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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살산에 올라가자(022.2011.11.20) 시42:1-11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불안과 염려, 괴로움과 절망과 공포속에서 살아갑니다. 과학의 발달로 옛날보다는 모든 것이 더 좋아졌지만 인간은 더욱 잔인해져 가고 있고, 사람들의 심리는 더욱 불안을 느끼고 있습니다. 예전보다 우리는 얼마나 편리하고 풍요로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러나 이런 세상의 풍요속에 인간의 불안은 가중되고 있습니다. 이런 불안이 우리의 잠을 빼앗아 감으로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하고, 우리의 몸을 신경쇠약으로 몰고 가며, 정신적인 부조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생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는 불안과 절망은 어디에서 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단절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낙망은 솨하흐입니다. 이 뜻은 ‘풀이 죽게 하다. 구부리다. 누이다’라는 말입니다. 병균에 감염되면 사람이 몸이 풀이 죽고 누어 꼼짝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 낙심에 마음이 감염되면 희망을 잃어버립니다. 무기력해집니다. 쉽게 포기해 버립니다. 사람도 만나기 싫습니다. 일하기도 싫습니다. 교회에 나오기도 싫습니다. 후회의 아픔에 사로잡힙니다. 낙심과 불안과 초조를 치료받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영접하고 교회생활을 잘하다가 시험에 들거나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해 주야로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을 찾을 때도 있습니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으면 실망하며 불안 해 합니다. 범사가 잘 되어야 하는데 안 되면 하나님께 삐지기도 하고 주일예배도 불참하게 됩니다. 본문은 연약한 그리스도인들이 현실과 신앙의 조화가 안 될 때 빚어지는 갈등과 믿음의 뿌리가 흔들릴 때 생기는 영적인 상태를 잘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편기자는 우리의 현실은 불만족스럽지만 실망하지 말고 너는 하나님을 기다리라고(5.11), 두 번 이나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우리의 심령이 암사슴처럼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찾고, 바라보고 다시 우리의 영혼이 새 힘을 얻어 하나님을 찬송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미살산에를 올라가보고자 합니다.
‘미살’이라는 것은 작다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시온산을 작은 산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므로 미살산은 시온산을 의미합니다. 미살산은 시42편에 오직 한 번 나오는 산입니다. 그런데 시편 42편은 고라자손의 마스길, 영장으로 한 노래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대하20:9절에 ‘고핫자손과 고라자손에게 속한 레위 사람들은 서서 심히 큰 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라’고 했습니다. 여기 마스길이라는 말은 교훈이라는 뜻이고 영장이라는 말은 성경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이 시편은 찬송을 밭은 고라 자손중에 영장 즉 성가대장이 교훈적으로 부른 찬송이라는 뜻입니다. 이 내용은 무엇입니까? 다윗이 자기의 아들 압살롬의 반란을 피하여 도망다닐 때의 쓰라림을 교훈적으로 미살산에서 부른 노래입니다. 즉 시42편의 저자는 고라자손이고 대상은 다윗의 고난입니다. 우리가 미살산에 올라가서 배울 교훈은 고난입니다.
1.고난의 시작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낙망하며 내속에서 불안해하며 영적인 위기를 맞이할 때 해결책으로 본문기자는1.2절에 하나님을 찾기에 암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그의 절망 속에서 하나님을 찾는 영혼의 갈증을 목마른 사슴에다 비유하고 있습니다(1절). 여기 ‘갈급하다’는 말은 심한 갈증으로 헐떡이며 울부짖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한 그의 절망의 상태는 3절‘눈물이 주야로 음식이 되었다’는 말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새 번역에는 하나님의 얼굴을 뵙기 위해 헐떡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위기가 닥쳤을 때 일수록 애타게, 목마르게, 간절하게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진실로 하나님을 만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시50:15절‘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삶의 현실 속에서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가 하나님을 진실로 만나는 시간이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환자들이 자신들의 수단방법으로는 문제해결이 되진 않았지만 예수님을 만남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졌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섬길 수 없고, 예루살렘에서 피난하던 다윗은 이처럼 하나님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없는 삶이 너무 황량하고, 불안하고 낙망되는 일이었기에 그는 뜨겁게 하나님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불안한 시대라고 합니다. 각자의 마음이 불안하여 잠을 못이룰 때가 있습니다. 불안은 이 시대의 절박한 문제입니다. 시대가 불안하니 사람들도 불안한 것입니다. 나라문제, 가정문제, 자녀문제, 직장문제, 건강문제, 온통 불안으로 가득차서 견딜 수 없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마음속에 낙심과 불안을 치료받은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고난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비가 하늘에서 오듯 고난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다윗을 보세요. 다윗은 다른 사람도 아닌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 다윗을 죽이려고 할 때의 아픔이란 이루 말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얼마나 다윗의 마음이 아팠는지 본문에 나오는 아픔의 단어들을 보라. 3절‘눈물이 주야로 내음식이 되었도다’, 5절‘내 마음이 상하였도다’, 7절‘주의 파도와 물결이 나를 업몰하도소이다’, 10절‘내 뼈를 찌르는 칼같이’, 11절‘네가 어찌하여 낙망하여 어찌하여 내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이런속에서 다윗은 7절‘주의 폭포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파도와 물결이 나를 엄몰하도소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지금 당하고 있는 고난은 주님이 주시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주의 폭포소리, 주의 파도, 주의 물결 모두가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욥을 보십시다. 욥이 자녀를 다 잃어버리는 아픔, 물질을 다 강탈 당하는 고통, 미리 끝부터 발끝까지 난 악창의 고난, 주위 사람들의 비웃음, 아내의 독설적 핀잔 등은 북풍에 부는 싸늘한 바람보다 더 차가왔고, 심장을 도리는 것보다 더 아팠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고난속에서도 그의 분수처럼 솟구치는 믿음에 대하여 시원한 해답을 주었던 말씀이었습니다. 욥23:8-10절 말씀‘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이라는 고백은 지금 받고 있는 고난이 주님이 단련시키려고 주시는 고난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은 성도를 단련시켜서 더 크게 쓰시려고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당하는 고난을 나를 위하여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믿고 고백하는 성도가 믿음 의 성도입니다.2.고난의 진행 고난의 시작이 주님이라면 고난속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신앙적 자세일까요? 고난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다윗은 고난속에서 고난을 보지 않았습니다. 고난속에서 고난의 주관자이신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보는 자세는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1절‘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다윗이 하나님을 사모하되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하였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긴급하게 찾는다는 말입니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지 못하면 곧 죽게됩니다. 그러므로 긴급하게 찾게 됩니다. 피흘리는 병사가가 피를 곧 수혈하지 못하면 곧 죽게 되는 긴급함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나는 끝장이다라는 자세로 하나님을 사모했습니다. 그리고 유일하게 찾는다는 말입니다. 어린아이는 울며 유일하게 엄마만 찾는 모습을 보면 됩니다. 목마른 사슴은 유일하게 오직 물만 찾습니다. 다른 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습니다. 오직 물만 찾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고난속에서 오직 하나님만 찾았습니다. 고난속에서 하나님을 이렇게 찾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절망하지 말고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다윗은 고난이 찾아왔을 때 처음에는 낙망도 되었고 불안하기도 하였습니다. 인간이기에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 2절‘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앞에 뵈올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지금은 불안하고 낙망스럽지만 어느땐 가는 반드시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자신에게 자신의 긍정을 말해야 합니다. 다윗은 근심한 고난속에서 자신에게 긍정적 사실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11절‘내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했습니다. 여기에서 나도 다윗이요 너도 다윗입니다. 누가 다윗에게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이 다윗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육신이 다윗의 영혼에게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자신에게 긍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대단히 좋은 자세입니다. 현재를 보지 말고 미래를 끌어 와야 합니다. 다윗은 현재의 불안과 낙망을 보지 않고 ‘내 얼굴을 도우시는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라고 말하고 현재는 도움이 없지만 미래에는 도움이 반드시 있을 것을 믿으며, 미래의 상황을 현재로 끌어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소망의 선포입니다.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요셉이 형들의 미움속에서도 견뎠고, 종살이 속에서도 웃을 수 있었고, 감옥에서도 유유했던 것은 오직 소망때문이었습니다. 미래에 반드시 하나님이 17살에 주셨던 꿈을 이루실 것이라는 소망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왜 낙심하여 불안에 떨고 있습니까? 자신의 마음대로 일이 안될 때 낙심합니다(2). 오늘 본문의 시편 기자는 낙망하고 있습니다(5,6,11).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루살렘에서 떨어져 예루살렘에 올라가 예배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갈 수 없습니다. 이 기자가 다윗이라면 압살롬의 반란으로 도망나와 올라 갈 수 없는 상태입니다. 이 기자가 고라 자손이라면 포로로 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오면 사람들은 낙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갈 내야 갈 수 없고, 노력해도 되지 않고, 이루어 낼 내야 이룰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하면 실망합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맡아 열심히 노력했지만 가면 갈수록 더 안 좋은 일만 생깁니다. 이럴 때 사람은 낙심하는 것입니다. 일이 안된 이유를 모를 때 낙심합니다(2,9). 시편 기자는 어느 때 예루살렘에 올라갈까 모르는 상황에서 애타게 절규합니다. 어찌하여 하나님이 자신을 잊었는지, 어찌하여 원수들이 핍박하는 지를 몰라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일이 이루워 지지 않는다 해도 그것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를 알면 낙심하지 않습니다. 어떤 일을 하는데 그 이일 이루워지지 않은 원인을 알게 되면 실망하지 않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그 원인을 처방하여 다시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원인도 없는데 일이 안되면 더욱 실망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했는데 실패했습니다. 사랑을 베풀었는데 억울함을 당합니다. 그러면 낙심합니다.일의 결과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좋지 못한 평가를 받을 때 낙심합니다(3,10). 사람들이 이 시편 기자가 다윗이라면 ‘너 그렇게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더니 결과는 무엇이냐, 결국 아들에게 쫓겨나 도피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만약 고라의 후손이라면 ‘성전에서 그렇게 열심히 봉사하더니 겨우 그 결과가 포로냐’라는 것입니다. 너희 하나님이 살아 있으면 이런 결과가 나왔겠냐는 것입니다.
낙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일을 하는데 있어서 나의 한계 상황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아야 합니다(1,2,6,8)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였습니다.(1). 살아 계신 하나님을 갈망하였습니다(2). 갈 수는 없으나 예루살렘을 볼 수 있는 산에 오릅니다(6). 그 일이 이루워 지도록 기도합니다(8).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관점은 무능한 나에서 돌려 하나님을 향할 때 우리는 낙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출발점에 들어선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돌아가신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무능력을 방관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내 능력은 부족하지만 우리 하나님이 맺히게 해주십니다. 시126:5‘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라고 능력이 부족하다고 낙심하지 마시고 기도의 씨를 뿌리십시오. 이유를 몰라 낙심하지 말고 약속을 믿고 찬양해야 합니다(6). 본문‘어찌하여(5.9.11)’라는 질문을 계속 반복하고 있습니다. 일이 잘 안될 때 이런 질문을 던진다고 문제가 풀립니까? 이유를 안다고 모든 문제의 답이 있습니까?
인간 사회에는 이유를 안다할 지라도 풀지 못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면 ‘왜 이런 일이 내게 임했을까? 왜 하필이면 나라는 말인가?’라고 질문하면 낙심합니다. 그러나 이 낙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이유를 아는 것보다 약속을 붙들어야 합니다. 이유를 모두 다 알고 하는 것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과거를 평가하기 좋아하고 그것으로 우리를 낙심시키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평가를 보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괴롭고 낙심될 때,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복음송-7장--괴로울때 주님의 얼굴보라.... 3.불안을 극복하는 비결은 낙망될 때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6절‘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망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다윗 왕은 아들 압살롬의 반역과 죽임을 피하여 예루살렘을 떠나 요단 땅으로 피신하였으며, 상황이 더 악해져서 결국에는 팔레스타인 가장 북쪽에 있는 헤르몬 산과 미살 산이 있는 곳까지 도망을 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언제 압살롬의 군사들이 쳐들어올지 모르는 불안감속에 갇혀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식에게 반역을 당하여 도망치는 아비의 심정이 어떠하였겠습니까?
죽을 맛일 것입니다. 영혼 속에, 마음속에 낙심이 들어오고 실망이 되어 절망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한 동안 입맛도 잃은 채 넋을 잃고 하늘을 쳐다보며 하나님을 원망도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한 동안을 낙심과 좌절과 불안감속에서 지내다가 자신이 젊은 시절 사울 왕에게 쫓기던 때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이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며 다윗을 더욱 칭찬했을 때 사울은 군사를 풀어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도망을 쳐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때에 다윗의 생명을 보존하여 주셔서 10년 동안이나 도망을 다녔지만 붙잡히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한 굴에서도 서로 마주치게 되었지만 하나님이 사울 왕의 손에서 다윗을 안전하게 지켜주셨습니다. 그때에 다윗을 살려주셨던 하나님 즉 시17:8절‘눈동자 같이 지키시며 보호하시는 만군의 하나님’을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7:19절‘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내실 때에 네가 목도한 큰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편 팔을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 다시말해 하나님께서 출애굽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주신 이적과 기사를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 홍해를 가르신 일과 반석에서 생수가 나오게 하신 일과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신 일과 불뱀에 물렸지만 살아나게 하신 일을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
에4:16절‘죽으면 죽으리라’는 자세 이것이 바로 영성훈련입니다. 사41:10절‘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벧전5:8-9절‘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우리는 말씀을 능력을 사용하여 불안을 가져다주는 마귀를 예수의 이름으로 대적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나를 불안하게 하는 악한 영들이 물러가고 평안의 영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도 ‘우리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며 보호해주시며 푸른들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해주시는 사랑의 하나님, 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잊지 않고 날마다 주님을 예배하며 찬양하는 삶,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평안의 영, 회복의 영, 승리의 영이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4.불안을 극복하는 비결은 고난의 때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시42:7-9절‘---’ 어떻게 불안과 두려움, 공포를 극복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다윗은 근심으로 인하여 큰 폭포 소리가 들리고 파도와 물결이 그를 침몰케 할 것 같이 느껴졌지만, 그래도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 밖에 없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할지라도 쉬지 말고 깨어서 기도한다면, 기도하는 사람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내가 어떤 어려움 가운데 처했는가, 나에게 또다시 새로운 기회가 올 것인가’를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8절‘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기도는 절망과 불안에서 탈출하는 소망의 통로입니다.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고, 수많은 절망도 이겨냈습니다.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는 성도는 무수한 시험과 절망과 불안을 깨뜨릴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자이십니다. 하나님은 피조세계에 온갖 생명의 창조자이십니다. 이 생명의 하나님은 사망에 있는 자들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광야 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평할 때 불뱀들이 나와서 백성을 물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장대에 놋뱀을 만들어 달도록 지시하고 그 놋뱀을 바라보는 자는 살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불 뱀에 물린 자들은 정말 놋뱀을 보자 모두 살았습니다. 물론 이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예표하는 사건입니다. 이제는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습니다. 욘2:2-3,6절‘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하였습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무엇을 했겠습니까? 어둡고 냄새나는 그 곳에서 3일 동안 주야로 부르짖고 기도하였습니다. 여러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하여도 기도는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간구할 수 있습니다. 기도까지 할 수 없다면 그것은 정말로 끝이지만 기도하는 순간부터 인생의 새로운 역사가 전개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빌4:6-7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하였습니다. 염려할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에 기도하십시오. 염려한다고 무엇이 해결되겠습니까? 밤새도록 잠도 자지 못하고 염려하고 근심하여도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기도하면 철야기도가 되고, 새벽기도가 됩니다. 근심으로 인하여 음식이 내키지 않을 때는 금식기도를 하면 됩니다. 기도는 여러분의 삶을 새롭게 변화시켜 줍니다.
누가 우리를 절망에서 구할 수 있습니까? 우리를 구할 수 있는 것은 기도 밖에 없습니다. 고난의 어두운 터널에 들어갔을 때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고 합니다. 먼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은 분노하고 비관하고 원망함으로 좌절하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은 겸손히 낮아지고 기도함으로 고난을 기회로 삼아 더 크게 성공하고 자신의 삶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립니다. 우리는 생각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긍정적으로 하여 가정과 직장과 사업장을 통해서 시121:2절‘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도와주심을 믿고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고 더 나은 삶을 살게 되고 발전과 성장을 해 나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슬픔 속에 있느냐? 기도하십시오. 핍박을 받고 있느냐? 기도하십시오. 어려움이 생겼느냐? 기도하십시오. 기도 밖에 할 것이 없습니다. 기도까지 못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러분이 어떤 어려움과 절망 가운에 처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사면초가가 되어 사방이 캄캄하게 막혔다 할지라도 하늘을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5.불안을 극복하는 비결은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소리 높여 찬양하는 것입니다.
시42:9-11절‘---’9절‘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반석이신 하나님입니다. 여기 반석은 불변하신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견고하신 하나님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 있는 자는 흔들림이 없습니다. 반석이신 하나님 안에 있는 자는 어떠한 시험에서도 요동치 아니합니다. 다윗은 이렇게 생존하시고 생명이시며, 반석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하나님 외에는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 없습니다. 다윗은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 나와서 찬송한다고 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태도는 5절‘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불안에 처하고, 낙망할 일을 만났을 때 다윗이 할 수 있었던 일은 찬양이었습니다.
여러분, 찬송한다는 것을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감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뻐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것입니다. 시56:4절‘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을 만드시고 천지를 창조하시고 생사화복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기도하는 사람은 사람들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바울과 실라는 죄도 없는데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하였고, 홀연히 큰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리고 모든 사람들의 매인 것이 풀리고 간수가 찾아와 회개하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찬송은 기적을 가져옵니다. 기도는 응답을 가져옵니다. 캄캄한 감옥 속에 들어갔다 할지라도 좌절하거나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찬송하고 기도하면 지진을 통해서 감옥 문이 열리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여러분도 힘들고 어려울 때 불안하여 답답하고 마음이 아플 때 찬송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찬송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는 늘 편하다.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 할렐루야!
찬송을 부르면 귀신과 병마가 물러갑니다.(삼상 16:23) 우리의 영혼이 새롭게 소생되며(시 22:26), 병 고침을 받습니다.(렘 17:14) 그리고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납니다.(행 16: 25-26) 일이 잘못되어 갈 때 일이 자꾸 꼬여 갈 때 하나님께 찬송하십시오. 찬송은 패배를 승리로 바꾸어 줍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함으로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찬송을 부르십시오.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면 하나님께서 실패를 성공으로, 패배를 승리로 바꾸어 주십니다.
여러분! 마음에 불안이 있는 분들이 계십니까? 현실의 생활에서 낙심되는 일을 맞이한 분들이 계십니까? 오늘의 말씀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라는 말씀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이 만난 절망은 인생의 힘으로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은 인생이 만난 불안과 절망을 이기기 위해 신경안정제를 의지하고, 어떤 이는 마약을 복용함으로 불안을 이기려고 하고, 어떤 이는 알콜로, 쾌락으로 불안을 극복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 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인간이 가지는 불안을 치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생이 만난 절망은 인생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불안, 공포, 절망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가지는 모든 문제는 곧 신앙의 문제임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만이 인생의 위기를 벗어나는 유일한 길입니다. 다윗은 철저하게 그의 인생의 길에서 하나님을 경험하였습니다.
우리는 오늘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성도에게도 불안과 낙망과 절망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 절망에서도 소망의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품에서 벗어나 잠시 불안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지 못하여 절망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만이 우리의 근심, 걱정, 불안, 절망을 없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근심을 평화로, 절망을 소망으로 반드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이 능력으로 여러분의 인생을 새롭게 바꾸어 놓은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난이 끝나고 나면 고된 훈련이 끝난 병사처럼 새삶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종결은 유익입니다. 다윗은 현재는 낙망하고 불안하지만 하나님이 도우실 것이 틀림이 없고 오히려 찬송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후에 다윗은 이때를 회상하듯 시편 119:71절‘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고난은 유익을 싸고 있는 위장된 보자기에 불과합니다. 비온 후에 무지개처럼, 십자가후에 부활처럼, 어둠후에 아침처럼, 고난후에 유익이 있습니다. 만일 신약 최대의 인물 바울에게 ‘당신은 언제 믿음이 그토록 자랐나는가’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예, 내 믿음은 스데반이 순교당할 때 시작되어 다메석으로 가다가 예수 만나고 자라다가 가시같은 병에 들었을 때 쑥쑥 자랐지요’그렇습니다. 고난은 하나님께서 성도를 훈련시키려고 시작하시고 훈련을 시키신 후에는 유익으로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다윗은 미살산에서 깨닫았습니다. 우리들도 항상 주님의 은혜를 깨닫고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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