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게 약, 아는 게 병이라는 말이 있지만 조울병에서는 사람의 목숨까지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아주 무서운 말입니다. 조울병을 잘 모르고 병을 키우는 경우도 많을뿐더러 조울병임을 숨기고 감추면서 병을 키우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입니다.
기분이 들뜨고 지나치게 쉽게 흥분되어 자신감이 넘치는 상태인 조증과 기분이 가라앉고 의욕이 없는 상태인 우울증이 일정기간 심하게 반복되어 나타나는 것을 조울병이라 합니다. 잔잔한 파도에 배는 순항을 하지만 단 한번이라도 거세고 큰 파도가 닥치면 배가 파손되어 버리고 마는 것처럼 정상 범위를 벗어나는 심한 우울과 들뜸, 심한 기분 변화는 건강과 일상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
조울증 환자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비율은 우울증보다도 높은 10-15%에 해당하며, 자살시도 방법도 우울증과 달리 사전 예고나 징후 없이 고층낙하 등과 같은 극단적이고 충동적인 방법이 주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조울병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경우 변덕이 심하다거나 사회성에 문제가 있다는 등의 성격문제나 일상적인 기분변화 등으로 치부해버리기 쉬운데 바로 이점이 조울병의 여부와 조기진단시기를 놓치게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우울감이 나타날 때는 우울증으로 오진을 받게 할 수 있고, 조증이 나타날 때는 우울해 보이더니 기분이 좋아져 괜찮아진 것으로 착각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것도 조울병의 치료를 어렵게 합니다.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조울병의 간단한 자가진단법은 조증이나 우울증이 2주 이상 지속되느냐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4일에서 일주일이 넘도록, 그것도 온종일 기분이 들뜨고 좋기는 쉽지 않으며, 우울감도 2주 이상 계속되기는 어렵습니다. 주변에서 달라진 것 같다, 이상하다 등과 같은 얘기를 들을 정도로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감정기복이 반복된다면 조울병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우울증에서는 우울증만 나타나며, 조울병에서는 잦은 기분변화가 특징입니다. 우울증을 반복하다 한번쯤 조증을 보이는 경증 조울증인 경우 대부분 우울증으로 오진되고 있는데, 우울증 환자를 1년 이상 관찰해보면 30%이상은 조울증으로 재분류될 수 있습니다.
우울증 |
조울병에서의 우울증 |
단순 우울 |
복잡 우울 |
주로 불면 |
불면, 과수면 |
주로 30-40대 발병 |
어린 나이에도 나타남 |
가족력 연관성 불투명 |
기분장애 가족력 연관 |
항우울제로 치료 |
기분조절제로 치료 (항우울제만 치료하면 악화됨) |
|
기간 |
주요 증상 |
정상기분 |
아무리 기분 좋은 일이나 기분 나쁜 일이 있더라도 수일 이상 일정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
보통사람들이 느끼는 정상범주 안에서의 기분변화이다. |
우울증 |
2주 이상 하루 종일 또는 거의 매일 나타난다. |
ㅇ 재미와 흥미를 잃고 지속되는 우울감으로 사회적, 직업적 활동에 문제가 있음 ㅇ 식욕부진과 체중감소 또는 식욕증가와 체중증가 ㅇ 불면증 또는 수면과다 ㅇ 피로하고 기력이 떨어지며, 심한 죄책감과 가치감 상실 ㅇ 사고력과 집중력이 떨어지고 자살에 대해 생각하거나 실제로 자살기도 |
조울병에서의 우울증 |
우울증에 비해 갑자기 나타나고, 갑자기 좋아지며 자주 나타난다. |
ㅇ 전반적으로 기분이 가라앉아 있어 우울증으로 보임 ㅇ 기분 좋은 일이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며, 우울증과는 달리 많이 먹고 많아 자는 경우도 흔함 |
조증 |
주증상이 1주 이상 지속되고 그 기간 동안 부증상이 3개 이상 나타난다. |
ㅇ 비정상적으로 들 떠 있는 상태 ㅇ 경조증: 말이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지만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정도가 아니어서, 기분이 약간 들떠(의기양양) 있고 컨디션이 좋은 것처럼 보일 수 있음. 평소와 다른 모습이 4일 이상 지속되며, 우울증이 있다고 오진되기 쉬운 조증 직전의 단계임 ㅇ 조증: 일주일 이상 기분이 들떠 있고 사회적, 직업적으로 지장을 초래할 정도 ㅇ 강한 자신감과 자존감 ㅇ 수면욕구 상실 ㅇ 비약적인 사고, 주위산만 ㅇ 쾌락적인 활동에 대한 지나친 몰두 예> 과도한 쇼핑, 성행위 증가 등 |
스스로 귀를 자르고 목숨을 내던진 화가 고흐. 수 차례 자살을 시도한 작곡가 슈만.
네덜란드의 화가로서 널리 인정받고 있는 고흐는 열성적인 몰입과 절망, 우울과 자책, 발작 등의 증세에 시달렸습니다. 스스로 왼쪽 귀의 일부를 잘라냈으며, 정신병원에서 1년 동안 지내던 차에 총을 쏘아 자살을 시도했고 이틀 뒤에 사망했습니다.
생애의 마지막 3년 동안 제작한 작품들만으로도 네덜란드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로 평가되며 그가 쓴 편지 내용에는 희망과 절망, 수시로 달라지는 건강과 정신상태가 생생히 담겨있다고 합니다.
독일의 낭만주의 작곡가인 슈만은 한동안 명곡을 만들다 또 한동안은 작곡을 아예 하지 않기도 하였으며, 귓병과 환청에 시달려 정신병원에 스스로 입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곧 물에 뛰어들면서 네 번째쯤 되는 자살기도를 하게 됩니다.
이 둘은 모두 기분조절기능 장애(신경세포의 비정상적인 반응)로 인한 조울병을 앓았던 것으로 보이며 안타깝게도 천재성을 좀 더 빛내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습니다.
치료를 하지 않고 방치하면 충동 조절이 어려워지고 과격한 언행들이 사회적, 직업적인 활동을 방해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알코올이나 약물 중독에 빠지며, 성적저하, 실직, 이혼 등 학업, 결혼, 직업과 같은 일상 및 사회생활에 큰 지장을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울기에 자살을 시도하는 환자가 10% 이상 달할 정도로 자살 위험성도 증가(자살, 사고, 질병 등에 의한 조기사망 증가)합니다. 초기 발견 때는 치료효과가 아주 좋지만 시기를 놓치면 가정, 직장, 대인관계에 있어 후회스러운 일이 생길 수 있으므로 조기발견과 치료는 매우 중요합니다.
위염이 위점막에 생긴 병인 것처럼 조울병은 뇌와 관련된 병입니다. 아직 명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뇌신경세포 흥분성의 이상과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이 원인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조울병에서 다음의 뇌신경 전달물질이 감소하면 우울증을, 증가하면 조증을 보이게 됩니다.
- 세로토닌: 기분, 식욕, 수면변화 조절 - 노르에피네피린: 활기, 집중, 기억 조절 - 도파민: 흥미, 의욕 조절
이러한 신경전달물질의 이상을 방치하는 경우 특정한 사건자극 없이도 기분변동이 심하게 되기 때문에 조울병 치료를 위해 기분조절제 위주의 치료를 하게 됩니다.
고혈압이나 당뇨병에서 혈압제제나 당조절제와 같은 약물치료 없이 질병관리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조울병 또한 의지만으로 치료하기는 어렵습니다. 조울병은 약물 치료만으로도 70-80%의 호전을 끌어낼 수 있으며, 재발방지를 위해서라도 조울병의 약물치료는 매우 중요합니다.
1. 기분조절제: 기분이 지나치게 올라가거나 내려가지 않도록 기분을 일정하게 조절해주는 약물 2. 비전형 향정신병약물: 조증 초기상태의 진정에 도움되며 조울병에도 우수한 효과가 입증된 약물 3. 항우울제: 모든 우울증 치료제는 조울병에서 나타나는 우울증에도 효과가 좋지만 반드시 기분조절제 혹은 비전형 항정신병약물과 같이 사용되어야 함
불규칙한 생활리듬은 기분조절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수면시간을 두고 볼 때 지나치게 많이 자면 기분이 가라앉고, 지나치게 잠을 적게 자면 기분이 좋아지거나 들뜨게 되는 것입니다.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는 규칙적인 수면습관을 유지하도록 합니다. 가급적 일정한 시간에 7-8시간의 수면시간을 갖고 불가피한 경우 이 패턴에서 1-2시간 정도만 차이를 두는 것이 좋습니다.
빛의 양에 따라 생체시간을 조절하는 멜라토닌은 일조량이 늘어나는 봄에 적게 나와 기분을 들뜨게 했다가, 감소하는 가을부터는 분비가 늘어나서 기분을 가라앉게 합니다. 따라서 가을, 겨울에는 햇볕에 노출되도록 낮에 1-2시간씩 산책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집안에서도 햇볕이 잘 들도록 인테리어 할 필요가 있습니다. 햇빛을 쬐는 것은 눈을 감아서는 아무 소용이 없으므로 반드시 빛이 망막을 거쳐 뇌에 도달되도록 자거나 눈을 감지 말고, 눈을 뜨고 있어야 한다는 것에 주의합니다.
특히 조울병에서의 우울증에서는 탄수화물과 단 음식을 더 많이 찾게 됩니다. 이로 인해 체중이 증가하여 우울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예상되므로 균형 잡힌 식습관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울병을 앓게 되면 자극에 민감해지기 때문에 스트레스로 인해 기분조절회로가 망가지게 되어 병이 재발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스트레스는 조울병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또한 완벽주의적 성격은 스트레스를 받기 쉬우므로 평소 느긋한 마음가짐으로 스트레스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배우인 리즈 위더스푼은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했을 때 남편인 배우 라이언 필립과의 결별설에 대해 부정하면서 부부가 같이 결혼 생활 상담을 받는다고 떳떳하게 밝혀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이를 감추는 것보다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옳지 않느냐고 오히려 반문하면서 관객의 박수를 받아내기도 했습니다.
신체적 질병이 아닌 감성적, 정신적 문제를 드러내고 치료하는 것에 회의적인 사고에 일격을 가한 셈입니다. 하물며 조울병은 뇌의 신경전달물질 이상으로 인한 뇌의 병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데, 이를 숨기거나 감추려고만 하려 들면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조울병에 대해 정확히 알고 적극적으로 치료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