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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8 06:23 [한중수교 25년] 〈10장면〉으로 돌아본 국교정상화 4반세기 한국과 중국은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후 지난 25년간 적잖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때로는 가까운 이웃으로 살갑게 지냈지만, 지금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를 둘러싼 갈등처럼 아찔한 상황도 여럿 있었다. 한중수교 25주년을 맞아 변곡점이 됐던 역사적 10장면을 추렸다. ① 수교 협정 체결(1992) 이상옥 외무장관과 첸치천 외교부장이 〈한·중 외교관계 수립에 관한 공동성명〉에 서명하고 있다(1992.8.24) 1992.8.24일. 한국 이상옥 외무장관과 중국 첸치천(錢其琛) 외교부장은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한중 외교관계 수립에 관한 공동성명〉에 서명했다. 6·25전쟁에서 서로 총부리를 겨눴던 양국이 전쟁이 끝난지 39년 만에 평화공존의 길로 들어서기로 약속한 것이다. 냉전(冷戰) 해체와 1990년 한국과 옛소련의 수교, 1991년 남북한 UN 동시가입 등으로 조성된 화해 분위기가 수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중국은 한중수교를 앞두고 북한에 사전 양해를 구했으며, 한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해 대만과 단교했다. ② 황장엽 망명과 중국의 역할(1997) 서울공항에 도착한 황장엽 前 북한노동당 국제담당비서 1997.4.20 「주체사상의 창시자」로 알려진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비서의 한국 망명이 성사되기까지 중국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황장엽은 1997.2.12일 일본에서 세미나를 마친 뒤 중간 기착지인 중국 北京에서 한국총영사관에 들어가 망명 의사를 밝혔다. 북한은 즉각 반발하며 『한국행 불가』를 중국측에 요구하는 한편 특수요원들로 보이는 이들을 보내 한국총영사관을 에워쌌다. 이에 중국은 무장경찰들이 24시간 경비를 서며 황씨의 안전을 보장했고, 황씨와의 면담을 통해 『자유의사로 한국행을 원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중국은 북측의 반발을 고려해 황씨가 제3국을 경유해 한국으로 가도록 양해했다. 황장엽은 그해 4월 20일 필리핀을 거쳐 한국에 들어왔다. ③ 마늘 분쟁(2000) 마늘밭 갈아엎는 농심 중국산 마늘 수입에 항의하기 위해 마늘밭을 갈아엎으며 시위를 벌이는 농민들 2001.5.10 한중간 마늘 분쟁은 한국이 2000.6.1일 중국산 마늘에 대한 관세율을 3년간 30%에서 315%로 대폭 인상하면서 시작됐다. 값싼 중국산 마늘 수입이 대폭 늘어나면서 국내 농가에 피해가 우려되자 단행한 긴급수입제한(세이프가드) 조치였다. 그러자 중국은 1주일 뒤 한국산 휴대폰과 폴리에틸렌의 수입을 중단하는 무역보복에 나섰다. 이는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지만, 당시 중국은 WTO 가입국이 아니었다. 결국 협상을 거쳐 한국이 중국산 마늘의 관세율을 기존 수준인 30∼50%로 낮추고 중국은 보복조치를 철회하면서 분쟁은 마무리됐다. 중국의 불합리한 무역보복에 무릎을 꿇은 사례로 기억된다. ④ 東北工程(2002) 2005년 중국의 역사왜곡 현장 중국정부가 遼寧省 장하현 소재 고구려 성산산성 입구 표지석에 『고구려 민족이 고대로부터 중화민족을 구성하는 일원이었다』라는 문구와 『고구려 정권은 중국 동북 소수민족 지방정권』이라는 문구를 새겼다. 중국의 역사왜곡 현장. 사진) 표지석 앞면(左)과 뒷면 모습. 붉은색 테두리 안은 문제의 문구 2005.12.12 동북공정은 중국이 동북지역의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역사왜곡 프로젝트다. 중국 중앙정부 최고학술기관 중국사회과학원과 한반도 접경지역 헤이룽장(黑龍江)성, 랴오닝(遼寧)성, 지린(吉林)성 등 동북 3성이 2002년 2월부터 5년간 진행했다. 한반도 통일시 일어날수있는 영토분쟁에 대비하기 위한 작업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프로젝트는 2007년 일단락됐지만 지금도 지방정부 차원에서는 역사왜곡 작업이 꾸준히 이뤄진다는 정황들도 나온다. 한국은 중국의 역사왜곡에 맞서기위해 2004년 교육부 산하에 고구려연구재단을 설치했고, 2006년에는 동북공정은 물론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 등에 대응하기 위한 동북아역사재단을 출범시켰다. ⑤ 북핵 6자회담과 9·19공동성명(2005) 9·19공동성명 채택 직후 손을 맞잡은 6자회담 각국 대표들 2005.9.19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서 중국은 의장국으로서 각국의 치열한 이해관계를 중재하는 역할을 맡았다. 6자회담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남북한과 미·중·러·일 등이 참여한 다자회의체다. 6자회담은 태동부터 중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중국은 핵문제를 미국과의 양자 이슈로 본 북한과 다자회담을 추진한 미국간의 입장을 조율해 2003년 8월 〈6자회담〉을 출범시켰다. 2005년에는 중국의 적극적인 중재로 북핵 폐기 로드맵으로 일컬어지는 〈9·19공동성명〉도 채택됐다. 그러나 북한의 거듭된 합의파기로 6자회담은 2008년 12월을 마지막으로 열리지 않고 있다. ⑥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 구축(2008) 이명박 대통령과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한중관계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격상에 합의한 뒤 건배하는 모습. 2008.5.27 2008년 5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北京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양국관계를 〈전면적 협력 동반자관계〉에서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로 격상했다. 주로 경제와 문화 분야에 치중했던 한중관계를 외교, 안보, 사회 등 全분야에서 전략적 수준까지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양국관계는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더욱 긴밀해졌지만, 최근의 사드배치 논란 등에서 보듯 외교·안보 분야의 협력은 여전히 미진하다. ⑦ 시진핑 첫 방한과 〈망루외교〉 (2014~2015) 2014년 국빈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2014.7.3 2015년 北京 天安門 성루 위에서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열병식을 지켜보는 당시 정상들 2015.9.3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3월 취임한 이후 한동안 한중관계는 어느때보다 좋은 분위기였다. 시 주석은 2014년 7월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중국의 최고지도자가 이른바 혈맹인 북한을 제쳐놓고 한국을 먼저 찾은 것은 이례적이었다. 2013년 12월 親中派 장성택 처형 이후 소원해진 북중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에 화답해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9월 서방 지도자들이 보이콧한 중국 전승절(戰勝節) 열병식에 참석했다. 당시 박 대통령이 톈안먼(天安門) 망루에 선 장면은 한중간 〈밀월시대〉의 개막을 보여준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이후 사드 사태로 한중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됐다. ⑧ 한중 FTA 체결(2015)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가오후청 상무부장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서명한 후 악수하는 모습 2015.6.9 한국과 중국간 자유무역협정(FTA)이 3년여의 협상 끝에 2015.12.20일 공식발효됐다. 최장 20년에 걸쳐 전체 품목의 90% 이상에 대해 관세를 단계적으로 철폐한다는 내용이다. 한국은 농축산 시장의 피해를 줄이고자 쌀을 비롯해 양념 채소류, 고기, 과실류, 수산물 등을 관세철폐 대상에서 제외했고, 중국은 자동차를 비롯한 일부 핵심 공산품에 대한 관세를 유지하기로 했다. 한중 FTA로 양국은 더욱 긴밀한 무역파트너가 될것으로 기대되지만, 중국의 각종 비관세 장벽에 막혀 지금까진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많다. ⑨ 사드 배치 결정과 중국의 반발(2016∼) 사드보복에 달라진 풍경 사드 배치에 반발한 중국의 관광규제가 계속되면서 중국 관광객들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서울 중구 롯데면세점의 2016년 9월(上)과 2017년 3월(下) 모습 주한미군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은 각종 통계수치로는 확인할 수 없었던 한중관계의 민낯을 드러나게 했다. 한미가 2016년 2월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에 대응해 사드 배치 논의를 본격화한 이후 중국은 「사드가 자신들의 전략적 안보 이익을 훼손한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용 무기라는 한미의 설명에는 전혀 귀 기울이지 않았다. 중국의 사드보복은 점차 노골화했고,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과 중국인 관광객 급감으로 관련 업계가 크게 어려움을 겪고 있다. ⑩ 한류 열풍 KBS 2TV 〈태양의 후예〉로 한류 스타로 떠오른 배우 송중기의 2016년7월 중국 上海 팬미팅 모습 2016.7.17 [블러썸 엔터테인먼트 제공] 1990년대말 TV 드라마로부터 시작된 중국內 한류(韓流)는 점차 가요, 영화, 패션, 음식, 게임 등 문화 전반으로 확산했다. 중국을 진원지로 한 한류는 일본, 대만, 베트남, 태국 등 아시아를 넘어 남미, 유럽 등으로까지 퍼져나갔다. 그러나 지난해 한미의 사드배치 발표 이후 중국은 한한령으로 한국 문화콘텐츠에 빗장을 걸었다. 중국에서 한류 문화행사가 잇따라 취소되고 한국 드라마는 방송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으며 중국 드라마에 출연했던 한국 배우가 중도 하차하는 일도 이어지고 있다. / (서울=연합뉴스) 이정진 기자 transil@yna.co.kr 2017/08/18 06:23 동북아 질서 바꾼 1992∼2017 … 한중수교 25년 주요 일지 한국과 중국은 8월 24일로 〈한중수교 공동성명 발표 25주년〉을 맞는다. [그래픽] 한중수교 25주년 주요 일지 ● 다음은 한중 수교 이후 25년의 주요 일지 ▲1992.8.24 = 한국과 중국, 중국 베이징에서 수교 공동성명에 서명 ▲1992.9.27 = 노태우 대통령 한국 국가원수로 처음 중국 방문, 양상쿤(楊尙昆) 국가주석과 회담한 후 〈한중 공동 언론 발표문〉 발표 중국을 방문한 노태우 대통령과 양상곤 주석 중국을 방문 중인 노태우 대통령이 환영 오찬장에서 양상곤 주석과 건배하고 있다 (1992.9.27) ▲1994.3 = 김영삼 대통령 방중,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과 회담하고 북한 핵문제의 대화를 통한 해결, 이중과세 방지협정ㆍ문화협정 체결 등 합의 ▲1995.11 = 장쩌민 국가주석 방한, 김영삼 대통령과 회담하고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해결 원칙 재확인 ▲1998.11 = 김대중 대통령 방중, 장쩌민 주석과 회담후 〈한·중 협력 동반자관계〉 선언. 〈하나의 중국〉 재확인 김대중 대통령과 장쩌민 주석 김대중 대통령과 장쩌민 주석이 1998.11.12일 베이징 인민대회당 동대청에서 단독 정상회담을 갖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2000.6 = 한국, 중국산 냉동·초산조제마늘 관세율 30%에서 315%로 인상. 중국, 한국산 휴대전화·폴리에틸렌 수입 잠정중단 ▲2000.7 = 한중 〈마늘협상안〉 서명. 한국산 휴대전화 수입중단 해제, 중국산 마늘 관세율 인하 ▲2001.6 = 한중 어업협정 발효. 수역, 입어조건, 입어척수, 어획할당량 등 조정 ▲2001.10 = 김대중 대통령 방중, 장쩌민 주석과 회담후 〈전면적인 협력관계〉 구축 ▲2003.6 = 중국 광명일보 〈고구려는 중국의 소수민족 정권〉 논문 게재 논란 ▲2003.7 = 노무현 대통령 방중,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 회담후 〈전면적 협력 동반자관계〉 선언 중국을 국빈 방문 중인 노무현 대통령과 후진타오 주석이 2003.7.7일 오후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단독정상회담에서 환담하고 있다 ▲2003년 말 = 중국, 한국의 최대 수출국 부상 ▲2004.2 = 한중, 〈고구려사 문제는 민간 차원 학술문제로 해결〉에 합의 ▲2004년 말 = 중국, 한국의 최대 교역 상대국 부상 ▲2005.11 = 후진타오 주석 방한, 노무현 대통령과 회담후 북핵문제 평화적 해결 의지 재천명 ▲2006.9 = 중국 사회과학원, 渤海史를 中國史로 편입한 논문요약본 웹사이트 게재 논란 ▲2007년 말 = 중국, 한국의 최대 수입국 부상 ▲2008.5 = 이명박 대통령 방중, 후 주석과 회담후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로 발전 합의 ▲2008.8 = 李대통령, 베이징 올림픽 참석차 방중해 후 주석과 회담 ▲2008.8 = 후 주석 방한, 李대통령과 회담후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 전면 추진, 한중 고위급 전략대화 정례개최 합의 나란히 걷는 한-중 정상 이명박 대통령이 25일 오후 청와대에서 한국을 공식 방문한 후진타오 주석과 함께 공식 환영식장에 입장하고 있다 ▲2010.6 = 한국, 중국인 비자발급요건 대폭 완화 ▲2010.10 = 한국 체류 중국인수 60만명 돌파 ▲2010년 말 = 한국, 對중국 수출액 1,000억 달러 돌파 ▲2012.7 = 중국 당국, 국가안전위해죄로 구금조사해온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 등을 강제추방 형식으로 석방 ▲2013.6= 박근혜 대통령 국빈 방중 및 한중 정상회담 한중 미래비전을 담은 공동성명 채택 ▲2014.7 = 시진핑 주석, 첫 국빈 방한 및 한중정상회담. 한반도에서의 핵무기 개발에 확고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는 등 내용의 공동성명 발표 공식 환영식 입장하는 한·중 정상 1박2일 일정으로 국빈 방한한 시진핑 주석과 펑리위안 여사가 2014.7.3일 오후 청와대 대정원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2015.9= 박근혜 대통령, 톈안먼(天安門) 광장서 열린 중국 전승절 열병식 참석 ▲2015.12=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2016.7 = 한미, 주한미군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결정 공식 발표 문 대통령-시진핑 「웃음 만남」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2017.7.6일 오전 베를린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악수하며 미소짓고 있다 ▲2017.7 = 문재인 대통령, 독일 베를린에서 시진핑 주석과 첫 정상회담. 사드, 북핵 등 현안 논의 /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양상쿤(楊尙昆) 1907~98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b15a1061a ● 장쩌민(江澤民) 1926~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b18j3273a ● 후진타오(胡錦濤) 1942~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b25h3268n9 ● 시진핑(習近平) 1953~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b13s2170n10 2017/08/18 06:23 [한중수교 25년] 극비 프로젝트 〈동해사업〉 … 권병현 前대사의 회고 『수교는 잃어버린 한 세기 매듭하고 양국관계 새롭게 출발 의미』 1992.8.24일 北京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서 이상옥 외무장관과 첸치천(錢其琛) 외교부장이 〈한중 외교관계 수립에 관한 공동성명〉에 서명하고 악수하는 모습 권병헌 前 駐中大使 『한중 관계는 수교 이후 지난 25년간 외교적 측면에서 경제적 측면으로 확대됐죠. 하지만 전략적·군사적 측면으로까지 충분히 발전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에요. 결국 그러한 한계 속에서 사드 갈등이 불거지고 지금 해법을 찾기도 쉽지않은 상황이 아닌가 합니다』 1992년 한중수교 주역인 권병현 前주중대사는 최근 자신이 대표로 있는 서울 종로구 사단법인 미래숲 사무실에서 가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한중간 전략적·군사적 교류와 소통에 노력을 기울였다면 사드 문제가 없었고, 만약 문제가 불거졌어도 잘 풀어나갈수 있었을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권 前대사는 1992년 한중수교 당시 이상옥 외무장관의 密命을 받아 당시 김석우 아주국장, 신정승 동북아2과장 등과 함께 〈동해 사업〉으로 명명된 한중 수교교섭을 극비리에 진행한 양국 국교정상화의 막후 주역 중 1명이다. 당시 그는 한중수교 예비회담 수석대표로서 카운터파트 장팅옌(張庭延) 前주한 대사와 비밀리에 중국 北京에서 회담을 열었다. 그는 『한중 수교는 중국으로서는 덩샤오핑(鄧小平) 지도자의 결단에 의해 이뤄졌다. 당시 중국 군부와의 완전한 합의와 교감 속에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 아쉬운 점』이라며 『지금 현실(사드 갈등)과도 연계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권 前대사는 그러면서 『한중수교 회담에서 가장 역점을 뒀던것의 하나가 「북한과 혈맹을 깨라」는 것이었고, 저희의 요구사항의 하나였다. 그 부분에 대해 중국의 긍정적인 답을 얻고 수교를 했지만, 그것은 외교적 대답이었지 군사적 행동으로 뒷받침된 것은 아니었다』고 돌아봤다. 우여곡절 끝에 이뤄진 한중수교로부터 어느덧 4반세기의 세월이 흘렀다. 그가 돌아보는 한중수교의 역사적 의미는 무엇일까? 권 前대사는 『동양문화의 중심에 중국이 있었고, 한국은 가장 가까운 파트너였는데, 서양 문명에 압도당하면서 양국은 잃어버린 한 세기를 겪었다. 이 한 세기를 매듭짓고 양국이 협력해 새롭게 출발하는 시작점이라는 의미가 수교에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결과도 그렇지 않은가? 수교 이후 25년간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순기능적 변화가 있었다. 경제교류 뿐아니라 인적, 정치적 교류 등 너무 많은것들이 변했다』고 강조했다. 권 前대사는 현재 미래숲 대표로 한 해에도 수차례 중국을 방문, 중국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등과 함께 중국 서부지역에 나무를 심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조만간 수교 25주년 기념으로 수교일(8월 24일)을 전후해서 〈한중 녹색봉사단〉이 사업지역을 탐방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한중수교 25주년 기념식을 양국 정부가 별도로 한다더군요. 하지만 이런 환경협력은 지금도 양국이 함께하고 있잖아요. 돌파구는 거창한데 있는 것이 아니에요. 거대한 벽을 무너뜨리는 것은 결국 조그마한 구멍입니다』 지난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다음날(5월 11일) 녹색봉사단 사업을 위해 한국청년 100명과 함께 중국에 있었다던 그는, 당시 수교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한중수교팀〉과의 만찬에 얽힌 사연도 소개했다. 이 팀에는 권 前대사, 신정승 前대사와 함께 중국 측에는 수교의 전면에 나선 쉬둔신(徐敦信) 前 외교부 부부장, 장루이제(張瑞杰) 前대사, 장팅옌 前대사가 속해 있다. 권 前대사는 『문재인 정부 출범 다음날(11일) 중국외교부가 주최한 만찬이 있었는데 중국측 관계자들이 준비한 메시지는 「初心으로 돌아가자」였다. 그것이 중국의 본심일 것으로 본다. 실제 이후 한국정부 인사들과의 만남에서 중국측이 같은 취지의 메시지를 내놓기도 했다』고 돌아봤다. 그는 『한중 양국이 운명공동체, 환경공동체라는 것을 양국 정부나 국민 모두가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 한중관계를 회복시키는데 있어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한국과 중국이 앞으로 협력할 분야는 얼마든지 있어요. 무엇하러 어두운 그림자 아래에서 무거운 이슈를 뒤집니까? 소극적 해법을 찾을 것이 아니라 미래지향적 어젠다를 발굴해 협력해야 합니다』 / (서울=연합뉴스) 이상현 기자 hapyry@yna.co.kr 2017/08/18 06:23 [한중수교 25년] 中國 재채기에 韓國 몸살 … 경협 이면에 의존 심각 25년간 중국 수출 50배로 증가 … 한국 경제성장의 원동력 중국경제 변동성에 한국 충격 … 중국 임금상승으로 생산기지 매력 감소 사드 보복에 〈넥스트 차이나〉 전략 부상 … 『對중국 수출품목 다원화 필요』 한·중 수교 25주년 (PG) 중국과의 수교는 한국 성장에 큰 동력이 됐지만, 경제적으로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중국의 악재가 한국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일이 잦아졌고, 최근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 사드) 갈등 등을 계기로 의존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지고 있다. 사드 보복 중국인 관광객 한국관광 금지령 (PG) ◇ 25년간 中國 수출 50배 성장 … 차이나머니 韓國 투자는 2,000배로 한중 양국 경제가 얼마나 긴밀한 관계가 됐는지는 수출입이나 투자규모 변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수교 첫해인 1992년 한국의 대중국 수출액은 26.5억 달러 수준이었다.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액은 37.2억 달러에 그쳤다. 교역 확대에 따라 2016년 중국(홍콩 제외)으로의 수출액은 1,244억 달러,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액은 약 869억 달러로 늘었다. 1992년에 비해 47배, 23배로 각각 증가한 것이다. 2016년 한국은 중국과의 무역에서 약 375억 달러(전체 무역흑자의 약 42%)의 흑자를 냈다. 산업통상자원부 집계를 보면, 2016년 중국은 한국의 전체수출액 가운데 25.1%, 전체수입액 중 21.4%를 차지해 수출·수입 1위 상대국이었다. 국제무역센터(ITC)자료에 의하면, 한국은 2016년 중국의 전체수출액 가운데 10.0%(1위), 전체수입액 가운데 4.5%(4위)를 점했다. 양국간 투자도 크게 늘었다. 부산 남구 부산항 감만부두에 수출입화물이 가득 쌓여 있다 2016년 중국이 한국에 직접 투자한 자금(FDI 신고기준)은 같은해 전체 FDI의 약 9.6%인 20억4,917만 달러에 달했다. 1992년 105.6만 달러였는데 1,940배 수준으로 증가한 것이다. 같은기간 한국측이 중국에 직접 투자한 돈은 2억2,328만8,000달러에서 40억173만2,000달러로 약 18배 규모로 커졌다. 전체 국외투자의 8% 수준이다. 경제구조의 변화에 따라 교역 품목도 변천했다. 1990년대 초반 한국은 對中무역에서 자동차·철강판·선박·섬유기계 등으로 흑자를, 농산물·사료·광물 등으로 적자를 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자동차부품·컴퓨터·통신기기부품·무선통신기기 등이 對중국 주요 수출품목이었다. 중국은 농산물·철강·의류·수산가공품 등을 한국에 주로 팔았다. 2010년 이후 한국은 반도체·LCD 등 기술력을 앞세운 물품으로 중국시장을 공략했고, 한류 붐과 더불어 화장품 수출도 확대했다. 중국은 비금속광물·의류·컴퓨터·신발·무선통신기기를 한국에 주로 수출했다. 사드 보복으로 중국 대신 인도에 눈을 돌리는 한국 (PG) ◇ 한 바구니속 계란 … 중국경제 충격, 한국에 고스란히 중국과의 경제협력·교역 규모가 지나치게 커진것은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은것과 같은 상황이라 우려도 낳고 있다. 중국 실물·금융경제의 변동성이 여과없이 한국에 전달되기 때문이다. 2016년 1월 중국인민은행이 위안화를 연일 절하하면서 중국 증시가 폭락하고 한국 금융시장이 충격을 받은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투자 심리가 급격히 위축하는 가운데 코스피 1,900선이 넉달 만에 붕괴하는 등 직격탄을 맞았다. 최근에는 사드 갈등으로 한국기업의 불이익 사례가 이어졌다. 중국에서 〈치맥축제〉 등 각종 교류행사가 취소되거나 드라마 등 한류 콘텐츠 공급이 제한됐다. 한국화장품 수입 불허, 한국관광상품 판매 제한 등 직간접적인 보복조치도 다수 있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중국인 여행객이 30%줄면 관광수입이 약 56억 달러 감소하며, 국내총생산(GDP)이 0.4% 축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중간재·자본재 수출이 각각 5% 둔화하고 소비재 수출이 50% 감소하면 중국 수출이 7.5%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중국의 산업구조 변화를 고려하면 한국의 수출전략이 곧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중국정부가 소재·부품의 국산화를 추진하고있어 주요수출품인 중간재 시장의 전망이 어둡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간재 교역 흑자가 줄고 농산품·소비재 적자가 커져 2013년 628억 달러였던 대중국 무역흑자는 2016년 375억 달러로 줄었다. 중국內 임금이 상승하면서 생산기지로서의 매력도 줄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전략시장연구실 박진우 수석연구원은 『그간 협력으로 얻는 이익이 커서 중국에 많이 의존했는데, 인건비 상승이나 자국산업 보호 경향이 강해지고 중국이 한국과 경쟁하는 경우도 있어 중국에 집중하는것이 손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중 FTA 후속 협상은 언제 열리나 (CG) ◇ 전문가 『넥스트 차이나 전략 … 중국內 新성장 분야 개척해야』 이런 가운데 중국 편중 부작용을 극복하려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국가나 인도에 시장을 개척하는 이른바 〈넥스트 차이나〉 전략이 부상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향후 성장·소비 잠재력이 크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일본은 도요타 자동차를 비롯해 전기·전자·기계분야 기업이 이미 10여년 전부터 아세안 국가에 생산망을 구축해왔다. 이와 함께 전문가들은 「신흥시장이 중국을 대체할 수 없으므로 중국 전략을 쇄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수출품목을 다변화하자는 지적이 나온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동북아경제본부 북경사무소 양평섭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의 소득상승, 식품안전 중시, 환경친화적 성장추구, 산업구조 고도화에 따라 수입이 확대되는 업종에서 한국의 공급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밝혔다. 예를들면, 규제강화나 녹색발전 전략을 고려해 오수·폐기물 처리설비 등 환경분야나 풍력 등 非화석에너지 설비 등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서비스 수출 확대도 필요하다. 한중 FTA는 발효(2015년 12월)후 2년 이내에 시작하게 돼있는 서비스·투자분야 후속협상이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중국기업이 한국의 콘텐츠나 서비스 산업에 큰관심을 보이고 있고 시장 선점을 위해서도 후속협상이 시급한 상황이다. 보호무역주의 극복도 큰 과제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에 대한 중국의 관세·비관세 조치는 1992∼1999년 343건, 2000∼2008년 814건, 2009∼2015년 1,597건으로 증가 추세다. 비관세 장벽에는 품질향상과 국제법에 근거한 대응 등 투트랙 전략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경제연구원 한재진 중국경제팀장은 『중국이 2015년 품질규제를 강화한 후 한국화장품 통관 거부사례가 속출했으나, 품질기준을 높인 제품은 장벽을 넘었다. 중국 수출품의 품질을 일단 개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중국이 불합리하게 비관세 조치를 해도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런 경우에는 제대로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덧붙였다. /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sewonlee@yna.co.kr 2017/08/19 06:23 [한중수교 25년] 「기회의 시장」· 「텃세 대국」 … 두 얼굴의 중국 2014년 삼성전자 전시관을 방문한 시진핑 주석 방한 중인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부인 펑리위안 여사가 2014.7.4일 오후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영빈관에 개설된 〈삼성전자 전시관〉을 이재용 부회장과 함께 둘러보고 있다 1992년 한·중 수교로 「비단길」이 다시 열리자, 당시 한국기업들은 「기회의 땅」 중국으로 앞다퉈 달려갔다. 이후 중국은 엄청난 인구와 고도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세계 최대 시장」으로 발돋움했고, 한국산업의 「글로벌 도약」 과정에서도 디딤돌 역할을 했다. 하지만 한국기업에 중국시장이 꼭 「기회의 땅」만은 아니었다. 최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보복 사태에서 보듯, 중국의 강한 국수주의, 자국산업 보호주의 경향과 유·무형의 비관세 장벽 등에 「속앓이」만 하다가 결국 포기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과 장더장 중국전인대 상무위원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2015.6.12일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를 방문한 장더장(張德江)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 삼성전자·현대차, 매출·판매의 20%는 중국에서 현재 중국시장이 한국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8월16일 기업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 분석〉에 따르면, 국내 500대 기업 중 중국 매출을 별도공시한 70개 기업의 중국매출 비중(전체 매출중)은 평균 18.1%(2016년 1~3분기 누적 기준)에 이른다. 특히 LG디스플레이(68.6%), KH바텍(48.3%), 삼성디스플레이(37.8%), 성우하이텍(35.9%), SK하이닉스(34.7%), 한화케미칼(33.8%), LG화학(32.9%), 삼성SDI(31.9%) 등은 중국 의존도가 30%를 웃돌았다. 국내 1위 삼성전자도 전체 매출의 거의 1/5, 17.4%를 중국 시장에서 올렸다. 20여 년간 주요 기업들의 중국 현지 매출과 투자도 비약적으로 늘었다. 1992년 톈진(天津) 등에 생산법인을 설립, 중국에 진출한 재계 1위 삼성전자의 경우 2016년 중국시장 매출 규모가 35조5,800억원까지 불었다. 2013년 40조2,000억원으로 정점에 이른뒤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미국, 아시아·아프리카(중국 제외), 유럽에 이어 4번째로 큰 시장이다. 2012년 9월 삼성전자는 시안(西安)에 반도체(낸드플래시)공장을 짓기 시작해 2014년 5월 양산(量産)에 들어갔다. 이 반도체 공장 건설비용으로만 23억 달러가 투입됐고, 앞으로 단계적으로 모두 70억 달러가 더 투자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2016년 사회과학원이 발표한 중국 300대(국유·민영·외자기업 각 100개)기업의 〈사회책임〉 순위에서 4위에 오를 만큼 중국內 사회공헌과 현지화 측면에서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재계 2위 현대·기아차도 중국에 많은 공을 들여왔다. 기아차는 국내 자동차업계 중 가장 먼저 중국시장을 두드렸다. 지난 1996년 중국 위에다그룹(悅達集團)과의 〈프라이드〉 기술합작을 거쳐 2002년 3월에는 중국 3대 자동차 회사 〈둥펑기차집단(東風汽車集團)〉과 〈합자회사 둥펑 위에다기아〉를 세웠다. 〈둥펑 위에다기아〉는 같은해 12월 첫 작품으로 중국형 승용차 〈천리마〉를 내놨다. 이후 공격적 투자가 이어진 결과, 현재 현대·기아차는 北京에 3개, 창저우(常州)와 충칭(重慶)에 각 1개(이상 베이징현대 소속), 옌청(鹽城)에 3개(둥펑위에다기아 소속) 등 모두 8개의 현지공장을 운영하며 ix25, 투싼, 쏘나타, K2~K5 등을 생산하고 있다. 이들 현지공장의 연간 생산능력만 254만대에 이른다. 중국은 현대·기아차의 최대 시장으로, 두 회사는 2016년 중국에서만 세계 전체 판매량(내수 포함)의 각 23.5%(114만2,016대), 21.5%(650,006대)를 팔았다. 톈진 롯데백화점 앞 순찰하는 중국 공안 3월19일 사드 갈등으로 중국內 反韓 감정이 확산하는 가운데 중국 공안이 톈진 시내 롯데백화점 앞에 차량을 배치해 순찰하고 있다 ◇ 롯데쇼핑·이마트 등 유통, 중국에서 「慘敗」 … 철수 잇따라 하지만 국내 모든 기업이 중국에서 달콤한 성공만 맛본것은 아니다. 텃세와 까다로운 규제, 사회적 네트워크·인맥을 중시하는 이른바 관시(關係)문화 등에 어려움을 겪고 「탈진」한 업체들도 많다. 대표적 업종이 바로 〈유통〉이다. 롯데쇼핑의 경우 롯데마트가 2008년부터, 롯데백화점이 2011년부터 중국에 진출해 거의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현지사업에서 흑자는 커녕 국내사업까지 위협할만큼 큰 적자를 보고 있다. 롯데가 현재 중국에서 운영하는 120개 유통계열사 점포(백화점 5개·마트 99개·슈퍼 16개)의 年매출은 2조5,000억원에 이른다지만, 수익성 측면에서는 여전히 해마다 1,000억원 안팎의 적자와 함께 「밑지는 장사」를 하고 있다. 롯데에 따르면, 2016년 해외사업에서 롯데백화점은 830억원, 롯데마트가 1,240억 원에 이르는 영업손실을 각각 냈는데, 이 가운데 80~90%가 중국사업에서 발생했다. 앞서 2015년에도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의 해외 영업손실은 각각 1,050억원, 1,480억원까지 불어났다. 더구나 롯데마트는 중국사업 과정에서 타임즈, 럭키파이 등 현지 유통업체를 인수했으나 당시 지불한 「영업권」 가치가 중국 경기하강 등과 더불어 급감하면서 장부상으로도 2014년과 2015년에 걸쳐 각각 1,600억원, 3,400억원의 대규모 손실을 봤다. 무려 6,000억원에 이르는 「영업권 손상 차손」이다. 여기에 올해 2월말 이후 〈사드 보복〉까지 겹쳐 수천억원의 매출·영업손실이 더해지자, 업계에서는 「롯데유통 부문 중국 철수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롯데 뿐 아니라 신세계 계열 이마트 상황도 비슷하다. 1997년부터 중국시장을 두드렸지만, 20년 가까이 「쓴맛」만 보고 최근 점포정리 수순을 밟고 있다. 지난 5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직접 『이마트는 중국에서 완전히 철수한다』며 손을 든 상태다. 한국 홈쇼핑업체 상당수도 중국 진출에 대거 나섰다가 재미를 거의 보지 못하고 최근에는 베트남 등 동남아로 방향을 틀었다. 단지 〈유통〉 등 특정업종 뿐아니라, 최근 〈사드 보복〉 사태는 현지화에 나름 성공한 업종과 기업들에조차 중국이 얼마나 「불안정한」 시장인지 여실히 보여줬다. 중국 현지 판매부진이 전적으로 〈사드 보복〉 탓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예를 들어 현대·기아차의 올해 상반기 중국판매량은 2016년 같은기간보다 무려 46.7%나 급감하며 「반토막」이 났다. 중국에 진출한 한 대기업 관계자는 『중국은 수요 측면에서 매력적이지만, 까다로운 규제, 텃세 등 비관세 장벽이 높아 접근이 생각보다 쉽지않은 시장』이라며 『최근에는 IT(정보통신)·자동차 등 한국 주요 수출업종에서 중국 현지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더 공략하기 어려워지고 있다』고 전했다. /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신호경 기자 shk999@yna.co.kr 2017/08/20 06:23 [한중수교 25년] 중국 속에 파고든 「한국」 … 한류 드라마, K-POP 인기 한류 개척 선봉에 드라마 … 〈질투〉 〈가을동화〉 〈대장금〉 등 중국민 사로잡아 사드 갈등 여파로 〈한한령〉 … 한류 원천봉쇄로 문화관광교류 큰 타격 KBS-2TV 새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 메인 포스터 2016.2.1 드라마와 K-팝을 앞세운 〈한류(韓流)〉는 중국인들을 파고들면서 경제·문화적으로 한국과 중국을 이어주는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한류〉는 수교와 함께 드라마를 앞세워 중국시장으로 뻗어나갔으며, K-팝도 두터운 팬층을 형성하며 한껏 활기를 띠었지만, 2016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한한령 限韓令〉으로 큰 타격을 입은 상태이다. 그럼에도 중국內 한류 성공사례는 이어지고 있다. 한한령(限韓令)도 막지 못하는 한류(韓流)의 힘이다. 문화계는 중국의 한한령(限韓令)이 풀려 한중 문화교류가 다시 정상적으로 이뤄지길 기대하는 한편,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 한류의 힘과 유연성을 더욱 키워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포스터 MBC 〈사랑이 뭐길래〉 ◇ 1993년 〈질투〉부터 드라마 한류 시작 … 〈태양의 후예〉 정점 중국內 한류의 시작은 드라마였다. 1993년 최진실, 최수종 주연 드라마 〈질투〉가 관영 CCTV를 통해 처음 수출된 뒤 지난 25년간 중국 위성채널에서 방영된 한국 드라마만 100여 편이 넘는다. 「한류의 시초」인 한국 드라마 〈가을동화〉(2000년), 〈대장금〉(2005년)은 중국內 최고 인기를 구가했던 〈황제의 딸〉 시청률을 넘어서는 파란을 일으킬 정도였다. 중국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이 한국을 비롯한 해외드라마 방영 제한정책을 내세우면서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중국內 한류가 주춤했다. 그러다 중국內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이 주목을 받으면서 한국 드라마는 다시 위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2013년 드라마 〈상속자들〉이 중국 동영상 플랫폼 아이치이(愛奇藝)에 독점방영되면서 이민호 등이 특급 한류스타로 떠올라 중국 춘절(春節) 최고 인기프로그램 〈춘완(春晩)〉 무대에 까지 오를 정도였다. 〈별에서 온 그대〉(2013년) 또한 아이치이를 통해 소개되면서 김수현·전지현의 인기가 대륙을 덮었다. 이어 2016년에는 송중기·송혜교 주연 〈태양의 후예〉가 중국에 상륙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중국의 위성TV에 억대를 받고 스카우트됐던 한 한국인 PD는 『한국의 경우 중국보다 실력과 외모를 갖춘 배우들이 상대적으로 많아 드라마 완성도를 높이며 한국만의 철저한 각본과 촬영이 섬세함과 완성도를 높여 중국인들의 눈길을 끈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재혁 駐中한국문화원장은 『1997년 〈사랑이 뭐길래〉 드라마가 방영되고 2000년 H.O.T.가 중국 공연을 하면서 〈한류〉라는 말이 중국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한중수교 후 문화면에서 광범위한 관계증진이 있었으며, 특히 한국드라마를 보지 않은 중국인이 없을 정도다』고 말했다. SBS 드라마 스페셜 〈푸른바다의 전설〉 tvN 금토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神-도깨비〉 김고은 공유 ◇ 2016년 7월 한한령(限韓令) … 드라마 방영 중단, K팝스타 공연 취소 끝이 없을것 같았던 중국內 한류는 2016년 7월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 갈등이 터지면서 완전히 얼어붙었다. 2016년 11월에는 광전총국이 「CCTV, 위성방송에서 한국 관련 방송을 전면금지」했으며,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도 제한했다」는 문건이 나돌면서 〈한한령〉이 사실임을 보여줬다. 중국 연예전문 SNS매체 〈촨메이취안〉은 한한령(限韓令)의 주요 내용으로 ①신규 한국 연예기획사에 대한 투자금지 ②1만명 이상을 동원하는 한국 아이돌 공연금지 ③한국 드라마 및 예능협력 프로젝트 체결금지 ④한국 연예인이 출연하는 드라마의 중국內 송출금지 등을 언급했다. 중국의 지하철과 도로 광고판에 흔히 볼수있었던 「송중기와 전지현」이 나온 휴대전화와 화장품 광고는 자취를 감추고 중국인 모델로 바뀌었다. 중국방송에서 한국드라마나 한국인이 나온 예능프로그램도 자취를 감췄다. 언제 한류가 있었느냐는 듯이 한류 자체가 퍼질 수 없도록 중국 당국이 원천봉쇄한 상황이다. 〈태양의 후예〉처럼 중국기업과의 합작·동시방영 방식으로 진행되던 드라마들의 계획이 중단·최소됐다. 〈푸른 바다의 전설〉 〈사임당, 빛의 일기〉는 중국 동시방영이 결국 무산됐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제작사와 PD들도 일거리를 잃게됐다. 중국문화부의 공연허가 현황을 보면, 2016년 9월 이후 한국 아이돌 공연이 허가받은 경우는 거의 없다. 빅뱅, EXO 등 한류스타들의 중국 공연이나 팬미팅은 대부분 취소됐다. 한재혁 문화원장은 『지금 한중관계가 항상 좋을 수는 없기 때문에 지속적인 문화 교류를 통해 양국 국민의 공감대를 넓히는게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상황에서 양국 문화교류를 발전시킬 이 시점에서 되돌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SBS 〈런닝맨〉의 포맷을 사간 중국 〈달려라 형제〉 ◇ 한류 콘텐츠 해적판 범람·노골적인 표절 횡행 더욱 큰 문제는 〈한한령〉을 틈타 한류콘텐츠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일이 횡행하는 것이다. 〈한한령〉이 내려진 이후 중국 시청자나 팬들이 한류콘텐츠를 소비하지 못하는게 아니라 「공짜」로 소비하게 된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다. 〈푸른 바다의 전설〉 〈맨투맨〉 〈도깨비〉 등이 중국에 수출되지도 못했음에도 중국에서 이 드라마들은 큰 인기를 끌었다. 중국 포털사이트와 SNS에서는 이들 드라마 관련뉴스와 이야기가 수십억 뷰의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인기 게시물에 올랐다. 중국인들이 「해적판(海賊版)」을 통한 불법시청을 통해 이들 드라마를 봤기 때문이다. 방송사들의 한류 예능프로그램에 대한 표절(剽竊)도 심각하다. 한동안 한류 예능의 포맷을 정식으로 구입해서 자체 프로그램을 제작해오던 중국방송사들이 〈한한령〉을 틈타 돈 한 푼 안내고 노골적으로 표절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다. 중국 후난 위성TV는 2016년부터 SBS 〈영재발굴단〉과 유사한 〈신기한 아이〉, tvN 〈삼시 세끼〉를 모방한 〈동경하는 삶〉, SBS 〈판타스틱 듀오〉와 비슷한 〈위샹허니창〉을 제작해 방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tvN 〈윤식당〉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대로 베낀 후난TV 〈중찬팅〉이 등장해 국내 네티즌들의 공분을 샀다. 이러한 해적판과 표절 프로그램의 유통으로 한류업계 손해는 막심하다. 거대 중국시장에 진출할 기회를 박탈당한 것은 물론이고, 저작권과 재산권을 눈뜨고 도둑질 당하는 데도 해결책이 없다. 솔로 앨범 〈권지용〉 낸 지드래곤 [YG 제공] ◇ 『격식있고 고급스러운 비즈니스로 가야』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중국內 한류의 성공사례는 이어졌다. 한한령(限韓令)도 막지못하는 한류(韓流)의 힘이다. 빅뱅 지드래곤(본명 권지용·29)의 솔로 앨범 〈권지용〉은 지난 6월 월간 이용자 수가 4억명에 달하는 중국 〈QQ뮤직〉에서 디지털 앨범당 10위안(한화 1,654원)에 판매돼 공개 하루만에 판매량 762,000여 장을 기록했다. 매출은 12억6,000여 만원에 달한다. 중국 최대 음악사이트 〈인위에타이〉에는 엑소, EXID 등 한국 가수들이 상위권에 포진하고 있으며, AOA는 올해 1월 두 곡이 차트에 동시 진입하기도 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北京사무소 김기헌 소장은 『이제는 한류 패러다임을 바꿔야할 시기』라면서 『이제까지는 한국 영화나 드라마 몇편을 중국에 수출했다는 등 규모에 치중하는 단순한 사업모델이었다면, 이제는 격식있고 고급스러운 비즈니스로 가야할 것 같다』고 조언했다. 그는 『큰 정치적 이슈가 있는 미국과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영화가 중국에서 여전히 잘통하는것을 볼 때, 우리도 이제는 量보다는 質로 가야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중국대표처 김필정 수석대표는 『한국영화라는 것을 내세우기보다 한국이 장점을 가진 기획, 영화기술 등을 중국시장에 접목해 중국시장 속에서 영역을 넓히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서울 베이징=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심재훈 특파원 prett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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