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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장...거제시장 (거제시 거제면)
갓 잡은 해산물 풍부 거제에 하나 남은 오일장
#먼동이 트기 전인 새벽 5시 30분쯤. 오일장이 열리는 거제시장의 들머리와 인근 골목길에서는 새벽을 헤치며 생선이나 어패류 좌판을 펴는 할머니들의 손길이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상가의 불빛도 하나 둘 늘어나면서 각종 야채류와 생선, 과일들이 판매대를 차지한다. 복개천 쪽에서는 통영이나 고성 등지에서 온 장꾼들이 트럭에서 가림막이나 천막들을 설치하며 장터를 열 준비에 한창이다.
#새벽 어스름이 완전히 가신 오전 8시쯤 장터는 이미 사람들로 북적이며 활기를 찾았다. 거제현 관아라는 인근 문화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장터의 모습이 이채롭다. 기와 담장과 나란히 단감 상자가 줄을 선다. 수백 년 된 느티나무 아래 자리 잡은 단감 장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진주 농장에서 직접 가져온 단감 사이소. 야 너그들 단감 한 쪼가리씩만 먹어라." 시식을 위해 깎아 놓은 단감 쪼가리들을 등굣길 아이들이 한 움큼씩 집어 들자 상인의 목소리가 커진다.
어시장처럼 새벽부터 아침까지 활기
거제시 거제면 서정리에 위치한 거제시장(4·9일장, 거제구읍장)은 산업도시·관광도시로 도약하고 있는 거제에서 오일장의 명맥을 이어오는 유일한 장터다. 예전에 열렸던 하청장과 아주장은 아주 오래전에 사라져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옛 시장의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거제시장은 일반적인 오일장과 다른 특징이 몇몇 있다.
우선 섬 지역답게 싱싱한 해산물이 풍부하고, 새벽시장의 성격이 강하다. 어시장처럼 새벽부터 열리고 오전 9시쯤이면 해산물 좌판은 대부분 파장 분위기다. 주민들이 지난밤과 새벽에 인근 연안이나 바닷가에서 직접 잡거나 채취한 어패류를 팔다보니 이런 현상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그러다보니 냉동이나 냉장 어류가 많이 거래되는 내륙 오일장과 달리 활어와 생물이 주인공이다. 갓 잡아 올린 은빛 갈치와 멸치가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파래와 톳도 눈길을 끈다. 거제시장을 소개하는 여러 매체의 글 중에 '새벽에 가축시장이 열린다'는 내용이 있으나 이는 잘못된 기술이다. 거제시장에는 가축시장이 열리지 않는다.
길 따라 자연스레 종류별 난전 형성
거제시장에는 장터가 따로 없다. 다른 지역의 오일장은 대체로 지방자치단체가 장터 부지나 건물을 소유하고 상인들에게 상가나 장옥을 임대하는 형식이다. 하지만 거제시장은 이런 부지가 없기 때문에 거제면사무소와 민간시설인 거제종합시장 건물 사이의 골목길(서상길), 인근 저잣거리, 복개천(기성로) 일대에 장터가 펼쳐진다.
골목길에는 주로 어패류 좌판과 기존 상가의 야채와 잡화점, 횟집 등이 줄지어 있다. 복개천에는 의류나 공산품, 농기구, 타지역 특산물 등을 파는 외지 장사꾼들이 차지한다. 정해진 장터가 없다보니 불편함도 있다. 다른 오일장에서 볼 수 있는 비가림막이나 아케이드 같은 편의시설도 눈에 띄지 않는다.
지자체는 일정 규모 이상의 시장이라야 시설현대화 등 전통시장 지원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거제종합시장 등 이 일대의 상가는 규모가 작아 지원대상이 되는 인정시장(50개 점포, 1000㎡ 이상)이나 등록시장(3000㎡ 이상) 요건을 갖추지 못해 거제시의 지원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시장 주변 거제현 관아 등 문화재 많아
거제시장은 일설에 고려시대 때부터 열렸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 기록을 찾아볼 수 없고, 오일장의 전신인 장시가 조선 전기부터 정착되다가 후기에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는 점, 1932년의 통영군지에 처음으로 거제시장 기록이 나타났다(거제시사)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조선후기 시장으로 추정된다. 시장 입구에 4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아직 남아있고, 사적(국가지정문화재)인 거제현 관아(기성관)와 부속건물인 질청(관헌들의 집무실)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것은 거제시장의 이색 풍경이다.
장터에 오래된 정자나무나 당산나무가 남아있는 곳은 흔치 않은데, 거제시장입구에 자리한 느티나무는 이곳의 랜드마크인 셈이며, 시장의 역사를 내려다본 산증인이다. 이 나무는 높이 10m, 폭 15m, 가슴높이 직경이 1.4m 규모인데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되었으며, 해마다 추석이면 마을 사람들이 장수와 마을번영을 위해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이처럼 주변에 문화재가 어우러진 것도 거제시장의 특징. 거제현 관아와 질청이 시장 바로 앞에, 그 뒤편에 개교 100년이 넘은 거제초등학교, 인근에 거제향교와 반곡서원 등이 자리하고 있어 이곳이 예전에 지역 중심지였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 일대는 동헌 등이 있는 관가이자 교육의 중심지라 자연스레 사람이 모이는 시장거리가 형성된 곳이다. 지금도 장날 등하굣길의 아이들이 장터를 기웃거리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계룡산 터널 뚫리면 옛 명성 회복 기대
거제시장은 일제시대를 거쳐 1980년대까지만 해도 거제에서 가장 큰 시장이었다. 하지만 조선소가 들어선 동부 거제지역으로 인구와 경제력이 몰리면서 서부권에 있는 거제시장은 옛 명성을 잃어가고 있다.
하지만 거제시장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동부의 상동동에서 서부의 거제면 명진리 쪽으로 뚫고 있는 터널이 완공(2018년 예정)되면 거제 중심지인 고현동 쪽과 5~10분 안에 연결될 수 있다. 거제의 동서를 잇는 계룡산이 터널로 뚫리면 동부의 중심지가 거제시장의 배후도시로 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또 거제면 지역에 아파트와 빌라 등이 속속 들어서고 있는 점도 시장 발전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인구 규모와 사람의 접근성이 시장 활성화의 주요 동인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설득력이 있는 전망이다.
거제시 조선경제과 강윤복 지역경제담당은 "시장을 정비하고 특성을 잘 살려 나가면 거제 동서연결도로가 완공될 경우 동부지역의 사람들이 많이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를 위해 주변 상인들의 동의를 얻어 법적으로 지원을 할 수 있는 시장으로 만드는 게 시급하다"고 밝혔다. 거제면 번영회 진휘재(54) 사무국장도 "궁극적으로 종일시장으로 발전하면서 소비자를 불러올 수 있는 특산물이나 이벤트 등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며 "번영회 역시 큰 틀에서 시의 입장과 같으므로 시장의 조직화를 위한 작업에 나설 방침"이라고 말했다.
경남 4대 전통건축물 등 거제시장 주변 문화재들
거제현 관아(기성관)
1663년(현종 4년) 고현성에서 지금의 위치로 옮겨진 행정과 군사를 통괄하는 중심 건물로 조선시대 왜구를 방어하던 거제 7진의 통할영(統轄營). 지금의 기성관은 1892년(고종 29년)에 중건한 것을 1976년에 해체 복원한 것이다. 통영의 세병관, 진주의 촉석루, 밀양의 영남루와 더불어 경남의 4대 전통건축물로 불린다.
반곡서원
1704년에 창건된 동상리의 반곡서원은 우암 송시열이 거제도로 귀향왔을 때 머물렀던 곳이다. 거제시장에서 400m 거리인 거제여자상업고등학교 뒤편에 위치하고 있다. 동절기(11~2월)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방한다.
거제향교
1432년(세종 14년) 고현에 처음 세워져 1664년(현종 5년)에 거제면 지역으로 옮겨졌다가 1855년(철종 6년) 지금 위치에 자리 잡았다.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과 동재가 앞에 있고 사당인 대성전과 동·서무가 뒤에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다.
거제초등학교 본관
거제시에서 가장 오래된 교육 기관인 거제초등학교(1907년 개교) 본관인 이 건물은 1956년에 화강석 조적조로 건립됐다. 외관은 근대기 학교 건물의 전형적인 형식을 취했다. 2007년 9월 등록문화재 제356호로 지정됐다. 건립 당시 채석과 가공, 적벽돌 생산과 운반 등에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등 역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글·사진 김현식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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