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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샤츠슈나이더의 RPG 공지 차기 컨텐츠 예비타당성조사(?) 및 여론수렴
E.E.샤츠슈나이더 추천 0 조회 387 22.02.07 18:17 댓글 159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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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2.02.09 17:25

    + 그와 별개로 이건 타마히코 배경 설정인데 썩히기는 너무 아까워서 올려봅니다.

    타마히코는 만주의 대지주이자 기업가인 링팡렁의 외동아들로 태어나 유복한 삶을 누렸습니다. 그의 집안은 틈관동 시기(1780년 후반) 산동에서 만주로 이주한 농민 집안으로, 부지런하게 일한 덕분에 1830년대에는 남만주에서 수백만 평의 농지와 수만명의 소작인을 거느린 대지주가 되었습니다.(쫓겨날 뻔한 위기가 몇 번 있었지만 뇌물주고 무마함)

    그렇게 농사만 지으며 살아가나 싶더니. 1870년 경 러시아인들이 만주로 밀려오면서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당시 가주였던 링판저우는 적극적으로 러시아어를 배우고 러시아인들을 상대로 한 상회를 열어 러시아와의 무역을 시작해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었습니다. 사장을 포함한 직원 10명으로 시작한 작은 상회는 몇 년만에 수천명의 직원을 거느린 거대한 무역회사로 변신했습니다.

    소유한 농지에서 나오는 막대한 지대, 러시아와의 무역으로 벌어들이는 자본은 링 가문을 더욱 부유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링 가문은​ 만주에서 가장 부유한 집안이 되었고 만주를 오가는 러시아인들에게 "미스터 링"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습니다.

  • 22.02.09 17:25

    그러나 1905년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하자 러시아와 각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던 링 가문에도 큰 타격이 왔습니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이번에는 러시아에서 일본으로 파트너를 바꾸며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넘겼습니다.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무너지고 중화민국이 설립되어도, 군벌들의 난립으로 중국 대륙이 무정부 상태가 되어도, 동북역치가 터져 만주가 국민당의 손에 들어갔을때도, 링 가문은 "장작림 장군 만세!"와 "국민당 만세!"를 번갈아 외치며 위기를 넘겨 집안과 재산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카멜레온 같은 집안에서 태어난 타마히코는 14살이 되던 해 일본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집에 돈이 많은지라 도쿄의 상류층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고, 고등학교 역시 비슷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우수한 성적 덕분에 도쿄대에 진학해 경제학과 경영학을 전공했습니다. 덕분에 일본 상류사회의 일원들과 안면을 트고 친분을 쌓을 수 있었죠.

    타마히코는 일본에서 지내는 동안 아시아주의와 일본의 강력함에 매료되어 일본에 호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름을 중국식에서 일본식으로 바꾸고, 중국 전통 복장 대신 양장과 기모노를 입고, 중국어 대신 일

  • 22.02.09 17:33

    본어를 쓰고, 중국 음식 대신 일본 음식을 먹으며 일본식 식사예절을 사용하는 등 완전히 일본에 푹 빠졌죠.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주일 중화민국 대사관의 직원으로 일하던 1929년 12월, 본국에서 급보가 날아왔습니다.

    아버지인 팡렁이 지병이던 고혈압으로 쓰러져 오늘내일 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소식을 들은 타마히코는 중국으로 귀국했습니다. 귀국해 아버지 대신 집안의 일을 대리하고, 병 수발을 들었습니다. 허나 타마히코의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팡렁은 1930년 3월 2​일 눈을 감았습니다. 팡렁이 사망하면서 타마히코는 가주가 되었습니다.

    그가 가주가 되고 첫번째로 한 것은 자신이 일본에서 사용하던 이름으로 창씨개명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부인은 동의했으나 친척들은 격렬히 반발했습니다. 그는 친척들을 달래고 어르렀지만 친척들은 자신들의 성을 링씨에서 다른 성으로 갈아버리며 타마히코와 의절을 하고 말았습니다.

  • 22.02.09 17:27

    이제 그에게는 자신의 옆을 지키는 아름다운 부인과 자신이 물려받은 수백만 평의 농지와 수천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회사, 그리고 (당시 기준으로)수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유동성 재산만이 남았습니다. 광기가 휩쓴 격동의 1930년대에서, 이것들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요?

    기타:
    - 일빠인 아들과 달리 아빠인 팡렁은 중국을 아끼던 애국자였다. 반장전쟁과 초공작전이 일어났을 때 중국의 통일을 위해 써달라며 일본에서 무기를 사 국민당에게 기부했을 정도로.

    - 행보와 달리 소작인들과 회사 직원들에겐 상냥한 보스이다. 소작인들은 단 한 번도 소작료가 수확량의 30%을 넘은 적이 없었으며, 회사 직원들 역시 임금체불이나 노동착취 등이 없었을 정도.

  • 22.02.09 18:01

    @카라멜 마끼아또 저같은 경우는 일단 어떤걸로 결정을 해야 세부설정을 짤수 있을듯.ㅎㅎ.

  • 22.02.09 17:18

    이름:야마모토 후네스키 (본명:이치류)

    생년월일: 1900년
    성별: 남성
    출생: 일본 도쿄
    소속: 일본제국군 해군

    일본 내 유복한 집안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이치류는 소년시절에 유력자인 아버지를 따라다니다 전함 나가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는 나가토의 모습에 강렬한 열망을 느끼게 되었고 이름을 '배가 좋다'는 뜻의 후네스키로 바꾼 이후 해군병학교에 진학을 꿈꾸게 됩니다.

    아버지의 후원으로 입학한 직후에는 뛰어난 군사지식을 통해 수석도 몇 번 처지하는 등 승승장구했습니다. 그러나.. 배를 하나의 예술품과도 같이 보며 연인을 대하듯이 대하는 그의 모습때문에 학교 내에 그의 친구는 없었고 우수했던 성적에도 불구하고 어느 파벌과도 연이 닿지 않았습니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덕에 승진은 제때 제때 했으나 파벌이 없는 탓에 그의 이상형인 나가토는 커녕 구축함과 어뢰정 등의 한직만 전전하게 되자 그는 파벌주의의 일본 해군에게 강한 염증을 느끼며 뭍으로 보내줄 것을 요청합니다.

    모든 이들이 그를 눈엣가시로 여겼기에 여순 군항으로 그를 파견보내는 것에 모두 동의하였고 그는 좌천 선물(?)로 소령 계급장을 받은 채 여순군항에 발령받게 됩니다.

  • 22.02.09 17:18

    배박이 루트로 가겠습니다

  • 작성자 22.02.09 17:18

    와.. 진성 배박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작성자 22.02.09 19:35

    프롤로그화 올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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