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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左議政兼領經筵・監春秋館事・行崇政大夫議政府右贊成・兼知經筵・判義禁府事權公行狀
譯註․講讀 : 權甲鉉
公諱橃, 字仲虛, 安東人. 高麗侍中幸之後. 世爲著姓. 高祖諱厚, 監務. 曾祖諱啓經, 橫城縣監. 祖諱琨, 龍驤衞副護軍. 護軍生諱士彬, 成均生員, 是爲公皇考. 妣坡平尹氏, 司宰監主簿塘之女.
공의 휘는 벌(橃)이며, 자는 중허(仲虛)요, 안동인(安東人)이다. 고려의 시중(侍中)인 행(幸)의 후손으로서 대대로 이름 난 성(姓)이 되었다. 고조의 휘는 후(厚)이니 감무(監務)였고, 증조의 휘는 계경(啓經)이니 횡성현감(橫城縣監)이었다. 조부의 휘는 곤(琨)이니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이었다. 호군이 사빈(士彬)을 낳으니, 성균생원(成均生員)으로, 이 분이 공의 아버지이다. 어머니는 파평윤씨(坡平尹氏)인데 사제감주부 윤당(尹塘)의 따님이다.
公生於成化戊戌十一月日. 自在髫齔, 岐嶷異凡兒. 其文義夙達, 占聯屬對, 語輒驚人. 稍長, 文譽蔚然, 丙辰, 中進士. 弘治甲子, 燕山試舉人, 公策得中. 旣拆號, 考官始覺卷中有“處”字, 啓請去之. 先是, 燕山怒中官金處善直諫而殺之. 命中外文字, 不得用“處”“善”字故也.
공은 성화(成化) 무술년(1478, 성종9) 11월 어느 날에 출생하였는데, 어릴 때부터 숙성하여 보통 아이와는 달랐다. 문의(文義)를 일찍부터 알아서 문장을 짓거나 대구(對句)를 맞출 때 번번이 사람을 놀라게 하였고, 조금 자라서는 문장으로서 이름이 높았다. 병진년(1496, 연산군2)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고, 홍치(弘治) 갑자년(1504)에 연산주(燕山主)가 과거 보는 사람을 시험하여 공의 책문[策]이 합격되었는데, 이미 번호를 개탁(開拆)한 다음에야 비로소 고시관이 책문 중에 처(處) 자가 있음을 알고, 계청(啓請)하여 제거(除去)하였다. 이는 앞서 연산(燕山)이 중관(中官) 김처선(金處善)의 직간(直諫)에 노하여 처선을 죽이고 전국에 처선(處善)이란 글자를 쓰지 못하게 명하였던 까닭이었다.
*髫[다박머리 초], 齔[이 갈 츤], 髫齔(초츤):일곱이나 여덟 살의 어린 때를 이르는 말. ㅇ岐嶷(기억):총명한 모양. 또는 어린 나이에 총명하고 뛰어남. ㅇ屬對(촉대):시문(詩文)의 대귀를 지음. 또는 대귀를 이르는 말. ㅇ輒[문득 첩]:번번이. ㅇ聞譽(문예):명성을 들음. 널리 알려진 훌륭한 명성. ㅇ文譽(문예):글을 잘 한다는 명성. 문성(文聲). ㅇ拆號(탁호):시권(試卷)에서 성명을 가리기 위하여 밀봉한 뒤 번호를 매긴 곳을 뜯음. ㅇ考官(고관):시험 감독관. ㅇ擧人(거인):인재를 추천하거나 선발함. 또는 그러한 인재. ㅇ策(책):정치상의 계책을 묻는 과거(科擧) 과목. ㅇ得中(득중):과거에 급제함. ㅇ中官(중관):내시(內侍).환관(宦官). ㅇ啓請(계청):주청(奏請). 임금에게 아뢰어 청함. ㅇ中外(중외):조정의 안과 밖. 중앙과 지방.
正德丙寅, 中宗即位. 明年丁卯, 公登第. 補承文院副正字, 薦爲藝文館檢閱. 戊辰, 由待教遷爲承政院注書. 庚午, 陞弘文館副修撰․知製教, 拜司諫院正言․禮曹佐郞. 癸酉, 自弘文館副校理, 歷司憲府持平․兵曹正郞, 復爲持平
정덕(正德) 병인년(1506, 중종1)에 중종(中宗)이 즉위하였다. 다음 해 정묘년(1507)에 공이 과거에 합격하여 승문원부정자에 보직되었고, 추천으로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무진년에 대교를 거쳐 승문원주서로 옮겼고, 경오년(1510)에 홍문관 부수찬 지제교에 승진하고, 사간원정언과 예조좌랑이 되었다. 계유년(1513)에 홍문관 부교리로부터 사헌부지평, 병조정랑을 지내고, 다시 지평이 되었다.
政府奴鄭莫介者上變, 告辛允武․朴永文謀逆, 授堂上階. 時公將辭去覲親, 與同僚議當啓奪. 及還朝, 知其議中寢, 詣闕駁諸僚, 仍啓曰 “鄭莫介已知永文・允武之謀, 則當無留即發, 而累日乃告, 不伏其辜,幸矣. 至授重加, 請奪其職.” 上從之, 時論快之.
의정부의 종 정막개(鄭莫介)란 자가 신윤무(辛允武)와 박영문(朴永文)이 모역(謀逆)한다고 고발하여 당상관(堂上官)의 품계(品階)를 주었다. 이때 공이 장차 하직하고 돌아가 근친하려던 중이었는데, 동료들과 함께 임금께 아뢰어 품계를 삭탈(削奪)해야 한다고 의논하였다. 그 후 조정에 돌아와서 그 의논이 중지되었음을 알고, 대궐에 나아가서 모든 동료를 논박(論駁)하며 이어 아뢰기를, “정막개는 이미 박영문과 신윤무의 모의를 알았으면 마땅히 지체(遲滯)없이 곧 고발했어야 했습니다. 여러 날 만에 고발하였으니 그 죄를 받지 않은 것만도 요행(僥倖)인데, 중한 관직을 주기에 이르렀으니, 그 관직을 삭탈하소서” 하여 임금이 그 말을 따랐다. 당시 여론도 이 일을 시원하게 여겼다.
*上變(상변(:모반 따위의 변고(變故)를 조정에 보고함. ㅇ辭去(사거):작별을 고하고 떠나감. ㅇ覲親(근친):양친(兩親)을 문안함. ㅇ中寢(중침):중파(中罷). 하던 일을 중간에 그만둠. ㅇ詣闕(예궐):입궐(入闕). 조정에 나아감. ㅇ駁[얼룩말 박]:논박(論駁)하다. ㅇ辜[허물 고], 伏辜(복고):죄를 자복(自服)함. 또는 죄를 자복하고 스스로 죽음. ㅇ時論(시론):당시의 의론(議論). 한 시대의 여론.
甲戌, 爲吏曹正郞, 俄以事送西. 復戶曹正郞. 以親老求爲永川郡守. 丁丑, 陞朝奉大夫. 十月, 以司憲掌令召還, 轉議政府舍人, 復掌令. 戊寅, 以成均司成, 階通政, 拜承政院右副承旨兼經筵參贊官․春秋館修撰官.
갑술년(1514)에 이조 정랑이 되었고 얼마 뒤 일이 있어서 서반(西班)으로 보내졌다가 다시 호조 정랑이 되었다. 어버이가 연로(年老)하다는 것으로 청하여 영천군수(永川郡守)가 되었다. 정축년(1517)에 조봉대부(朝奉大夫)에 오르고, 10월에 사헌부 장령(掌令)으로 소환되었다. 의정부 사인(舍人)으로 옮겼다가 다시 장령(掌令)이 되었다. 무인년(1518)에 성균사성(成均司成)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승정원우부승지(承政院右副承旨)가 되었고,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 춘추관수찬관(春秋館修撰官)을 겸직하였다.
當公在成均, 一日, 有流矢中大成殿棟上, 上命館官皆下獄, 公亦在其中. 適上親御政, 特有政院之命, 政畢, 吏曹判書李長坤前啓曰 “權橃爲承旨, 甚合物情.” 累轉至左承旨.
공이 성균사성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느닷없이 화살이 대성전(大成殿) 기둥 위에 꽂혔다. 임금이 성균관의 관원을 모두 하옥(下獄)시키도록 명하였는데, 공도 그중에 있었다. 마침 임금이 친히 정사를 하게 되어, 특히 정원(政院)에 임관하라는 명이 있게 되었다. 정사를 마치자 이조판서 이장곤(李長坤)이 나와서 아뢰기를, “권벌이 승지가 된 것은 여론에 매우 부합합니다” 하였다. 여러 번 옮겨서 좌승지에 이르렀다.
*流矢(유시):①목표에 맞지 않고 빗나간 화살. ②누가 쏘았는지 모르는 화살. 비시(飛矢). 유전(流箭). ㅇ館官(관관):조선 시대, 성균관의 벼슬아치를 이르던 말. ㅇ御政(어정):황이 집정하는 정치를 미화(美化)한 말. ㅇ政院(정원):조선 시대, 임금의 명령을 전달하고 여러 가지 사항들을 임금에게 보고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 ㅇ物情(물정):세상의 형편이나 인심.
九月, 儒生殿講畢. 公進曰 “今日殿講論仁, 仁莫大於繼絶世. 因論魯山․燕山不可不立後.” 與右承旨金正國, 同辭極論曰 “恭順公芳蕃․昭悼公芳碩俱無嗣, 世宗大王, 命以廣平大君璵爲恭順公後, 以錦城大君瑜爲昭悼公後, 至今頌世宗仁親之厚. 昔, 周武王立武庚, 以存商祀, 我國家設崇義殿, 使不絶麗祀. 武王之於商, 我國之於麗, 猶不忍絶祀, 況魯山, 祖宗懿親, 燕山, 殿下至親, 亦君臨一時, 雖無道獲戾於宗廟, 而永絶不祀, 甚損殿下之仁, 請無留難.” 時衆議紛紜, 竟未舉行.
9월에 유생 전강(儒生殿講)이 끝나자, 공이 나와서 말하기를, “오늘 전강에서 인(仁)을 논하였으니, 인(仁)은 끊어진 세대를 이어 주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습니다” 하고, 이에 노산군(魯山君)과 연산군(燕山君)의 후사를 세워야 한다는 것에 대해 우승지 김정국(金正國)과 더불어 극론(極論)하기를, “공순공(恭順公) 방번(芳蕃)과 소도공(昭悼公) 방석(芳碩)이 모두 후사(後嗣)가 없으므로, 세종대왕이 광평대군(廣平大君) 여(璵)를 공순공의 후사로 삼고, 금성대군(錦城大君) 유(瑜)를 소도공의 후사로 삼아, 지금까지 세종의 인(仁)하고 친(親)함이 두터움을 칭송합니다. 옛날 주 무왕(周武王)은 무경(武庚)을 세워서 상(商)나라의 제사를 보존하였고, 우리 국가는 숭의전(崇義殿)을 설치하여 고려의 제사를 끊지 않았습니다. 무왕이 상나라에 대하여, 또 우리나라가 고려에 대하여도 차마 제사를 끊지 못하였는데, 더구나 노산은 조종(祖宗)의 근친이요, 연산은 전하의 지친(至親)이면서 또 한때 임금으로 군림(君臨)하였으니, 더 말할 게 있겠습니까. 비록 무도(無道)하여 종묘(宗廟)의 죄를 얻었으나, 영원히 후사를 끊고 제사하지 않는 것은 매우 전하의 인(仁)에 손상이 됩니다. 청컨대 어렵게 생각하여 주저(躊躇)하지 마소서” 하였다. 이때에 중론(衆論)이 분분(紛紛)하여 결국 거행되지는 못하였다.
*君臨(군림):임금이 되어 나라를 다스림. ㅇ獲戾(획려):죄를 얻음. 죄를 지음. ㅇ留難(유난):고의(故意)로 트집을 잡음. ㅇ紛紜(분운):많고 성한 모양. 복잡하고 어지러운 모양.
十一月, 爲都承旨兼藝文直提學, 都承旨例爲內醫院提調, 公啓曰 “承旨朴英通醫藥, 請以醫提授英.” 因固辭不居. 己卯二月, 陞嘉善大夫禮曹參判. 四月, 同知中樞府事. 六月, 出爲三陟府使. 公見時事多故, 深以爲憂, 爲諸公力言之, 諸公不能從, 求外補以去. 十二月, 北門之禍作, 猶以公爲其黨, 罷歸田里者十有五年.
11월에 도승지 겸 예문관직제학이 되었다. 도승지는 으레 내의원제조(內醫院提調)가 되었는데 공이 아뢰기를, “승지 박영(朴英)이 의약(醫藥)에 정통하니, 청컨대 영(英)에게 내의원제조(內醫院提調)를 제수(除授)하소서” 하고는, 굳이 사양하고 출사(出仕)하지 않았다. 기묘년(1519, 중종14) 2월에 가선대부 예조참판에 승진되고, 4월에 동지중추부사가 되었으며, 6월에 외직(外職)으로 나가 삼척부사(三陟府使)가 되었다. 공이 정세(政勢)가 염려스러움을 보고 깊이 근심하여 여러 사람을 위하여 힘써 말하였으나, 그들이 잘 따르지 않으므로 외직에 보임(補任)되기를 청하여서 나간 것이다. 그런데도 12월에 북문(北門 신무문(神武門))의 화(禍)가 일어났는데, 공을 그 당(黨)이라 하여 파면(罷免)하였으므로 시골에 돌아가 15년이나 있었다.
*罷歸(파귀):파면하여 돌려보냄. 또는 면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감. ㅇ田里(전리):고향 마을. 형리(鄕里).
至嘉靖癸巳夏, 中廟命收敘, 除密陽府使. 乙未, 丁外憂. 丁酉, 服闋. 拜漢城府左尹. 戊戌, 出爲慶尚道觀察使. 陛辭, 上教曰 “嶺南巨藩, 近因年荒, 流亡相繼. 卿其務措安集之方.” 公啓曰 “臣庶竭駑鈍, 死而後已. 然爲治之本, 在朝廷, 朝廷之本, 在人君一心. 近來奢侈成風, 中外皆然. 災異不息. 上若崇尚節儉, 遠方亦自承化, 凶年不能爲之害. 《書》曰 ‘四海困窮, 天祿永終’. 可不戒哉?”
가정(嘉靖) 계사년(1533) 여름에 중종이 서용(敍用)하라고 명하여 밀양 부사(密陽府使)에 제수되었다. 을미년(1535)에 부친상을 당하였고, 정유년(1537)에 복이 끝나서 한성부 좌윤이 되고, 무술년(1538)에 외직으로 나아가 경상도 관찰사가 되었다. 숙배(肅拜)할 때, 상이 하교하기를, “영남은 큰 지방인데, 근래에 흉년으로 인하여 유랑민이 줄을 이었으니, 편안하게 사는 방도를 경(卿)께서 힘써 조치(措置)하라” 하니, 공이 아뢰기를, “부족하지만 죽을 때까지 온 힘을 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다스리는 근본은 조정에 있고, 조정의 근본은 임금의 마음에 달렸습니다. 근래 서울과 지방에서 사치스러운 풍조가 일어나서 재앙(災殃)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상께서 만약 절약과 검소를 숭상하면 먼 지방 백성들 역시 교화(敎化)를 입어서 흉년에도 해(害)가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서경》에 이르기를, ‘온 세상이 곤궁하면 임금의 지위[天祿]도 영영 끝난다’ 하였으니, 어찌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收敍(수서):임용(任用). 서용(敍用):조선 때, 죄를 지어 면관(免官)되었던 사람을 다시 등용하던 일. ㅇ外憂(외우):아버지의 상(喪)이나 승중조부(承重祖父)의 상(喪). ㅇ服闋(복결):거상(居喪) 기간이 끝나 상복을 벗음. ㅇ陛辭(폐사):관원이 조정을 떠나면서 황제에게 하직 인사를 드리는 일. ㅇ藩[덮을 번], ㅇ年荒(연황):곡식이 흉작임. 흉년이 듦. ㅇ流亡(유망):고향이나 고국에서 도망하여 객지를 떠돌아다님. 도망하여 객지에서 떠도는 사람. ㅇ安集(안집):안정시켜서 화목하게 함. ㅇ成風(성풍):풍습을 이룸. 습관이 됨. ㅇ災異(재이):천재지이(天災地異). 천재지변(天災地變). 자연재해나 자연계의 이상 현상. ㅇ承化(승화):천운(天運)을 받들어 교화(敎化)를 폄.
未幾, 以事遞, 還同知中樞, 轉刑曹參判, 兼五衞都摠府副摠管, 累遷兵曹參判. 六月, 陞資憲大夫漢城府判尹. 七月, 遷知樞. 以改宗系奏請使赴京. 庚子正月, 還判尹兼同知春秋館事. 二月, 奉勑回, 勑曰 “爾國數以宗系來奏, 祖宗俱有明旨, 但高皇帝祖訓, 萬世不刊. 他日續纂, 宜詳錄爾辭, 可無遺慮.” 於是, 賞加正憲大夫, 賜土田臧獲, 公懇辭, 不允. 四月, 知春秋館兼世子右賓客. 辛丑, 歷議政府左參贊․禮曹判書兼知義禁府事, 餘如故.
얼마 안 되어 어떤 일이 있어서 체차(遞差)되어 도로 동지중추부사가 되었다가, 형조참판 겸 오위도총부부총관으로 옮겼으며, 여러 번 옮겨 병조참판이 되었다. 6월에 자헌대부 한성부 판윤으로 승진되었다. 7월에 지중추부사로 옮겼고 개종계주청사(改宗系奏請使)로 명나라 서울에 갔다. 경자년(1540) 1월에 도로 판윤 겸 동지춘추관사가 되었다. 2월에 조칙을 받들고 돌아오니, 그 조칙에 “그대의 나라가 자주 종계 때문에 와서 주청하니, 조종(祖宗)은 다 분명히 고쳐 주겠다는 말씀이 있었으나, 다만 고황제(高皇帝)의 조훈(祖訓)은 영원히 고칠 수 없는 것이므로 뒷날에 속찬(續纂)할 때 그대의 말을 자세히 기록할 것이니,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였다. 이에 상(賞)으로 정헌대부(正憲大夫)를 더해 주고 전답과 노비를 하사하니, 공이 간절히 사양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4월에 지춘추관 겸 세자우빈객이 되었다. 신축년(1541, 중종36)에 의정부 좌참찬을 역임하고 예조판서 겸 지의금부사(禮曹判書兼知義禁府事)를 지냈으며, 다른 벼슬은 전과 같았다.
*未幾(미기):동안이 얼마 길지 않음. ㅇ遞[갈마들 체], ㅇ宗系(종계):종족의 세계(世系). 가계(家系). ㅇ奏請(주청):임금께 아뢰어 청(請)함. 계청(啓請). ㅇ奉勑(봉칙):칙명을 받듦. 勑은 勅・敕으로도 쓴다. ㅇ祖宗(조종):제왕의 조상. ㅇ明旨(명지):제왕의 생각이나 뜻을 높여 이르는 말. ㅇ고황제(高皇帝):명(明) 나라 태조(太祖) 주원장(朱元璋)을 가리킨다. ㅇ祖訓(조훈):조상이 남긴 훈계. ㅇ遺慮(유려):다른 생각. 여념(餘念). ㅇ臧獲(장획):노비를 천대하여 이르는 칭호. 또는 노예를 두루 이르는 말. ㅇ懇辭(간사):간곡하게 사양함. ㅇ不允(불윤):임금이 신하의 청(請)을 허락하지 않음. ㅇ如故(여고):예나 다름없음.
壬寅, 世宗皇帝有“宮婢之變”. 朝廷議遣使陳慰. 公於經席,進曰 “天子以萬乘之尊,四海之主, 一朝不虞之禍, 出於賤御. 凡爲人君, 秒忽不戒, 危禍所係. 殿下勿以上國之事而尋常之, 恆加省念.” 辭甚觸犯, 同列皆縮頸而退.
임인년(1542)에 세종황제(世宗皇帝)가 궁비(宮婢)의 변을 당했으므로, 조정이 사신을 보내 위문할 것을 의논하였다. 공이 경연 석상에서 진언하기를, “만승(萬乘)의 존위(尊位)이자 사해(四海)의 주장(主將)이신 천자께서 하루아침에 불칙한 화를 당하신 것이 천한 궁비로부터 나왔으니, 무릇 임금 된 이는 조금이라도 소홀하여 경계하지 않으면 위태로운 화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상국의 일을 심상(尋常)하게 여기지 말고, 항상 더욱 살피고 생각하소서” 하였다. 말이 매우 거슬렸으므로 같은 반열에 있는 자들이 모두 두려워 목을 움츠리고 물러났다.
*虞[헤아릴 우], 不虞(불우):미처 생각하지 못함. 뜻밖에 일어나는 일. ㅇ尋常(심상):보통. 평범함. ㅇ省念(성념):돌이켜 생각함.
甲辰八月, 兼知經筵, 俄復左參贊. 乙巳春, 有海舶樹旗幟,過全羅界, 水使梁允義遣兵討殺. 事聞, 廷議慮其爲上國漂流船, 將拿推允義擅殺之故.
갑진년(1544) 8월에 지경연사(知經筵事)를 겸하였다가, 곧 다시 좌참찬(左參贊)이 되었다. 을사년(1545, 인종1) 봄에 어떤 배가 깃발을 세우고 전라도 해안을 지나므로 수사(水使) 양윤의(梁允義)가 군사를 보내어 토벌하여 죽였다. 일이 보고되자, 조정에서는 그 배가 중국의 표류선(漂流船)이 아닌가 염려하여, 양윤의를 의금부에 잡아다 함부로 죽인 죄를 추문(推問)하려 하였다.
*海舶(해박):해양(海洋)을 항해하는 선박. 외국 선박을 이르는 말. ㅇ俄[갑자기 아]:잠깐. ㅇ旗幟(기치):예전에, 군대에서 쓰던 깃발. ㅇ上國(상국):예전에 작은 나라의 조공을 받던 큰 나라. 여기서는 중국 명나라를 가리킨다. ㅇ拿推(나추):나추(拿追).잡아다 추궁(追窮)함. ㅇ擅[멋대로 천], 擅殺(천살):멋대로 사람을 죽임.
時二南頗有邊釁. 公急詣闕啓曰 “邊境不可須臾空鎭, 今拿推允義, 其間脫有警急, 誰可責任? 不如出他將,交代後拿推.” 仁廟留難.
당시 영남(嶺南)과 호남(湖南)의 변경(邊境)에서는 꽤 우려(憂慮)할만한 사태가 있었다. 공이 급히 대궐에 나아가서 아뢰기를, “변경(邊境)은 잠시라도 진(鎭)을 비워서는 안 됩니다. 지금 양윤의(梁允義)를 잡아다 추문(推問)하는 도중에 만약 급한 경보(警報)라도 있게 되면 누가 임무를 다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장수를 보내어 교체한 후에 잡아다 추문(推問)하는 것만 못합니다” 하니, 인종(仁宗)이 주저(躊躇)하며 결단(決斷)을 내리지 못하였다.
*二南(이남):여기서는 영남(嶺南)과 호남(湖南)을 가리킨다. ㅇ頗[자못 파]:약간. 매우. 몹시, ㅇ釁[피 바를 흔]:틈. 邊釁(변흔):변경 지역의 분쟁. ㅇ詣闕(예궐):대궐에 들어감. 입궐(入闕). ㅇ須臾(수유):잠시 동안. ㅇ脫[벗을 탈]:만약. 가령. ㅇ警急(경급):위급함. 경계해야할 갑작스러운 사고. ㅇ유난(留難):어렵게 여겨 결정을 유보(留保)함.
憲府啓 “權橃憂慮國事, 待明,來啓所言, 正中軍機, 請即俞允.” 從之. 五月, 陞崇政大夫議政府右贊成兼判義禁府·知經筵事.
사헌부에서 아뢰기를, “권벌(權橃)이 국사(國事)를 우려(憂慮)하여서 날이 밝자마자 달려와서 아뢴 말은 바로 군사 기밀에 속하니, 청컨대 즉시 허락하소서” 하므로 이에 따랐다. 5월에 숭정대부 의정부우찬성 겸 판의금부 지경연사(崇政大夫議政府右贊成兼判義禁府知經筵事)에 올랐다.
*憂慮(우려):근심하거나 걱정함. ㅇ待明(대명):내일을 기다림. 대명일(待明日). ㅇ軍機(군기):군대에 관한 일. 전쟁을 이른다. 군사상의 대책이나 책략. ㅇ兪[점점 유]:대답하다. 兪允(유윤):임금의 승낙.
七月朔, 仁廟昇遐, 明宗幼沖. 以三公及公爲院相, 更直政院, 參斷機務, 命下, 公瞿然曰 “以我當此任, 如蚊負山, 柰國事何?” 八月, 李芑·鄭順朋·許磁·林百齡詣政院, 將啓柳灌·尹任·柳仁淑等罪, 公與之議, 不合.
7월 1일에 인종(仁宗)이 승하(昇遐)하였다. 명종(明宗)이 아직 어려서 삼공(三公:三政丞)과 공(公)을 원상(院相)으로 삼고, 번갈아 정원(政院)에 숙직(宿直)하면서 중요한 일에 참여하여 결단하게 하였다. 명을 내리니, 공이 놀라서 말하기를, “나에게 이 책임을 맡기는 것은 모기에게 산을 지우는 것과 같으니, 국사(國事)를 어찌할 것인가?” 하였다. 8월에 이기(李芑), 정순붕(鄭順朋), 허자(許磁), 임백령(林百齡)이 정원에 나아가서 장차 유관(柳灌), 윤임(尹任), 유인숙(柳仁淑) 등의 죄를 아뢰려 하니, 공은 이들과 함께 의논이 맞지 않았다.
*幼沖(유충):유치(幼稚).나이가 어림. ㅇ更直(경직):순번대로 당직을 섬. ㅇ機務(기무):기밀에 속하는 중요한 사무(事務). 명하 ㅇ瞿然(구연):놀라며 쳐다보는 모양. 놀라며 두려워하는 모양. ㅇ蚊[모기 문], ㅇ奈何(내하):내하(柰何), 어찌하겠는가.
俄而文定王后御忠順堂, 召六卿以上入議. 公啓曰 “物論臣不得聞, 前日大小尹之說, 不知何自而出也. 然往者睿宗無嗣, 月山當次, 貞熹王后越次而援立成宗,年甫十三矣. 猶終始帖然無事. 況今主上, 乃仁廟嫡弟, 旣已正位, 豈復有他虞乎?
얼마 후 문정왕후(文定王后)가 충순당(忠順堂)에 거둥하여 6경(卿) 이상을 불러들여 의논하게 하니, 공이 아뢰기를, “신은 요즘 여론(輿論)을 듣지 못하여, 대윤(大尹)ㆍ소윤(小尹)이란 말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지난날 예종(睿宗)이 후사(後嗣)가 없었는데 월산군(月山君)이 다음 왕위 계승 서열에 해당했습니다. 정희왕후(貞熹王后)가 서열을 뛰어넘어 성종(成宗)을 끌어다 세웠으니, 나이가 겨우 13세였으나, 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편안하여 일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이제 주상께서는 인종의 적제(嫡弟)로 이미 왕위에 나아갔으니 무슨 다른 염려가 있겠습니까?
*六卿(육경):육조(六曹)의 판서(判書). ㅇ物論(물론):여론(輿論). ㅇ往者(왕자):지난번. ㅇ援立(원립):도와서 세움. 정실(正室) 부인으로 세움. ㅇ帖[표제 첩]:안정되다.평정되다. 帖然(첩연):편안함. 안정됨.
且今王子君無結黨, 大臣無執權, 誰敢有陰邪之心? 尹任若有邪心, 死且無惜. 臣意竊謂方此初政, 務得人心, 每事當以大公至正,行之. 中宗之始, 大臣不能善導, 以李顆爲反, 盧永孫取堂上, 自是, 告變者多. 中宗後乃知其故, 盡放連坐人. 一國咸服而人心定. 此今日之所當戒也.”
또 지금은 왕자군(王子君) 중에 도당(徒黨)을 결성한 사람도 없고, 대신(大臣)으로서 집권한 자도 없으니, 누가 감히 음험(陰險)하고 사특(邪慝)한 마음을 가지겠습니까. 윤임이 만약 사특한 마음이 있었다면 죽어도 애석(哀惜)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하건대, 신은 바야흐로 즉위 후 초기의 정사(政事)에서는 인심을 얻는 데 힘써서 매사를 마땅히 공명정대(公明正大)하게 행하여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중종의 초기에 대신이 제대로 선도(善導)하지 못하여 이과(李顆)가 반역한다고 고발한 노영손(盧永孫)을 당상(堂上)으로 삼았습니다. 이로부터 반역(叛逆)을 고발하는 자가 많았으므로, 중종(中宗)이 뒤에 그 연고를 알고, 연좌된 사람을 다 석방하여 보내어, 온 나라가 모두 감복하고 인심이 안정되었으니, 이것이 오늘날 마땅히 경계할 일입니다”라고 하였다.
*陰邪(음사):음험하고 사악함. ㅇ初政(초정):제왕(帝王)이 되어 처음으로 집정(執政)함. ㅇ고변(告變):변고의 발생을 보고함. ㅇ連坐(연좌):남이 저지른 범죄에 연관되어 처벌을 받음.
是日, 尹任遠竄, 灌遞相, 仁淑罷. 翌日, 轉公爲兵曹判書. 于時, 獻納白仁傑擊臺諫不能論執. 密旨命下仁傑于禁獄鞫治, 加任竄絶島, 二柳付處.이날에 윤임(尹任)은 멀리 유배되었고 유관(柳灌)은 재상직에서 체차(遞差)되었으며, 유인숙(柳仁淑)은 파면되었다. 이튿날 공을 병조판서로 삼았다. 이때에 헌납(獻納) 백인걸(白仁傑)이 대간(臺諫)들이 제대로 논집(論執)하지 못한다고 배격하니, 임금이 밀지(密旨)로 백인걸을 의금부(義禁府)의 옥에 내려 국문하여 치죄(治罪)하게 하고, 윤임에게는 외딴섬으로 귀양 가는 것을 더했으며, 두 유[二柳 유관ㆍ유인숙]는 중도부처(中道付處) 시켰다.
*竄[숨을 찬], 遠竄(원찬):원배(遠配).멀리 귀양 보냄. ㅇ遞[갈마들 체], ㅇ遞相(체상):교대로. 번갈아 듦. ㅇ臺諫(대간):조선 때, 사헌부·사간원의 벼슬의 총칭. ㅇ論執(논집):논술하여 고집함.
公復獨詣闕,書啓曰 “自先朝末, 上天累降大災, 近又大風, 連雨蒙昧. 臣恐天意或有所感而然, 甚可畏也. 且幼主即位未幾, 遠竄大臣, 人皆莫測其端. 又囚諫官, 誰敢冒死而進言乎? 臣夜不能寐, 知死敢啓.
공이 또 홀로 대궐에 나아가서 글을 올려 아뢰기를, “선조(先祖) 말년부터 하늘이 여러 번 큰 재앙을 내렸고, 근래에는 또 큰 바람에 비까지 계속 내려 천지가 어두워졌으니, 신은 아마 하늘의 뜻이 혹 감촉한 바가 있어서 그런 것인가 싶으니 매우 두렵습니다. 또 어린 임금으로 왕위에 오른 지 얼마 안 되어 대신을 멀리 귀양 보내니 사람들이 모두 그 단서를 헤아리지 못하고, 또 간관을 가두었으니 누가 감히 죽음을 무릅쓰고 진언(進言)하겠습니까? 신이 밤에 잠을 잘 수 없어서 죽음을 무릅쓰고 감히 아룁니다.
*書啓(서계):하급 관청에서 상급 관청으로 올리는 서찰. ㅇ冒死(모사):죽음을 무릅씀.
尹任雖被重罪, 固不足惜, 臣切以王大妃於嗣王, 有母之道, 若因此憂傷弗豫, 豈不爲大累哉? 飛言自古有之, 古之明君, 不以此罪人. 柳灌本有腹病, 於朝堂每倚屏壁而坐, 旣無子息, 不敢辭退, 爲國而然也. 柳仁淑得上氣證, 今已有年.
윤임은 비록 중한 죄를 지었으니 애석하지 않으나, 신은 사왕(嗣王)은 왕대비(王大妃)를 어머니로서 섬겨야 하는 도가 있다고 생각하오니, 만약에 이로 인하여 근심하셔서 병이라도 나시면 어찌 큰 누(累)가 되지 않겠습니까? 떠도는 말은 예로부터 있었으나, 옛날의 밝은 임금은 이것으로 사람을 죄주지 않았습니다. 유관(柳灌)은 본래 복통(腹痛)이 있어서 조당(朝堂)에서도 늘 벽(壁)에 기대어 앉았으며, 자식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벼슬을 그만두고 물러가지 않는 것은 나라를 위해서 그런 것이었고, 유인숙(柳仁淑)은 상기증(上氣症)을 앓은 지 이미 여러 해나 되었습니다.
*嗣王(사왕):왕위를 이어받은 임금. ㅇ憂傷(우상):걱정하고 슬퍼함. ㅇ不豫(불예):편하지 않음. 제왕이 병석에 있음을 이르는 말. ㅇ飛言(비언):비어(飛語).유언비어(流言蜚(飛)語). 뜬소문. ㅇ朝堂(조당):조정(朝廷). ㅇ上氣(상기):숨을 헐떡임. 또는 천식(喘息).
此等老病儒生, 位極人臣, 豈有他心. 今若遠行得病而死, 人皆曰國殺之也. 願上平心察之, 廣問羣下, 情罪相稱, 則人心可鎭, 天變可弭矣.”
이처럼 늙고 병든 유생(儒生)들은 그 지위가 신하로서는 최상에 이르렀으니, 어찌 다른 마음이 있겠습니까? 이제 만약 멀리 귀양 가서 병을 얻어 죽게 되면 사람들은 모두 나라에서 죽였다고 할 것입니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널리 살피시고 뭇 신하들에게 물어 실정과 죄(罪)가 서로 맞게 하시면 인심을 진정(鎭靜)시킬 수 있고, 천변(天變)을 그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ㅇ遠行(원행):먼 길을 떠남. ㅇ群下(군하):많은 신하나 관리. ㅇ情罪(정죄):사정(事情)과 죄상(罪狀). ㅇ相稱(상칭):서로 걸맞음. 서로 부합함. ㅇ천변(天變):하늘에서 생기는 돌풍, 번개, 일식, 월식 등 자연 현상의 이변. ㅇ弭[활고자 미]:그치다.
又移書尹元衡, 舉“吾不西行,大禍不止”之語以責之. 會林百齡·許磁, 皆啓請於尹任罪目中去“宗社”二字, 順朋因是激怒, 乃上疏極言三人罪, 復於忠順堂引對, 公即謝罪徑退.
또 윤원형(尹元衡)에게 글을 보내어, “내가 서(西)로 가지 않으면 큰 화가 그치지 않는다”라고 한 말을 들어서 책망(責望)하였다. 때마침 임백령·허자가 모두 윤임의 죄목(罪目) 중에서 종사(宗社) 두 글자를 빼버릴 것을 주청(奏請)하였다. 정순붕(鄭順朋)이 이로 인해 격노(激怒)하여 마침내 글을 올려 세 사람의 죄에 대해 다시 충순당(忠順堂)에 불러 대변(對辯)하게 하니, 공은 곧 사죄(謝罪)하고 즉시 물러났다.
*移書(이서):편지를 보냄. ㅇ會[모일 회]:공교롭게도. 때마침. ㅇ啓請(계청):청하여 물음. 아뢰어 청함. 주청(奏請). ㅇ宗社(종사):종묘(宗廟)와 사직(社稷). 국가(國家). ㅇ極言(극언):바른 말로 간(諫)함. ㅇ引對(인대):군주가 신하를 불러서 묻고 답하는 일. ㅇ徑[지름길 경]:즉각. 바로.
於是, 三人皆以逆誅. 論功行賞, 公亦賜“推誠衞社弘濟保翼功臣”, 號“吉原君”.
이에 세 사람이 다 역적(逆賊)으로 주벌(誅伐)되자 논공행상(論功行賞)을 하였는데, 공에게도 역시 추성위사홍제보익공신(推誠衞社弘濟保翼功臣)을 내리고, 길원군(吉原君)에 봉하였다.
*誅[벨 주], 論功行賞(논공행상):공의 있고 없음, 작고 큼을 논해 그에 걸맞은 상을 줌.
已而順朋等啓, “權橃與臣等論議不同, 請削勳”. 十月, 兩司啓罷, 皆依允. 時都下洶懼. 女壻洪仁壽自外奔走來謁, 則公對書, 言色如平日. 少頃, 見人有來唁者, 然後始知其罷也.
얼마 뒤에 정순붕 등이 아뢰기를, “권벌은 신들과 함께 논의(論議)가 같지 않았으니, 공훈을 삭탈(削奪)하소서” 하자 10월에 양사(兩司)에서 파면하기를 아뢰어 모두 그대로 윤허하였다. 이때에 온 도성 안이 흉흉하고 두려워하였는데, 공의 사위 홍인수(洪仁壽)가 밖으로부터 달려와서 아뢰니, 공이 책을 보고 있었는데 말과 낯빛이 평상시와 같았다. 조금 후에 누가 와서 위로하는 말을 들은 후에야 비로소 파면(罷免)되었음을 알았다.
*已而(이이):뒤이어. 兩司(양사):사헌부와 사간원의 병칭. ㅇ依允(의윤):윤허(允許)함. 임금이 승낙함. ㅇ都下(도하):도읍. 수도. ㅇ洶[물살 세찰 흉], 懼[두려워할 구], 洶懼(흉구):두려워하여 술렁거림. ㅇ少頃(소경):잠시. 잠깐 동안. ㅇ唁[위문할 언].
丙午, 臺諫再論,奪告身. 丁未秋, 副提學鄭彦愨, 告良才驛壁無名謗言, 因而大加罪乙巳人. 公初命求禮縣付處, 俄移配泰川縣.
병오년(1546, 명종1)에 대간(臺諫)이 다시 논죄하여 고신(告身)을 삭탈하였다. 정미년(1547) 가을에 부제학 정언각(鄭彥慤)이 양재역(良才驛)의 벽에 있는 익명(匿名)의 비방하는 말을 고발하자, 이 때문에 을사사화 때 사람들에게 죄가 크게 더해졌다. 공은 처음에 구례현(求禮縣)에 부처(付處) 되도록 명해졌다가, 곧 태천현(泰川縣)으로 옮겨졌다.
*臺諫(대간):조선 때, 사헌부·사간원의 벼슬의 총칭. ㅇ告身(고신):직첩(職牒)의 별칭. 관원(官員)의 임관 사령장. ㅇ謗言(방언):원망하고 비난하는 말. 방어(謗語). 중상(中傷)하는 말. ㅇ加罪(가죄):죄에 죄가 더함.
押官到門, 公怡然就道, 謂鄕黨來訣者曰 “天恩罔極矣.” 進士琴元貞執公手, 不覺哭失聲, 公笑曰 “吾以子爲大丈夫矣. 何至是耶? 死生禍福, 天也. 其如天何?”
압송관(押送官)이 문에 이르자 공은 태연하게 떠나면서, 마을에서 와 이별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천은(天恩)이 망극하다”라고 하였다. 진사(進士) 금원정(琴元貞)이 공의 손을 잡고 자신도 모르게 흐느끼자, 공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나는 자네를 대장부라 여겼는데, 어찌 이러는가? 사생(死生)과 화복(禍福)은 하늘의 뜻이다. 그 하늘의 뜻을 어찌하겠는가?” 하였다.
*怡[기쁠 이], 怡然(이연):안락하고 자유로운 모양. 즐거운 모양. ㅇ就道(취도):길에 오름. 출발함.
寄書于子東輔曰 “昔, 范忠宣年七十有萬里之行, 汝父之罪, 甚寬典也. 且吾負恩至此, 死即薄葬可也.”
아들 동보(東輔)에게 편지를 부치기를, “옛적 범충선(范忠宣)은 나이 70에 만 리의 귀양길을 갔으니, 네 아비의 죄로 보아 매우 너그러운 은전이다. 또 내가 나라의 은혜를 저버려서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죽거든 곧 간소하게 장사 지내도록 하여라” 하였다.
*寄書(기서):편지를 부침. ㅇ寬典(관전):관대한 법령. ㅇ負恩(부은):은덕을 잊음. 은혜를 저버림. ㅇ薄葬(박장):장례를 검소하게 지냄.
行至用安驛, 有禁府郞,指安東,星馳而來, 一行驚倒號哭. 公正色叱之. 至則又移配朔州矣. 至碧蹄驛, 李晦齋彦迪配江界亦到. 公戲曰 “李貳相·權貳相一時之行, 何赫赫也. 咫尺不相見而行.”
일행이 용안역(用安驛)에 이르렀을 때, 금부랑(禁府郎)이 안동을 가리키면서 급히 달려왔다. 일행이 놀라 자빠지며 울부짖으니, 공이 정색하며 이들을 꾸짖었다. 다다르자 다시 삭주(朔州)로 적소를 옮겼다. 벽제역(碧蹄驛)에 이르니 강계(江界)로 유배되던 회재(晦齋) 이언적(李彥迪) 역시 도착하였으므로, 공이 장난삼아 말하기를, “이이상(李貳相)ㆍ권이상(權貳相)의 행차(行次)가 어찌 이리도 휘황찬란(輝煌燦爛)한가?” 하였다. 지척(咫尺)에서 서로 만나지도 못하고 헤어졌다.
*星馳(성치):유성(流星)처럼 내달림. ㅇ(驚倒(경도):몹시 놀라 넘어짐. ㅇ號哭(호곡):목을 놓아 큰 소리로 욺. ㅇ正色(정색):얼굴에 엄정(嚴正)한 빛을 나타냄. 또는 그 얼굴빛. ㅇ叱[꾸짖을 질], ㅇ貳相(이상):조선 시대, 삼정승 다음가는 벼슬이란 뜻으로, 좌찬성과 우찬성을 이르는 말.
至謫之明年戊申春. 感疾枕臥, 猶不去書, 授小兒“千字文”, 無少差, 家人不知其殆矣. 卒, 享年七十一. 其年, 歸葬于酉谷之某山某原. 至明宗末, 剪去奸穢, 國是稍變. 丁卯, 今上嗣服, 克追先志, 凡乙巳以後,庶冤羣枉, 以次昭雪.
적소(適所)에 이른 다음 해 무신년(1548) 봄에 병들어 누워서도 오히려 책을 놓지 않았고 아이들에게 천자문(千字文)을 가르칠 때도 조금도 평상시와 다름이 없어서, 집 식구들도 공의 병이 위중(危重)함을 알지 못하였다. 세상을 떠나니 향년 71세였다. 시신을 가져와 그해에 유곡(酉谷)의 어느 산 어느 언덕에 장사지냈다. 명종 말년에 이르러 간흉(奸兇)을 제거하여 국시(國是)가 조금 변하였고, 정묘년(1567, 선조1)에 금상(今上, 선조宣祖)이 왕위를 계승하자 선왕의 뜻을 따라서 을사년 이후의 여러 원통함을 풀어주고 수치스러운 일을 씻어 내었다.
*感疾(감질):질병에 감염됨. 병을 앓음. ㅇ剪[자를 전], ㅇ穢[더러울 예], 國是(국시):국가 이념이나 국가 정책의 기본 방침. ㅇ嗣服(사복):왕위를 계승함. ㅇ冤[원통할 원], ㅇ群枉(군왕):간사한 무리. ㅇ以次(이차):순서를 따름. 또는 순서대로. ㅇ昭雪(소설):억울함을 깨끗이 씻음. 원통함을 풂.
十二月, 慶尚道觀察使朴啓賢狀啓, “權橃忠義風節如此, 請與李彦迪俱賜追獎.” 上覽而嘉歎, 令大臣議處. 議謂二人所學所行, 燁然可稱, 允合追獎, 用光繼述, 使士氣益振, 儒道增重. 戊辰春, 贈公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左議政·兼領經筵·監春秋館事.
12월에 경상도 관찰사 박계현(朴啓賢)이 장계하기를, “권벌(權橃)의 충의와 풍절이 이와 같으니, 이언적(李彦迪)과 아울러서 모두에게 소급(遡及)해서 장려하는 은전(恩典)을 내리소서” 하니, 임금이 보고 가상하게 여기고 대신을 시켜 의논해서 처리하게 하였다. 의논에 이르기를, “두 사람은 학행(學行)이 빛나서 칭찬할 만하여 소급해서 장려(獎勵)해야 마땅하니, 빛나게 선왕의 뜻을 이어서 선비의 기풍을 더욱 진작(振作)시키고, 유도(儒道)가 더욱 중해지게 하소서” 하였다. 무진년(1568) 봄에 공에게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좌의정 겸 영경연감 춘추관사(議政府左議政兼領經筵監春秋館事)를 증직하였다.
*追獎(추장):소급(遡及)하여 장려함. ㅇ嘉歎(가탄):칭찬하고 감탄함. ㅇ議處(의처):잘 의논하여 처리함. ㅇ繼述(계술):조상의 뜻과 사업을 이음. 계지술사(繼志述事).
公丰姿偉度, 風神秀朗, 器局峻整. 性儉素, 不喜爲華靡事. 位至通顯, 而自奉蕭然若寒士. 公子東輔爲陵參奉, 騎馬充肥.
공은 보기 좋은 체격에 도량이 크고 인품이 준수하고 활달하며 기국(器局)이 엄숙하고 단정했다. 성품이 검소하여 사치를 좋아하지 않았고, 높은 지위에 올랐어도 가난한 선비처럼 소박하게 생활했다. 공의 아들 동보가 능참봉(陵參奉)이 되었는데 그가 타는 말이 살이 쪘다.
*丰[예쁠 봉], 丰姿(풍자):훌륭한 자태. ㅇ偉度(위도):큰 도량(度量). ㅇ風神(풍신):풍채. 또는 표정과 태도. ㅇ秀朗(수랑):준수하고 활달함. ㅇ器局(기국):사람의 도량과 재간. ㅇ峻整(준정):높고 잘 정돈됨. 엄숙하고 장중(莊重)함. ㅇ華靡(화미):화려하고 사치스러움. ㅇ通顯(통현):지위가 높고 명성이 크게 드러남. ㅇ自奉(자봉):스스로 일용할 물자를 공급함. 또는 자기의 생활이나 씀씀이. ㅇ蕭然(소연):쓸쓸함. 적막함. ㅇ寒士(한사):가난한 선비. 권력 없는 선비. ㅇ充肥(충비):살이 찜. 비만함.
公怒曰 “一命之士, 苟存心於愛物, 於人必有所濟. 汝甫得末官, 瘠人肥畜如此, 敢望濟人乎?” 會公當扈駕, 斥此馬, 借騎於人.
공이 노하여 말하기를, “초급 관리라도 실로 물(物)을 아끼는 데 마음을 두면 사람을 반드시 구제해야 하는 것인데, 너는 겨우 말관(末官)이 되어 사람을 여위게 하고 말을 이렇게 살찌게 하였으니, 감히 사람을 구제하기를 바라겠는가” 하였다. 때마침 공이 임금을 호종하게 되었는데, 이 말을 물리치고 다른 사람에게 빌려 탔다.
*一命(일명):처음으로 관직에 임명된 사람. ㅇ瘠[파리할 척], ㅇ扈[뒤따를 호], 扈駕(호가):임금이 탄 수레를 호위하며 뒤따르던 일.
雅好讀書, 雖直省在公, 亦未嘗廢忘. 或遇聖賢言行切要處, 必招子姪開示, 反覆教告, 每曰 “爲學須爲己, 科舉, 特末事耳.” 晚節, 尤好『自警編』·『近思錄』, 不去懷袖間.
평소에 글 읽기를 좋아하여 비록 관청에 수직(守直)하는 자리에서도 책 읽기를 멈추지 않았고, 성현의 언행이 절실하고 요긴한 대목을 만나면 반드시 아들과 조카들을 불러 펴 보이며 반복하여 가르쳤다. 늘 말하기를, “학문은 반드시 자기를 위한 것이요, 과거는 다만 지엽적(枝葉的)인 일일 뿐이다” 하였다. 말년에는 더욱 《자경편(自警編)》과 《근사록(近思錄)》을 좋아하여 품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直省(직성):고려 시대, 중서문하성과 상서도성에 속한 구실아치. ㅇ敎告(교고):가르쳐 이끌어줌. 가르치고 일깨움. ㅇ懷袖(회수):가슴과 소매. 곧 품속.
中宗嘗召宰執, 宴後苑賞花, 命各盡歡醉, 扶携而出. 有內小臣拾得近思小冊, 不知爲誰某. 上曰 “落自權橃矣.” 命還之.
중종이 재상(宰相) 등의 중신(重臣)을 불러 후원(後苑)에서 잔치를 열고 꽃을 구경하였는데 명하여 각기 맘껏 즐겁게 취하게 하니, 부축을 받고 나갔다. 어떤 환관(宦官)이 작은 《근사록》을 주웠었는데 누구의 것인지를 알지 못했다. 상(上)이 말하기를, “권벌이 떨어뜨린 것이다” 하시고, 명하여 이를 돌려보냈다.
*宰執(재집):재상 등의 중신(重臣)을 이르는 말. 예전에, 임금을 도와 모든 관원을 지휘하고 감독하는 이품 이상의 벼슬이나 그런 자리에 있는 사람을 통틀어 이르던 말. ㅇ後苑(후원):대궐 안에 있는 정원. ㅇ歡醉(환취):즐겁게 술을 마심. ㅇ扶携(부휴):부축함. ㅇ內小臣(내소신):왕후(王后)의 명령을 받드는 환관(宦官). ㅇ誰某(수모):아무개.
公外氏於貞顯王后爲近親, 宸眷異他, 而公益自謹避. 凡宰相聯內屬者朝京回, 必有私獻. 公獨否曰 “非所敢也.”
공의 외가는 정현왕후(貞顯王后)의 근친이어서 임금의 총애가 남달랐으므로 공이 더욱 스스로 삼가고 피하였다. 대개 재상으로서 친척이 되는 사람들은 명나라 서울에 조회(朝會)하고 돌아오면 반드시 사사로이 선물을 바치곤 하였는데, 공은 홀로 그렇게 하지 않고 말하기를, “감히 할 일이 아니다” 하였다.
*外氏(외씨):외가(外家). ㅇ宸[집 신]:대궐, 宸眷(신권):제왕의 사랑이나 보살핌. ㅇ內屬(내속):어떤 나라가 다른 나라의 속국(屬國)이 되어 복종함. 또는 외국인이 와서 그 나라에 복종함. ㅇ朝京(조경):서울에 들어감.
公平居, 和氣薰然, 雖庸人賤隷, 遇待以恩厚. 閨門之內, 不嚴而畏, 莫敢有交間者. 婢嘗奉盤而仆, 羹汚公衣, 不形嗔恚. 坐溪亭, 有人乘馬過前, 隱身而避之.
공이 평상시 온화한 기색이 훈훈하여 비록 용렬한 사람이나 미천(微賤)한 사람이라도 두터운 은의(恩意)로써 대우(待遇)하였고, 가정 안에서 엄하게 하지 않아도 두려워하여, 감히 이간함이 없었다. 한번은 여종이 밥상을 들고 오다가 엎어져서 국물이 공의 옷을 더럽혔는데도 공은 화를 내지 않았다. 시냇가 정자에 앉아 있을 적에 어떤 사람이 말을 타고 앞을 지나가니 공이 몸을 숨겨서 피하였다.
*平居(평거):평소. 평상시. ㅇ薰然(훈연):온화한 모양. 또는 얌전한 모양. ㅇ庸人(용인):어리석고 변변하지 못한 사람. 범인(凡人). ㅇ賤隷(천예):천한 백성과 노예. ㅇ遇待(우대):대우함. 대접함. ㅇ恩厚(은후):사랑이 독실함. 閨門(규문):규중(閨中).부녀자가 거처하는 방. ㅇ仆[엎드릴 부]:뒤지어지다. ㅇ羹[국 갱]. ㅇ汚[더러울 오]. ㅇ嗔恚(진에):성냄. 화냄.
鄕人有爲本府教官者來謁公, 道撾吏人, 府使聞而面數之. 官惶遽紿應曰 “非我也. 乃權令公也.” 府使曰 “捶吏濟私, 權相亦爾乎?” 恚言不置, 公終不辨. 其弘量如此. 及至臨利害,遇事變, 義形于色, 直前擔當, 勇決如賁育.
고을 사람 중에 본부(本府) 교관(敎官)이 된 사람이 공을 보러 오다가, 중도(中途)에서 본부(本府)의 아전을 때렸다. 부사가 듣고 잡아와서 대면(對面)하고 나무라자 교관이 당황하여 거짓으로 대답하기를, “내가 그런 게 아니라 권영공(權令公)이 그랬습니다” 하였다. 부사가 말하기를, “아전을 때리고 자기의 잇속을 채우는 일을 권상(權相)도 그렇게 하나?” 하고, 성난 말이 그치지 않았는데, 공은 끝까지 변명하지 않았다. 이와 같이 도량이 넓었으나 이해(利害)에 임하고 사변(事變)을 만나서는 의기가 용모에 드러나서, 맹분(孟賁)ㆍ하육(夏育)처럼 용감하게 곧장 나아가 이를 담당하여 결단하였다.
*撾[칠 과], ㅇ面數(면수):직접 따짐. 면전에서 책망함. ㅇ惶[두려워할 황], 遽[갑자기 거], 惶遽(황거):두려워서 당황함. 놀라서 허둥댐. ㅇ紿[속일 태], ㅇ捶[종아리 칠 추], ㅇ濟私(제사):자기의 잇속을 채움. ㅇ弘量(홍량):넓은 도량. ㅇ直前(직전):곧바로 앞으로 나아감. ㅇ勇決(용결):용단(勇斷).
當其再啓事也. 通夜草啓辭, 趁早,將趨朝, 家人子壻更扳挽泣諫, 輒麾去之. 至闕, 申公光漢, 相遇並行, 問知公意, 愕然固止之. 公不聽.
두 번째 계사(啓事) 때에 밤새도록 아뢸 글을 초하여 아침에 조정으로 들어가려 하니 집안 자서(子壻)들이 서로 만류하여 울면서 간하였으나, 모두 물리쳐 보냈다. 대궐에 이르러, 신광한(申光漢)을 서로 만나 함께 가게 되었다. 신광한이 공의 뜻을 물어서 알고는 깜짝 놀라 굳이 만류하였으나, 공은 듣지 않았다.
*啓事(계사):사정을 적어 올린 문서나 글. ㅇ通夜(통야):통소(通宵).밤새도록. ㅇ趁[좇을 진, 趁早(진조):빨리. 일찍. 아른 아침. ㅇ趨朝(추조):조회에 들어감. ㅇ扳[끌어당길 반], ㅇ挽[당길 만], ㅇ輒[문득 첩], ㅇ麾[대장기 휘], ㅇ愕[놀랄 악]. 愕然(악연):깜짝 놀라며 의아해 하는 모양.
詣院相李公彦迪座, 招注書柳景深, 使書啓辭. 李公視草本, 亦驚曰 “勢已至此, 言之,徒惹起不測耳. 奚益? 盡抹去其危言處?” 公卻坐抱膝長嘻曰 “刪沒如此, 不如不爲之爲愈也.”
원상(院相) 이언적(李彥迪)의 자리에 나아가서 주서(注書) 유경심(柳景深)을 불러 계사(啓辭)를 쓰게 하니, 이공 역시 초본(草本)을 보고 놀라 말하기를, “사세가 이미 이에 이르렀으니 말해도 한갓 예기치 못한 일만 야기될 것입니다.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하고, 그 위태하게 말한 곳은 모두 지워버리니, 공이 가만히 앉아서 무릎을 안고 길게 탄식하면서 말하기를, “이와 같이 깎아버리면 하지 않은 것보다 못하지 않는가?” 하였다.
*惹[이끌 야], 惹起(야기):불러일으킴. ㅇ不測(불측):헤아릴 수 없음. 예상할 수 없는 일. ㅇ抹[바를 말]:지우다. ㅇ抹去(말거):기록이나 사실 등을 지워서 없애거나 뭉개버림. ㅇ卻[물리칠 각]:각(却), ㅇ卻坐(각좌):가만히 앉아있음. ㅇ膝[무릎 슬], 抱膝(포슬):무릎을 두 손으로 껴안고 앉음. 사색에 잠긴 모양. ㅇ嘻[웃을 희], ㅇ刪[깎을 산], ㅇ愈[나을 유].
公與鄭順朋分深, 鄭初告尹任時病甚, 移告數月, 是日始出. 公迎謂曰 “令公亦何以來乎?” 鄭色沮. 事定後,語人曰 “凶類即日當了. 吾聞權某之言, 不覺汗背, 不復有言而歇. 後李文仲處事不猛, 以致多日騷擾.”
공은 정순붕과 교분이 깊었다. 정순붕이 처음 윤임(尹任)을 고발할 때에 병이 심하여 수개월 동안 쉬고 있다가 그날 처음으로 나왔다. 공이 맞이하면서 말하기를, “영공(令公:정순붕)이 무슨 일 때문에 나오셨는가?” 하니, 정[정순붕]이 멈칫했다. 일이 끝난 후에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흉한 무리들은 즉일(卽日)로 마땅히 해치웠을 것이지마는 내가 권 아무개의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등에 땀이 나서 더 이상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하였다. 후에 이문중(李文仲:李芑)의 일 처리가 엄하지 않아서 여러 날 동안 소란스러웠다.
*移告(이고):공문을 내어 휴가를 냄. ㅇ色沮(색저):낯빛이 위축됨. 기가 꺾임. ㅇ汗背(한배):등에 땀을 흘림. 너무 부끄럽거나 무서워서 흐르는 땀이 등을 적심. ㅇ歇[쉴 헐], ㅇ騷擾(소요):많은 사람이 떠들썩하게 들고일어나 술렁거림.
尹思翼爲人疎繆, 公屢責之. 引對日, 思翼啓曰 “大行王大漸時”, 臣語權橃曰 “宜急迎大君入內, 橃不答矣.” 公但啓云, “有大臣在, 非臣所能擅斷.” 退詣賓廳.
윤사익(尹思翼)은 사람됨이 거칠고 바르지 못하여 공이 여러 번 꾸짖었던 인물이었다. 상을 인대(引對)하던 날, 윤사익이 아뢰기를, “대행왕(大行王)의 병환이 크게 위중했을 때에 신이 권벌에게 마땅히 대군(大君)을 급히 맞아 궐내로 들어오게 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권벌이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하니, 공은 다만 “대신이 있으므로 신이 능히 함부로 처단할 바가 아니었습니다”라고만 아뢰고 물러나 빈청(賓廳)으로 나왔다.
*繆[얽을 무]:류-잘못되다, 疎繆(소류):소류(疎謬). 거칠고 잘못됨. ㅇ屢[여러 번 루], ㅇ大漸(대점):임금의 병세가 아주 위독함. ㅇ入內(입내):안으로 들어옴. ㅇ擅斷(천단):제 마음대로 처단함. ㅇ賓廳(빈청):궁중에 있는, 대신이나 비변사의 당상들이 모여 회의하던 곳.
許公磁瞠視尹曰 “公欲捉權公, 何耶? 當危疑時, 權公以大義力贊大計. 權公赤心, 朝廷所共知, 安有他意.” 尹面赤無以答.
허자(許磁) 공이 윤사익을 향하여 눈을 부릅뜨고 말하기를, “공이 권공을 잡고자 함은 어째서인가? 위태하고 의심스러운 때를 당하여 권공은 대의(大義)로써 대계(大計)를 힘써 도왔으니, 권공의 충심은 조정이 모두 아는 바인데 어찌 다른 마음이 있었겠는가” 하니, 윤은 낯을 붉히며 대답이 없었다.
*瞠[볼 당], 瞠視(당시):놀란 눈으로 바라봄. ㅇ捉[잡을 착], ㅇ危疑(위의):의심을 품음. 믿지 않음. ㅇ赤心(적심);거짓이 없는 참된 마음.
初, 公爲吏郞時, 朴公說爲判書, 見公來至, 握手相歡飲, 或恠問之, 曰 “不見其人儀度乎? 異日當爲大器.”
처음에 공이 이조낭관(吏曹郎官)이 되었을 때 박열(朴說) 공은 판서(判書)의 지위에 있었는데, 공이 오는 것을 보고 손을 잡고 즐겁게 술을 마시니, 어떤 이가 괴이하게 여겨 묻자 말하기를, “그 사람의 몸가짐과 풍도(風度)를 보지 않았는가? 뒷날에 마땅히 큰 그릇이 될 것이다” 하였다.
*恠[기이할 괴], ㅇ儀度(의도):풍채와 태도.
宋圭菴麟壽論當世人物云, “權公, 宰相中眞宰相也.” 陰崖李公耔, 痛己卯之禍, 嘗書“小錄”曰 “趙孝直當中興之運, 感不世之遇, 知無不言, 言無不從, 庶復先王之治.
규암(圭菴) 송인수(宋麟壽)가 당세의 인물을 논하기를, “권공은 재상 중에서도 진정한 재상이다” 하였고, 음애(陰崖) 이자(李耔)가 기묘년(1519, 중종14)의 화를 통분히 여겨 일찍이 〈소록(小錄)〉에 쓰기를, “조효직(趙孝直:조광조)이 중흥의 운(運)을 당하여 세상에 없는 대우에 감동하여, 알면 말하지 않음이 없었고, 말하면 좇지 않음이 없어서 선왕들의 다스림을 회복하기를 바랐다.
然後來諸賢, 年少氣銳, 改絃無漸, 觸冒險阻, 物情大乖, 公與申大用·權仲虛等, 調劑兩間, 冀不至敗闕, 而新舊惎之, 以至今日. 斯豈人謀之不臧哉云.” 然則公之在己卯中, 可謂善處者矣.
그러나 뒤에 오는 여러분들이 젊고 기개가 날카로워서 점진적으로 정사(政事)를 개혁하지 못하여 음흉한 자들과 충돌하니, 여론이 크게 어긋났다. 공이 신대용(申大用), 권중허(權仲虛:權橃) 등과 함께 양쪽을 조화시켜 일을 그르치지 않게 하기를 바랐는데, 신구(新舊) 사람들이 꺼려하고 이간하여서 오늘에 이르렀으니, 이것이 어찌 사람의 꾀가 착하지 못해서이겠는가?” 하였으니, 말이 이러하다면 공은 기묘사화 때에 잘 처리하였다고 하겠다.
*改絃(개현):방향이나 방법 등을 변경함을 비유한 말. ㅇ觸冒(촉모):범함. 저촉함. ㅇ險阻(험조):장애(障礙). 험준(險峻)함. ㅇ物情(물정):세상의 형편이나 인심. ㅇ乖[어그러질 괴], ㅇ調劑(조제):중재함. 화해시킴. ㅇ冀[바랄 기], ㅇ敗闕(패궐):잘못. 실수. 과실. ㅇ惎[해칠 기], ㅇ臧[착할 장].
若夫乙巳之禍, 公營捄至再, 皆在於鄭疏未上之前, 三人罪狀, 未有的指, 而目之以關宗社之名, 是其根連株逮, 搢紳虀粉, 豈止於竄黜三人而已哉. 此公之所大懼, 其他則不知也.
을사년의 화(禍)에는 공이 두 번이나 그들을 구하려는 말을 하였는데, 모두 정순붕(鄭順朋)의 소(疏)가 올라가기 전이었다. 세 사람의 죄상(罪狀)이 아직 지적(指摘)할만한 것이 없는데 종사(宗社)에 관계되었다는 이름으로 지목(指目)하였으니, 이것은 그 뿌리에 이어진 줄기까지 연관된 사대부를 다 해치우려 한 것이요, 어찌 세 사람만을 내치고 귀양 보내는데 그칠 뿐이겠는가? 이것이 공이 크게 두려워했던 것이요, 그 밖의 것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捄[담을 구], 營捄(영구):-영구(營救):구원(救援)함. ㅇ逮[미칠 체], 根連株逮(근련주체):연루됨. 끌려들어감. ㅇ搢[꽂을 진], 紳[큰 띠 신], 搢紳(진신):‘벼슬아치’의 총칭. ㅇ虀[버무릴 제], 虀粉(제분):빻아서 가루를 냄. 분골쇄신(粉骨碎身)을 비유한다. ㅇ竄[숨을 찬], 黜[물리칠 출], 竄黜(찬출):벼슬을 빼앗고 귀양을 보냄. 찬적(竄謫).
故獨能奮然出萬死, 犯雷霆以爭之. 設使彼時諸人, 皆以公之心爲心, 其舉措之間, 一意於爲國紓難,而無他心, 則於罪之有無輕重, 得之無失而處之合宜, 無罪者不至如是之糜爛而俱焚矣.
그러므로 홀로 분연(奮然)히 떨치고 일어나서 만 번 죽음을 무릅쓰고 천둥 같은 위엄을 범하면서 다투었던 것이다. 만약에 그때의 여러 사람들이 모두 공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행동하는 과정에서 나라를 위하여 환란을 이겨내는 데만 집중하고 다른 마음이 없었더라면, 죄의 유무와 경중에 대해 잘못됨이 없이 올바르게 처리될 수 있었을 것이니, 죄 없는 자가 이와 같이 가루가 되고 재가 되는 데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萬死(만사):아무리 해도 목숨을 건질 수 없음. 죽음을 무릅씀을 형용하는 말. 뇌정(雷霆):천둥. 벼락[벽력(霹靂)]. ㅇ設使(설사):설령(設令). ㅇ擧措(거조):행동거지(行動擧止). ㅇ紓[느슨할 서], 紓難(서난):위난(危難)을 없앰. ㅇ合宜(합의):알맞게 됨. 적절함. ㅇ糜[죽 미]:문드러지다, 爛[문드러질 란], 糜爛(미란):잘게 부숨. 산산이 부숨. 유린당함. ㅇ焚[불사를 분].
由是而論, 先事而捄人, 其變未定於空雲, 忘身而犯難, 其義實凜於秋霜. 鄭文翼公光弼嘗稱公有死難不可奪之節, 其言詎不信然也哉?
이로써 논하여 보면, 일이 생기기 전에 사람을 구하였으니 공중의 구름같이 어떻게 변할지 정해지지 않은 때였고 자신의 안위(安危)는 따지지 않고 험난(險難)함을 범하였으니 그 의(義)가 실로 추상(秋霜)같이 늠름(凜凜)한 것이었다. 문익공(文翼公) 정광필(鄭光弼)이 일찍이 일컫기를, “공은 죽음으로써도 뺏을 수 없는 절의가 있다” 하였으니, 그 말이 어찌 참말이 아니겠는가?
*空雲(공운):허공의 구름. ㅇ忘身(망신):자기의 몸을 생각하지 않음. 자신을 돌보지 않고 헌신(獻身)함. ㅇ死難(사난):국난(國難)이나 정의(正義)를 위하여 목숨을 바침. ㅇ犯難(범난):위험을 무릅씀. ㅇ凜[찰 름], ㅇ奪[빼앗을 탈], ㅇ詎[어찌 거].
然而當時秉國者, 旣以公爲不知, 而固以爲大罪, 凡三遷謫所, 必置之窮邊極惡之地, 若可以已矣.
그런데도 당시에 국권을 잡은 자들은 이미 공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실로 큰 죄를 지었다고 하여 세 차례나 적소(謫所)를 옮겨 기어이 벽지의 극악한 곳에 두었으니, 그만하면 그쳐야 했다.
*秉國(병국):나라의 정권을 장악함. ㅇ窮邊(궁변):황량하고 외진 변경 지역. ㅇ極惡(극악):극도로 흉악함.
其忿猶未怠. 戊申二月, 乃以公及李公彦迪, 請處重典, 更進強聒, 其說萬端, 尙幸簾中堅拒不從, 嘻, 於斯時也. 二公之得以善終, 豈不以神明扶祐有不昧於厥初. 至于今日, 二公之特蒙獎典, 又豈非上天施報,果大定於旣久者耶?
그런데도 오히려 분이 풀리지 않아서, 무신년(1548, 명종3) 2월에 공과 이언적(李彥迪) 공을 중한 법(法)으로 처벌하기를 청하여 번갈아 나아가서 온갖 단서(端緖)로 지껄였으나, 그래도 수렴청정(垂簾聽政)하던 왕후께서 굳게 물리치고 따르지 않았다. 아아, 이때에 두 공이 그 마지막을 잘 마친 것은, 천지신명(天地神明)이 애초에 밝게 보호한 때문이 아니겠으며, 오늘에 이르러 특히 두 공이 추숭(追崇)하는 은전(恩典)을 입게 된 것 역시 어찌 하늘의 보응이 이미 오래전에 크게 정해진 것이 아니겠는가.
*忿[성낼 분], ㅇ怠[게으를 태]:약해지다. ㅇ重典(중전):중법(重法). ㅇ更[고칠 경]:-경번(更番). ㅇ聒[떠들썩할 괄], 强聒(강괄):쉬지 않고 떠듦. ㅇ萬端(만단):수없이 많은 일의 실마리. ㅇ簾[발 렴], ㅇ堅[굳을 견], ㅇ拒[막을 거], ㅇ善終(선종):일을 잘 마무리함. 천수(天壽)를 누린 죽음. ‘선생복종(善生福終)’에서 나온 말로, 임종할 때 성사(聖事)를 받아 큰 죄가 없는 상태에서 죽는 일. ㅇ施報(시보):남이 베풀어 준 데 대하여 보답함.
公配, 某郡某氏某官某之女. 有二子, 長即東輔, 典牲署直長. 次東美, 造紙署別坐. 皆進士. 一女壻, 即別坐洪仁壽也.
공의 아내는 모군(某郡) 모씨(某氏) 모관(某官) 모(某)의 따님이었다. 두 아들을 두었는데 맏이는 바로 동보(東輔)이니 전생서직장(典牲署直長)이요. 다음은 동미(東美)이니 조지서별좌(造紙署別坐)인데 모두 진사(進士)였다. 사위[女壻]는 하나인데 바로 별좌 홍인수(洪仁壽)였다.
滉以中表後生, 久蒙提掖之厚, 於公立朝大節, 蓋心識之, 敘次行事, 諗諸方來, 義無可辭. 今因直長之屬, 粗具始末如右, 以竢當世立言之君子有所考信云. 隆慶三年六月日, 滉, 謹狀. <退溪先生文集卷之四十九>
내가 공의 내외종의 후손으로서 오랫동안 이끌어 주고 깨우쳐 준 은덕을 입었고, 공이 조정에 계실 때의 대절(大節)을 대략 마음에 기억하고 있으니, 그 행적을 순차대로 적어서 후세에 고하는 것을 의리상 사양할 수 없었다. 이제 직장(直長)의 부탁으로 대강 시말(始末)을 위와 같이 갖추어서 당세의 입언(立言)하는 군자(君子)가 근거(근거)로 삼아주기를 기다릴까 한다. 융경(隆慶) 3년(1569, 선조2) 6월 모일 황(滉)이 삼가 적다.
*中表(중표):내외종(內外從) 간, 곧 고종사촌과 외사촌, 이종사촌 형제 사이. ㅇ提掖(제액):겨드랑이를 양쪽에서 붙잡아 일으켜 세움. 발탁하여 도와줌. ㅇ諗[고할 심], ㅇ方來(방래):앞날. 장래. 미래. ㅇ屬[엮을 속][촉]:촉(囑).부탁하다. ㅇ竢[기다릴 사]-사(俟). ㅇ立言(입언):후세에 교훈이 될 만한 말을 하거나 글을 지음. ㅇ考信(고신):조사하여 밝힘. ㅇ隆慶(융경):명나라 12대 목종(穆宗) 때의 연호로 기간은 1567~1572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