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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리주상절리 =
연천 동이리(임진강) 주상절리는 미산면 동이리 67-1번지 일원에 위치해 있다.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합수머리(도감포)에서부터 북쪽으로 임진강을 거슬러 수 킬로미터에 걸쳐 아름다운 수직의 주상절리가 발달해 있다. 홍적세 중기 무렵 철원 북쪽에서 분출한 용암은 철원-연천 일대에 넓은 용암대지를 형성하였는데 화산활동이 끝난 후 용암대지가 강의 침식을 받게 되자 강을 따라 기하학적인 형태의 현무암 주상절리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절리는 암석의 표면에 발달하는 좁은 틈(혹은 금)을 말하는데 침식을 받게 되면 이 틈이 벌어지면서 암석이 쪼개지게 된다. 주상절리는 긴 통모양의 절리를 일컫는 말로 대개 현무암에서 가장 잘 발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무암은 용암이 굳을 때 발생하는 수축작용으로 인해 중심점을 따라 사각 혹은 육각형 모양으로 수직의 절리가 발달하게 되며, 침식을 받게 되면 육각형 모양의 돌기둥이 떨어져 나가면서 아름다운 주상절리 절벽이 만들어지게 된다. 주상절리의 절벽이 담쟁이와 돌단풍으로 석양빛에 붉게 보인다하여 적벽이라 부르기도 한다. 동이리주상절리는 지질학적으로 추가령 구조곡이 관통하는 곳으로 구조곡을 따라 흐르는 임진강과 한탄강을 따라 선캠브리안기에서 신생대 말까지 우리나라 지질시대의 거의 모든 암석 표본과 지질 활동을 관찰할 수 있다. 특히, 신생대 말엽의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주상절리는 내륙지역에서 강을 따라 분포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주상절리대로 DMZ 생태체험관광에서 빼어 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지질명소이다.
당포성 주상절리
당포성 = 임진강과 당개나루터로 흘러드는 하천이 형성한 삼각형모양의 절벽 위에 만들어진 고구려성이다. 강에 접해 있는 두면이 절벽이기에 별도의 성벽을 쌓지 않았으며 평지로 연결되어 적이 쉽게 공격할 수 있는 나머지 한 면(동쪽)에만 높고 견고한 성벽을 쌓아 침입을 차단하는 방어시설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돌로 쌓아 만든 성벽으로 보이나 석성을 쌓기 전에 먼저 점토를 다져 쌓은 후 그 외면에 석성을 쌓아올린 토심석축의 구조이다. 중심성벽이 받게 되는 하중을 분산시키기 위해 3단의 보축성벽을 쌓았으며 성벽 앞에는 폭 6m, 깊이 3m의 구덩이를 파서 적이 쉽게 성벽을 오르지 못하게 했다. 동벽 외부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조성된 수직의 기둥 홈이 관찰되는데, 중국 내의 환도산성, 패왕조산성, 흑구산성, 평양의 대성산성 등 고구려의 산성들에서 확인된 바 있는 특징들이 있다. 특히, 당포성 동벽에서는 수직의 기둥 홈이 하부의 확과 세트를 이루고 있어 주목된다. 현재는 성벽의 훼손 및 붕괴 위험이 있어 흙을 덮고 잔디를 식재하여 보호하고 있다.
한강유역에서 후퇴한 고구려는 6세기 중엽 이후 7세기 후반까지 약 120여 년 동안 임진강을 남쪽 국경으로 삼았으며, 임진강 하루에서부터 상류 쪽으로 덕진산성, 호로고루, 당포성, 무등리보루 등 10여개의 고구려 성을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했다. 당포성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강이 크게 굽어 흐르면서 강물의 흐름이 느려져 쉽게 강을 건널 수 있는 여울목으로 양주 방면에서 북상하는 신라군이 임진강을 건너 개성으로 진입하는 길목에 해당하기 때문에 고구려의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당포성은 고구려시기에 처음 축조되었으나 신라가 점령한 후에는 성벽을 고쳐 쌓아 계속 사용했다. 이 때문에 성배부에서는 고구려기와와 함께 신라의 기와들이 상당수 출토되었다.
또한, 당포성은 고구려시대 임진강변에 돌로 쌍은 평지성이다. 임진강으로 유입되는 소하전의 침식작용으로 높은 수직의 절벽이 끊어진 지점에 구축되어 있다. 임진강의 물길이 만들어낸 수 km에 달하는 수직절벽은 현무암 주상절리로 되어 있으며 높이 20여m에 달하는 등 별도의 성벽을 쌓지 않아도 적을 쉽게 막아낼 수 있는 천혜의 자연 성벽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평지로 연결된 부분만을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현무암을 이용해 쌓았는데 이러한 현상은 연천군일대의 고구려 성의 특징 중 하나로 나타나고 있다. 당포성의 남쪽 성벽인 주상절리 절벽은 다양한 주상절리의 모양과 함께 하천의 침식작용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한편,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유네스코 지질공원으로 지정 인증만을 남겨두고 있으나 군사적인 요인으로 인하여 성벽 내 일부가 훼손되어 있는 모습도 있다. 이는 6.25 사변을 겪으며 근대사가 남긴 흔적으로 옛 삼국시대와 마찬가지로 근대사에서도 군사적 요충지의 의미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하지만 전선용 철탑은 이동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문화재 지정 이전에 설치된 철탑이라 해도 역사적인 지점에 편의에 의한 철탑설치를 시행한 한전에서는 문화적 가치를 간직한 역사문화를 훼손했다는 지적에서 책임론에서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요구자 필요에 의한 이전 비용을 거론하기 보다는 스스로 문화재 지점에 설치된 철탑의 이전 고려해야 함이 우선일 것이다.
정발장군 묘소
정발장군묘 =
정발(鄭撥, 1553년 ~ 1592년 5월 23일(음력 4월 13일))은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1579년(선조 12년) 무과에 급제해 해남현감, 거제현령, 북정원수 종사관, 거제현령, 비변사낭관, 위원군수, 훈련원첨정, 사복시첨정 등을 지내고 임진왜란 당시의 벼슬이 정3품 행 절충장군 경상좌도 부산진 수군첨절제사에 이르렀다.
1592년(선조 25년) 4월 임진왜란 때 벌어진 첫 전투인 부산진 전투에서 부산진수군첨절제사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일본군의 기습공격에 정규군 800여명, 백성 2200여명과 함께 맞서 싸우던 중 왜군의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그리고 부산성이 함락되었다. 검은 옷을 입고 있어서 흑의장군으로도 불렸다.
그의 애마(愛馬)인 용상(龍嘗)이 투구와 갑옷을 생가까지 물고 달려왔다. 사후 시신을 찾지 못하여 투구와 갑옷만으로 경기도 연천군 마전면 백석리 새릉에 의관장(衣冠葬)으로 장례를 치렀다.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의 초량역 근처에 동상이 설치되어 있다.
임란이 끝나고 그의 생가가 있던 광동리 너븐골 근처에는 조정에서 내린 불천위(不遷位)의 은전으로 별묘(別廟)가 건립되고, 1683년(숙종 9) 미산면 백석리 묘소로 가는 길 입구 비문(숙종 때 송시열이 지었으나 유실)과 함께 충신정려문이 세웠으며, 한국전쟁 때 화재로 전소되었다. 1982년에 후손들이 다시 비를 세웠다.
심덕부(沈德符)의 묘 =
심덕부(1328~1401년)는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으로 본관은 청송, 자는 득지 호는 노당(蘆堂).허당(虛堂)이며, 고려 충숙왕 복위년에 벼슬에 나가 여러 요직을 거쳤다. 고려 우왕(1380, 6년) 나세, 최무선과 함께 충남 서천에서 최무선이 제조한 화포를 처음 실전에 사용하여 왜구 토벌에 큰 공을 세웠다. 우왕 14년(1388)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도와 정도전, 정몽주와 함께 창왕을 폐하고 공양왕을 세우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조선 개국을 맞아 회군1등 공신에 초록되어 청성백(靑城伯)에 봉해졌다. 조선 태조 3년(1394)에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의 판사가 되어 한양의 궁궐과 종묘를 세우는 일을 총괄하여 신도 건설을 주도한 인물이다.
영원부원군(領原府院君) 윤호(尹壕)의 묘 =
호는 1424~1496년 조선전기의 문신으로 1447년 생원시에 합격했고, 1476년 춘장문과(春場文科)에 급제하였으며, 병조참판 영돈녕부사 등의 벼슬을 지냈다. 그의 딸이 성종의 왕비인 정현왕후(貞顯王后)가 되자 영원부원군에 봉해졌다.
1476년 공조참판, 1488년 돈령부원사, 이듬해 바복시제조를 겸했다. 1494년 우의정으로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가 궤장을 받았다. 평소 성품이 검소하고 교만함이 없었으며 외척으로서 세도는 추호도 찾아 수 없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미산면에는 신호(申浩)의 묘와 의병장 심상우의 묘소도 있다.
연천평화누리길 10길(고랑포길) =
사계절 특성화 농촌마을 탐방길인 10코스는 장남교에서 시작해 숭의전지로 이어지는 길로 한성과 개성의 물자가 한강을 타고 교류하던 곳으로 남북의 교류를 염원하는 뜻에서 고랑포구의 이름이 붙여졌으며 임진강변을 따라 걷게 된다. 코스는 숭의전을 출발해 구미교, 비룡대교, 전동교, 사미천교, 장남면사무소, 장남교(원당리)입구로 이어지는 18km 구간으로 약 6시간 정도 소요된다.
청토귀리 밭 둘레길 =
미산면 마전리 1,2,3반 : 연천군 청토귀리회는 관광의 해를 맞는 2020년 재배지에 관광두레 사업과 연계한 대표관광 상품화를 추진 중에 있다. 청토귀리(조양 쌀귀리)는 3월 초 파종하여 6월 중순에 수확하는 2모작이 가능한 농산물로 새싹이 파란 잎을 머금고 올라오는 5월 초 연천군을 대표하는 초록색으로 얼룩지는 5월과 가을수확의 시기에 볼법한 황금들녘을 6월에 이미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광경으로 6월에 펼쳐지는 수확을 경험할 수 있는 관광 벨트화가 이루어진다면 또 다른 볼거리 제공과 청정지역인 DMZ접경지역인 연천군에서 최초로 재배를 성공시킨 쌀귀리 재배지역으로 관광특화상품화가 가능하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다소 시간의 흐름이 느려짐을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동산사슴목장 =
동산사슴목장은 연천군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청결하고 쾌적한 환경 속에서 사슴을 사유하고 있으며 정기적으로 사슴의 뿔을 잘라 신선한 상태의 녹용을 공급하고 있어 주말이면 꾸준히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소문이 자자하다. 주말을 이용해 사슴목장에 견학과 함께 인근에 놓여 있는 문화제와 힐링의 시간을 가져 봄직하다.
동산사슴목장의 모든 재료는 농장에서 생산된 국내산 100%의 제품만을 사용하며, 한약재의 경우 경동시장에 위치한 약재상 '향이 좋은'과 제휴를 맺어 최상급의 약재만을 엄선하여 사용한다. 또한, 약의 제조과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약업사의 도움 및 사용하는 한약재의 품질 관리를 위해 한의사의 도움을 받아 직접 제조하고 있다. 또한, YC글램핑장과 송림다원과 송림원이 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다. 자연이 주는 아늑하게 고즈넉함이 있어 찾은 이가 많다. 송림다원은 직접 다려 낸 전통차와 오리전문음식이 주 메뉴이고 캠핑족을 위한 글램핑장도 운영되고 있어 한 곳에서 즐길 수 있어 주말을 이용해 마음만 가지고 찾는다면 최상의 힐링을 만끽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청도귀리밭
미산면이 추진 중인 중장기사업과 개선점
- 군민이 만들어가는 문화 UN참전도시 육성사업 추진
- 연천군은 6.25 남북 동족간의 전쟁으로 UN 16개 참전국이 전투에 참여한 유일한 지역이다. 이로 인해 UN군 전사자를 위하여 미산면에 화장장이 조성되었다. 참전군인의 희생을 기리고자 제3국립현충원 내에 기념탑 조성과 기념행사를 16개 참전국의 주요 관계자 초청과 관광객을 유치하고, 이를 통해 세계 속 UN 관련 관광도시 연천군으로 발돋움하고자 2021년~2026년 조성될 국립현충원과 맞물려 추진 중이다.
이용희 미산면장은 “2020연천군 방문의해를 맞아 연천군이 새로운 관광도시로 도약하는 원년이 되기를 기원하면서 미산면이 한탄강 지질공원과 연천임진강 생물권 보존지역을 잇는 자연 친화적 자연생태 관광도시로 육성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천군 미산면은 과거 와 현재를 연결하는 역사화 문화를 갖춘 도시로서 9개리(행정리8, 법정리1) 중 5개 마을이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있으며, 강변을 두지 않는 내륙지역은 황공천 과 노동천 2개의 하천과 미산면, 백학면 일대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백학저수지가 어울러져 수련한 경관을 자랑하는 지리적 특징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70년대 인구산아 정책 과 80년도 경제성장에 따른 도시화 정책은 농촌지역에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인한 지자체의 존폐위기에 있는 현 시점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남을 미산면을 난개발할것이 아니라 기존자연환경을 가꾸고 역사와 문화를 거점으로 자연생태자원을 이용한 명소로 보존하여 친환경관광도시로 육성하여 지역을 지키고 살아가는 주민에게 관광부가소득을 되돌려 주고 차후 국가의 여건변화에 따라 미래세대가 지역을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는 자산을 남겨 주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편, 천혜의 자연의 보고로 알려진 비무장지대 내의 산적해 있는 역사와 함께 했던 문화적 가치 발굴과 연천군의 중.장기적 종합발전계획을 위해선 군사시설보호구역과 수도권과 관련된 각종 규제에 대한 현안사항 등 관광의 도시로 나아가기 위해선 선행적으로 풀어야 될 각종 규제가 숙제가 주둔중인 군부대 등과의 협조와 상생을 위한 노력이 뿌리 깊게 남아 있기도 하다. 역사적 문화재에 6.25사변이 남긴 흔적들이 너무도 많은 곳에서 목격되고 있어 다소 아쉬움은 남으나 이 또한 역사의 한부분이며, 문화로 옛 문화와 근대문화가 함께하는 복합문화의 산실이라 할 수 있다. 연천군이 이러저러한 각종규제를 풀어야 할 것인지와 또, 어떠한 형식의 복합문화를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고심과 노력에 많은 도시들의 관심과 이목이 집중되고 있음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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