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안 돼. 말콤 박사가 귀신이었다니!
역사에 길이 남을 반전의 시작이었다. 귀신을 본다는 소년, 콜을 영화 내내 치료하던 말콤 박사가 사실은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는 결말. 그건 아직도 온몸에 짜릿한 충격을 안겨 준다. 그뿐인가, 요즘같이 복잡한 반전이 유행하는 시대에도 툭하면 <식스 센스>급 반전이란 대명사로 사람들 입에 곧잘 오르내리곤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 제6장에서 ‘반전은 비극의 가장 강력한 정서적 호소력의 수단’이라고 말하고 있다. 기원전 300년대를 살던 사람들도 그 묘미를 알았다는 것이니 어쩌면 반전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기대치에 도달하게 해 줄 고도의 장치일지도 모른다.
말도 안 돼. 그녀가 유방암에 걸렸다니!
조용한 밤에 날아든 소식이었다. 그녀는 나와 나이도 비슷하고, 똑같이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내게 이 상황은 전혀 남 일 같지 않았다. 그녀의 인생에 찾아 든 절대 반갑지 않은 반전. 그 이야기는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전혀 상상도 못 했던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암은 이미 양쪽 가슴 그리고 림프샘으로까지 번져 있었고 속히 치료를 시작해야 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었다.
다음날 당장 찾아간 내 앞에서 그녀는 울며 말했다. 너무 외로워. ‘아프다’, ‘믿을 수 없다’도 아니고 ‘외롭다’라니. 차라리 아프다고 했으면 더 나았을까. 그녀의 말에 한동안 연락을 하지 못했던 나 자신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졌다. 마치 <수단의 굶주린 소녀>라는 사진을 찍어 퓰리처상을 받았던 케빈 카터처럼 인간성이란 심판대에 올라선 것만 같았다.
부모님과 아이들 때문에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동네를 몇 바퀴씩 돌며 울었단다. 남편은 고단했던 그녀의 삶을 누구보다 더 잘 알기에 미안하단 말 밖엔 해 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를 꼭 끌어안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내 어깨에 기댄 그녀의 몸이 젖은 스펀지처럼 무겁게 가라앉았다. 위로의 말조차도 감히 입 밖으로 토해낼 수 없었다. 결국 어떤 위로를 건네도 모든 과정을 그녀 홀로 견뎌야 할 테니 외롭다던 그 말도 아주 틀린 건 아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항암 작용이 뛰어나다는 버섯을 구해 보내줬다. 그리고 잘 달여서 매일, 자주 마시라고 당부 문자도 보냈다. 그런데 여기엔 또 하나의 반전이 숨어 있다. 버섯은 사실 나무의 암이라는 것. 나무에 상처가 나면 그사이에 균이 들어가 기생하며 덩치를 키워간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숙주 나무는 버섯에 영양분을 다 빼앗기고 서서히 죽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무의 암인 버섯이 사람의 암을 낫게 하는 최고의 명약이라니 자연에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의 경계는 매우 희미한 듯하다.
난 이제 또 다른 반전을 기대한다. 높으신 분의 은혜와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도와 이 버섯의 효과가 그녀의 암세포를 완전히 없애주기를 바란다. 이제 발단을 지나 전개로 넘어가는 이 이야기에 우리의 바람이라는 최대의 기대치에 도달하게 해 줄 고도의 장치를 기다린다.
몇 년이 지난 시간 속에서 그녀와 함께 마주 보고 있는 상상을 했다. 과연 이 이야기는 <식스 센스>급 반전에 성공했을까? 그녀의 웃는 얼굴을 보아하니 그 답을 알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