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학 개인전
성학의 작품세계
성학은 자연과 인간에 대한 흔적, 인간과 환경의 갈등, 이중성을 지닌 인간에 대한 애정과 부정을 표현하려고 한다.
인간의 존재성을 두 가지로 압축하면 삶과 죽음이다. 삶과 죽음에 다양성이 있을 뿐이지 본질은 같다.
성학은 본질로 귀소 되는 그것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글 | 이우상(소설가)
[2010. 4. 14 - 4. 19 인사아트센터]
몸은 인간이란 존재를 제시하는 가시적 실체다. 존재 없음의 존재를 부르짖는 철학도 인간이란 존재를 전제한 부산물이다. 인간 세상에서 인간을 배제하고 무엇이 존재할까. 성학의 화폭에는 어김없이 인간이 등장한다. 인간의 몸이 등장한다. 제법 근육질을 갖춘 인간도 등장한다. 그래서 휴머니즘적이다. 인간에 대한 탐구라는 기본 공식을 대입하면 그렇다. 단독으로 등장하는 인물도 있지만 그룹을 짓고 때로는 어울려 부등켜안고, 얼싸안고 뒤엉켜 있다.
Who are you 130.3x162.2cm
그러나 한편 비휴머니즘적이다. 화폭에 들어앉은 인간들은 정숙하지 않다. 단아하지 않고 유순하지 않다. 포근하지도 아련하지도 않다. 그들은 한결같이 절망, 분노, 냉소, 페이소스를 꾸역꾸역 참고 있는 군상들이다. 신이 창조한 최고의 비밀은 인간이다. 비밀 덩어리인 인간에게는 맑은 날보다는 궂은 날이 많다. 화려한 연회는 순간이고 참담한 현실이 일상이다. 예술은 그 참담함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도구다. 시대는 끊임없이 작가를 우울하게 만드는 매연을 뿜어낸다. 쾌적한 산소가 무한정 공급된다고 해도 작가는 그 속에 감춰진 야만성, 비열함을 감지한다. 공산품에 가까운 영상물은 작가를 더욱 분노케 한다. 그 분노가 붓을 들게 하는 힘이자 감수성이다. 화폭은 영원히 원시수공업의 무대다. 작가는 변화와 실험을 통해 척박한 원시수공업의 발전을 도모한다. 그 중심에 인간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Who are you 251x100cm
Who are you 162.2x130.3cm
성학은 자연과 인간에 대한 흔적, 인간과 환경의 갈등, 이중성을 지닌 인간에 대한 애정과 부정을 표현하려고 한다. 인간의 존재성을 두 가지로 압축하면 삶과 죽음이다. 삶과 죽음에 다양성이 있을 뿐이지 본질은 같다. 성 학은 본질로 귀소 되는 그것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거기에 찬란한 미소는 없다. 시대의 어둠과 우울에 억압받고 위축된 인간들이 있다. 얼핏 그들은 나와 무관한 존재들처럼 보이나 알레고리(Allegory) 껍질을 벗기면 그 속에 우리가 있다. 그가 그려낸 군상들은 허한 웃음을 웃으며 살아내고 있는 우리들의 껍질이다. 껍질 속에 들어앉은 자신을 보라고 권유한다. 그러나 강요하지는 않는다. 캔버스라는 보안장치가 강요를 막아낸다. 화면에 이용되는 기호와 상징은 알레고리를 보조해준다. 가끔 등장하는 화살표는 직설이기도 하고 반어이기도 하다. 명백한 지침이자 약속이 화살표다. 그러나 정직성의 징표인 화살표는 곧잘 우리를 배반한다. 배반의 장미를 덮어쓴 비밀덩어리-인간, 더욱 우울하다. 기호와 약속의 붕괴는 인간을 화폭 안으로 불러들였다.
4.Who are you 162.2x130.3cm
비상_Fly up_162.2x130.3cm
극단적인 시각으로 보면 인간계는 그야말로 아슬아슬하다. 하루하루 살아있다는 것이 장하고 장하다. 도화선이 타들어가는 폭약을 짊어지고 산다. 그 폭약 또한 인간이 만든 것이다. 환경 파괴, 공해, 핵 등이 인류의 몸에 장착된 폭약이다. 위험물 표지판은 인간이 의도적으로 은폐한다. 상업주의와 개발의 이름으로 의도적으로 축소한다. 점과 선, 색을 존재이유로 삼는 화가는 우울하다. 파괴의 현장을 고발하는 저널리스트가 아니기에 더욱 우울하다. 다가오는 위험을 오직 붓으로 말할 뿐이다. 성 학의 몸담론은 그것을 항변하는 육체의 언어다. 그들의 얼굴이 밝고 화사할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10여 년 전까지 성학의 그림에는 모닥불, 탄광촌, 철길, 폐선, 뒷골목 등이 등장했다. 소재 자체로 무게감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인간은, 독자는 화폭 바깥에서 그것들을 바라볼 뿐이다. 정물로 말하기에는 어느덧 세상의 질서가 삼엄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그는 화폭 안으로 뛰어들었다. 완곡한 은유에서 직설의 함성을 주저하지 않는다. 비록 오디오가 없는 화폭이지만 군상들의 절규는 가혹하다. 그런 중에도 화합과 상생을 도모하려 애쓴다.
who are you 260x162cm
Who are you 162.2x130.3cm
인간이란 이유로 자멸을 방치할 수 없다. 그래서 그의 화폭은 잔혹을 가장한 휴머니즘이다. 다양한 매체와 오브제를 활용한 화면 구성을 통해 분리될 수 없는 시대와 인간의 숙명을 제시한다. 그들의 모습은 문명과 시대에 대한 함성이 아니라 자기 성찰, 구도(求道)에 가깝다. 그러나 한편 그 구도(求道)는 정적이 아니라 대단히 동적이다. 후기 모더니즘에서 마르셀 뒤생의 ‘행위(Act)’와 잭슨 플록의 행위‘(Action)’를 구별한다. 뒤생의 ‘행위’에는 무의식이 있으나 플록의 ‘행위’에는 무의식이 없다. 완전한 비움이라는 플록의 ‘행위’는 선(禪)적이다.
Who are you 227x180cm
Who are you 162.2x130.3cm
성학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해탈을 지향하되 해탈로 가는 과정에 있다. 그것이 인간의 도리이기 때문이다. 그림은 정지화면이다. 영속적인 파노라마가 아니라 정지된 순간을 통해 통사(通史)를 구현하고자 한다. 성학은 캔버스에 서사(敍事)를 담고자 애쓴다. 그래서 다양한 매체와 오브제를 화폭에 끌어들인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인간이 있다. 한마디 서정으로 발성하기에는 인간 세상이 너무도 번잡하다. 정지된 것들의 연결을 통해 서사를 구현하고 있다.
- 작가노트 -
작가는 시대정신과 감수성을 찾아 변화와 실험에 도전하는 유기체다. 인간은 자연과 함께 예술의 주요 테마다. 그중에서도 예술의 근원적인 중심은 역시 인간에 대한 탐구다. 자기 비판적 모더니즘에서도 인간이 배제된 경우는 없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흔적, 인간과 환경의 갈등과 이중성에 대한 애정과 부정, 삶과 죽음에 대한 것이 작품의 주제이며 방법이다. 화면에는 기호와 상징, 실제와 허상에 대한 여러 가지 형식실험, 다양한 매체와 오브제가 보인다. 21세기 예술의 화두는 자연과 인간, 인간과 환경과의 관계에서 표출되는 다양한 상황들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