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영동 '컨츄리 와이너리'
와인은 무척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가진 제품이다. 유명 귀족이 마셨다거나, 전 세계에 몇 병 남지 않았다는 와인들은 가볍게 수천, 수억 원을 호가한다. 어느 와인은 아예 수년 전부터 구입을 하기 위해 예약명단을 올려야 하고, 엄청난 금액을 지불해야 겨우 살 수 있는 예술작품과 같은 시장이 형성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상의 와인 문화 모두가 호화롭지는 않다. 귀족들의 사치품이기도 했지만 서민들의 목을 달래주고 지역 축제에서 모두가 편하게 마시는 우리 막걸리 같은 소박한 역할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이런 소박한 매력의 와인이 없을까? 잘 찾아보면 발견할 수 있다. 직접 포도를 재배하며 그 재배한 포도로 와인을 빚는 이른바 ‘과수원형태의 와이너리’이다. 이러한 작은 와이너리가 가장 많은 곳은 충북 영동. 오늘은 이 영동에 위치한 그 이름도 소박한 ‘컨츄리 와이너리’를 탐방해 보았다.
- 컨츄리 와인너리 입구에는 소박한 시골집 사이로 이렇게 와인 관련 벽화가 그려져 있다
경부고속도로 추풍령 황간에 위치한 충북 최남단 영동군
서울을 출발, 경부고속도로 대전을 지나 달리기를 약 30분. 귀가 살짝 멍해지는 추풍령 고지대에 이르면 황간 휴게소가 보인다. 바로 이 황간이 영동군의 옛 지명으로 충남 금산, 경북 상주, 전북 무주 등과 접한 충남 최남단이자 3개 도의 접경지이다. 영동은 내륙에 있는 만큼 일교차가 커, 포도 재배지로는 최적의 장소 중 하나이다. 현재 이곳에는 우리나라 포도의 12.8%를 재배하고 있으며, 40곳의 과수원형태의 와이너리가 와인을 만들고 있다.
- 컨츄리 와인 입구. 지극히 작고 소박하다
아황산을 쓰지 않아 와인 빚기에 고생하는 와이너리 ‘컨츄리 와이너리’
이번에 ‘컨츄리 와이너리’를 탐방한 이유는 바로 차별화된 제품에 있다. 일반적으로 와인에는 아황산이라는 첨가물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와인에서 포도주를 저장하는 과정에서 갈색으로 변하는 것을 막고, 살균효과로 보존성을 높이는 데 사용한다. 전 세계 대부분의 와이너리에서 사용하고 있고 기준치가 정해져 있어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첨가물이다. 만약 이것을 안 쓴다면 포도 착즙, 발효, 숙성까지 신경 써야 할 일이 엄청나게 더 생기는데, 이 방법으로 ‘컨츄리 와이너리’에서는 와인을 빚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을의 포도수확은 기온이 낮아 벌레가 가장 적은 새벽 1, 2시에 진행되며, 포도 착즙을 통한 와인 발효 시에는 거대한 선풍기로 돌려가며 최대한 벌레가 진입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자신만의 방법을 위해서라면 타협하지 않겠다는 철학을 엿볼 수 있다.
- 자그마한 저장 숙성실. 사시사철 늘 같은 기온이다/양조용 포도를 직접 재배 중이다. 첫 재배한 포도는 24브릭스까지 나왔다고 한다. 외국 양조용 포도와 비교해도 당도에서 밀리지 않는 수치이다. 이 포도로 만든 와인은 올해 가을에 맛볼 수 있다
만나면 와인지식이 술술 나오는 우리 시대의 어머님
필자가 ‘컨츄리 와인’을 방문했을 때 정겨운 모습의 어머님이 맞이하여 줬다. 포도 과수원을 30년 3대째 이어가고 있는 2대 김 마정 대표의 부인 되시는 분으로 소박하고 따뜻해 보이는 어머니 모습 그대로이시다. 하지만 소박한 모습과는 달리 대화를 하면 살짝 반전이 느껴진다. 따뜻한 어머니의 모습은 간직한 채로 예리한 와인 지식이 계속 흘러나오는 것이다. 포도는 어떻게 재배하고 있으며, 어떤 품종으로 빚고, 지금은 어떻게 실험하고 있는지, 발효, 숙성, 병입, 관리, 그리고 맛보는 법, 마지막으로 영동의 멋진 역사와 문화, 그리고 지역 맛집도 소개해 준다. 이렇다 보니 도시에서 즐기는 화려한 와인이 아닌 시골에서 즐기는 사람과의 만남을 중시하는 고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여행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그 모습 그대를 보이며 말이다.
- 3대 김덕현씨와 어머니. 어머니는 그 누구보다도 와인제조에 전문가이다
다양한 양조용 포도도 재배하고 있어, 수확에서 와인이 나올 때까지는 1년은 걸려
현재 이곳에서 재배하는 포도품종은 이른바 우리가 먹는 일반 포도 품종이다. 캠벨이라 불리는 이 포도는 알이 굵고 식용으로 주로 즐기는 포도이다. 와인의 알코올 도수를 만드는 당도는 약 15브릭스 전후로 일반 양조용 포도(일반적으로 20브릭스 이상)보다 낮아 발효 시 효모의 먹이가 되어 알코올 조금 도수를 높이고자 일부 가당은 한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현재 이 포도 품종 말고도 대표적인 양조 포도인 샤르도네, 카베르네 소비뇽 등도 재배하고 있다. 작년에 당도를 측정했을 때는 모두 24브릭스 이상 나와서 와인을 만들어 봤다. 마셔볼 수 있느냐니 아직 숙성이 안되었단다. 작년 가을에 담근 와인이 봄이 되어서 나오기에는 너무 시간이 짧았기 때문이다. 와인은 긴 세월을 통해 만들어 진다는 것은 동서양 막론하고 공통분모인 듯 싶다.
- 컨츄리 와인 제품 들. 영동이란 지역에서 판매하기 위하여 코르크 마게가 아닌 스크류캡으로 만들어져있다. 영동 군내의 식당에서 와인 오프너로 코르크 마게를 열기에는 음식이 모두 향토적이기 때문이다
여행을 즐기는 풍류가에 어울리는 와이너리, 숙성된 와인보다는 신선한 맛이 특징
컨츄리 와인은 와이너리라고 하기에는 지극히 작다. 유럽 같은 멋진 성이 있는 것도, 거대한 오크통 창고가 있는 것도 아니다. 호텔에서 근무하는 일류 소믈리에가 있는 곳은 더더욱 아니다. 맛은 오크통에서 숙성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이른바 떫은맛, 타닌의 맛도 적다. 기존의 외국 와인만 좋아하는 와인 애호가가 선호하는 스타일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곳만의 와인을 느낄 수 있다. 직접 재배한 포도로 한 알 한 알 따서 거대한 선풍기로 벌레와 싸워가면서 빚는 와인, 그 어느 곳보다도 빚는 이의 삶의 철학이 녹아있는 신선한 와인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이곳에 오면 이분들의 따뜻한 미소를 볼 수 있다. 이러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방문할 가치가 있다고 느낄 정도로 말이다.
- 박연폭포(옥계폭포)근처의 유명 식당에서 즐기는 컨츄리와인과 우렁쌈밥. 출처 폭포가든
오고 가는 길에 살짝 들려보는 것을 추천
영동은 우리나라 3대 악성 중의 하나인 난계 박연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이것을 기리기 위해 난계 국악박물관이 있고, 국악축제가 진행되고 있다. 깎아지를 듯한 절벽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로 유명한 박연폭포(옥계폭포)는 주변에 맛집과 팬션 등이 있는 매력적인 휴양지이다. 무엇보다 백두대간에서 살짝 빠져나 온 산맥이 북으로 잠시 올랐다가 다시 내려온 봉우리인 월류봉은 한 폭의 산수화로 느껴질 만큼 아름다운 정취를 느끼게 한다.
일부러 와이너리를 방문하는 것이 시간상, 거리상 어렵다면,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거나, 열차를 이용할 때 살짝 들려보는 것은 어떨까? 따뜻한 어머니의 미소가 있는 와인을 기대한다면 분명 그 기대는 저버리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컨츄리 와이너리>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 조현길 30, 043-742-2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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