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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사회는 도덕불감증이 만연해 있습니다. 나의 ‘이익’만이 최고이고 사람의 도리는 내려놓아야 할 거추장스러운 짐 같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제정하신 오계와 십선도는 업의 법칙이라는 우주이법 차원에서 지켜야 할 규범입니다. 그래서 계율을 지키면 악업을 피하고 선업을 쌓을 수 있습니다. 인륜도덕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사람으로서의 도리, 윤리규범입니다. 유교의 오륜(五倫)8이나 오상(五常)9 같은 경우가 좋은 예가 됩니다.
여러분, 아주 우애 있는 형제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어느 마을에 형제가 있었지요. 두 형제는 부지런히 농사를 지었고 마침내 추수철이 돌아와서 추수를 했습니다. 형은 새로 결혼한 동생 살림을 걱정합니다. 동생은 식구 많은 형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밤중에 몰래 자기 논에 있던 볏단을 서로 옮겨 놓습니다. 형은 아우를 위해, 아우는 형을 위해서요. 그러다가 서로 그 사실을 알게 되지요. 그렇게 형제가 사이좋게 오순도순 잘 살았다는 훈훈한 얘기입니다. 요즘에도 이런 형제가 있을까요?
우리는 사람과의 관계를 떠나서 살 수 없기 때문에 ‘도덕’이 곧 우리들의 삶의 양식입니다. 그래서 도덕을 지키는 것은 사람의 도리를 다할 수 있어서 나에게 좋을 뿐만 아니라 인과법에서 보면 선업을 쌓는 좋은 일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육방예경(六方禮經)》에서 재가불자 ‘싱갈라’에게 부모, 부부, 스승, 친구 등에게 사람의 도리를
다 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길을 잘 제시하고 있습니다.
또 도덕을 잘 지키는 것은 사회 전체를 위해서도 바람직합니다. 마치 교통법규가 많은 차들의 통행질서를 바로잡아주어서 교통을 원활하고 편리하게 만드는 것처럼 인륜도덕도 사회를 건강하게 발전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인륜도덕을 잘 지키는 데는 더 깊은 뜻과 이익이 있습니다. 가까운 가족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좋은 인연으로만 만나는 게 아닙니다. 거기에도 주고받아야 할 빚 관계가 있습니다. 악연인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럴 경우 인륜도덕을 잘 지키는 것이 서로의 업장을 소멸하고 악연을 해소하고 더 좋은 인연으로 만들어가는 역할을 해줍니다. 영적인 차원에서 인륜도덕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겁니다. 인륜도덕이 잘 지켜지지 않았을 때 가장 먼저 가정이 무너지고 다음에 사회가 쇠락하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 가정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많습니다. 부부간의 불신과 불화, 고부간의 갈등, 부모와 자녀간의 세대차이 등 쉽지 않은 문제가 도사리고 있지요.
나는 여기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그리고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도덕적 요청으로서 효를 실천할 것을 말하고자 합니다.
효는 가정을 건강하게 회복시키는 굉장히 큰 힘이 있습니다. 요즘에는 핵가족화 되어서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함께 둘러앉아 즐겁게 식사하는 가정이 거의 없습니다. 가족 간의 관계는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인간 정서와 효라는 윤리적 덕목에 바탕해서 유대관계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핵가족화 될수록 이런 유대관계가 약화되기 때문에 나는 핵가족화에 반대합니다. 이 추세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효도는 무너져가는 가정을 건강하게 일으켜 세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또 효는 인륜도덕의 근본입니다. 유교적인 덕목이기 이전에 누구나가 실천해야 하는 보편적인 덕목입니다.
여러분, 까마귀 알지요? 날짐승 중에서도 유독 까마귀는 늙고 병든 부모에게 먹을 것을 물어다가 봉양합니다. 산짐승 중에서 효도하는 게 늑대입니다. 늑대들은 몇 대가 무리지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제 늙고 병들어서 사냥 못 갈 부모가 있잖습니까? 자식이 사냥해온 고기 중에서 부드럽고 좋은 부분은 놔두었다가 부모에게 충분히 먹입니다.
우리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거든요. 사람이 까마귀나 늑대만 못하다면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세대차이? 아닙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소련이든 미국이든 어디든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것은 도덕적 요청으로서 지상명령입니다. 이건 진리입니다.
부모님의 은혜에 대해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경전이 《부모은중경》입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보통 높은 산과 넓은 바다에 비유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모님의 은혜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이 삽니다. 이 경은 ‘부모님의 은혜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왜 그 은혜가 소중한가?’를 일깨워주고 ‘부모님의 은혜에 어떻게 보은할 것인가?’도 가르쳐줍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낳을 때는 3말 8되의 피를 흘리고 8섬 4말의 젖을 먹인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부모의 은덕을 생각하면 자식은 아버지를 왼쪽 어깨에 업고 어머니를 오른쪽 어깨에 업고서 수미산(須彌山)을 백천 번 돌더라도 그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다고 합니다.
요즘은 시대가 많이 변해서 옛날처럼 유교적인 도덕을 절대시하지도 않고 부모 자식 간의 유대관계도 많이 변했습니다. 또 의료기술이 발달하고 교육제도가 정비되어서 출산이나 육아에 대한 부담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그래도 부모님의 은혜는 다를 바가 없습니다.
부처님은 이 경에서 부모님에게는 10가지 큰 은혜가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 회탐수호은(懷耽守護恩). 배 속에 품고 지켜주신 은혜입니다. 어머니가 우리를 회임(懷妊)해서 배 속에 품고 열 달간 키워주신 은혜입니다. 경전에 나오는 부처님의 게송입니다.
“여러 겁(劫)의 인연이 지중해서 금생에도 모태에 의탁했네. 달이 차서 오장(五臟)이 생겨나고 일곱 달째에는 육정(六情)이 완성된다. 몸은 둔해 산같이 무거우니 앉고 설 땐 풍재(風災)인 양 아찔하다. 비단 옷은 걸쳐볼 생각조차 없고 경대(鏡臺)에는 먼지만 쌓였구나.”
여기서 풍재라는 것은 바람의 재앙입니다. 이 우주가 괴겁(壞劫)에 가서 망가질 때에는 삼재(三災)로 해서 무너집니다. 화재가 일곱 번 일어나 바닷물이 마르고, 그다음에는 수재가 지나가고, 마지막으로 풍재가 와서 수미산이 무너지고 우주가 다 파괴되어 버립니다. 풍재는 그렇게 무서운 재앙입니다. 아기를 품고 앉고 일어서고 거동하는 일이 그만큼 힘들다는 거지요.
옛날에는 거울을 경대라고 했어요. 아기 때문에 어머니는 경대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볼 여가도 없는 거예요. 배 속에 품고 지켜주실 때에 부처님이 말씀하신 이러한 정황을 어머니 되신 여러분들은 다 아실 겁니다. 우리가 그런 어머니의 은혜로 이 세상에 나온 겁니다.
그런데 요즘 들리는 말에는 “누가 낳아 달랬는가? 자기들 좋아서 낳아 놓고 무슨 효도를 강요하는가!”라고 막말을 한다고 해요. 인륜도덕의 중요성을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그런 자식들이 있다고 합니다. 또 부모님 쪽에서는 화가 나니까 “저 원수 같은 놈이 왜 태어났을까!” 하고 이런 말을 한답니다. 부모 자식 간의 인연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여러분! 이러면 안 됩니다.
두 번째, 임산수고은(臨産受苦恩). 낳으실 때 고생하신 은혜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잉태한 지 열 달이 차고 나면, 그 고통은 저승의 문턱이라. 아침마다 중병을 치른 듯 하고 매일같이 까무러친 사람 같네. 두려움은 기억조차 할 수 없고, 근심은 눈물 되어 옷깃을 적시도다. 시름에 겨워 친척에게 이르는 말이 살아남지 못할까 걱정이라네.” 출산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는 출산 경험이 있는 어머니들은 다 아실 거예요.
세 번째, 생자망우은(生子忘憂恩). 해산한 뒤에 근심을 놓으신 은혜입니다. 부처님의 게송입니다.
“어머니가 그대 낳던 날, 오장(五臟)은 온통 찢겼나니, 몸도 마음도 까무러치고 흘러내린 피가 도살장 같았다. 그러고도 아기 건강하다는 말을 듣고 기뻐함이 평시의 곱이나 된다. 기쁨은 잠시요 슬픔이 다시 오니, 산후(産後)의 고통이 간장을 에인다.” 애 낳으신 우리 어머님들은 다 잘 아시는 일입니다. 아기를 낳는 고통이 얼마나 혹독할까요? 죽음의 경지를 몇 번씩 드나든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아기를 낳다가 죽은 이도 많았습니다.
어느 산부인과 의사와 문답한 내용입니다. “산모(産母)들이 출산 후 탯줄을 가위로 끊는데, 탯줄에도 신경이 있습니까?” “있습니다.”라고 그래요. “일반 내장이나 몸붙이를 가위로 끊을 때와 아픔이 차이가 있나요?”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평소에 손톱 밑에 가시 하나만 찔려도 아파 죽는데, 그렇듯 큰 고통을 겪은 뒤에 다시 탯줄을 끊으면 얼마나 아프겠는가 하는 겁니다. 그런데 너무나 큰 고통을 겪은 뒤인지라 그다지 아픔으로 느끼질 못한답니다.
네 번째, 인고토감은(咽苦吐甘恩). 쓴 것은 삼키고 단 것은 뱉어서 먹여 주신 은혜입니다.
부처님의 게송입니다.
“부모의 은혜는 깊고도 무거워서 보살펴 주는 일에 때를 잃지 않는다. 단 것은 뱉어서 잡수시질 않고 쓴 것은 삼키되 찡그리질 않는다. 애정은 무거워 숨길 수 없고, 은혜는 깊어서 차라리 서럽다. 아기 배부르기만 바랄 뿐 당신의 시장함은 사양치 않는다.”
우리 어머니 은혜가 그래요. 여러분도 아마 그러실 겁니다. 어머니 이야기를 하면 다 큰 이 스님도 가끔 눈물이 납니다. 여러분도 그러실 겁니다. 울컥 하면서 눈물이 난답니다.
다섯 번째, 회건취습은(廻乾就濕恩). 당신은 젖은 곳에 누우시고 마른 데는 아기를 뉘어주시는 은혜입니다.
부처님의 게송입니다.
“어머니 자신은 온통 젖어도 아기는 마른 데로 골라 누인다. 두 젖으로는 아기 배를 채우고 고운 소매로는 찬바람 가려준다. 아기 보살피기에 단잠을 설쳤어도 귀여운 재롱에 기쁨으로 변한다. 언제나 아기의 편안함만 바랄 뿐 자신의 고달픔은 생각지 않는다.”
여섯 번째, 유포양육은(乳哺養育恩). 젖을 먹여 길러주신 은혜입니다.
부처님의 게송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땅에 견주고 아버지의 은혜는 하늘에 비기니, 하늘과 땅의 은공이 균등하듯이 부모님의 은혜도 그러하여라. 두 눈이 멀었어도 개의치 않고 팔다리 절더라도 싫어하지 않나니, 내 속에서 태어난 자식이기에 종일토록 아끼시고 귀여워하네.” 낳은 자식이 무척 귀엽지요? 아기에게 물리는 젖은 어머니의 살과 피입니다. 젖뿐만이 아니라 어머니는 모든 걸 아낌없이 자식들에게 줍니다. 그런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으로 우리가 있는 겁니다.
일곱 번째, 세탁부정은(洗濯不淨恩). 더러운 것을 씻어주신 은혜입니다.
부처님의 게송입니다.
“지난날 예뻤던 몸매 퍽이나 풍만했으니 눈썹은 버들잎 같고 두 뺨은 연꽃보다 붉었는데, 깊은 애정으로 얼굴엔 주름살 늘고 잦은 빨래로 손발은 거칠어지고, 손거울 녹슬건만 오로지 아들딸 사랑하는 정성으로 어머니는 비로소 매무새를 추스르네.” 스스로 단장할 새 없이 일일이 씻어주고 빨래해주고 하는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우리는 없습니다.
여덟 번째, 원행억념은(遠行憶念恩). 멀리 떨어져 있으면 걱정하시는 은혜입니다.
부처님의 게송입니다.
“죽어서 이별함도 잊을 길 없지만 살아서 헤어짐은 더욱 슬픈 일이니, 자식이 집을 떠나 타관에 있으면 어머니의 마음도 타향에 가 있다. 낮이나 밤이나 마음에 되씹으며 흘리는 눈물은 천 줄기인가 만 줄기인가. 원숭이가 새끼 찾아 슬피 울듯이 자식 생각 굽이굽이 애가 끓는다.” 어머니들이 다 그래요. 여러분, 효도해야 합니다. 인륜도덕 중에 가장 중요한 덕목이 효도입니다. 효도는 지상명령입니다.
아홉 번째, 위조악업은(爲造惡業恩).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으시는 은혜입니다. 자식을 위하는 일이라면, 지옥 갈 죄도 마다하지 않아요. 이것이 부모님의 은혜입니다.
부처님의 게송입니다.
“부모의 은혜는 강산보다도 중하니 깊으신 그 은혜 보답하기 어려워라. 아들과 딸의 괴로움을 대신 받기 원하고 아들과 딸이 괴로우면 부모 마음 편치 않네. 멀리 집을 떠난다는 말을 들으면, 집 나간 밤부터 단잠을 설치나니 자식들은 대수롭지 않아도 어머니의 마음은 오래도록 쓰리네.” 자식들이 멀리 집을 떠나서 무슨 일 보러 간다는 말 들으면 어머니들이 다 그렇지요?
열 번째, 구경연민은(究竟憐愍恩). 끝까지 염려하시고 사랑하신 은혜입니다.
부처님의 게송입니다.
“부모님의 은혜는 깊고도 무거울 사 예뻐해주신 정(情) 잠시도 끊임이 없네. 앉았거나 섰거나 마음에서 안 떠나고, 가깝거나 멀거나 생각 항상 따라가네. 부모 연세 100살이 넘어도 80살의 자식을 걱정하나니 간절한 그 애정 언제나 끝이 날까. 두 눈을 감아야 비로소 다하려나!” 부처님의 이런 게송의 말씀이 어찌 그리 정확하고 적절한지 몰라요. 이것은 참으로 진실입니다.
여러분, 부모님의 은혜가 이렇게 지중합니다. 부모님은 자식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하려고 합니다. 부모님이 짓는 악업은 대부분 자녀들 때문입니다. 우리 자식들은 부모님 은혜를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자식들 중에는 불효하는 자식도
회탐수호은_ 어머니가 10개월 동안 태에 품어 길러주신 은혜
인고토감은_ 쓴 음식은 삼키고 단 음식은 씹어서 먹여 길러주신 은혜
많아요. 요즘은 더욱 그래요.
《부모은중경》을 보면 부처님께서 불효의 업을 널리 말씀하십니다.
“내가 중생을 관찰하니 비록 인간의 탈을 썼으나 마음씨는 어리석어서 부모의 은혜를 생각지 않고, 공경할 마음을 내지도 않으며, 은덕(恩德)을 등지고 불효와 불의를 범하는 자가 많으니라. 자식들이 성장하고 나서는 부모님한테도 눈을 흘기고 부라리면서 거칠게 대꾸한다. 예의가 없어서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부모의 분부를 거스른다. 출입하고 왕래할 땐 어른들께 알리지 않고, 언행이 거만하고 제멋대로 일을 처리한다. 부모는 훈계하여 벌주어야 하거늘, 어린 것이 귀엽다고 해서 어른들이 감싸기만 하다가 차츰차츰 장성한 뒤에는 고약하고 사나워져서 길들여지지 않으니 도리어 화를 내면서 자기의 어긋남을 승복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버릇없이 키워 놓으면 안 됩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몰라요. 부모님께 효도할 줄 아는 사람은 전생에 지은 복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살아갑니다. 하늘이 도와줘서 사는 거예요. 부처님과 보살님과 하늘왕들은 부모님께 효도하면 그 사람한테 잘 해줍니다. 꼭 도와줍니다. 이 이치를 여러분한테 알려드립니다. 불효하는 자식은 죽어서 악도에 떨어집니다.
“또 패거리를 이루어 싸우고 때리고 도둑질해서 남의 마을을 침범하며 술 마시고 도박하는 등 간악한 허물을 두루 지어 부모를 근심시킨다. 새벽에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니 부모는 걱정하나 부모의 안부조차 묻지 않고, 부모가 나이 들어 몰골이 쇠락하면 남들 보기에 수치스럽다고 꾸짖고 구박한다.
부모가 홀로되어 독수공방하면, 마치 객실에 묵는 나그네같이 여겨 방과 이부자리를 털거나 닦는 적이 없으며, 추운지 더운지 주린지 목마른지 전혀 아는 체하지 않으므로 부모로 하여금 항상 슬피 탄식케 한다.
혹은 타향에서 행동을 삼가지 못하다가 남의 모략을 받아 까닭 없는 구금을 당하거나 억울한 형벌을 받아 칼과 족쇄를 쓰고 옥에 갇히기도 하고, 혹은 병에 걸려 액난이 뒤엉키고, 시장함과 괴로움에 시달려도 아무도 보살피는 이가 없다가 남들의 혐오를 받아 길거리에 버려져서 이로 인해 목숨을 마쳐도 아무도 구해주는 이가 없다.
혹은 딸자식은 남편 따라 타향으로 가서 부모를 여의면 부모 그리는 마음은 추호도 없이 소식을 끊으며, 소식을 알리지 않음으로써 부모로 하여금 애가 타서 항상 거꾸로 매달린 듯 불편하게 하며, 얼굴 한번 보기를 항상 원함이 마치 목마른 이가 마실 것을 찾는 것 같이 그칠 날이 없게 하니, 부모의 은덕은 이토록 무량무변하고 불효의 허물은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느니라.
그러나 부모의 마음은 항상 자식을 따라가 있어 영원히 근심을 풀지 못한다. 혹은 눈물 흘려 울다가 실명하기도 하고, 혹은 자식 걱정으로 쇠약해진 끝에 한을 품고 죽어 귀신이 되더라도 자식 걱정을 잠시도 버리지 못하느니라. 자식만 귀엽고 부모가 밉게 보이는 이는 부모도 나를 이렇게 예뻐하셨을 것을 생각하라. 자식 기르기에 힘이 든다고 생각하는 이는 부모도 나를 기르실 때 이렇게 고생하셨음을 생각하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실 당시는 옛날이라 지금 읽으면 시대 차이가 나서 어색한 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불효의 허물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자재만현큰스님 법문집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