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김씨 참의공파세보 서(金海金氏參議公派世譜序)
보첩(譜牒)은 동일 혈족의 혈통을 존중하고 조상을 숭배하며 가통을 계승하기 위해 그 역사와 계통을 밝히는 한 가문의 역사책과 같다. 즉 시조 이하 세대의 계통을 수록함과 동시에 시조로부터 현재의 친족 성원들에 이르기까지 선대의 이름, 즉 휘(諱)와 자(字), 호(號), 행적 등을 상세히 기록하여 동족의 근원을 밝히고 세대의 순서를 알릴 목적으로 편찬된다.
보첩은 고대 중국에서 제계(帝系)라는 제목으로 황실의 계통을 밝히는 제왕연표(帝王年表)를 기술한 데서 시작하였는데, 민간의 보첩으로는 1100년대 중국의 북송 때 사람인 소순(蘇洵)과 소식(蘇軾),소철(蘇轍) 삼부자가 정리한 보첩이 표본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보첩은 고려와 조선의 왕실 족보로부터 시작하여, 민간의 보첩으로는 1476년에 편찬된 안동권씨의 성화보(成化譜), 1565년의 문화유씨의 가정보(嘉靖譜)가 효시라 한다.
가락국 김수로왕을 시조로 하는 우리 김해김씨는 국내 최대 인구를 가진 성씨로서 그 뿌리는 오래 되었으나, 보첩은 서문만 전해지는 소전공(휘德承,1595∼1658)의 소전공구보유기(少痊公舊譜遺記)가 있고, 다음이 가첩형태로 1686년(병인년)에 삼현파에서 간행한 보첩이고, 완전한 형태를 갖춘 보첩은 1754년 간행된 분성김씨족보(盆城金氏族譜, 일명 甲戌大同譜)라 하겠다. 한편 진위여부가 불분명하여 예전에 보첩을 간행할 때 마다 여러 선조들로부터 거짓된 자료이니 참고하지 말라고 당부한 1766년간에 간행된 보첩(俗稱 正德舊譜)에 처음으로 신라와 고려시대에 살았던 선조들이 연계되어 기록되어 있다.
이후 여러 번의 보첩이 간행되었고, 1802년 산청의 구형왕릉의 발견을 계기로 종친들이 합심하여 편찬한 대동보인 김해김씨족보(金海金氏族譜, 일명 壬戌譜)에서 우리 씨족을 98개 파로 구분하여 편찬한 것이 근래 간행되는 보첩의 모본이라 하겠다.
금번의 이 김해김씨참의공파세보(金海金氏參議公派世譜)는 휘효원(孝源)이하의 후손들이 뜻을 모아 가계의 연원과 흐름을 밝히고자 기록하는 파보로서, 2018년 10월 10일 보소의 규약을 제정하고 종친들에게 널리 통지하여 수단을 모아 지금 간행되기에 이르렀다. 파조이신 휘효원(孝源)공은 조선에서 처음으로 실시한 과거시험인 계유식년시(1393년)에 전체 2등으로 합격한 분으로서 병조참의를 지냈다. 후손 중에 현달(顯達)한 분이 여럿 계시지만 특기할 만한 분으로 황해도 황주판관을 지내고 임진왜란 후 처음으로 일본 통신사에 무관으로 동행하신 망헌(望軒)공 휘광립(光立)을 꼽을 수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 있어서는 인터넷과 휴대폰 등 통신수단의 발달로 카카오톡이나 기타 SNS라 하는 사회관계망 수단을 이용해서 가까운 친척들 간에는 서로 연락하고 근황을 파악하여 돈독하게 친족의 의를 유지하고 있으나, 4, 5촌만 넘어서면 1년에 한번 만나기도 힘든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1970년대 이전의 농촌사회에서는 일가친척이 종중(宗中)의 길흉사나 농사일 때에 서로 모여 얼굴을 익히고 상하가 존중하고 경애하며 종친임을 항상 기억하고 살아왔으나, 이후 사회가 복잡해지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이제는 부모 자식 간 이외는 거의 모를 정도로 친인척간이 소원(疏遠)해지고 말았다. 따라서 혹시 길가다가 친인척을 만나도 누구인지도 모르고 상하관계도 모르게 되어 남남처럼 되어버리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물질만능과 무한경쟁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윤리와 도덕의 근간이 퇴색되고 있다. 특히 핵가족화가 가속화되고 호주제가 흔들려 전래의 조상을 섬기고 종친을 위하는 미풍양속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그리고 혹자는 요즘 세상에 족보가 무슨 필요 있는가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족보를 예전처럼 신분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조상과 씨족의 근원을 밝혀 아는 것이, 조상님들의 전기(傳記)를 통해 지혜와 교훈을 얻고 문중간의 유대관계를 돈독히 하게 되어 사라져 가는 인간의 윤리를 보존하는데 좋은 방법이라 생각된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보첩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는 짧은 한자와 한문 실력으로, 우리 김해김씨의 보첩을 비롯한 옛 문헌들을 더듬더듬 대략적인 것만 해석하며 이해하곤 하던 중, 을태(乙泰)족형(族兄)과 인연을 맺게 되어 부끄럽지만 여러 자료의 한문을 번역한 일이 있다.
금번에도 을태 족형께서 서문을 부탁하여, 같은 김해김씨이나 병조참의공과는 다른 방계(傍系)의 후손으로서 참의공 문중에 실례가 되지 않을까하여 사양하였으나, 계속되는 부탁을 뿌리치지 못하여 미천한 지식과 글 솜씨로 작성하였으니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양해해 주시길 바라면서 서문을 갈음합니다.
2020년 9월 일
경파후인(京派後人) 김두형(金斗炯) 삼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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