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민초문학상 수상
단편소설
로렐라이의 진돗개 복구(2)
“따르릉…….”
대규가 수화기를 들자 바로 흘러 나오는 여자의 목 소리는 악에 바친 듯 앙칼스러웠다.
분을 못 이긴 듯 부르르 떨리는 목 소리의 주인공은 상대방이 말 할 틈도 주지 않고 혼자 악을 쓰듯 떠들더니 찰칵 전화를 끊었다.
이른 아침 아이들을 4Km 떨어 진 하이디 슐레(학교)에 등교 시키고 메트로 도매 시장을 들려 올 생각으로 부산을 떨면서 막 식당 문을 나서려는 순간 전화 벨이 요란 하게 울렸던 것이다.
<필시 한국 여행사에서 단체 관광객 점심 예약을 하려는 전화겠지.> 미리 짐작하고 받았던 전화에서 밑도 끝도 없이 다짜고짜.
“야만인 ! 코리아 돼지 새끼들 ! 너희 나라로 당장 돌아 가라.“ 하는 앙칼진 말이 귀를 찢었다.
독일 생활 십년에 접어 들었지만 빨리 하는 말을 쉽게 이해를 못하는 대규의 독일어 실력에 한국으로 당장 돌아 가라는 말과 돼지 새끼라는 욕은 금방 알아 차릴 수가 있었다.
간혹 나치 히틀러의 잔영이 남아 있는 보수적인 독일 극렬분자가 외국인들은 너희 나라에 돌아 가라고 벽에 낙서를 한다던가 마늘 냄새가 싫다면서 면전에서 얼굴을 돌리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이런 전화를 아침 일찍 걸어 오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어느 정신 병자의 장난이려니 여기고 다시 출입문을 나서려는 순간, 전화 벨이 자지러지듯 다시 울렸다.
마침 전화 옆을 지나던 큰 딸 미애가 수화기를 들고,
„할로! 레스토랑 코리아!“ 라는 말을 마친 딸애의 얼굴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해 가는 것을 대규는 대뜸 알 수 있었다.
„아빠! 오늘 학교에 안 갈래, 한국 사람 야만인이래. 개고기를 먹는 원시인 너희 나라에 당장 돌아 가라고 야단이야.”
미애는 훌쩍거리며 책 가방을 바닥에 놓은 채 후닥닥 제 방으로 돌아 갔다.
그 뒤를 따라 미숙이 일영이 모두 풀이 죽어 각각 제방으로 약속이나 한 듯 돌아 갔다.
설마 했던 일이 현실로 다가 온 것이다.
며칠 전 프랑크푸르트 한국 식품점에 들렸을 때 마침 그 곳에 와 있던 교회 목사님과 현지 교민 몇 사람이 주고 받는 대화가 생각 났다.
<헷센 3텔레비전 방송국에서 88올림픽 이후의 한국이라는 탐방 프로에 한국 음식 문화를 다루는 프로 중에 보신탕 문제가 등장 할 모양인데 교민들 정서 상 이를 사전에 저지해야 한다.> 는 말을 건성으로 듣고 우리가 사는 지역은 난 시청 지역이라 큰 문제가 일어 나지 않을 것이라 안일한 생각으로 등한시 했던 것을 후회 했다.
누구보다 개를 사랑하고 정들었던 복구를 한국에 떼어 놓고 온 애들이 충격적인 텔레비전 프로를 못 본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는데 이 프로를 시청한 독일인들이 전화 번호부를 뒤져 분노와 노여움이 가득 찬 항의 전화를 해 올 줄은 미처 생각을 못 했다.
개를 사랑하는 마음이 독일 사람들 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못할 리 만무한데 한국 고유의 음식 문화에서 생긴 일을 과장해서 보도하고 한국 사람은 모두 개를 잡아 먹는 야만인으로 싸 잡아 비난하는 데는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3년 전 대규가 독일에 오기 전에 진돗개 수컷 한 마리를 키웠다.
천연 동물 보호지역인 진도에서 밀 반출 된 진돗개 순종으로 공식으로 증명 할 족보는 없었으나 영특하고 날렵한 특유의 용맹성을 구비한 복구(복구1세)라 이름을 붙인 진돗개를 한 마리 키웠다.
아내 춘자의 여고 동창인 정희가 남편이 전남 도청에 근무할 당시 어떤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은 진돗개 토종 한 마리를 떠 맡기다 싶이 남기고 이민 길에 올랐다. <비록 족보는 없지만 순종 진돗 개니 잘 키워라.> 하는 부탁을 몇 차례 다짐을 받고 1년 남짓한 수캐 한 마리를 가져 오기로 했다고 넌지시 아내가 아양을 떨어 가며 말을 했을 때 대규는 선뜻 대답을 못 했다.
숯 불 갈비 집을 한답시고 집을 팔아 작은 집으로 옮긴 것이 야당 총재가 사는 동교동 철길 부근이었다.
새로 이사를 한 대규 집 근처만 유독 재 개발이 지연되어 도심 가운데 이빨 빠진 것처럼 시멘트블록 집이 몇 채 다닥다닥 볼썽 사납게 남아 있지만 야당 총재가 사는 곳이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복 경찰이 근처를 배회하기 때문에 도둑이 아예 얼씬거리지 않았다.
그런데 남의 눈총을 받아 가며 개를 키우자는 춘자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진돗개라 하니 행여 남이 눈독을 들여 먼저 개를 가져 가지나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 친구의 자가용을 빌려 개를 싣고 왔었다.
개를 별로 좋아 하지 않은 춘자 생각에는 진돗개 순종이라는 말에 <혹시 TV방송을 타는 유명한 개 종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앞서 정희가 했던 말 한 마디에 더욱 귀가 솔깃했다.
<춘자야! 사내들은 밖에 나가 재미를 보고 뭉텡이 돈을 쓰고 다니는데 수캐는 장가를 보낼 때마다 돈을 벌어 들인다. 흔한 똥개 종자가 아니라 우수한 혈통을 지닌 순종 진돗개라 장가 한 차례 보낼 때마다 받는 돈이 쏠쏠해 심심치 않게 용돈을 만질 테니 신경 쓰거라.> 하는 말에 남편의 허락이 떨어지기 전에 데려 온 것이다.
부자 집에서 잘 먹고 자랐는지 윤기가 흐르는 진돗개는 잿빛 털에 눈가에는 동그란 반점이 희미하게 나타나 있는 이 개는 도착 즉시 대규 집에 귀염둥이로 새롭게 등장했다.
<똥을 먹는 하찮은 똥개도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충견도 있을 진대 이름도 함부로 지어서는 아니 된다.> 라는 대규 집안의 가풍에 따라 오래 전부터 집에 기르는 개 이름은 화를 쫓고 복을 가져 온다는 뜻으로 개 이름을 대대로 복구(福狗)라 불러 오던 풍습이 있었다.
대규는 복구로 이름을 붙여 부르기로 했다.
애들은 촌스럽다고 반대를 했으나 행여 아빠 뜻을 거역하다 개를 딴 곳에 보내지 아니 할까 하는 마음 때문에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새끼 때부터 교육을 잘 받았는지 아니면 혈통이 좋아 영리한 탓인지 복구는 여느 개와는 달랐다. 도착한 며칠간은 모든 것이 낯 설은 탓인지 컹컹 짖어 대며 안절부절 하더니 점차 새로운 집에 익숙해 지고 애 들과 친해 지자 재롱도 부리며 잘 따랐다.
학교 가는 애들의 뒤를 졸래졸래 따라오다, <집에 돌아 가라.>하고 발을 탕탕 거리며 눈치를 주기 바쁘게 이내 말을 알아 듣고 아쉬운 듯 몇 차례 뒤를 돌아 보며 집으로 돌아 갔다.
애들이 돌아 올 시간이 되면 먼 발치에서 들리는 애들 발자국 소리만 듣고도 금방 알아 차리고 컹컹 짖으며 반겨 했다.
현관 창문을 앞 발로 톡톡 치면 볼 일을 보고 싶다는 신호이고 어쩌다 갈비 집 문을 일찍 닫고 갈비 오돌 뼈를 싸 들고 오면 자동차 소리만 듣고도 온 동네가 떠 들썩하니 짖어 댔다.
며칠 만에 집에 돌아 온 대규 부부를 보고 반가운 나머지 오줌을 찔끔 흘리는 나쁜 버릇 때문에, <이놈의 개새끼!> 하며 춘자한테 빗자루로 얻어 맞기도 했다. 상대방이 큰 소리로 분위기가 심상치 않을 때는 꼬리를 바짝 쳐든 채 으르렁 하며 주인 곁을 떠나지 않고 잠깐이라도 집을 비우게 되면 현관 앞에 쭈그리고 앉아 낯 설은 사람이 주변에 얼씬하지도 못하게 집을 지켰다.
대규가 가족과 떨어져 독일에 온 일년 동안 집을 지켜 주는 복구가 있기에 한결 마음을 놓을 수가 있었으며 아이들 편지에 늘 복구의 안부를 적어 보냈다.
그러나 막상 아들 일영이가 쓴 편지에 복구가 옆에 있어 아빠가 덜 보고 싶었다는 편지를 읽고 대규는 허허 웃고 말았지만 내심 못내 섭섭한 생각이 들었다.
2년간 정이 들대로 들은 그래서 마치 가족의 일부로 여겼던 복구를 형님 집에 맡기고 독일로 전가족이 떠나 올 때 복구와 같이 비행기를 타지 않으면 절대로 독일에 가지 않겠다고 집단으로 떼를 쓰는 애들을 겨우 달래여 놓고, 6개월 후에 꼭 복구를 데려 오겠다고 철석같이 약속을 했다.
식당 문을 열고 제대로 자리를 잡기 전에 동생 선규가 교통 사고로 목숨을 잃은 불행한 일을 당한 후 온 집안이 어수선했고 동생 선규가 하던 일을 대규가 감당해야 할 처지에다 식당을 계속 유지 할지 그것도 불 투명한 때에 복구 생각을 할 정신적인 여유가 없었다.
애들도 갑자기 바뀐 주변 환경과 독일어 공부에 집중하다 보니 복구를 생각 할 틈도 없이 정신이 몽롱할 지경으로 6개월을 보냈다.
차츰 생활에 익숙해지자 조심스러이 복구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 했다. 텔레비전에서 혹은 길에서 복구 비슷한 개를 보면 한국에 떼어 놓고 온 복구 생각에 애들은 울먹이며 마냥 졸라 됐다.
일영이란 놈은 그 정도가 지나쳐 독일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아 복구 비슷한 개를 본 뒤로 학교가 파한 후 곧장 그 집으로 달려 갔다.
먼 발치에서 개를 바라 보고 늦게 돌아 오는 바람에 온 식구가 동원되어 일영이를 찾는 소동이 벌어 졌다.
그 일 이후 아내 춘자는 한국 형님 집에 맡겨 놓은 복구를 데려 오자고 했다.
<시내와 동 떨어진 데다 인가도 없고 우리 식당만 덩그러니 있는 이 한적한 곳에 복구가 있으면 집도 지켜 주고 애들과 놀아 주니 외롭지 않고 개를 사랑하는 독일 사람들한테 한국 진돗개도 소개 할 겸……>
복구를 데려 오자는 말에 대규도 어느 만큼 동감 했으나 그러나 단호히 거절 했다. 이곳에서 능히 복구만은 못 하더라도 티어하임(동물 보호소)에 가면 마땅한 개를 찾을 수 있을 텐데 구태여 한국에 있는 복구를 데려 오자는 춘자의 속셈은 복구를 핑계로 한국에 다녀 오고 싶은 마음에서 하는 말이려니 하고 귀 담아 듣지 않았다.
동창회 친목회하며 늘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철철 따라 유행하는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자신을 비춰 보는 즐거움을 유일한 낙으로 자유분방하게 살아 온 춘자가 남편을 따라 독일에 와서 외따로 떨어 진 곳에 쳐 박혀 지내자니 내색은 못하고 하루 하루 지내자니 답답하고 지루해 죽을 맛이었다.
텔레비전을 보아도 말을 못 알아 들으니 졸음이 앞서고 간혹 한국 관광객이 식당을 찾아 오면 생면부지 낯 설은 사람들이지만 고향 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으나 구름같이 밀려와 후다닥 밥만 먹고 다음 여행 지를 찾아 떠나는 바람에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하루 내내 입을 봉하고 지내자니 입안에서 군내가 날 지경이었다.
막연히 애들 교육 때문이라 핑계를 댔지만 실은 복잡한 서울 생활을 탈피하고 싶은 호기심에서 분별없이 훌쩍 남편을 따라 독일에 온 것이 발등을 찧고 싶을 만큼 후회스럽기 한이 없었다.
춘자 자신이 커 가는 애들 장래를 생각하여 막무가내로 남편을 졸라 저질은 일이라 벙어리 냉가슴 앓듯 불평 한 마디 못 꺼내고 지냈다.
간혹 아침 일찍 40여Km 떨어 진 코블렌츠 큰 도시에 있는 도매 시장에 남편을 따라 일상 용품도 구입 할 겸 시내 헤어리테 백화점 스카이 뷔페 식당에 들려 오분에서 바로 구어 낸 따끈한 온기가 있는 브뢰첸(빵 종류)에 여러 종류의 소세이지를 골라 먹는 재미와 헤즐러 향이 그윽한 커피를 마시는 오붓한 시간이 독일 생활의 유일한 낙이었다.
그 즐거운 시간도 잠시 식당 문을 여는 12시 전에 당도해야 점심 손님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허겁지겁 40여Km를 쏜 살같이 되 돌아 와야 하는 독일 생활이 춘자의 마음에 흡족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