패망한 것도 이때의 일이다. 899년 궁예는 왕건을 데리고 출전하여 소백산맥 이북의 한강 유역을 모조리 장악했고, 그 공을 인정해 왕건에게 아찬의 벼슬을 내렸다.
901년 마침내 궁예는 스스로를 왕으로 칭했다. 그리고 고구려의 계승자라고 자칭했다. 3년 뒤 국호를 마진(摩震), 연호를 무태(武泰)로 정했다. 궁예는 905년 수도를 송악에서 철원으로 옮기고 연호를 성책(聖冊)으로 고쳤다. 911년 국호를 다시 태봉(泰封)으로 바꿨고, 수덕만세(水德萬歲)를 새 연호로 채택했다가 3년 뒤 정개(政開)로 교체했다. 그는 왕건의 도움으로 나주 정벌을 완성한 덕분에 해상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견훤의 후백제를 위협하는 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카드였다.
궁예는 신라를 멸망시켜 없애야 하는 원수로 여겼다. 그는 신라를 ‘멸도(滅都)’라 부르며, 투항하는 신라인까지 모두 죽였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미륵불’이라고 지칭하며 폭정을 합리화했다. 915년에는 심지어 부인 강씨와 두 아들마저 직접 죽이고, 반대파는 모조리 숙청하는 잔인성을 보였다. 결국 918년 폭군의 횡포를 보다 못한 신숭겸(申崇謙), 홍유(洪儒), 복지겸(卜智謙) 등이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새 왕으로 추대했다. 궁예는 변복을 한 채 도망치다가 길거리에서 백성들에게 피살되었다고 전해진다.
신숭겸 유허비와 용산재
왕건의 부하로 고려 건국에 큰 역할을 한 신숭겸은 후백제군과의 전투에서 왕건을 대신해 죽임을 당했다.
ⓒ 청아출판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자료출처>
글
고려대 사학과와 동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한국사연구실, BK21한국학 교육연구단 국제화팀에서 연구원을 지냈으며, 민족문화연구원 한국사연구소에서 고대사에 ..펼쳐보기
동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졸업(문학박사), 현 대구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조선 시대사, 정치사에 관심이 많으며 연구 논문으로 <조선시대 정치권력과 환관>, <소통과 교류의 땅 ..펼쳐보기
출처
한국사를 움직인 100인 | 윤재운 | 청아출판사
한국 고대사부터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한국사를 움직인 100인의 생애와 활동을 소개하고 있다. 정치와 경제, 문화와 예술 영역의 인물이 두루 다루어지도록 구성했다. 인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