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여왕 조문을 다녀오다/ 조 한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조문을 위해 주한 영국대사관을 다녀왔다. 성공회 대성당이 자리한 정문 입구 길로 들어섰다. 주변(텐트)에 무엇인가? 있어 복잡하여 대사관도 바로 보이지 않아 주뼛주뼛하면서 행인에게 물어봤다. “영국대사관이 어디 있어요?” “저기 보이네요” 오전 근무를 마치고 사무실에서 점심식사를 하러 나온 듯한 여성이 손으로 방향을 가리킨다.
오늘은 영국대사관을 모른다는 것이 큰 실수 같다. 시 숙모님 댁이 성공회 신자인 연유로 성공회 성당에서 집안일로 미사참례를 했었다. 그러면서도 대사관엔 딱히 볼 일이 없어 찾아가 본 적이 없었다고나 할까. ‘안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의 차이는 크다.
바로 정문이 훤히 보이고 들어가는 길에서 우측으로 쪽문이 있었다. 대사관 정문 입구에 서 있는 경비원이 나를 안내하면서 쪽문의 노란 열쇠 장식을 누르란다. 어설퍼 하는 나에게 친절을 베풀어 직접 그가 동그란 잠금 장식을 누르자 문이 열린다. 이런 작은 문으로 안내될 줄은 몰랐다. 안에서 직원이 반긴다. 조문왔다고 하자 “고맙습니다” 하면서 신분증을 제시하란다.
증명 확인 후 안내자를 따라 지하로 내려가니 조문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그 장소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에 ”사진을 찍어도 돼요? “하자 ’방명록에 서명하면서 찍으시면 됩니다” 한다.
서명하면서 그녀에게 휴대전화를 건네고 부탁하니 안내자는 친절하게 사진을 찍어 주었다. 앗 차! ‘조문을 먼저 마치고 사진을 찍을 것’을 순서가 바뀌었나? 방명록에 서명하고, 여왕님 사진 앞에서 성호를 긋고, 묵념으로 여왕의 명복을 비는 기도를 마쳤다. 조문을 마치고 그 자리를 비켜서서 사진을 찍었다. 둥근 화환이 하나 앞에 놓여 있고 작은 화환을 들고 와 놓아둔 꽃들이 가지런히 있다. 장소에만 신경을 쓰고 꽃 준비는 안 했다. 국화꽃이 준비되어있는 일반의 조문 장소와는 상황이 사뭇 다르다. 안내하는 이들도 또한 분위기도 퍽 단출했다.
영국 여왕이 서거하셨다는 소리를 방송으로 들었을 때, ‘지금은 백세 시대인데 좀 일찍 가신 듯’싶었다.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했다. 통치는 아니더라도 여왕의 위치에서 국익을 위한 일과 국위선양에 많은 노력을 했다고 평한다.
내가 20대 시절, 왕이 있는 나라의 왕자와 공주 신분은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공주라는 호칭은 신데렐라 같은 이미지로 떠올랐다. 그렇다. 우리 주변에 자녀를 우리 공주, 우리 왕자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나라에 왕자는 있었지만 대한민국에는 왕이 없는 나라가 되었으니 아예 사라진 호칭이다.
영국 여왕의 여동생 마거릿 공주가 로얄 발레단의 총재였다. 공주가 그런 직책을 맡고 있다는 데에 더욱 흥미로웠다. 엘리자베스 여왕도 자원하여 군에 다녀왔고 왕자들도 장교 계급으로 군에 다녀오는 의무가 있단다. 귀족들도 군에 입대하여 임무를 완수하는 자세와 그 정신을 이어오는 것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의무부터 행한다’는 정신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Noblesse Oblige) 정신은 귀족뿐만 아니라 부유한 자산가들도 지켜야 할, 나라 사랑의 덕목이면서 의무규정이라 하겠다.
스무 살의 엘리자베스 공주는 ‘전쟁에 참가해 조국에 봉사하고 싶다’며 아버지 조지 6세를 설득하였고, 결국 1945년 3월 4일 국방군에 입대하여 구호품 전달 서비스 부서에 배치되었다. 그때 군복을 입고 찍은 공주의 사진이 감동을 준다.
영국 로얄 국립 발레단이 40여 년 전 한국공연을 세종문화회관에서 했을 때 관람을 했다. 그때 공주님이 왔었는지는 몰라도 수석 발레리나의 당시 나이가 60세! 고령이었다. 그의 부드러운 춤사위 중, 발레마임을 보면서 더욱 친근함과 존경심이 들었다.
영국 여왕의 유연한 미소는 퍽 인상적이다. 지인이 보내 준 ‘웬 아기 사진’에 의아했는데, 여왕의 어린아이 때부터 청소년 시절, 성인이 되고 필립공과의 행복한 모습까지. 한 사람의 일생이 이토록 다채롭게! 더욱 가슴에 따뜻한 정을 줄 수가 있을까?
여왕은 외교적 활동도 따뜻한 미소만큼 발휘하여 훌륭했다는 평가다. 직접 뵌 적은 없으나 모자를 쓴 세련미, 부드러운 미소는 품위 있는 귀족 어른이었다.
여왕이 왜! 영국이 아닌 스코틀랜드에서 사망했을까? 의문이 들었는데 여왕이 밸모럴섬에서 휴가를 즐기고 돌아올 것인데, 5일 리즈 프러스 총리가 선출되면서 귀국이 늦어졌다고도 하고, 여왕이 자신의 생의 마지막을 예감하고 스코틀랜드에서 생을 마감하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는 설도 있다.
사후 여왕이 런던으로 오시는 광경을 지켜보느라 시민들이 밤을 새우고 비를 맞기도 했다. 여왕의 장례식을 나흘 앞둔 15일(현지시간) 추모 인파가 템스강을 따라 타워 브리지까지 7km에 이르렀다 한다.
스티븐 코트렐 요크 대주교는 "우리는 현재 여왕을 사랑하는 마음과 줄 서기를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위대한 영국 전통 두 가지를 기리고 있다"고 했다. “줄 서기도 영국 전통에 들어간다고!” 질서를 의미함인가?
여왕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하회마을에서 한국 예절에 맞게 구두를 벗고 걷는 자세는 큰 인물이라는 이미지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