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이야기 24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과 '푸른 하늘 은하수'
비온 다음 날 아침, 거짓말처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손에 잡힐 듯 밝은 햇살과 더불어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말갛고 푸른 하늘이 문득 한눈 가득 비칠 때 절로 읊조리곤 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어느덧 칠순을 바라보는 가수 송창식의 시원한 목소리가 일품인 노래, ‘푸르른 날’입니다. 다들 알고 있듯이 저 유명한 시인 미당 서정주의 시를 노랫말 삼아 곡을 붙인 것이지요.
그런데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푸르른’이 마음에 걸립니다. ‘푸른’이 옳은 표기이기 때문이지요.
‘푸르다’는 ‘러' 불규칙 용언이므로 ‘푸르~’에 ‘~어’를 붙이면 ‘푸르어’나 ‘푸러’가 아닌 ‘푸르러’가 됩니다. 그러다 보니 ‘~은’이 붙을 자리에도 ‘~른’을 붙여야 하는 것으로 착각하여 ‘푸르른’이라고 쓰기 쉽지요.
‘친일(親日) 작가’, ‘권력에 아부하는 해바라기 시인’이라는 더러운 이름을 덮을 만큼 뛰어난 시를 여럿 남긴 서정주의 대표작인지라 ‘시적 허용’이라는 잣대를 들먹이며 감싸는 사람도 있고, ‘시인은 언어를 창조적으로 파괴하는 사람’이라고 옹호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현재의 맞춤법에는 어긋난 것은 사실입니다. 만일 이게 옳다면 윤극영의 동요 ‘반달’은 ‘푸르른 하늘 은하수…….’ 이렇게 불러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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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에 이렇게 써서 동아리밴드에 올렸더니 공교롭게도 바로 사흘 후(2015. 12.14)에 표준어규정이 개정되면서 '푸르르다'도 당당히 표준어에 끼어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글은 겨우 이삼일밖에 생명을 누리지 못한 웃기는 상황이 되어 버렸네요.
본문을 굳이 고치지는 않겠습니다. 그 나름대로 의미 있는 글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무리 국립국어원이 인정한다고 해도 서정주가 쓴 걸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제가 옳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다만 다음 한 문단을 그 뒤에 덧붙이고자 합니다.
“이렇게 써서 인터넷에 올렸는데 겨우 사흘 만에 ‘푸르다’와 ‘푸르르다’를 복수 표준어로 인정한다는 국립국어원의 발표가 나왔습니다. 아울러 이젠 ‘이쁘다’도 쓸 수 있다는군요. 다행히 이 글을 사흘 전에 썼기에망정이지 좀 늦었더라면 무식쟁이가 될 뻔했습니다.”