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만족 (요 6:5-13)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이 시간에 “영혼의 만족”이라는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 나누고자 합니다.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뉴는 말하기를 “재물의 빈곤은 쉽게 치유되지만, 영혼의 빈곤은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만큼 심령의 빈곤이란 심각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아모스 선지자는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8:11) 했습니다. 그 상태가 얼마나 심각하든지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12-13절) 했습니다. 육신의 빈곤도 비참하지만 심령의 빈곤은 더 비참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럼 어떻게 영혼의 만족을 얻을 수 있을까요?
1. 예수 앞에 나아와야 합니다.
5절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큰 무리가 풍성한 기적을 체험한 것은 예수 앞에 나왔기 때문입니다. 집에 있는 사람, 들에 있는 사람, 오지 않는 사람은 해당되지 않았습니다.
당연하고 평범한 이야기지만 우리에게 귀한 메시지를 줍니다. 예수 앞에 나와야 한다는 진리입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는 생명의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요6:35에서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여기 “내게 오는 자는” 그러니까 먼저 예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 믿으라는 말이고, 나아가서는 교회에 출석하라는 말도 되고, 성경을 읽으라는 말도 됩니다.
김남준 목사의 “거룩한 삶의 은밀한 대적 게으름”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한 성도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참 고달프게 직장 생활하는 성도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도와주실 테니 기도하라.” 그러자 그 성도는 난처하고 암담한 표정을 짓더니 "목사님 여기에서 제가 새벽에까지 일찍 일어나면 저는 쓰러지고 맙니다."
그런데 얼마 후 생기 띤 얼굴로 다시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저 새벽기도하고 있습니다. 목사님께서 제발 기도 좀 하라는 말이 생각나서 새벽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네요. 저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면 큰 일 날줄만 알았는데 하나님 앞에 나오면 새 힘을 주실 것이라는 것은 몰랐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사40:31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했습니다. 독수리의 날개가 체중 못지않게 무겁지만 그 날개 때문에 공중의 왕이 될 수 있듯이 우리가 피곤하고 쓰러져도 하나님 앞에 나와야 새 능력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길 때 힘을 다해 섬겨야 합니다. 신6:4-5에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예수님은 거기다 목숨을 다해 사랑하라고 덧붙이셨습니다. 매사에 하나님을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방황은 예수 앞에 나오면 끝납니다.
2. 다른 데서 만족을 찾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먹이시기 위해서 먼저 빌립에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5절).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었습니다. 그러자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빌립 머리는 컴퓨터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니까 금방 계산을 합니다. 계산만 잘하면 뭐합니까? 믿음이 있어야지요. 돈이 있다한들 여자와 아이 외에도 오천 명이라면 만 명도 더 되는 사람을 어떻게 갑자기 먹일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질문에 불합격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안드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말했습니다. 작아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 없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세상 것으로 갈증을 채우려고 하지만 주는 자가 없고 준다한들 채워지지 않습니다. 문맥에서도 나오지만 보리떡과 물고기는 생명의 양식되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어린이가 가진 오병이어처럼 보잘 것 없게만 보입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세상 것으로는 만족이 없습니다. 세상의 오락, 세상의 물질, 세상의 권세와 명예와 쾌락으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바닷물을 마시는 것처럼 세상 것은 갈증만 더하게 합니다. 고후3:5에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어도 세상 방법 가미하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온전히 함께 하신다(요일3:23, 요13:34, 요14:23)고 했고, 오늘 주보에도 소개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가부좌 틀고 앉아서 명상하고 도 닦으며 관상 기도해야 되는 줄 알고 있습니다. 다른 데서 찾지 마세요.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사55:1-3) 외쳤습니다.
3. 주신 대로 나누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10-11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작지만 예수님께서 축사하시고 나누니 오천 명이 배불리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축사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말씀을 소유하고 있어도 성령의 은혜로 먼저 내가 은혜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다가, 말씀을 듣다가, 혹은 삶 속에서 깨달은 말씀들을 서로 나누면 모두 함께 은혜를 받습니다. 성경 말씀은 모두 살아있지만 깨달은 말씀은 지금 나에게 약동하는 말씀으로 다가오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막 쪄낸 찐빵과 같은 따끈따끈한 말씀이 은혜가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고 성경을 보세요. 충분히 묵상하고 감동 받으세요. 나에게 진정한 메시지가 될 때만이 남에게도 진정한 메시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1907년 일제시대 한 여인이 신안 암태에서 태어나 17세에 지도읍 정씨 집안에 시집을 갔습니다. 아이를 낳지 못해 얼마나 구박을 받았든지 여인은 죽기로 작정하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한강다리로 갔습니다. 그런데 빨래하는 여인들이 다리 밑에 모여 있기에 해질 무렵 다시 오리라 하고 돌아오는 도중 불이 켜진 집을 지나며 호기심에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가마니를 깔고 앉은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난리가 났습니다. 노래를 마친 후 한 사람이 책을 꺼내 읽고서 외칩니다. “시집살이하느라 한이 맺힌 여인들아. 다 예수께로 오라, 예수님이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그 순간 그 여인은 자기에게 하는 이야기인줄 알고 놀라 기절할 지경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지금 예수에게 나오시오." 그는 바로 유명한 성결교회 부흥사 이성봉 목사였습니다. 3시간 동안 계속된 부흥회 시간 내내 여인은 하염없이 울기만 하였습니다. 부흥회가 끝나 모두 돌아갔지만 여인은 계속해서 "예수가 누군데, 예수가 누군데, ~" 하며 울었습니다.
이성봉 목사의 안내로 신앙을 시작한 여인은 1931년 서울 성서학원에 입학하여 사역자의 길에 들어서서 1933년 임자도의 진리교회 개척을 시작으로 1935년 증동리교회와 대초리교회, 1936년 방축리교회, 이 후 우전리교회와 사옥교회, 병풍교회 등 14개 교회를 개척하는 등 쉬지 않고 복음화에 앞장섰습니다.
신안군 21개 섬들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하는 동안에는 1년에 고무신 아홉 켤레가 닳아져 바꿔 신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녀가 가르친 사람 가운데 목사가 68명이나 나왔습니다. 김준곤 목사와 이만신 목사 같은 부흥사도 그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 여 전도사님이 바로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님입니다. 한 사람의 감동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앞에 나오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혼의 만족을 원하십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영혼의 만족한 영의 양식이 되십니다. 세상 것으로 만족하려고 하십니까? 세상의 것에서는 만족을 찾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만이 영원한 우리의 만족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진정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말씀으로 돌아오세요. 기도로 돌아오세요. 그래서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영생과 만족을 얻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강해설교 더 보기 ==> 성화 (계 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