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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 (마태복음 5:13-16)
새해 첫날 하나님의 은혜와 크신 사랑이 풍성하기를 축복합니다. 옆에 계신 분께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미네랄 제품을 개발해서 건강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는 (주)소륜 추윤경 대표가 있습니다. 그녀는 일흔을 넘긴 나이인데도 온 몸에서 열정이 배어 있습니다. 그녀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이런 간증을 했어요. 한때 건설회사를 경영하면서 베트남, 중국 하이난성 개발을 했지요. 서울디자인아카데미와 예식장을 운영했구요. 대한체육회 빙상연맹회장이 되어 동계올림픽(1980년)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세브란스 부속 간호대학이 설립되었을 때 학업을 해서 그런지 늘 건강에 관심이 많았지요. 하지만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어요. 나에게 뇌종양이 찾아왔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에 세상이 모두 끝나버린 느낌이 들었습니다. 돈도, 지위도, 자녀도, 화려한 과거도 다 필요 없게 되더라구요. 하지만 그냥 주저앉을 수 없어서 매일 기도하며 하나님께 매달렸어요. 그때 지난 시절들이 떠올랐어요.
여수에서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공책이 없어서 땅바닥에 글씨를 쓰며 공부할 정도로 가정 형편이 어려웠어요. 그런 저에게 한 독지가가 도움을 주셔서 공부할 수 있었지요. 이젠 그 빚을 갚아야 할 때라고 생각했어요.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조력자가 되고 싶어요. 그게 저의 도리이고,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이 아닐까 싶어요. 기적적으로 치유를 받은 후에 모든 재산을 이웃을 위해 내놓았어요. 늦은 나이에 신학을 공부(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커널대 신학과, 트리니티 신학대학원, 코헨대학교에서 치유 상담학 박사)하고 목회자의 길을 선택하여 빛과소금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성경을 배우면서 하나님의 창조 비밀을 알게 되었어요. 인간은 흙에서 살아야 건강하고, 미생물들의 도움을 받아 건강한 환경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미생물의 세계는 미지의 세계요, 신비의 세계입니다. 이 미생물이 인류의 건강과 환경 보호를 책임질 것입니다.
미국의 한 지인이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에서 미네랄을 찾아서 알려줬어요. 처음에는 산성화된 국내 토양을 개선해서 농산물을 개종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피부과 의사가 이 미네랄을 사용한 후에 아토피, 여드름 환자에게 탁월한 효능이 나타난다고 검증해줬어요. 이를 계기로 화장품 사업을 시작했지요. 건조한 사막에서 채취된 특수 미네랄은 순수한 물을 만났을 때 강력한 이온이 발생됩니다. 이 이온이 신진대사 에너지를 발생하여 피부에 흡수되는 순간에 오염되고 변질된 피부상태를 본래 상태로 되돌리는 원소작용을 합니다. 염증과 아픔이 사라지고, 독소가 제거되기도 하는 무한한 창조의 신비 물질입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미네랄이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 아닐까요?
여러분!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미네랄? 생명이신 예수님이 희망입니까? 오늘은 2012년 첫째 날입니다. 첫째 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리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야 빛이 마음에 비추고, 마음 문이 열립니다. 마음 문이 열려야 하나님의 약속을 품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첫째 날에 말씀으로 빛을 만드셨습니다. 그 빛을 보시고 “빛이 좋구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빛이 어두움을 몰아내고 세상이 하나씩 질서를 잡아나갔습니다. 이 빛이 심령에 비출 때 생명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이 말씀하셨어요.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요 12:46)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은 사람들에게 피조세계를 다스리라고 권한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날마다 습관적으로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심령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자 불순종의 영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불순종의 영이 지배하면 사람들이 세상 풍조를 따릅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삽니다.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사는 사람은 본성을 잃고 본능에 따라 삽니다.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면 영적으로 비만해집니다. 영적인 비만은 게으름, 나태, 불규칙적인 습관, 자기감정대로 삽니다. 영적인 비만이 생기면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삽니다.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가 말했어요. “영혼이 아닌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사는 사람은 크고 훌륭한 날개를 갖고도 날지 않고 연약한 두 다리로 걷는 새와 같다.”
여러분! 새들이 왜 입이 부리가 되었는지 아세요? “새들의 불평”이란 우화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새들이 삐죽거리며 불평하다가 생긴 거래요. 새들이 창조주 하나님께 불평하면서 따졌대요. “왜 우리 새들은 튼튼한 다리 대신에 무거운 날개를 주셨습니까? 이렇게 부실한 다리로 얼마나 걸을 수 있겠어요? 이렇게 부실한 다리로 얼마나 지탱할 수 있겠어요?”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답니다. “날개는 걷기 위해서 준 것이 아니라 날기 위해서 준 것이다.” 보세요. 더 좋은 것, 더 값진 것을 받았지만 불순종의 영이 지배하면 창조의 섭리를 깨닫지 못합니다. 창조의 섭리를 깨닫지 못하면 내가 받은 은총을 원망합니다. 내게 주신 축복을 불평합니다. 올해는 받은 은사, 은혜에 감사하시기 원합니다.
신앙생활을 해도 불순종의 영이 지배하면서 어떻게 될까요? 사랑이 식고(약 2:8), 사랑이 변질됩니다. 화목을 잃어버렸어요.(고전 5:18) 성령을 받고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시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룩함을 잃어버렸어요.(레 11:45) 창조질서를 지키지 못하고, 관리하지 못했습니다.(창 1:28) 세상 명예를 탐하고, 재물이 우상이 되어 섬깁니다.(마 6:24)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고, 올바로 행하지 않습니다.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았지만 나누고 섬기지 않습니다. 회개하지 않습니다.(마 4:17) 하나님의 영이 지배하면 사랑이 회복됩니다.
오늘 새해 첫날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두 가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 정체성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은 소금이다.” 본문 13절을 보세요. “너희는 세상(땅)의 소금이다.” 예수님은 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소금이다.”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고대 팔레스틴에서 소금의 용도는 여러 가지였습니다. 찰과상을 입었을 때 바르는 응고제와 방부제로 쓰였어요. 고기를 보전하고, 음식의 간을 하는데 소금을 사용했습니다. 토지의 거름으로, 열 촉매제로, 언약의 인봉으로 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말씀하셨어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한 소금 언약이니라.”(민 18:19)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쳐서 성결하게 하고(출 30:35),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빼지 말라.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리라.”(레 2:13)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소금은 별로 비싸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소금이 닿는 곳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소금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둡니다. 소금은 별로 흥미를 끌지 못한 물질입니다. 그러나 소금이 빠지면 그때서야 소금의 존재감을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음식에 소금을 넣지 않으면 무슨 맛인지 느낄 수가 없습니다. 소금은 사람의 몸 안에 들어가서 전해질을 유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병원에 입원하면 맨 먼저 포도당과 생리 식염수를 혈관에 넣어줍니다. 왜냐? 소금은 위액 속에 위염산의 주성분입니다. 소금이 없으면 소화력이 떨어집니다. 소금이 부족하면 빈혈이 생깁니다. 왜냐? 적혈구가 세포에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하고 노폐물을 배출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 적혈구의 주성분이 철분이거든요. 철분을 소화시키는 것이 위염산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생명 코드의 핵심을 잘 아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생명 코드의 핵심을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땅의 소금이다.” 사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만은 땅의 소금이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통해서 생명코드의 핵심을 아는 그리스도인만이 생명의 핵심이 되라. 그리스도인이 조용한 혁명으로 세상을 변화시켜라. 그리스도인은 소금 같은 인격을 가지고 세상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라.’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왜 소금 정체성을 갖고 살아야 합니까? 이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진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 불의로 진리를 막고 경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의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부정합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경배하고, 섬기기 때문입니다.(롬 1:18,25)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보세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지식인은 많아졌지만 악한 사람들은 더욱 악해지고 있습니다. 세상 문화, 문명이 발전해도 속이는 사람은 더욱 간사하고, 교활해지고 있습니다.(딤후 3:13) 세상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교묘한 방법으로 약한 사람을 괴롭히고, 파괴하고, 약자의 삶을 빼앗습니다. 이 세상에 짠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진 것에 비해 인색하고 쪼잔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또한 고드름장아찌처럼 싱거운 사람들도 많아요. 이런 상황 속에서 주님은 그리스도인이 소금 정체성을 가지고 세상의 부패를 막으라는 것입니다. 살맛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소금 정체성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지혜롭게 행동해야 합니다. 항상 은혜로운 말을 해야 합니다. 은혜로운 말은 소금처럼 맛을 냅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 말씀하셨어요.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골 4:6)
국민일보 이 부장이 성공한 시각장애인 강영우 박사에게 물었습니다. “강 박사님은 인생 행보 하나하나가 드라마 같습니다. 묻고 싶은 것이 참 많지만 자녀를 어떻게 키우셨습니까?”
“우리 교육 방법은 간단해요. 그저 두 아이에게 가장 기초가 되는 일곱 가지 원동력을 심어줬지요. 자나 깨나 그 원동력이 아이들의 유전자(DNA) 속에 들어가도록 도와줬습니다. 그 7가지가 ? 자존감, ? 선명한 목표, ? 긍정적인 마음, ? 긍휼, ? 소통의 능력, ? 포기하지 않는 끈기, ? 창의력입니다. 큰 아들이 중학교 2학년 때까지 공부를 잘하지 못했어요. 어느 날 큰 애가 이렇게 말했어요.”
“저는 아버지 생각처럼 똑똑하지 못해요. 저에 대한 기대를 버리세요. 공부 잘하는 동생에게나 기대하세요.” 그의 말은 자존감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들의 자존감을 키워주기 위해서 아들과 같은 날 태어난 위인을 찾아야했지요. 그런데 그해 부활절이 큰 아이의 생일이었거든요. ”너는 특별한 날에 태어났단다. 부활에 버금가는 위대한 사건이 네 생애에 일어날 거야. 기대하고 기다려라. 너희는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야.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주역이 되어야 해...“
나는 어린 시절에 눈을 잃고 수없이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내 눈을 뜨게 주세요.“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실명한 것이 내 인생의 대박이었더라고요. 만일 그때 눈을 떴다면 나는 평범하게 살았을 거요. 그러나 시각 장애인이기 때문에 더 노력했어요. 또한 사랑하는 아내도 만나고, 자랑스러운 아이들도 얻었고..., 기회는 항상 있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소금 정체성을 잃으면 어떻게 됩니까? "맛을 잃으면(모라이노/mwraivnw/moraino)“이란 말은 ”무미건조하게 되다, 바보가 되다, 바보같이 행동하다, 어리석음을 드러내다, 맛없게 만들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맛을 잃은 소금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밖에 버려지고, 사람에게 밟힐 뿐이다” 이 말은 소금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맛을 잃게 된다는 것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덴마크 교회의 방랑자요, 철학자 소렌 키엘케고르가 말했어요. “거위란 놈은 기러기가 되기 힘들지만 기러기는 곧잘 거위가 되기 쉽다.” 왜? 하늘을 비상하는 기러기가 타락하여 땅에 머물고, 땅 위의 먹이에 길들여져서 걸어 다니는 거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도 타락하면 땅에 걸어 다니는 기러기처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올해 우리는 소금 정체성을 가지고 맛을 내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생명의 핵심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두 번째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이다.” 본문 14절을 보세요.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빛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리스도인이 빛이다”고 말씀하셨을까요? 빛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빛은 어느 곳에서나 생명의 지침이 됩니다. 교통 신호등은 빛의 색깔에 따라 차들의 방향을 제시해줍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느 곳에서나 생명의 지침이 되라는 것입니다. 인생들의 ?향을 제시해주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추라.” 빛이 되는 사람이 함께 모이고, 빛이 되는 사람이 점점 더 늘어나야 합니다. 왜?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빛이어야 사람들이 모이니까요. 그리스도인은 말로, 삶으로, 행동으로 사람들의 방향을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생명의 빛이 마음에 비취면 감사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존 템플턴이 말했어요.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부(富)가 생기고, 불평하는 마음을 가지면 가난이 온다. 감사하는 마음은 행복으로 가는 문을 열어준다. 감사하는 마음은 우리를 하나님과 함께 있게 해준다. 모든 일에 감사하게 되면 우리의 근심도 풀린다.” 올해 행복한 삶을 원하십니까? 생명의 빛이 마음에 비추기를 소망하십시오. 생명의 빛이 마음에 비추면 고난 속에서도 반드시 축복이 숨어 있음을 발견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마음에 비추면 삶의 목적을 발견합니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열립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열리면 행동이 변화합니다. 예수님이 시몬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어요. “네가 다른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주님이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다른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예수님을 더 사랑하느냐? 이것이 행복의 열쇠입니다.
근래에 공자의 사상이 깊숙이 박힌 중국에서 “착한 사마리아인” 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중국 사람들이 도덕 사상의 한계를 인정한 셈이죠. 사람들은 자본주의와 세속화의 물결에 휩쓸려서 노약자들에 대한 무관심합니다. 약하고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방관하여 생명을 잃는 사건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어느 사회, 어떤 곳에서든지 빛을 사람 앞에 비춰야 합니다. 빛이 마음에 비출 때 심령이 변화되고, 착한 행동이 삶을 보람 있게 만듭니다. 착한 행동은 후회 없는 삶을 살게 합니다. 앤드류 형제(Brother Andrew)가 말했어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고, 숨쉬고, 아낌없이 쏟아내는 것보다 더 높은 소명도, 더 고귀한 꿈도, 더 위대한 목표도 없다.” 이제 소금과 빛의 정체성을 가지고 더 높은 소명, 더 고귀한 꿈, 더 위대한 목표를 이루는 예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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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한국인의 정체성(1)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의 홍수 심판으로 모든 인간이 멸절되었고 오직 노아 가족 8인으로 다시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세계 모든 인류는 노아의 후손들을 통하여 형성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한국 민족의 뿌리도 분명히 노아의 후손들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근원을 추적하는 일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회복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과연 우리 민족의 시조는 누구이며 그 근원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고대 역사에는 우리 민족의 근원에 대한 확실한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다만 단군신화를 통하여 설명하고 있지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전설적인 우화일 뿐이다. 필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우리 민족의 근원을 추적하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회복하고자 한다.
하나님은 세상에 악이 관영하므로 BC2458년경에 물로 온 지구를 심판하시고 인간을 멸절하셨다. 그 당시에 의인으로 인정받았던 노아만이 하나님의 명에 의하여 방주를 만들고 그의 가족만이 홍수에서 유일하게 살아남게 되었다. 40일 동안 주야로 비가 내려 164일 동안 온 땅이 물에 잠겼고, 물이 빠진 후 방주는 아라랏산 정상에 정착하게 되었다.(창8:4)
노아는 아라랏산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고, 하나님은 노아의 가족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도록 축복하시고, 다시는 물로 인류를 심판하지 않으시겠다고 무지개로 언약을 삼으셨다.(창9:13)
노아에게는 셈, 함, 야벳이란 세 아들이 있었는데 동양인들 가운데 특히 한국인은 셈의 장자인 엘람과 차자인 앗수르의 후손으로 추적되고 있으며, 유대인은 셈의 셋째 아들인 아르박삿의 자손 중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들임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창11:10-32)
한국인은 노아의 축복받은 셈의 자손으로 유대인보다 장자적인 입장에 있는 민족임을 깨닫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게 된다. 엘람과 앗수르의 자손은 지금의 터키 지역인 아라랏산 부근에 살다가 BC2357년에 일어난 바벨탑 사건 이후에 동방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학계의 계산에 의하면 고조선의 건국이 BC2333으로 추정하므로 바벨탑 사건이 일어 난지 불과 24년 후에 만주에 도착한 셈족의 후손들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고 본다. 강화도의 마니산에는 단군의 왕검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쌓은 천제단(天祭檀)이 유물로 남아있다.
우리 민족은 2000년 동안이나 하나님을 믿고 섬기던 민족이었는데 왜곡된 역사로 인해 우리의 진실을 잃어버리고 오히려 불교와 유교가 전통 종교인줄 착각하고 살았던 것이다. 우리 민족이 원래 하나님을 믿던 민족이었고, 노아의 장자인 셈의 후손이었기 때문에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전통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예는 고인돌을 통하여 설명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인돌이 발견된 지역으로 전 세계의 고인돌의 약50%가 한반도와 만주 땅에 산재되어 있다고 한다. 이 고인돌은 죽은 사람을 위한 무덤이라고 생각하여 왔는데 많은 학자들에 의하여 고인돌은 무덤이 아니라 원래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한 제단이었다고 한다. 제단 위에 제물을 올려놓고 하나님께 제사를 지냈다는 많은 기록들이 남아있다. 우리나라 전 지역에 고인돌이 산재되어 있는 것을 보아서 조상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종교적인 민족임을 대변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약 3만여 개의 고인돌이 있는데 전북 고창군과 전남 화순군, 인천광역시 강화군 일대의 고인돌 유적 등으로 지난 2000년도에 유네스코로부터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