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동의 진선갤러리와 북카페에서
'제1회 온빛사진상' 행사가 열렸습니다.
행사장에는 '온빛사진상 시상식'이라는 말외에도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밤' 이라는 부제가 함께 붙어있더군요.
처음 만들어진 '온빛사진상'도 그렇습니다.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모여 만든 상입니다.
12월초부터 공모를 받았습니다.
1차 심사를 거쳐 11명의 후보가 결정되었고,
26일 진선북카페에서 그 사진들이 상영되었습니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함께
그 슬라이드쇼를 보고 그 자리에서
투표하는 방식으로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노동운동의 현장을 촬영한 분에서
다문화 가정을 기록한 학생까지 다양한 작품이 경선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한 작품이 최종 선정되었지요.
한설희 작가의 '노모'라는 작품입니다.
작가는 아버지를 여의고 나서 문득 어머니를 다시 보게 되었답니다.
겨울나무처럼 남아계신 어머니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길을 작품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작가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 지난해 갑자기 아버지가 타계하시고
황망해하던 중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늙고 병들어,
앙상하니 겨울나무 마냥 바싹 말라버리고
쇠잔해지신 어머니가 곁에 계셨다.
이시대의 마지막 조선여인의 삶을 사셨던 어머니,
그 시절 흔하던,
바람나서 신여성 찾아 떠나신 아버지를 한 평생
이제나 돌아올까 기다리고 사셨던 어머니.
아버지는 끝내 조강지처한테 돌아오시지 않았고,
배우지 못하고 평생 호강한번 못하고 지지리 고생만 하시다
인생이 슬며시 흘러가 버린 어머니.
북녘 외딴
작은 섬에서 태어나고 자라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뭍으로 왔으나
이제 늙고 병들어 다시 외로이 홀로 섬처럼
방안에 갇혀 버린 어머니...
나 이제 나이 들어 내 아이들의 어머니로,
아내로써의 인생을 살아보며
겨울나무와 같은 나의 어머니의 스산한 여인으로써의 삶에
더욱 더 가슴이 아려온다.
그 어머니의 남은 날들을,
늙어 다시 외로운 섬으로 갇혀버리는
여정들을 카메라에 담아 보려 하였다."
한설희 작가는
한국사진사진작가협회 회원이었을 정도로
사진을 열심히 했었지만,
한 동안 카메라를 놓고 있었다고 합니다.
최근에 다시 카메라를 잡았고,
여러 선생님들을 만났다고 합니다.
한 자리에 모였던 사진가들은 그녀의 작품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황망해하던 중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늙고 병들어 겨울나무 마냥 앙상하고 쇠잔해진 어머니가 곁에 계셨습니다.”
떠나버린 아버지를 한 평생 기다리던 여인,
자식들 뒷바라지로 고생만 하던 어머니의 인생이 어느새 슬며시 흘러가 버렸다.
1920년 북녘 외딴 작은 섬에서 나서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뭍으로 왔으나,
이제 늙고 병들어 다시 섬처럼 홀로 방안에 갇혀버린 어머니였다.
한설희 씨는 그 어머니의 남은 날들을,
일상의 여정들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사진을 전공하지도 사진가라는 타이틀을 이름 앞에 둔 삶도 아니었지만,
1979년부터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는 등
사진이 좋아서 사진을 자신의 일상 중심에 세우려 노력해온 그녀였다.
신도시 판교의 여러 면면을 기록하는 등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을 해오던 중이었는데,
홀로 된 어머니를 보살피면서 자신이 하지 않으면 누구도 기록하지 않을
더 절박한 다큐멘터리가 바로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진에 이해가 없으신 데다 움직이지 않고 좁은 방안에 거의 누워계셔서
다른 모습을 찍을 수 없었다는 점이 아쉬웠어요.
하지만, 어머니와 정서적인 공감을 이루어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와 정서적 공감을 이룬 시간들이 고스란히 사진으로 쌓였고,
그 사진들은 우리나라 최초로 사진가들이 재정한 상인 <온빛사진상>의 심사를 맡은
여러 사진가들과 참가자들과도 깊은 공감을 이루었다.
한설희의 <노모(老母)>가 제1회 온빛사진상 초대 수상작이 된 것이다.
“개인적인 주제인데다 제 나이도 많아서,
선정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더 열심히 하라는 격려로 여기며,
다큐멘터리 사진 중에서도
기록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구현하는 사진에 지향점을 두고,
사진을 지속해나가겠습니다."
온빛사진상 수상과 함께 이름 앞에 사진가라는 호칭이 자연스러워진 한설희.
‘따뜻한 빛’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는 온빛처럼,
따스한 공감이 전시장에 가득할 것이다.
[옮긴글]
[작가 노트]
아! 그때 미대를 갔어야 했는데....
이런 생각을 살아오면서 수없이 하였습니다.
반대한다고 그렇게 쉽게 집어치우다니....
아이를 낳고 아이 사진을 찍어준다고 카메라를 처음 들었었습니다.
기회가 와 한 사진가에게 짧은 시간 사사하게 되면서
사진이 주는 매력과 짜릿함을 맛보았습니다.
눈앞의 뿌연 안개가 걷히면서 사물들이 뚜렷해지는 그런 경험들을 그때 하였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 사진에 대한 첫사랑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당시 저를 둘러싼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사진은 첫사랑의 아픈 상처로 남아
애써 외면하고 보려하지 않는,
카메라 자체도 없는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몇 년 전, 가까운 친구가 사진을 공부하였습니다.
만나면 듣곤 하는 사진이야기에
애써 꾹꾹 눌러 놓았던 갈망이 슬며시 일어났습니다.
다시 할 수 있을까,
감성이 메마르고 나이도 많은 지금도 무언가를 느끼고 할 수 있을까,
회의가 일고 도무지 자신이 없었지만 하기로 했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잘 못하더라도 그냥 사진이 좋으니 하는데 까지 해보자.
그런 마음으로 손자뻘 학생들 사이에서 최연장자로 다시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젊은이들 틈에서 부닥거리며 굳은 머리로 숙제도 하고 시험도 치루면서...
아직 마음속에 간직했던 사진에 대한 불꽃의 씨가 완전히 사그라지지 않고
점점 따스하게 밝아오고 있음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