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의 상
하늘에서 상을 주실때 어떤 일에 가장 큰 상을 주실까? 라는 부분을 생각해 볼때 흔히 전도의 상을 손꼽을 수 있다.
하지만 사도바울의 생각은 달랐다. 전도는 자랑이 되는것이 아니다. 복음전파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전도를 놓고 상을 운운하는것은 마땅치 않다고 피력했다.(고전 9:16-17)
전도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라한다. 최선을 다해 전도에 힘쓰고 오히려 무익한 종일뿐이라고 자신을 낯추는 견손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눅 17: 9-10) 전도의 열매는 나눔과 섬김과 사랑과 기도와 희생으로 이뤄지는 결과물이다. 또한 직접적인 복음전도도 있지만 세상속 삶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냄으로 주변 사람과 이웃을 감화 시키는것도 전도의 하나임을 잊지말아야 할 것이다.
과연 참다운 전도는 어떤것일까? 바로 예수님의 전도이다. 예수님은 순종으로 많은 사람을 구원하셨기 때문이다.
사도바울 역시 모든 사람의 종이 됨으로써 열매가 가능했던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 자체의 초점이 영혼구원에 있을때 그 사람의 정체성은 건강한 정체성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삶의 모습을 이 땅에서 구현해 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전도는 수 많은 사람들의 합작품으로 그리스도인들의 합력으로 영혼구원이 가능해 진다는 것을 잊지말아야한다. 반면 한 영혼의 성장은 우리들이 하는것이 아니며 열매를 거두게 하는 것도 우리가 아닌 하나님이 하신다.
세상속에 살면서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다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때 그에 주어지는 하늘의 상이 더 클 수도 있을것이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땅의 상이나 보상이 아니라 하늘의 상을 의식하고 사는 사람이 올바른 정체성의 그리스도인이 될것이다.
가장 큰 상
그러면 어떤 일에 하늘의 큰 상이 주어지는 것일까?
우리의 신앙 생활에 중요한 요소들이 있는 가운데 예배, 말씀, 기도, 찬송, 교제, 봉사등이 있다. 이 요소들은 예전에 양육을 받을때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하는 '수레바퀴의 삶' 의 내용이 생각난다. 그런데 이것은 특별함이 아닌 성도들의 기본적인 사항인 것이다. 신약성경에서는 주시는 큰 상에 대해 세군대로 나오는 말씀이 있다.
원수를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 처럼 사랑한 상(눅6:35), 박해를 이겨낸 상(마5:11-12), 그리고 담대하게 신앙생활을 이겨낸 상(히 10:35) 이 상들 중에서 가장 뜻 깊은 상은 원수사랑의 상이다. 이는 곧 이웃사랑의 최대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원수같은 죄인들을 생명을 내어주시면서까지 사랑하신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진실한 마음의 원수사랑 이웃사랑에는 반드시 상이 따른다 하셨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자기이웃을 자기 몸 처럼 사랑하는 자를 가장 좋아하신다 하셨다. 이웃사랑이란 그리스도인의 현실적인 삶의 모든 가치 기준이다. 그리스도인의 생활 자체가 이웃사랑이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져있다.(마 22:37-40)
이웃사랑의 정의
이웃사랑이란 구체적으로 어떤것인가?
성경에서는 강도를 당하고 거의 죽을지경에 처한 사람을 도운 사마리아 사람을 통해 이웃사랑의 참 모습을 제시했다.(눅 10:36)
물 한그릇 대접하는 사람, 강도를 만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돌본 사람 얘기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있는 행위여야한다는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이 이웃을 자기자신 처럼 사랑할 수 있는 근간이 되는 것이다. 이웃사랑은 먼저 이웃의 형편을 자기 상황으로 느끼는데에서 출발한다. 이 말은 단순히 이웃을 이웃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도와주라는 뜻이 아니다. 바로 하나님의 마음 곧 우리 자신이 그 이웃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어떠셨던가? 예수님은 우리의 이웃이 되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것이 아니라 우리가 되셔서 죽으심으로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수 있었던 것 이것이 바로 이웃사랑의 근원이다. 상대의 입장이 되어서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이웃이 되는것을 말하며 이는 결국 우리 자신을 사랑한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의 이웃사랑의 본질은 내가 이웃이 된다는 것이다. 이웃사랑의 실천에서 우선적으로 행해야 할 대상에 대해서 성경에서 제시하고 있다.
먼저 스스로의 능력으로 생존하기 어려운 고아와 과부들이다(약 1:27) 이와 같이 갇힌자를 돌보고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는 것이 이웃사랑인것이다. 하나님이 세리와 죄인들의 심리상태를 보시는것 같이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가능성이 큰 심령들이다.(히 13:3)
다음 대상자로는 나그네를 들 수 있는데 이는 노숙인과 같은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의 상태인것이다.(슥 7:10, 시 146:9)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책임중의 하나는 제도나 구조의 빈틈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을 도와주는것이다. 이웃사랑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것이다. 진정한 이웃사랑이란 우리가 그 이웃의 이웃이 되는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로 이웃이 되어 있을때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삶을 실현할 능력이 되는 것이고 이는 곧 이웃사랑은 율법의 완성인 것이다.(롬 13:9-10)
하나님과의 교제가 중요한 만큼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이웃을 내 자신의 일을 하듯이 돌보고 섬길때 하늘에서는 그 행한대로 큰 상이 주어진다.
상을 빼앗기지 말라
위에 이웃사랑의 정의가 내려진 가운데 그러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을 섬기듯이 이웃을 섬기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죄를 짓는것이라 했다. 이로인해 천국으로 올라가는것 조차 허락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이다.
성경에서는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죄이며 차별하는 것 만으로도 죄를 짓는것이라 했다(약 2:8-9)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긍휼을 베풀어야 하는것이며 이는 곧 이웃사랑을 행한다는 말이며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거듭난 백성으로서 의무요 책임인것이다.(약2:13)
이웃과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 사랑의 통로가 되는 일이다. 우리의 죄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혀있던 통로를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우리들 사이의 통로가 되신것 처럼 우리도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하나님 사이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있도록 매개체의 역할이 되는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담고 사는 그릇들이어야한다.(요일 3:17)
우리의 삶의 기준은 땅이 아나라 하늘 곧 하늘에 소속되어 있슴을 잊지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하늘에서 받을 상을 생각하고 바라보고 추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을 소유해야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단순히 막연하게 그저 듣고 배워온 이웃사랑은 사실 좀 어렵고 어려운 일이였다. 대체 뭘 어떻게 해야 이웃사랑인지
내 마음이 너무 걍팍한가 하는 생각도 해보기도 하며 답답했었는데 이번장에서 이웃사랑의 정의를 알게되니 풀지못한 수학문제가 조금씩 이해가되면서 풀어져가는 느낌에 기쁨이 생긴다. 몇번이고 반복해서 읽다보면 내 자신에게도 이웃사랑의 뿌리가 깊이 박힐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