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산이슬입니다.
술.
세계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무식하게 술을 마시는 민족도 드물 것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자기 잔에 삥알기 눈꼽만치 딸아 홀짝홀짝 마시면서 주로 대화를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침을 튀기면서 언쟁을 하며 뻗을 때 가지 마시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말 대단한 민족입니다.
이런 술 문화가 군대의 폭탄주 문화의 영향도 있었다고는 하지만,
저는 근대화 과정에서 술 문화도 과격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일제 시대 지식인들은 나라 잃은 설움을 술로 달래기 위해 폭음을 했다고는 하지만,
70년대 우리 4050세대들은,
대부분 가난한 부모들의 품을 떠나 밥 세끼를 해결하기 위하여 찾아든 구로공단 같은 생산 현장에서 새벽에 출근하여 밤늦게 까지 중노동에 시달리다 퇴근길 녹초가 된 몸의 피로를 풀기 위해서 술을 마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술은 빨리 취하기 위하여 주로 소주를 마셨습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안주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고 주로 돼지 껍데기나 깍두기를 안주 삼아 빈속에 소주를 들어부었습니다.
특히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만든 “소맥”은 환상의 조제주였습니다.
안주도 별로 필요 없고 순식간에 뿅 가니 그야말로 환상의 술 그 자체입니다.
먹여만 달라.
일만 시켜 달라.
어렵게 취직한 공장 생활은 연중무휴 돌아갔고 휴일, 휴가, 특근수당, 야간수당도 찾아 먹기가 힘들었습니다.
노동법에 나오는 근로 조건을 따질 처지가 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수출만이 살 길이다, 잘살아 보세, 돌격 앞으로, 좀 배웠다는 사람들이 노동법 운운하면 빨갱이로 몰아 감옥소로 보냈습니다.
오로지 수출만이 살 길이라 외치며 저 임금에 미친 듯이 일에만 몰두 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이제 세계 몇 위 안에 드는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습니다.
그러나 나라경제가 좀 좋아졌고 민주화도 되고 해외여행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좋은 시절이 돌아왔지만 우리들에게 남는 것은 위장병과 정년퇴직뿐입니다.
이제 산업의 전사들은 갈 곳이 없어 다시 소주 집에 모여 삼겹살을 안주삼아 홀짝홀짝 소주를 마시면서 하얗게 변한 머리 모양과도 같은 지난 세월을 반추해봅니다.
돌이켜 보면 미친 듯 일에 매달려 온 세월과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 길 쫒기 듯 찾아든 포장마차에서 상사나 사장님 흉을 보면서 술 마신 기억들이 피안처럼 아련합니다.
만일 그때 소주마저 없었더라면 그 굴곡의 세월을 견뎌 낼 수 있었을까?
더불어 마누라쟁이들마저 이제 폐기 처분 된 똥차 취급을 하며 황혼이혼 운운하고 있으니?
아! 서러운 우리 4050세대의 인생!
오늘 밤도 어디 포장마차에라도 들어가 소주라도 한잔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